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이스트



 




나는 문화 예술계 쪽 사람들과 친한 편이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H인데 직업은 타투이스트'다. 내가 그를 안 지도 횟수로 어언 10년이 넘는다. 그는 전공이 " 개념미술 " 이었는데, 대한민국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배고픈 일이어서, 부업으로 타투를 시작했다가 그것이 밥벌이가 된 경우'였다. 그는 야망이 큰 편이어서 남의 피부에 바늘이나 찌르는 일을 매우 부끄러워했다. 그는 스스로를 약쟁이라며 자조 섞인 말을 내뱉곤 했으나 타투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래퍼 도끼의 문신도 그가 뽐낸 솜씨였다. 그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계기는 돼지에게 문신을 새기면서였다. 아래는 그의 인스타그램에서 발췌한 사진이다.

그는 돼지 몸에다가 루이비통 로고, 기독교 성화, 박근혜와 이명박 초상화, 트럼프 얼굴 따위를 새겨 넣었는데 이 행위가 개념미술로 평가를 받으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하지만 명성도 잠시였다. 이 행위는 명백하게 동물법 위반이었다. 그래서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 아트 팜 > 이라는 돼지 농장을 지어 돼지 피부에 문신을 새기는 작업을 계속했다. 이 작품 시리즈는 명성을 얻어서 문신이 새겨진 돼지가 죽으면 가족을 벗겨서 판매를 했는데 8000만 원에 거래가 되기도 했다. 그가 명성을 쌓고 있는 동안 나는 몰락을 거듭했다. 하던 일을 접었을 때 내 손에 남겨진 재산은 빚만 수 억이었다. 설상가상 공황장애가 생겨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많은 불편이 발생했다.  현실을 비관하여 죽으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 내 손을 잡아준 이가 H였다. 그는 악마의 속삭임을 제안했다. 돼지에게 새겼던 문신 작업을 내 몸에 하는 조건으로 자신이 빚을 청산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일 년에 세 달 정도는 세계를 순회하며 미술관에서 내 몸을 전시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에 따른 비용도 지불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어. 네가 죽으면 네 피부는 도려내서 액자에 걸려 판매를 할 거야. 잔인한 거래처럼 보이지만 어차피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몸이잖아. 살아생전에 사후의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빚쟁이에게 쫓겨 장기매매꾼들에게 장기를 적출당하느니 차라리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내 몸에 새겨진 전신 문신은 한 여자의 초상이었다. 그림 속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녀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그림은 보면 볼수록 기시감이 들었다. 저 여자를 어디서 봤더라 ?  내가 타투이스트에게 작품 제목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

지난달에 나는 프랑스로 떠났다. 행선지는 소더비 경매장이었다. 경매 거래소 안으로 들어서자 경매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옷을 벗었다. 와와. 탄성의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내 몸에 새겨진 작품 때문인지 아니면 거대한 내 남근 때문인지 아리송했다.  작품을 사겠다는 경매꾼들은 경쟁적으로 손을 들어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최종 낙찰가는 600억이었다.  몸에 새겨진 내 거죽을 낙찰받은 사람은 놀랍게도 한국인이었다(경매 진행에 참여했던 사람은 그의 직원이었다). 그녀는 제 2의 장영자라 불리우는 인물로 명동에서 사채 놀이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자라고 했다. 내 몸에 새겨진 작품 소유주를 직접 만난 것은 며칠 후였다. 그녀의 사무실에 입장했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내가 오래전에 알던 사람이었다. 못난이 춘자, 그래 ! 못난이 춘자였다. 그 옛날에 내가 못난이라며 무시했던 춘자가 올림머리를 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타투이스트가 방긋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춘자가 말했다. " 페루애 오빠, 오랜만이야.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구나 ? 젊었을 땐 알랑드롱 뺨 때린 외모였는데.....  이제는 뒷방 늙은이 꼴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났네 ? "  크아아아아. 타투이스트가 크게 웃었다. 춘자가 타투이스트에게 눈을 흘기자 H는 무안한 듯 소리를 죽였다. 춘자가 말했다. " 내 파트너야, 사업 파트너. 종종 섹스 파트너이기도 해 ! " 나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 페루애 ! 당신은 내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내게 온갖 모욕을 했지. 때리기도 하고 월급날이면 찾아와서 월급봉투째 빼앗곤 했잖아. 하지만 이제는 그때의 내가 아니야. 그때의 이춘자가 아니라곳 !!!! " 그녀는 자신의 왼쪽 귀밑머리를 귀 뒤로 넘기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오빠,  죽으면 가죽을 벗겨서 내 거실에 걸어둘 거야. 지금은 후회하지 않아.  당신은 언제나 쓰레기였지만 지금은 그래도 600억짜리 몸뚱이를 가진 남자가 되었잖아. " 춘자는 그 말을 끝으로 방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타투이스트가 말했다. " 중국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춘자가 나에게 접근했지. 그리고는 차근차근 자신의 복수극에 대해서 설명하는 거야.  근사한 계획이었지. 오, 정말 근사한 계획이었지. 그녀에게는 자신을 버린 남자에 대한 완벽한 복수를 완성할 수 있는 음모였고, 나는 내 명성의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왜 옛말이 그런 말이 있잖아.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말이야. "




ㅡ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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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2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3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22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신은 오래전부터 예술의 표현 방식의 하나로 알려졌지만, 우리나라에 여전히 문신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문신을 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문신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채 그걸 하는 사람들이 더 문제 있다고 봐요. 이를테면 군 입대를 피하려고 문신을 하는 사람들이요. 이런 사람들이 화젯거리가 되니까 ‘문신하는 사람은 불량하다’는 편견이 생기는 것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1-23 15:25   좋아요 0 | URL
ㅎㅎ 문신이 사실은 의사만 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지금 하고 있는 문신은 모두 다 불법입니다... ㅎㅎㅎㅎ
꽤 웃긴 거죠. 아니, 문신을 의사만 할 수 있다니...

임모르텔 2019-01-23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신... 마산에 문신이라는 조각가가 있는데 문신미술관이라고 있습니다.ㅎ (관계없는 이야기지만..ㅋ)
저도 왼팔에 인디언 드림캐쳐(꿈을 걸르는 망) 문신이 있는데, 세상속으로 다이빙하기 겁날때 마법의 주문처럼 저를 구원해주었죠! 아직도 보수적인 경상도에서는 나의 문신을 보고 눈쌀찌푸리는 분들이 있더군요! 더구나 여자가 무슨? ..하는 따가운 눈초리.
오히려 여자들이 더 싫은 내색을 해서 놀라웠습니다. 경상도에서 사귀게 된 여자친구가 남들있을땐 내 옷을 슬그머니 내려주더군요. 자기남편이 보면 나와 노는걸 싫어한다고! 그래서 저는 그 여자친구를 안만납니다. 그 친구가 나를 찾았지만 제가 거절했죠. ㅎㅎ 문신때문에 에피소드가 종종 있네요^^ 쫄깃한 글 , 감사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1-23 15:25   좋아요 0 | URL
보수 성향이 짙은 지방일수록 더욱 그렇죠... ㅎㅎㅎㅎㅎ
임 님도 문신을 새기셨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