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돌   과      고   독    :













                                                   여러분에게 

              훌륭한 명사 한 분 소개합니다










                                                                                               한국어는 동사 중심이고 영어는 명사 중심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는 동사를 꾸며주는 부사가 발달했다. 동사가 바깥일을 담당하는 역할이라면 부사는 집안일을 맡는다. 동사가 입을 양복을 다림질하고 구두를 닦는 일이 부사의 역할이다. 


입말이 화려한 사람(말을 잘하는 입담꾼)의 특징을 살펴보면    :    맛깔스러운 부사를 적재적소에 사용해서 내용을 재미있게 꾸민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부사는 동사를 화려하게 만드는 조력자'인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부사를 남발하는 사람은 경계를 해야 한다.  부사는 사기꾼이 편애하는 품사'로 내면의 빈곤을 감추기 위해서 외양을 가꾼다.  사기꾼은 부사에 살고 부사에 죽는다.  부생부사'라고나 할까 ?   만약에 부사의 내조로 동사가 품사의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면 동사는 무대 위에서 수상 소감으로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 저는 다 된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입니다. 이 모든 영광은 부사에게 돌립니다아 ! " 한국어가 동사 중심이라고는 하나 한국인은 동사를 통해 속마음을 완전히 표출하지는 않는다.  체면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욕망(속마음)이란 원래 낡은 팬티와 같아서 볕 좋은 마당에 널기 보다는 이웃이 보지 않도록 실내 건조대에 널기 마련이다. 입말에서 주어의 진짜 복심은 동사가 아니라 부사1)다. 부사를 알아야 그 사람 속내를 간파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주장은 말의 세계일 때 가능한 주장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글의 세계에서 으뜸은 명사이고 형용사와 부사는 그 앞에서 알랑방귀나 뀌는 어릿광대'다(문장에서 무조건 형용사와 부사를 제거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박완서 작가가 << 그 남자네 집 >> 에서 " 주옥같다 " 는 표현 대신 " 구슬처럼 예쁘다 " 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 주옥 > 이나 < 구슬 > 이나 둘 다 같은 말이지만 구슬처럼 예쁘다는 말은 주옥같다는 말보다 아름답고 간결하며 또한 고결하다. 이처럼 문장에서 명사의 선택은 전체 문장의 늬앙스를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다. 조사는 주연을 화려하게 만드는 조연이다.  


김훈은 << 칼의 노래 >>의 첫 문장 "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 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 꽃이 피었다 > , <꽃은 피었다> , <꽃도 피었다 > 중에서 어떤 조사를 선택할 것인가 ?  만약에 김훈이 이 소설의 첫 문장으로 " 버려진 섬마다 꽃도 피었다 " 라고 썼다면 나는 이 문장을 오래 기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음 문장을 살펴보자.  





   혼자 벽돌을 굽는 동안 그녀는 점점 더 고독해졌으며 고독해질수록 벽돌은 더욱 훌륭해졌다. 공장 뒷편의 어른 벌판은 점점 더 많은 벽돌들로 채워져 갔다.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 다시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 공장을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ㅡ 고래,  천명관





이 문장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벽돌과 고독이라는 두 낱말의 호응이었다.  만약에 고독이라는 낱말 대신 < 쓸쓸함 > 이나 < 외로움 > 이란 낱말이 사용되었다면 호감은 반감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고독은 벽돌이라는 사물의 물성에 가장 가까운 낱말이다.  딱딱하지만 푸석푸석하며 마른 성질(벽돌)은 고독의 그것을 닮았다.  반면에 외로움이나 쓸쓸함은 푸석푸석하거나 마른 성질이라기보다는 흐느적거리는 느낌이 든다.  대체불가능한 낱말을 선택하면 굳이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꾸미기 위해 과도한 형용사와 부사를 남발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명사의 선택이 중요한 것이다. 











1)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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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6-16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고래> 오디오북으로
풀려서 하루~ 잘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더라구요...

울나라 최고의 데뷔작이라고 생각하
는데 그 다음에는 여엉...

