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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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 가능한 환각의 출현 :

 

 

 

 

 

 

 

 

 

​악어 이야기

 

                                             

                                                                                                                   훌륭한 이야기에는 항상 " 악어 " 가 등장한다. 만약에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책에서 악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버려도 좋다. 그런 책은 재미없어 !

악어가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유명한 재담'이다)  :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불평하는 여성 환자가 있다.  여자는 악어가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말한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그것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며 침대 밑에는 악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와, 악어 있다니까요 ~    왜, 내 말을 안 믿냐고요 ~    나, 이대 나온 여자라고요 ~   하지만 의사는 도시에서 악어 출현은 " 실현 불가능한 환각 " 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무시한다.  두 번째 상담에서도 그 환자는 여전히 똑같은 불평을 하지만 남자는 지난번 진단과 같은 처방을 내린다. 와, 악어 없다니까요 ~    왜, 내 말을 안 믿냐고요 ~     나, 정신과 의사라고요 ~               

세 번째 상담이 있던 날,  약속했던 환자가 나타나지 않자 의사는 환자의 망상이 사라졌다며 기뻐한다.  만약에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난다면 이 이야기는 매우 지루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며칠 뒤, 의사는 환자 친구인 k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환자의 안부를 묻는다. k가 말한다.  그 악어한테 잡아먹힌 그 사람 말하는 겁니까 ?  침대 밑에서 악어가 살았다고 하더군요.                         이 이야기에서 < 악어 > 는 현실 공동체 질서 안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환각'에 불과했지만,  현실 속에서 " 실현된 환각 " 으로 나타나면서 서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처럼 악어는 스토리텔링1)에서 매우 중요한 오브제이다.

이명박 스토리와 박근혜 스토리가 매우 흥미진진했던 까닭도 인간의 눈에서 악어의 눈물이 흐른다는 데 있다. 아, 아아아아아악어의 눈물이라니. 그것은 싱크대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맥주가 쏟아지는 것과 같은 꼴이다. 쇼킹하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며 흘린 박근혜의 눈물을 보았을 때 우리 모두는 당황했었다. 어, 어어어어어어...... 닭이 아니라 악어였어 ???!!!!  이처럼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항상 악어 한 마리 정도는 비장의 카드로 숨겨놓아야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어느 하드보일드 작가는 글을 쓰다가 막히면 권총을 등장시키면 된다고 충고했다.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글을 쓰다가 막힌다 싶으면 악어 한 마리를 등장시키라구.

그런데 악어가 한 마리가 아니라 악어가 떼로 등장하는 만화가 있다.   바로 << 악어 프로젝트 >> 라는 프랑스 만화'이다.  이 책에서 남자는 모두 초록색 악어로 등장한다.   악어 떼가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사는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그리고 있는데 양성 평등 국가로 알려진 프랑스에서도 이 문제만큼은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초록색 악어들은 호시탐탐 여자들을 잡아먹을 궁리만 한다.  " 남자는 모두 다 늑대(악어) " 라는 말은 세계 어디를 가나 만국공통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특히, 남성 입장에서 보면 모든 남성을 포식자인 초록색 악어로 묘사해서 읽는 내내 불편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잠재적 가해자가 된다는 것은 언제나 불편한 느낌이 드니까.


작가 토마 마티외는 " 악어라는 이미지를 통해 남성 우월주의,  성차별주의,  성적 고정관념,  남성의 성적 욕망,  그리고 실제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거리에서 마주친 남성에게 느끼는 두려움 같은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 고 한다.  남성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초록색 악어는 " 실현되지 않은 NON·REAL(IZE) " 환영에 불과하지만,  여성에게 있어서 초록색 악어는 " 실현된 환각 NON·ILLUSION(ED)" 으로써 라캉의 실재 the Real  2)에 가깝다. < 초록색 악어 > 는 남자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여자에게는 존재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리얼리티 없는 리얼이다.  이처럼 the Real(실재계)은  the reality와는 다른 개념으로 실제(實際)도 아니고 실재(實在)도 아니요, 실체(實體)도 아니다. 

