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와 인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2
존 스타인벡 지음, 정영목 옮김 / 비룡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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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쥐와 인간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


- 사람 장소 환대 中, 김현경





210 크기의 실험실 상자 속에 쥐 8마리'가 산다. 물과 음식은 충분히 공급되고 고양이 같은 포식자가 없다 보니 쥐에게는 유토피아'다. 실험실 연구원이 질병 관리도 맡아서 늙어 죽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죽을 수 있는 위험 요소는 모두 제거된,  과보호된 공간이다. 쥐 8마리로 시작한 개체 수는 2년 반 동안 2,200마리로 늘었다. 개체 수 증가는 곧 공간 부족을 야기한다. 그러나 공간은 줄어들었지만 먹이 공급은 충분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먹이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 영토를 지키는 것이다. 


마당 넓은 단독 주택에서 살던 쥐는 이제 협소 주택으로, 협소 주택에서 공동 주택으로, 공동 주택에서 반지하로, 반지하에서 고시원으로, 고시원에서 쪽방촌으로, 쪽방촌에서 수용소로, 결국에는 수용소에서 길바닥의 형태로 바뀌게 된다.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은 유토피아 같았던 " 주거 지역 " 이 어느 순간에 " 죽어 지옥 " 이 되었을 때 발생하게 되는 쥐의 행동 패턴을 연구하는 것이다. 공간 상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쥐들은 사생활 보호가 가능한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어 죽이기 시작한다. 지정학적으로 가장 좋은 장소는 더욱 치열하다. 


힘  쥐가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옆에 있는 쥐의 꼬리를 갉아먹는 동안,  또 다른 쥐는 동료의 꼬리를 갉아먹는 힘 센 쥐의 꼬리를 갉아먹는다.  말 그대로 꼬리에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국이다. 그 결과, 개체 수는 줄어들기 시작하고 그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존 B 칼훈의 쥐 사회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 쥐의 영토성(장소성) " 이다.  동물은 일정한 거리(공간)를 확보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주체는 객체(포식자)가 일정한 거리 안으로 침범하지 않으면 도주하지 않는다.  이것을 도주거리(안전거리)'라고 부른다. 


유토피아에서 평화롭게 살던 쥐가 서로를 물어뜯어 죽이게 되는 참사는 공간의 협소화로 인해 도주거리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1).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자 부유했던 샌프란시스코가 똥 냄새 때문에 살기 힘든 도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텐더로인 거리에는 똥 더미 때문에 걷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 현기증 >> 으로 샌프란시스코를 경험한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금문교와 골든게이트 공원이 있는 도시가 << 눈먼 자들의 도시 >> 가 되었다니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 똥은 개똥이 아니라 사람 똥이다. 


미국인이 거리에 앉아서 똥을 싸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똥의 주범은 노숙자'다. 그렇지만 똥의 주범이 노숙자라고 해서 이 현상의 주범도 노숙자라는 말은 아니다. 주범은 따로 있다. 바로 치솟는 집값 때문이다. 엔리코 모레티 버클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집값이 10% 상승할 때마다 지역 소비 물가는 6% 증가한다고 경고한다. 당연히 집값 상승은 거주부담능력(월세)을 상승시켜서 지불 능력이 없는 세입자는 결국 노숙자가 되는 것이다. 1명이 집을 사면 3명이 길거리 노숙자가 된다. 저학력 육체 노동자'가 노숙자가 된다는 편견은 버리는 것이 좋다. 


또한 노숙자는 게으르다는 편견도 버리는 것이 좋다. 노숙자의 1/4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 문제는 월급으로는 집세를 감당하기 버겁다는 데 있다. 노숙자 중에는 예일대를 나온 엘리트도 많다. 길거리에 차를 세워 두고 차 안에서 생활하는 어느 노숙자의 직업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강사'다. 집 없는 노숙자야말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영토마저 빼앗겼다는 점에서 존 칼훈의 실험 쥐를 닮았다.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상위 1%는 국내 전체 부동산의 55%를 보유하고 있고 상위 10%는 전체 부동산의 97.5%를 차지한다. 


