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씨, 그렇게 말하면 아니졍 ~
그동안 내부에 총질하는 것 같아 야당 후보에 대한 비판은 자제했는데, 안희정이 통섭 운운하며 궤변을 늘어놓는 것을 보자 울화가 목구멍에 걸렸다.
대추나무에는 사랑이 걸린다는데 내 목구멍에는 울화가 걸리는구나 _ 그런 자괴감이 들었다. 통섭은 낯선 단어'처럼 보이지만 지성계에서는 꽤나 유명했던 개념이다. 에드워드 윌슨1)이 << 통섭 >> 이라는 책을 내놓자 우후죽순 통섭 개념이 널리 유통된 것이다. 서로 다른 영역의 장벽( : 생물학과 물리학의 융합, 물리학과 의학의 만남, 과학과 철학의 통합 따위)을 허물고 서로 한자리에 모여서 대통합 강강수월레를 하자는 것이 통섭의 기본 개념으로 지식 통합이나 기술 융합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정치인 안희정이 jtbc 뉴스룸에 출연해서 (보수 표를 얻기 위해)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 하는
중도화 전략을 통섭이라는 개념으로 두리뭉실 뭉개며 시청자를 가르치려 할 때, 그의 시발스러움에서 졸라 꼰대스러운 태도를 떠올리는 것은 비단 나만의 분노일까 ? 서로 다른 학문을 대통합 프로젝트로 묶자는 통섭이 " 지식통합 " 이라면 안희정이 말하는 통섭은 자기 살길을 모색하고자 모이는 " 이합집산 " 에 불과하다. 윌슨의 통섭이나 나, 안희정의 통섭이나 모두 함께 모여 강강수월레 놀이를 하자는 제안이지요 _ 라고 말한다면 조삼모사에 지나지 않는다. < 지식통합 > 과 < 이합집산 > 은 아무리 양보해도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
윌슨의 지식통합(통섭)이 지적 사기라면 안희정의 이합집산은 정치 모리배가 감언이설로 표를 얻고자 하는 후흑학2)이다. 백 번 양보해서 안희정의 선의를 믿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재명이 당내 유력한 대선 후보인 문재인에 대응하기 위해 중소 후보끼리 모여서 경쟁하자며 안희정에게 우산론'을 제안했을 때, 그는 왜 구태 정치 운운하며 정확한 안희정 워딩은 : " 저는 그런 식으로 정치하지 않습니다 " 이재명을 하수 다루듯이 훈계했을까 ? 국정을 농단한 이명박과 박근혜의 선의는 무조건 믿으면서 같은 당 동료인 이재명의 선의는 무조건 비판한다 ??!
아내와 싸운 이웃집 여자 말은 무조건 믿으면서 아내 말은 못 믿겠다며 아내에게 버럭 화부터 내는 남편의 태도처럼 보여서 안희정의 선의 운운이 좆같다. 말로 흥하고 말로 망하는 것은 최순실만은 아닌 것 같다. 안희정, 어쩌면 그도 말로 흥하고 말로 망할 인간이다. 문재인이 정확히 지적했던 것처럼 안희정의 선의 발언'에는 분노가 빠졌다. 의심 없는 선의는 맹신에 불과하고 비판 없는 선의는 맹목이며 선의가 없는 분노는 단순한 화에 불과하다. 우리는 분노가 아름다운 감수성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안희정은 분노를 증오 감정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저항을 단순한 폭력으로 인식한다.
그가 자신을 비판한 문재인을 겨냥해 지도자가 분노하면 피바람이 불 수 있다는, 그의 친박 같은 반박 논리를 접하면서 빨갱이 프레임을 떠올리는 것은 나만의 과도한 상상일까 ? 선의로 시작된 통섭론은 전형적인 기득권 논리이다. 성경 속 사마리아 코스프레는 집어쳐라. 예수는 분노'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내다. 나는 예수의 분노 속에서 선의를 느낀다. 안희정이 읽어야 할 책은 통섭이 아니라 성경이다. 성경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텍스트이면서 동시에 분노에 대해 말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
- 28일 전
- 28일 후 ( 식물을 기르는 마음으로 수염을 기르는 중이다. 다윈의 수염을 모방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
1) 스티븐 제이 굴드는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을 지적 사기'라고 졸라 욕한 적이 있다. 윌슨의 통섭 주장이 웃긴 게 자신의 생물학을 중심으로 다른 학문이 모여 빅텐트를 치자는 논리. 자신이 빅텐트의 기둥이 되겠다는 심산.
2) 후흑(厚黑) : 두터울 후에 검을 흑, 두꺼운 얼굴과 검은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