곰곰생각하는발 2020-06-16 14:2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죠 ? 데비작이 전부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영.... 약발 다했다는 느낌.
하여튼 고래. 기똥찬 작품이었죠. 능청스럽기도하고 구술문화의 흔적도 남는 것 같기도 하고...ㅎㅎㅎ

수다맨 2020-06-1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부분을 다시 읽으니 벽돌과 고독의 호응이 긴밀하게 보입니다. 외로움이나 처연함, 쓸쓸함 같은 말들은 흐느적거리는 느낌이 있는데 고독이라는 말에는 고립과 고통을 어떻게든 감내하겠다는 벽돌공의 저력이 느껴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6-16 14:22   좋아요 0 | URL
벽돌공이란 직업을 선정한 것도 기가 막히죠. 고독이란 단어 선택도 훌륭하고...
 






























글배우는 사람들에게











정석은 바둑 용어로 예로부터 지금까지 공격과 수비에서 최선이라고 인정한 일정한 방식으로 돌을 놓는 법을 뜻한다. 그러니까 정석은 최고의 수인 셈이다. 그런데 정석대로 바둑을 두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 정석 " 은 최고의 수이면서 동시에 뻔한 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석을 알려주겠다며 접근하는 책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연애의 정석이란 책을 읽고 그대로 실천한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이성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석이란 기본기일 뿐이지 그것이 최고의 수'는 아니다. 글쓰기의 정석을 다룬 책들도 마찬가지'다. 작법서를 읽고 나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구쳐 어마어마한 문장을 생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정석대로 쓰다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글쓰기의 정석을 다룬 책은 대부분 문장력 강화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다. 글쓰기의 기본을 알려주는 작법서를 무시하다 보면 인스타 겜성xx체로 글을 쓰는 글배우 문장으로 전락하게 된다. 글쓰기의 정석을 다룬 책은 문장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형편없는 문장을 쓰는 것을 방지할 수는 있다. 글배우의 " 힘든 힘듦 " 따위의 병맛 문장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비문이 모두 다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살코기에 비계가 붙어야 맛이 나듯이 때로는 비문이 문장을 미문으로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시적 허용이라고 부른다. 종종 글을 쓸 때 말하는 것처럼 글을 쓰라는 충고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그래야 문장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과 글은 장르가 다른 영화와 같다. < 채플린 영화 > 와 < 히치콕 영화 > 는 크게 보면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장르로 구별하면 서로 다른 장르에 속한다. 말과 글도 마찬가지다. 요즘, 위로와 성장이라는 코드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에세이들은 대부분 구어체(일상에서 말하듯이) 문장인데 책이란 기본적으로 문어체의 세계라는 점에서 그런 책들은 형이하학이다. 내 식대로 말하자면 인스타 겜성 지랄체'다. << 위반하는 글쓰기 >> 의 저자 강창래도 같은 주장을 한다. 말과 글은 다르기에 말하는 것처럼 쓴 문장은 이상하다고 말이다. 이 책은 글쓰기 향상을 갈망하는 일반인에게 도움을 주지만, 나는 정작 이 책을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생산한 글배우 님에게 추천한다. 읽어보세요. 적어도 지금보다는 좋은 문장을 완성하실 겁니다.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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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어쩔 수 없는 힘듦이 내게 찾아왔다면
글배우 지음 / 강한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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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예쁜  말들









                                                                                               교육 프로그램에서 아동 교육 전문가는 부모에게 아동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의 훈육 방법을 재연하라고 주문했다. 역할 놀이극 무대 위에 오른 부모들은 평소처럼 아이를 어르고 달래거나, 때론 윽박지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어느 부모는 높임말을 쓰기도 했고 낮춤말을 쓰기도 했다. 


평소 높임말을 사용하다가 훈육을 할 때에는 낮춤말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고, 평소에는 낮춤말을 쓰다가 훈육을 할 때에만 높임말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동 교육 전문가는 역할극 중간중간에 수시로 개입하여 그때그때 잘잘못을 지적했다. 이 역할극 놀이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평소 아이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평소에도 높임말을 사용하고 훈육 시에도 높임말을 사용하는 부모의 태도'였다.  한눈에 봐도 교육열이 높아보이는 그의 훈육은 배운 티'가 났다. 우아했고 차분했다. 그런데 교육 전문가는 그 역할극을 중단시켰다. 