반면에 소득 하위 50%가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비율은 2%다. 질문이 질문에 질문에 꼬리를 문다. 이제 서울이라는 대도시도 샌프란시스코처럼 똥 더미에 오염되지는 않으리라 확신을 할 수 있을까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지만 인분 밭'에 굴러도 마냥 이승이 좋을까 ?  재산권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영토마저 강탈하는 행위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 << 연예가중계 >> 라는 프로그램에서 모 연예인의 부동산 재테크 순위를 나열하며 불로소득을 예찬하는 것을 보면 염치와 수치를 모르는 것은 화장실이 없어 길거리에 똥을 싸는 노숙자인지 아니면 그들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                                            


1)  사회 생활에서 사회 구성원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친분과 직급을 이유로 상대방의 허락도 없이 그 사람이 설정한 고유 영토를 침범하는 것은 범죄 행위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성범죄이다. 



'제국' 미국의 집값 폭등과 노숙자 대란


 미국의 도시들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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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12-14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빈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우리네 조상들이 이런 말을 사용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욕을 탐하지 않는 것이 깨끗한 삶이라면 반대로 말해서 물욕에(만) 집착하는 것은 누추한 삶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회 공통적인 인식이 그 시대에는 있었다고 봅니다.
예능을 잘 보지 않지만, 어떤 연예인 부인이 남편이 수백 억을 번다면서 자랑하는 내용의 기사들이 인터넷의 실시간 이슈에 떠오르는 것을 보노라면 한숨이 나옵니다. 수익만 알뿐 수치에 대해서는 조금도 이해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시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2-14 18:36   좋아요 0 | URL
올해 가기 전에 망년회 합시다.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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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와 양말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





                                                                                                        성이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은 팬티가 아니라 양말'이(라고 한)다. 진료대에 눕기 전에 팬티는 이미 벗은 상태이기에 의사와 간호사에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치대에 걸친 양말의 발바닥 상태인 것이다. 산부인과 진료실만큼 발바닥이 이토록 적나라하게 타인에게 폭로되는 곳이 또 있을까 ? 발바닥을 보여준다는 것은 밑바닥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내가 아는 사람은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때에는 여분으로 항상 새 양말을 준비한다고 한다. 반면에 공황 장애가 있는 사람은 팬티에 신경을 쓴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길바닥에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래서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응급실에 실려가는 상상. 나는 항상 외출을 할 때 양말보다는 팬티에 신경을 쓴다. 낡은 속옷을 타인에게 들킨다는 것은 부끄러우니깐 말이다. 어쩌면 알몸뚱이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더러워진 속옷인지도 모른다. 간밤에 꿈을 꿨는데 내가 있는 건물에 불이 났다. 건물 밖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방송사 기자들이 몰려와 취재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꿈이란 요상해서 불길에 내 겉옷은 홀랑 타고 팬티만 남은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속옷이 거지발싸개처럼 매우 낡고 지저분했다.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건물을 탈출해야 하는데 더러운 속옷 때문에 탈출을 미루고 있는 것이었다. 팬티를 입고 나갈 것인가 아니면 팬티를 벗고 나갈 것인가 ?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다행히도 꿈은 거기서 끊겼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팬티만 입고 잤는 데에도 보일러 온도를 높여서 실내 온도는 후덥지근했다. 나는 꿈속 딜레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팬티 벗고 뛴다. 단, 조건이 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팬티 벗고 뛴다. 눈을 가린 채 뛰어도 당구공 같은 내 불알 두 쪽이 평형 감각을 유지하게 도와주리라. 낡은 속옷 빨랫감은 마당에 널지 않는 법이니까.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자기로 했다. 끊긴 꿈속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꿈은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잠은 포기하기로 하고 테드 창 소설집 << 숨 >> 에 수록된 <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이란 단편을 읽기 시작했다. 단편 제목은 쇠렌 키르케고르의 그 유명한 문장을 빌렸다. 


키르케고르는 절벽이나 고층 건물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의 불안 심리를 다루면서 두 개의 공포를 분석한다. 하나는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이고, 다른 하나는 거기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낳은 공포다. 여기서 두 번째 유형의 공포(불안감)은 뛰어내릴 것인가 아닌가를 선택할 절대적 자유가 자신에게 있다는 각성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키르케고르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라고 말한다. 문득, 무기력(無氣力)은 무력(武力)의 현기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그때였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붉은 불빛이 창문을 뚫고 스며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내가 사는 빌라 전체가 사나운 맹수처럼 맹렬히 불타고 있었다.  6층에서 뛰어내린 이웃은 허리가 부러졌다. " 이런, 빌어먹을 !!! " 나는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다. 왜냐하면 내가 사는 곳은 7층이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이웃의 불행을 즐기기 위해 불구경 나온 사람들과 불행을 어떻게 하면 스펙타클하게 연출할까 고민하는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은 좋은 앵글을 잡기 위해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다. 저 비참을 로우 앵글로 잡을 것인가, 하이 앵글로 각을 잡을 것인가.  