그것은 the Nothing에 접근한 공허(空虛, the void)에 가깝고, 슬라보예 지젝이 언급한 히치코크의 얼룩이자 오점에 해당된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가졌다면, 남성인 당신은 지난날에 대하여 반성할 기회가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고,  읽는 내내 불쾌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면 당신은 a son of a bitch crocodile'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말머리에서 소개한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는 여자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이 익살스러운 재담에서 환자를 여성으로, 그리고 의사를 남성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  그리고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신과 의사는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는 여자의 말을 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무의미한 진술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   세상의 절반이 악어인데 말이다.  혹시...... 그도 또 다른 악어 한 마리는 아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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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에 개봉한 영화 << 도어락 >> 은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말하는 히스테릭한 여자 이야기의 변주'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 원룸 안에 누군가 있다고 말하는 경민(공효진 분)은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말하는 여자와 동일인이다. 그리고 경민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이 형사(김성오 분)는 정신과 의사'이다. 또한,  혼자 사는 여성만을 노리는 범인은 악어'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성 - 들'은 예외 없이 모두 경민의 히스테릭한 반응에 대하여 " 실현 불가능한 환각 " 이라고 말하지만 < 실현 불가능한 환각 > 은 < 실현 가능한 환각 > 이 되어 관객 앞에 출현한다.


2)   " 라캉의 실재(the Real)는 현실(the reality)이 아니다. 라캉의 실재는 상징계의 밖에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현실 밖에 있는, 현실이 아닌, 현실 너머의 어떤 것이다. 라캉의 실재는 경험적 실재와 구별되고, 초감각적 세계의 추상적 실재와도 구별되는 개념이다. 경험적 실재란 우리 주변의 모든 구체적 물건들을 뜻하고, 추상적 실재란 ‘자유’, ‘정의’ 같은 추상 명사들을 뜻한다. 그러나 라캉의 실재는 이것들 중 그 어떤 것과도 상관이 없다.상징계가 언어적 세계라면 실재계는 언어를 초월하는 언어 밖의 세계이다. 우리의 현실은 언어로 된 세계인데, 실재는 언어로 매개되지 않는 세계이다. 그것은 언어에 포함되지 않고, 언어 외부에, 또는 주체 외부에 있는 성(性)과 죽음의 차원이다. 결국 실재계는 불안의 대상이다. 그 세계 앞에 서면 모든 단어들이 얼어붙고 모든 범주들이 추락하는, 그런 불안의 대상이다.  상징화를 거부하므로 즉 도저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실재계는 표상이 불가능하다. 상상할 수 없고, 상징계 안에 통합시킬 수도 없어서, 우리는 도저히 그 곳에 도달할 수가 없다. 현실 속에서는 결코 제시될 수 없지만 우리가 현실과 밀착해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다. 현실 끝에 한계가 있고, 그 한계 너머로 속이 텅 비어 있는 심연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실재다. 실재는 우리가 결코 접근할 수 없는 끔찍한 한계, 즉 그것을 건드리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한계이며, 동시에 그 너머의 공간이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를 생각해 보자. 연인 유리디체를 지하세계에서 구출해 나오는 오르페우스에게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가 내려졌다. 돌아서서 뒤에 따라오는 연인을 바라보는 순간 연인이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 중간에 오르페우스는 참지 못하고 뒤돌아보았고, 연인 유리디체는 죽었다. 실재의 은유로 이것만큼 적당한 것이 없다. 실재에 가까이 가는 것은 치명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현실과 실재를 가르는 한계는 근본적 불가능성의 표지이다. 우리는 그것을 결코 넘을 수 없고, 거기에 가까이 가기만 해도 죽는다. 그리고 그 너머는 금지되어 있다. 실재는 그러니까 실체도 없고, 물질성도 없다. 일체의 상징화를 거부하므로 그 어떤 말로도 표상할 수 없다. 그러나 굳이 표현하자면 그것은 공허(空虛, the void)이다. 실재는 텅 비어 있는 빈 공간이다 "

ㅡ 박정자 칼럼에서 부분 인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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