그는 화가 나 있었다. " 훈육할 때 굳이 높임말 사용할 필요 없어요 !  지금 당신은 높임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이를 폭력적으로 제압하고 있는 중입니다. "  말은 높임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표정, 말투, 어조, 눈짓, 태도는 매우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 가짜 높임말 > 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은 부드러운 높임말과 그것과는 상반되는 부모의 경멸적 표정 때문에 혼란을 겪고 나중에는 더 많은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가 전체 의사 소통에 차지하는 비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낮다.  


연구 결과,  의사소통에 있어서 말투, 어조, 뉘앙스는 물론이고 표정, 눈빛, 손짓, 몸짓이 전체 의사소통의 93%를 차지한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니까 말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말이 전달하는 의미보다는 말을 할 때 사용하는 비언어적 표현(표정, 말투, 눈빛 따위......)이 중요한 것이다.  글이라고 해서 다를까 ?  독자들이 듣기 좋아하는,  예쁜 말들만 모아서 그것을 문장으로 만든다고 해서 위로와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책에 인쇄된 문장들은 모두 비언어적 요소가 배제되었기에 완벽한 의사소통의 창구가 아니다. 


위의 예시처럼 아이에 대한 폭력적인 시선은 감춘 채 부드러운 높임말을 사용했던 부모의 위선은  책이라는 텍스트 안에서는 매우 훌륭한 훈육의 예시가 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인스타 XX 감성체로 쓴 베스트셀러'를 읽을 때마다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쁜 말로 조탁된 문장들이 대부분 가짜 위로라는 데 있다. 글배우의 문장들은 대부분 부드러운 문장으로 독자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지만 그 " 위로 " 의 뒷면에는 독자를 " 아래로 " 보는 경향을 숨기고 있다.  그래서 그는 독자를 항상 가르치려 한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말을 하는 태도'에 있다.  글배우의 책보다는 코멕 메카시의 << 모두 다 예쁜 말들 >> 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내가 최애하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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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힘든 나에게
글배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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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의 문제



                                     꼰대는 학생들이 선생을 지시할 때 사용한 용어'였으나 지금은 " 늙은이 " 를 아우르는 은어'가 되었다. 경멸적 요소가 강해서 늙은이라는 말보다는 틀딱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꼰대는 합리성보다는 경험성을 중시해서 항상 라떼를 마시면서 왕년을 호명한다. < 라떼 > 와 < 왕년 > 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젖은 땔감과 같은 사이'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상대를 낮잡아 하대하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그들의 설교는 필연적으로 낡은 사고 방식을 강요하게 되고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꼰대는 과연 나이 차이에서 오는 문제일까 ? 늙은 꼰대는 물론이거니와 젊은 꼰대 또한 물 반 고기 반'이다. 젊은 꼰대의 특징은 늙은 꼰대를 진심으로 경멸한다는 데 있다. 이들은 자신이 꼰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젊은 꼰대는 오히려 늙은 꼰대보다 위험하다. 왜냐하면 늙은 꼰대는 자기 반성은 하지 않을지언정 적어도 자신이 꼰대라는 사실을 알고( 있거나 자신이 꼰대로 보여지는 것을 걱정하) 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젊은 꼰대는 동종 집단(코호트)에서 벗어나는 순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속했던 세대를 비난하면서 전 세대와의 작별을 고한다. 예를 들자면, 10대를 벗어나 이제 갓 20살이 된 아이들이 10대를 급식충이라며 차별화를 구사하는 전략은 그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나이로 유세를 떠는 형태라 할 수 있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꼰대질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발생하게 된다. 내가 너보다 한 수 위라는 위치 선점은 꼰대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글배우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계룡산 뜬구름 위에서  뒷짐을 진 채 100년 동안 도를 닦은 산신령이 연상된다.  세상을 달관한 명상가의 말투'다. 그가 즐겨 쓰는 " 하라체 " 만 해도 그렇다. - 하라 가 명령형 종결 어미라는 점에서 그의 문장들은 독자를 " 위로 " 한다기보다는 " 아래로 " 보고 있는 태도에서 만들어진 문장의 결'이다. 어느 아동 교육 전문가는 아이들을 훈육할 때 높임말을 사용하는가, 낮춤말을 사용하는가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충고한다. 왜냐하면 높임말을 사용한다 한들 어감이 강압적이면 아이들은 그것을 자신을 위협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글배우의 문장이 그렇다. 그는 조곤조곤 독자를 향해 말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강압적이다. 그가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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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라
글배우 지음 / 답(도서출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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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말라고 ?