바보들, 기초도 모르다니....... 불행은 무조건 드론 각이야 !  전지적 시점은 항상 웅장하거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위에서 보면 수난극처럼 보이거든 .                     캄캄한 복도는 흥건히 젖은 소화용수로 인해 미끄러웠지만 나는 불알의 무게추에 의지하기로 마음먹었다. 팬티 벗고 뛰기 시작했다. 물론, 손으로 얼굴은 가린 채. 





스웨덴 한림원은 테드 창을 단 한번도 노벨문학상 후보군으로 뽑지 않았는데 이 선택을 볼 때마다 의문이 든다. 테드 창만큼 서사를 장악하는 힘을 가진 작가는 드물다. 중2의 성적 판타지에 집착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선승 흉내 내지만 속물 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은은 자주 노벨문학상 후보로 선정되면서 테드 창이 후보군에 없다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이 아닐까 ?  테드 창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한국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이다. 상상력의 확장에 막혀서 어쩔 수 없이 리얼리티에 집착할 때 촌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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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49
짐 크레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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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    새







도루묵과 양미리


                            강원도는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입동과 대설 사이 어디쯤, 그해에도 많은 눈이 내렸다. 김장철이어서 마당에서 김장을 하다 보면 빨간 양념이 더덕더덕 붙은 절인 배추 위로 하얀 눈이 내려앉았다가 이내 녹았다. 그날도 눈이 왔다. 첫눈은 아니었으나 첫눈이나 다름없는 눈이 내렸다. 귀빠진 날을 핑계로 서울에 사는 몇몇 친구를 불러서 속초 동명항 난전에서 대낮부터 술을 마셨다. 그때 내가 먹은 안주는 양미리와 도루묵이었다. 동명항 난전은 고기잡이배에서 잡은 생선을 바로 그 자리에서 판매하고 요리를 했기에 다른 곳에 비해 생선이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그때 구워 먹은 생선이 양미리와 도루묵'이었다. 난전 포장마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름다웠다. 연탄불에 생선 굽는 냄새는 고소했고 파도가 방파제를 두들기는 소리는 제법 운치가 있었다. 그리고 눈은 소리 없이 내렸다. 술 맛의 팔 할은 풍경이었다. 낮술부터 취한 우리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짚업 후드를 입은 채 모텔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고 손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요동을 쳤다. 헛구역질이 계속 올라왔다. 세면대에서 양치질을 하고 손을 씻었으나 비린내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손톱 깊숙이 박힌 생선 살점들이 악취를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자 비린내는 더욱 강렬하게 쏟아졌다. 집업 후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순간, 물컹거리는 것이 손에 잡혔다. 꺼내 보니 양미리 한 마리'가 뭉개져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혼자 집에 가서 혼술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먹다 남은 양미리를 주머니에 털어서 가게를 나왔다는 것이다. 바지 주머니 속에서도 양미리 한 마리가 발견되었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생선의 몸내를 통해서 생에 대한 비릿한 집착을 읽자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은 썩을수록 더 진한 향내가 나고 어떤 것은 썩을수록 더 진한 악취가 난다. 내 육신은 썩어서 얼마나 고약한 악취를 풍길까. 갑자기 하얀 쌀밥에 갓 담은 김장김치가 먹고 싶어졌다. 소금으로 절인 배추가 하얀 눈에 녹아서 염도가 낮아진. 



