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기와 생리대
일베(현상)는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혹은 그 제도에 체화된 한국 남성의 무의식적 습속이다. 그러므로 일베는 " 특정 소수의 발광 " 이 아니라 " 불특정 다수의 발현 " 이다. 즉, 일베는 대한민국 대다수 남성'이 말하고 싶었으나 차마 체면 때문에 말하지 못한 속마음'이다.
혹여, 이 글을 읽는 이가 남성이라면 대다수 한국 남성은 일베다 _ 라는 내 주장에 대해 우럭도 아니면서 울컥할 것이다. " 이보쇼 !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양성평등주의자로서 주말이면 집안일도 돕는 가정적인 남편이란 말이오 " 그럴 때마다 이런 반론이 가능하다. " 집안일을 돕는 것 " 과 " 집안일을 하는 것 " 은 다르다, 당신이 양성평등주의자라면 집안일을 돕다 _ 라는 표현보다는 집안일을 한다 _ 라고 말해야 한다. 전자는 아내가 해야 될 노동의 몫을 남편이 시혜적 차원에서 도와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후자는 성별 구분 없이 집안일을 1/2로 나눈다는 당위성에 방점이 찍힌다.
남자라고 해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돕는 행동을 뿌듯하게 생각하는 인식은 하드한 일베의 아이스크림 버전에 불과하다. 얌전한 일베'다.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아이스크림인 척하는 하드 ?! 무엇보다도 내 지적에 대해 당신이 크게 화를 내는 것 자체가 당신이 소프트한 일베'라는 증거'다. 왜냐하면 도둑이 제 발 저린 법이요, 방귀 뀐 놈이 성내는 법이기 때문이다. 대학 캠퍼스에 생리대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대학이 많다고 한다. 생리대자판기 설치는 여총에서 해마다 제기하는 해묵은 요구사항인데도 개선될 여지는 없다. 자판기 설치 비용은 한 대당 4,50만 원 정도로 이 비용을 학생회비에서 충당해야 하는데, 남학생들이 역차별 카드를 꺼내들어 심하게 반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학생은 여자 화장실에 생리대자판기를 설치한다면 남자 화장실에 면도기자판기도 설치해 달라고 주장한다. 학교는 양측의 첨예한 대립을 이유로 예산 지원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고). 이 모습에서 기묘하지만 상투적인 기시감이 드는 것은 나만의 느낌적 느낌일까 ? 긴급 재난 구호 물품 명단에 생리대는 포함되었지만 면도기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남자를 차별한다고, 한바탕 지랄을 했던 한국 남성들의 눈물겨웠던 하소연이 떠오른다. < 일베 > 는 차이에 따른 상대의 곤경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부재하는 집단'이다. 양성평등은 단순하게 등호( = )로 치환할 수 없다. 오히려 성차에 따른 몫의 차이'를 인정(혹은 인식)하는 것이 양성평등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 < " 거나 " > " 에 가깝다.
군가산점 논란에 대해서 남자들이 여자도 군대 가라 _ 라고 대응하는 논리나 생리대자판기와 면도기자판기를 동일한 선에서 요구하는 것은 양성평등이 아니다. 너도 힘드냐, 나도 힘들다 _ 라고 말하는 것은 공감이 아니다. 너도 힘드냐, 나는 이해한다 _ 라고 말하는 것이 공감이다. 우리는 일베를 괴물이라는 한국 사회의 소수성으로 축소시키지만, 내가 보기에 일베는 오랜 가부장적 습속에 의해 체화된 남성 욕망의 반영이다. 일베라는 정체성은 괴물(소수)가 아니라 정상성(다수)에 있다. 만약에 벚꽃 대선에서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헬조선 사회가 공정한 사회로 탈바꿈될 수 있을까 ?
그럴 가능성은 제로'다. 불공정 사회는 잘못된 정치의 결과라기보다는 잘못된 성평등이 원인이다. 양성평등에 대한 바른 인식 없이는 제2의 노무현이, 제3의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해서 이 나라가 공정 사회로 코페루니쿠스적 전환을 이룰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베라는 괴물. 나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당신의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