글배우의 << 다 괜찮다 >> 라는 짧은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 공부가 조금 늦어도 / 졸업이 조금 늦어도 / 취업이 조금 늦어도 / 다 괜찮다 / 그렇다고 / 인생에서 늦은 게 아니니까 " 글배우가 << 다 괜찮다 >> 라는 글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 길게 보면 인생은 마라톤 경기 " 라는 흔한 비유일 것이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장거리 마라톤 경기에서는 다른 경기와는 달리 출발이 조금 늦었다고 해서 남들보다 불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작부터 선두를 달리는 선수는 바람의 저항 때문에 다른 선수보다 체력 소모가 심한 편이다. 중요한 것은 순발력이 아니라 지구력이니까 ! 글배우를 좋아하는 애독자는 위로를 받는다. 남들보다 늦었다고 발을 동동 굴렀는데 글배우는 당신 귓구멍에 바람을 넣으며 다 괜찮다고 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주르룩. 그런데 그의 문장을 반대로 작성해 보자. " 공부가 조금 빨라도 / 졸업이 조금 빨라도 / 취업이 조금 빨라도 / 다 괜찮다 / 그렇다고 / 인생에서 늦은 게(or 빠른 게) 아니니까 " 글배우의 애독자는 이 문장에도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빠른 것은 아닌가 하고 발을 동동 굴렀는데 괜찮다고 하니 눈물이 주르룩. 결론은 이렇다  :  조금 늦어도 다 괜찮고, 조금 빨라도 다 괜찮다면 결국에는 하나 마나 한 소리.  글배우는 하나 마나 한 말을 가지고 당신을 위로하는 말이라고 포장했으니 독자를 조삼모사 취급한 셈이다.  당신은 지금 글배우의 위로에 감동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야 마땅하다.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다른 말로 하자면 잔소리'요, 개소리'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잔소리일 텐데 글배우의 애독자들은 돈을 주고 잔소리를 듣고 있다. 물론 이런 반론도 가능하다. 비록 그의 글이 가짜라고 해도 그것을 믿는 독자는 플라시보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맞는 소리'이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가짜 약을 굳이 돈 주고 구매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비의료인이 약을 처방하고 파는 행위는 의료법과 약사법 위반이다. 




+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 너를 위해서 하는 말 " 은 그 뒷면을 살펴보면 " 나를 위해서 하는 말 " 에 불과하다. 권석천은 정지우 감독이 연출한 영화 << 4등, 2016作 >> 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작은 머뭇거림조차 없는 폭력의 밑바닥엔 ‘이 모든 게 너를 위한 것’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 “4등? 너 때문에 죽겠다! 진짜 너 뭐가 되려고 그래? 너 꾸리꾸리하게 살 거야? 인생을?”(엄마) “잡아주고,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다. 내가 겪어보니 그렇더라.”(코치) 엄마는 ‘너를 위해’ 짜증내고, 코치는 ‘너를 위해’ 체벌한다. 이러한 ‘너를 위한 폭력’은 스포츠에만 있는 게 아니다..... “ 너를 위한 것 ” 이란 말 한마디면 면책 받을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진정으로 ‘너를 위한’ 것이냐? 이다. 현실의 엄마, 아빠, 부장님, 이사님도 ‘다 너를 위해 목소리 높여 충고하는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우리는 이 “너를 위한다”는 속삭임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혹시 자식을 위한 게 아니라 엄마 자신의 비교 우위를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은 아닐까. 후배 직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장이나 이사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 처음엔 “너를 위해”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나를 위해”로 바뀌어버렸고, 자신들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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