갈치와 멸치

                      생선 이름이 " - 치 " 로 끝나는 것은 성질머리가 급해서 잡히자마자 죽는다고 한다. 대표적인 생선이 갈치, 멸치, 꽁치'이다. 이 생선들은 그물에 갇혀 있는 동안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제풀에 못 이겨 속이 새카맣게 문드러져 죽는다. 특히, 좁은 그물 안에 오랜 시간 동안 갇히다 보면 과호흡에 빠지게 되고,  서로 몸을 덮치고 밀치고 솟구치다 보니 찬란했던 은빛 비늘은 다 떨어져 상처투성이 몸이 되고 결국에는 애간장만 태우다가 죽는다. 갈치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먹갈치(부산에서는 흑갈치라고도 부른다)와 은갈치의 맛과 빛깔이 판이하게 다르기에 서로 다른 종류'라고 믿곤 하지만 사실은 같은 종류이다. 이 차이는 < 낚시로 잡느냐 > 아니면 < 그물로 잡느냐 > 에 달려 있다. 낚시로 잡은 은갈치는 몸에 상처가 없고 물 밖에 나오자마자 죽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먹갈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 반면에 먹갈치는 그물에 갇혀서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물에 갇혀 있는 동안 내내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속은 문드러진다. 멸치도 마찬가지'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짧을수록, 몸에 난 상처가 적을수록 비린내가 적고 맛이 좋다. 영화 << 기생충 >> 을 보면서 은갈치와 먹갈치의 차이를 떠올렸다. 대저택에 사는 박사장네 가족은 과포화 고밀도 공간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 반면에 지상의 집 한 칸 얻을 능력이 없어서 반지하 셋방으로 스며든 기택네 가족은 좁은 그물 안에 갇혀서 서로 밀치고 덮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먹갈치다. 박사장(이선균)이 맡는 " 냄새 " 는 바로 가난한 자의 새카맣게 타버린 속내'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속이 썩어갈 때 발생하는 그 먹갈치의 비린내를 박사장은 맡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은빛처럼 반짝반짝 빛났던, 상처 하나 없는 대저택의 인테리어 소품을 보면서 김난도의 << 아프니까 청춘이다 >> 라는 책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이 철딱서니 없는 양반아, 아프면 아플수록 비릿한 몸내가 진하게 나는 법이다 !



생선냄새증후군

                          양미리를 주머니에 넣은 짚업후드와 바지를 세탁했다.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세제와 더 많은 섬유유연제를 넣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내 몸에서는 항상 생선 비린내가 났다. 조증과 울증 사이에서 울증의 계절이 오면 비린내는 썩는 냄새로 악화되었다. 그때부터 숨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현상은 트리메틸아민뇨증으로 생선냄새증후군으로 불렸다. 체내에서 트리메틸아민(TMA)을 TMAO(trimethylamine-N-oxide)로 바꾸는 대사 과정에서 이상이 생기는 희귀질환으로,  트리메틸아민(TMA)은 생선이 썩는 듯한 냄새를 내는 화학물질로 트리메틸아미뇨증 환자의 소변이나 땀 그리고 호흡으로 과다하게 분비되어 악취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질병이 생선냄새증후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모텔 룸에서 고독사 한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였다. 나는 죽어서 영혼이 되어 구천을 떠돌고 있었으나 정작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는 생선 냄새가 아니라 내 몸이 썩는 냄새'였다. 문득 짐 크레이스의 << 그리고 죽음 >> 이란 소설의 한 문장이 생각났다. 생명이 사라진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온갖 벌레들로 들끓는, 죽은 내 몸을 보면서 0그램의 무게를 가진 내 영혼은 안도했다. 한동안은 죽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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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2-07 14:17   좋아요 0 | URL
참치화 잘못 먹으면 배탈나기 좋다고 하더군요. 거, 뭐냐. 참치랑 매우 비슷한 생선이 있는데 그게 거의 지방덩어리라고 하더군요. 일반 사람은 잘 분간을 못해서 장사꾼들이 자주 속인다고.... 뭐, 참치 자체가 기름이 워낙 덩어리여서 참치 많이 먹으면 배탈납니다..ㅎㅎ
 












우럭처럼 울어 !








                                                                                               말보다 주먹이 앞섰던 국어 선생은 장래 문학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글쓰기 요령으로 신문 칼럼을 열심히 읽으라고 가르쳤다. 그는 입만 열었다 하면 욕을 대동포 장거리 미사일에 탑재하여 불특정 다수를 향해 발사하곤 했다. 성석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뾰족한 말풍선의 가관이었다. 


성석제의 입말이 " 읽을수록 장관 " 이었다면 국어 선생의 입말은 " 들을수록 가관 " 이었다. 듣는 이의 비위와 염통을 후벼파는 솜씨가 칼을 잘 쓰는 청부살인업자 못지않았다. 그는 찌른 후 돌려서 장기를 완벽하게 파손하곤 했다. 즉사를 노린 것이다. 그것은 관계대명사를 부정하는 to부정사의 투투용법(too ~ to)이었다. 무림의 내공심법과 견줄만한 퐈괴력을 가진 공격이었다. 퐈이야 !  나 같은 학습 지진아들은 속수무책으로 깊은 내상을 입은 채 신음하기 일쑤였다. 아따, 시발놈 ! 욕을 참..... 찰지게 하신다. 국어 선생이란 놈이.         


