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과 쌍년
" 내가 이래 봬도 왕년(往年)엔 잘 나갔어! " 자주 듣는 소리이다. 주로 꾀죄죄한 남성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다. 섹시한 구석이라고는 눈 뜨고도 찾을 수 없는 외모를 갖춘 꼰대들이 왕년으로 돌아가면 섹스 판타지'가 펼쳐진다.
섹시한 것과 섹스한 것은 다른 차원이나 이들은 이것을 분간하지 못한다. 그냥 왕년에는 잘 나갔다고 한다, 믿을 수밖에 ! 반면에 성공한 사람들은 왕년을 회상할 때 자신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에 방점을 둔다. 이처럼 실패한 자와 성공한 자는 왕년을 다른 식으로 호명한다. 내가 보기엔 전자도 밥맛이고 후자도 밥맛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왕년을 호출하지 않는 편이다. 나란 사내의 과거를 묻지 마세요요요요용 ~ 잠시 삼천포로 빠지자. 백인과 흑인 간 인종 갈등이 극심했던 1960년대, 미국에서 인종 차별 문제를 놓고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80%의 백인은 흑인과 백인이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설문에 답했다.
놀랍지 않은가 ? 최근의 설문 조사도 다르지 않다. 백인 절반 이상이 흑인과 백인이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한술 더 떠서 흑인보다 백인에 대한 나쁜 편견이 더욱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응답했다. 백인은 자신이 그동안 누렸던 특권에 대하여 스스로 자신이 누렸던 특권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버클리대 폴 피프 교수는 학생들을 갑과 을로 나눈 다음에 모노폴리 게임을 하게 했다. < 갑 > 은 을보다 두 배의 돈을 가지고 시작하고 < 을 > 은 갑보다 1/2 적은 돈을 가지고 시작하게 했다. 시작부터 갑이 유리한 게임인 것이다. 여기어 덧대 갑은 출발선을 통과할 때마다 두 배의 돈을 받고 을은 1/2 수준의 돈을 받았다. 누가 봐도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게임이다.
폴 피프 교수는 게임이 끝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갑에 속했던 학생들은 이길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게임의 법칙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 전략을 써서 이겼는가에 대해서만 열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특권을 누린 자는 자신이 누렸던 특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심리 실험이 있다. 스탠퍼드대 사회심리학자 필립스와 라워리 교수는 백인 실험 대상자를 A와 B로 나눠 A와 B 그룹에게 공통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 그리고 B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이 질문을 던지기 전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도록 했다.
" 대다수 사회과학자는 학업, 거주지, 의료 서비스, 구직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백인이 흑인보다 혜택을 받고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B에 속한 백인 실험 대상자는 A 그룹에 속한 백인 실험자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더욱 힘들고 어려웠다고 강조한다. 백인이 흑인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한 결과이다. 이것을 두고 `불우한 어린 시절 효과(Hard-knock life effect)`라고 부른다. 이 실험을 진행한 연구진에 내린 결론은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그룹이 특혜를 받고 있다는 지적을 일종의 위협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 파란만장, 아따 시바 졸라 개고생한 왕년의 서사 >> 를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은 온갖 특혜를 받으며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을 펼쳤으면서 말이다. 성공한 사업가가 왕년을 호출할 때 자신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를 강조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한국 여성들이 성불평등을 이야기할 때마다, 한국 남성들이 군대 이야기로 반격을 시도하는 이유도 바로 이 심리와 맥락이 동일하다. 내가 시바.... 군대에서 이등병 때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 이런 나에게 누가 돈을 던지냐. 나와라, 쌍년들아 ! 이 말속에는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누렸던 특혜를 감추기 위한 교묘한 전략이 숨어 있던 것이다. 이 얼마나 구질구질한 변명인가. 입만 열었다 하면 군대와 왕년 이야기를 하는 사내는 대부분 후줄근하다.
한국 남성은 거개가 건달이다. 눈빛도 건달이고, 걸음걸이도 건달이며, 밥 먹을 때도 건달이다. 철학자 김영민의 지적이다. 내 글에 대해 굳이 예의를 갖춰 반박할 필요는 없다. 나는 단호하게 응답할 것이다. 닥쳐, 시발놈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