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49
짐 크레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냄    새







도루묵과 양미리


                            강원도는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입동과 대설 사이 어디쯤, 그해에도 많은 눈이 내렸다. 김장철이어서 마당에서 김장을 하다 보면 빨간 양념이 더덕더덕 붙은 절인 배추 위로 하얀 눈이 내려앉았다가 이내 녹았다. 그날도 눈이 왔다. 첫눈은 아니었으나 첫눈이나 다름없는 눈이 내렸다. 귀빠진 날을 핑계로 서울에 사는 몇몇 친구를 불러서 속초 동명항 난전에서 대낮부터 술을 마셨다. 그때 내가 먹은 안주는 양미리와 도루묵이었다. 동명항 난전은 고기잡이배에서 잡은 생선을 바로 그 자리에서 판매하고 요리를 했기에 다른 곳에 비해 생선이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그때 구워 먹은 생선이 양미리와 도루묵'이었다. 난전 포장마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름다웠다. 연탄불에 생선 굽는 냄새는 고소했고 파도가 방파제를 두들기는 소리는 제법 운치가 있었다. 그리고 눈은 소리 없이 내렸다. 술 맛의 팔 할은 풍경이었다. 낮술부터 취한 우리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짚업 후드를 입은 채 모텔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고 손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요동을 쳤다. 헛구역질이 계속 올라왔다. 세면대에서 양치질을 하고 손을 씻었으나 비린내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손톱 깊숙이 박힌 생선 살점들이 악취를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자 비린내는 더욱 강렬하게 쏟아졌다. 집업 후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순간, 물컹거리는 것이 손에 잡혔다. 꺼내 보니 양미리 한 마리'가 뭉개져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혼자 집에 가서 혼술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먹다 남은 양미리를 주머니에 털어서 가게를 나왔다는 것이다. 바지 주머니 속에서도 양미리 한 마리가 발견되었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생선의 몸내를 통해서 생에 대한 비릿한 집착을 읽자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은 썩을수록 더 진한 향내가 나고 어떤 것은 썩을수록 더 진한 악취가 난다. 내 육신은 썩어서 얼마나 고약한 악취를 풍길까. 갑자기 하얀 쌀밥에 갓 담은 김장김치가 먹고 싶어졌다. 소금으로 절인 배추가 하얀 눈에 녹아서 염도가 낮아진. 



갈치와 멸치

                      생선 이름이 " - 치 " 로 끝나는 것은 성질머리가 급해서 잡히자마자 죽는다고 한다. 대표적인 생선이 갈치, 멸치, 꽁치'이다. 이 생선들은 그물에 갇혀 있는 동안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제풀에 못 이겨 속이 새카맣게 문드러져 죽는다. 특히, 좁은 그물 안에 오랜 시간 동안 갇히다 보면 과호흡에 빠지게 되고,  서로 몸을 덮치고 밀치고 솟구치다 보니 찬란했던 은빛 비늘은 다 떨어져 상처투성이 몸이 되고 결국에는 애간장만 태우다가 죽는다. 갈치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먹갈치(부산에서는 흑갈치라고도 부른다)와 은갈치의 맛과 빛깔이 판이하게 다르기에 서로 다른 종류'라고 믿곤 하지만 사실은 같은 종류이다. 이 차이는 < 낚시로 잡느냐 > 아니면 < 그물로 잡느냐 > 에 달려 있다. 낚시로 잡은 은갈치는 몸에 상처가 없고 물 밖에 나오자마자 죽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먹갈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 반면에 먹갈치는 그물에 갇혀서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물에 갇혀 있는 동안 내내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속은 문드러진다. 멸치도 마찬가지'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짧을수록, 몸에 난 상처가 적을수록 비린내가 적고 맛이 좋다. 영화 << 기생충 >> 을 보면서 은갈치와 먹갈치의 차이를 떠올렸다. 대저택에 사는 박사장네 가족은 과포화 고밀도 공간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 반면에 지상의 집 한 칸 얻을 능력이 없어서 반지하 셋방으로 스며든 기택네 가족은 좁은 그물 안에 갇혀서 서로 밀치고 덮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먹갈치다. 박사장(이선균)이 맡는 " 냄새 " 는 바로 가난한 자의 새카맣게 타버린 속내'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속이 썩어갈 때 발생하는 그 먹갈치의 비린내를 박사장은 맡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은빛처럼 반짝반짝 빛났던, 상처 하나 없는 대저택의 인테리어 소품을 보면서 김난도의 << 아프니까 청춘이다 >> 라는 책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이 철딱서니 없는 양반아, 아프면 아플수록 비릿한 몸내가 진하게 나는 법이다 !



생선냄새증후군

                          양미리를 주머니에 넣은 짚업후드와 바지를 세탁했다.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세제와 더 많은 섬유유연제를 넣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내 몸에서는 항상 생선 비린내가 났다. 조증과 울증 사이에서 울증의 계절이 오면 비린내는 썩는 냄새로 악화되었다. 그때부터 숨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현상은 트리메틸아민뇨증으로 생선냄새증후군으로 불렸다. 체내에서 트리메틸아민(TMA)을 TMAO(trimethylamine-N-oxide)로 바꾸는 대사 과정에서 이상이 생기는 희귀질환으로,  트리메틸아민(TMA)은 생선이 썩는 듯한 냄새를 내는 화학물질로 트리메틸아미뇨증 환자의 소변이나 땀 그리고 호흡으로 과다하게 분비되어 악취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질병이 생선냄새증후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모텔 룸에서 고독사 한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였다. 나는 죽어서 영혼이 되어 구천을 떠돌고 있었으나 정작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는 생선 냄새가 아니라 내 몸이 썩는 냄새'였다. 문득 짐 크레이스의 << 그리고 죽음 >> 이란 소설의 한 문장이 생각났다. 생명이 사라진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온갖 벌레들로 들끓는, 죽은 내 몸을 보면서 0그램의 무게를 가진 내 영혼은 안도했다. 한동안은 죽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12-07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2-07 14:17   좋아요 0 | URL
참치화 잘못 먹으면 배탈나기 좋다고 하더군요. 거, 뭐냐. 참치랑 매우 비슷한 생선이 있는데 그게 거의 지방덩어리라고 하더군요. 일반 사람은 잘 분간을 못해서 장사꾼들이 자주 속인다고.... 뭐, 참치 자체가 기름이 워낙 덩어리여서 참치 많이 먹으면 배탈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