그는 기자의 글쓰기야말로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며 깔끔하고 빈틈없는 문장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몇몇 문학 범생이들은 조중동을 비롯해서 각종 신문 칼럼을 스크랩북 형태로 수집하는 녀석도 있었다. 그런데 칼럼만큼 영혼 없는 글맛도 드물다. 기자의 직업 정신'이기는 하나 글쓴이의 개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 국어사전에 등재된 표준어로만 작성된 문장은 흠잡을 데 없는 모범적인 글이었지만 그것은 잽으로만 차곡차곡 점수를 얻어 승리를 따낸 아마추어 복싱 선수의 경기만큼 지루했다. 잽은 방어 자세를 유지하면서, 위험을 최소화시키면서, 유효 타격으로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기술이지만 구경꾼 입장에서는 따분하기 거지없다. 뭐, 이런 거지같은 경기가...... 


사실, 구경꾼이 바라는 어퍼컷은 멋지기는 하나 방어 자세가 무너지기에 역으로 상대 선수에게 역공 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경기를 지고 있는 선수 입장에서는 욕심이 날 만하다. 어퍼컷으로 경기를 한순간에 엎어버리고 싶겠지만 상대 선수의 훅(hook)에 한순간에 훅, 가는 수도 있으니 서로 잽만 날리며 탐색전을 펼치다가 종 치는 것이다. 신문 칼럼이 그렇다. 신문 칼럼 속 문장에는 어퍼컷도 없고, 럭키 펀치도 없고, 카운터펀치도 없다. 칼럼에서 << 록키 >> 시리즈 영화나 << 내일은 죠 >> 만화에 나오는 멜랑꼴리한 센티멘탈 하드보일드 펀치의 지랄같은 아우라를 찾으려고 한다면 오산이다. 


만약에 내가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면 신문 칼럼 따위는 절대 읽지 말라고 충고했을 것이다. 국어사전에 등재된 표준어로만 작성된 문장은 옹졸하고, 비문이 전혀 없는 문장은 비계를 제거한 삼겹살을 씹는 기분이 들어서 읽다 보면 목이 막힌다. 비문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이긴 하나 비문이 전혀 없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비문투성이로 위대한 문학적 업적을 이룩한 대가는 많다. 섹스피어는 당시에 영국 평단으로부터 비문투성이라는 욕을 얻어먹지 않았던가).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지나치게 깔끔을 떠는 것 같아서 재수없을 때가 많았다. 


나는 잽으로만 이루어진 안전한 문장보다는 어퍼컷도 날리고 럭키펀치도 가끔 등장하는 문장이 좋다. 비록 그 결과가 경기를 엎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해도 말이다. 그래서 찰스 부코스키와 스티븐 킹과 필립 딕 소설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찰스 부코스키가 예쁜 여자만 보면 자지가 서질 않는다는 문장을 작성했을 때, 나는 은밀하게 그의 저질스러운 문장을 지지했다. " 우럭처럼 울어 ! " 라는 허무맹랑한 표현을 사랑했다. 그것은 수많은 단어 속에서 내가 유일하게 그 가치를 인정해서 조탁한 결과이기에 아, 좋다 ! 


우럭이 어떤 표정을 지으며 우는지 나는 모른다, 당신도 모른다. 하지만 우럭처럼 울어 _ 라는 문장은 온갖 페이소스를 경험하게 만든다(나의 뇌피셜이기는 하지만). 가을비가 여름 소나기처럼 내리던 날 밤, 사랑하는 개가 죽었다. 그때 나는 우럭처럼 울었다. 울컥한 마음에 버럭 눈물이 쏟아졌다. 지금도 종종 죽은 개를 생각하며 우럭처럼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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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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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 동안의 독서를 통틀어서 최악의 독서 두 권을 선정하라면




                                                                                                 최근 10년 동안의 독서를 통틀어서 최악의 독서 두 권을 선정하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기주의 << 언어의 온도 >> 와 한스 로슬링의 << 팩트풀니스 >> 를 뽑겠다. 이 책들에 대한 내 한의 정서를 영화 대사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 나 전당포 한다. 금이빨 몇 개냐. 금이빨 빼고 모조리 씹어 먹어주마 ~ " 가 아닐까 싶다. 


