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의 가 느 껴 지 던 날 :
죽어야 사는 여자


▶ 노무현 탄핵에 투표하고 나오는 길에 해맑게 웃는 모습과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하자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모습
친박 서청원이 박근혜 옆에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95세 노인이 보조 보행기에 몸을 의지한 채 독일 법정에 섰다. 그는 젊은 시절 나치에 부역했다는 혐의로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오래 살았고, 또한 오랫동안 수사망을 피했다. 자비는 없었다. 죽음을 앞둔 노인에게 독일 법정은 4년 형을 구형했다. 99세를 뜻하는 백수(白壽)가 인간 생명이 누릴 수 있는 한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법정은 죽음을 앞둔, 백수에 가까운 나치 부역자에게 무기 징역을 선고한 셈이다. 이처럼 독일 법정은 치욕의 역사에 동조한 나치 전범을 용서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사태를 두고 명예로운 퇴진이나 질서 있는 퇴진을 모범 답안으로 내놓는다. 퇴로를 열어서 박근혜가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죄는 미우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소리이다. 미우나 고우나 대한민국 대통령이지 않나, 그만합시다 ! 이런 논조.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를 망친 주범은 자비 없는 보복이나 불 같은 분노'가 아니라 용서와 화해라는 프레임이다. 죄를 저지른 사람이 미운 거지 죄는 죄 없다. 박근혜 3차 대국민 담화 이후 탄핵에 동조했던 비박계가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다. 비박계의 협조가 없으면 탄핵 소추 통과는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일 안에 탄핵 소추를 추진해야 한다. 비록, 이 결투가 뻔한 결과(탄핵 소추 발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 상황)라고 해도 말이다. 역사의 발전은 반드시 승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6.8 혁명은 완벽한 패배로 끝이 났지만 그 몰락이 " 6.8 이후의 헤게모니 " 를 장악했다는 점에서 패배는 아니었다. 시민 혁명이 실패로 끝나게 될 때, 이제는 횃불을 들 때가 아닌가 싶다. 종교에서 용서는 미덕이지만 정치 영역에서 용서는 악덕이다. 4분 30초짜리 담화문 동영상을 보는 내내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연출한 << 죽어야 사는 여자 >> 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