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 돌 이 가 뭐 가 나 빠 :
나는 오늘부터
문빠가 되기로 했습니다
내 지인은 환갑이 넘은 노인으로 관상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얼굴을 척 보면 다 압니다아아아 " 그에게는 시집 안 간 외동딸이 있는데, 선을 보고 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퇴짜를 놓는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관상가는 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 사람 얼굴 보고 판단하면 못 쓰는 겨어, 이것아 ! " 얼굴 보고 판단하는 직업을 가진 그가 얼굴 보고 판단하면 안된다고 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니, 얼굴 보고 판단했던 딸은 평소 얼굴 보고 판단하는 아비가 얼굴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말을 하니 혼란스럽다. 나는 사람 얼굴 보고 판단하면 못 쓴다는 그럴듯한 훈계를 그닥 신뢰하지 않는다. 첫인상, 그러니까 직관의 힘을 믿는 편이다. 얌체처럼 생긴 사람은 얌체일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높고, 정직하게 생긴 사람은 정직한 사람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내 경험만 놓고 보면 말(혹은 글)보다 얼굴을 믿는 쪽이 득이 되었다. 얼굴이 형이상학이라면 말이나 글은 형이하학이다. 여기서 말하는 얼굴은 얼굴이라는 신체 부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관상가는 타인의 면상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뿐만 아니라 모발 상태, 상처, 손발의 형상, 특이 거동도 참고한다. 그뿐만 아니라 음성, 동작에 있어서도 호흡, 걸음걸이, 앉은 모양, 누운 모양, 먹는 모양도 관찰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관상학은 동양 철학이며 통계를 바탕으로 한 행동심리학이기도 하니 이 사실을 알면 함부로 사람 얼굴 보고 판단하면 못 쓴다는 소리를 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문재인의 동성애 발언에도 불구하고 지지를 철회하지 않은 데에는 말이 주는 무게보다 얼굴이 주는 무게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은 " 정직하게 살아온 날들의 총합 " 이다. 관상이란 그 사람이 < 살아온 날 > 을 통해서 앞으로 < 살아갈 날 > 을 예측하는 통계학이다. 정직한 마음이 정직한 얼굴을 만드는 것이지 정직한 얼굴이 정직한 마음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내가 문재인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 오래 전, 작은 기사 하나 " 였다. 기사 내용은 청와대 근무 시절에 문재인은 하루도 빠짐없이 청와대 내 직원 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는 내용이었다.
공무원 비리'가 대부분 룸 있는 식사 자리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가 사전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위가 탁 트인 직원 식당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는 상대적으로 직위가 낮은 수송부·시설부·조리부·관람부 소속인 기술직 직원들과 직원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갖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나는 그 행위가 쇼맨심(-心)이 아니라 본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손수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식사를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인 것이다. 노제에 걸린 사진을 보며 노무현의 깊은 주름을 볼 때마다 주류의 칼날에 의해 난도질당한 흉터처럼 보여서 후회가 몰려왔던 기억이 난다.
하여, 나는 오늘부터 문빠가 되기로 결심했다. 조건 없는 환대로, 내 마음의 文을 열어 당신을 지지한다. 부끄럽지 않다. 그게 빠돌이의 숙명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