<< 언어의 온도 >> 는 시간 날 때마다 씹었기에 굳이 이 빛나는 자리를 빌려 다시 씹어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논외로 하겠다 ! 그래도 가볍게 논평한다면 타인을 위로한답시고 주머니를 털어 감성 코인 벌이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 팩트풀니스 >> 도 여러 번 씹은 책인데 오늘 다시 한 번 씹어보도록 하자. 이 책을 읽으면서 두 번 놀랐는데 첫 번째는 책 내용이 지나칠 정도로 쓰레기 같다는 것과 두 번째는 지식인들이 지나치게 빨아주고 있다는 점이다. 영혼을 팔아서 똥구멍 깊숙이 빨아준다고나 할까 ?  


이 책의 논지는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괜찮은 데 우리가 세상을 지나치게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걱정도 팔자라는 소리'이다. 저자는 세상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로 옛날에 비해 극빈층이 줄어들었다는 통계를 들이밀고 있다 ㉠. 어렵지 않은 설득이다. 옛날에 비해 폭력이 줄었다는 통계를 들어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호들갑을 떨던 스티븐 핑거의 띨띨한 설득을 닮았다. 그렇다면 나는 한스 로슬링의 논리로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  21세기 상위 1% 부가 전세계 부의 50%를 독점하고 있다는 통계 ㉡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극빈층이 줄어드는 대신 극부층이 부를 과독점하는 현상은 과연 세상이 좋아졌다는 증거일까 ?  극빈층이 감소했다는 통계값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명백한 증거라면 반대로 극부층이 부를 과독점한다는 것은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아닐까 ?  한스 로슬링이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팩트 ㉠ 이 진실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 ㉡ 에 대한 합당한 해석을 내놓아야 하는데 ㉡에 대한 통계는 씹고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팩트만 설명하고 불리한 팩트는 은폐하는 것이다. 


이 책은 온통 이런 개수작을 바탕으로 쓰였는데 버럭 오바마, 빌 게이츠, 스티븐 핑거 같은 인물이 이 책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으니 그 꼴이 과히 꼴사납다. 글 깨나 읽었다는 서평계의 고수들, 그러니까 간서치들의 호들갑스러운 설레발도 꼴사납기는 마찬가지다. 지식의 권위에 주눅이 들어서 선생님께서 하신 말이니 어련하시것어요, 네네네 ! 이딴 식으로 아무 비판 없이 책을 읽지 마시라. 추레하다, 존나 !






■ 보론


 


저자는 극빈층이 줄고 재화의 획득 기회가 넓어져서 그들이 중간 계층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극빈층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1% 부가 전체 부의 50%를 차지하는 과독점으로 인해 90%의 인구가 가난의 평준화에 진입했다는 증거로 사용될 수도 있다. 팩트와 진실을 혼동하면 안된다. 그리고 저자는 부모의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자녀를 더 적게 낳는 쪽을 선택한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인구 감소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 부부는 소득 수준이 높기 때문에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는 것일까 ?  천만에 !  아이를 더 낳고 싶어도 양육비를 감당할 만한 소득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안 낳는 것이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인구 감소 현상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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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06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 어느 인터넷 언론에서 진행 중인
똥천지가 되어 간다는 미국 도시에 대
한 기사를 읽고 있습니다.

참 흥미롭더군요.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주거비를 감당
할 수 없게 된 이들이 노숙자가 되고
수많은 노숙자들이 거리에서 아무런
수치심 없이...

사실의 일부만을 가지고 침소봉대
하는 건 동방의 어느 나라 언론 못
지 않은 신박한 기술이 아닐 수 없네요.

그나저나 저 방송은 과연 출판사에서
얼마의 협찬을 받고 진행하는 지나
밝혀 줬으면 싶네요.

그게 대외비 영업기밀이라면 할 말
없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12-07 14:21   좋아요 0 | URL
그 기사 링크 걸어주실 수 없나요. 흥미로운데요. 눈먼 자들의 도시 생각도 나고 말이죠..



정말 어이없었던 것은 인구 감소의 원인을 딱 하나로 찝어서 내놓는 상술입니다.
인구 감소의 원인은 수십 가지는 되죠. 이것들이 모여서 현상을 만드는 것인데
무슨 소득 수준이 오르면 인구 감소가 된다는 개떡 같은 주장을 하는데..
글구, 저기 설민석.... 할 말 많습니다. 전형적인 사기꾼 캐릭터. 국뽕으로 돈 버는 광대.. 라고나 할까요..

나무그늘 2020-07-2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적 빈곤이 줄었다는 게 포인트가 아닌가요?! 님이 주장하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이 저성장시대 양극화 시대 sns의 발달로 더 많이 느끼고 있고 이것이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한 거 같네요. 둘은 관점이 달라서인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