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아 라 , 드 론 :
압쏼라, 쏼라오 감보쉼빠빠
1일 1식을 한 지 어언 2년이 지났다. 저녁 9시 전에 잠을 자 새벽 3시에 일어난 지도 2년이 지났다. 식생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생활 습관이 바뀌다 보니 유의미한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요즘은 연말이라 술을 마실 기회가 많았는데 가장 큰 변화는 주량이 크게 줄었고, 취하면 잠을 잔다는 점이다. < 1일 1식 > 이라는 게 24시간 굶고 나서 첫 끼니를 먹는 방식이니, 나에게 술자리는 첫 끼니를 떼우는 자리'이다. 단점은 빈속에 술을 마시다 보니 빨리 취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단점은 술자리가 한창일 때 졸음이 쏟아진다는 점이다. 이 두 개의 설정이 겹쳐지니 술만 마셨다 하면 병든 닭처럼 고개를 처박고 졸게 된다. 이른 저녁 시간에 술집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이러려고 술을 마셨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며칠 전에도 술집에서 졸다가 이른 저녁에 문어가 되어 흐느적흐느적 거리를 걸었다.
사내는 하체가 튼튼해야 한다는데 이리 부실해서야...... 집 앞까지 왔을 때 눈에 띄이는 것이 있었다. 인형 뽑기 기계'였다. 나는 흐느적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며 인형뽑기 기계 앞에 섰다. 동전 투입구에 500원짜리 동전을 넣자 경쾌한 소리가 났다. 왠지 그날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계 손에 상자 하나가 걸려들었다. 와우 !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날, 내가 뽑은 것은 " 드론 " 이었다. 담배갑 만한 크기였다. 상자 안을 살펴 보니 드론 조종기도 있었다. 장난감 같은데 과연 날 수 있을까 ? 조종기 스틱을 이리저리 돌려보았지만 드론은 움직이지 않았다. 에구구, 그러면 그렇지.
그때였다. 드론이 슝 ~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스틱 조종에 미숙해서 하강을 하지 못한 채 계속 하늘 위로 치솟다가 사라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 거리 바닥을 훑었지만 드론은 보이지 않았다. 서운한 마음은 들었지만 간절한 마음은 없었다. 나는 흐느적거리는 문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졸음이 몰려왔다. 침대에 눕자 한여름에 녹는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르 눈이 감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새벽 3시가 지나서였다. 창 밖에는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교회 십자가의 붉은 네온 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깜박, 깜박, 깜박 ! 설움이 몰려왔다. 외롭고 쓸쓸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주머니를 뒤져보니 담배는 없고 드론 조종기가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조종기 스틱을 조물락거리며 우주로 날아간 드론을 생각했다.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열었다. 그때...... 내가 본 것은...... 그러니까...... 드론이었다. 그러니깐, 인형뽑기 기계에서 뽑은 드론이 내 방 창문 앞에 떠 있는 것이다. 후와. 또한, 그 붉은 빛은 교회 십자가 네온 불빛이 아니라 드론 자체에서 발광했다. 창문이 열리자 드론은 무당벌레처럼 살포시 책상 앞에 내려앉았다. 드론 조종석에는 체체 파리 구더기 4기에 해당되는 크기의 우주인이 있었다.
추측컨대, 드론이 4억 광년 너머 우주로 날아가 외계인을 태우고 돌아온 것이리라. 메리 크리스마스 ! 내가 낮게 속삭이자 드론 조종석 외계인이 말했다. 압쏼라, 쏼라오 감보쉼빠바 ~ 그 나라 외계어인 모양이었다.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 압쏼라, 쏼라오 감보쉼빠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