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 강 한 고 립 :
생 강
날이 너무 더워서 시원한 카페에 가서 책을 읽으려고 주변을 정리하다가 설핏 이웃 글을 읽게 되었다. 읽을 생각은 없었다. 노트북 전원을 끄기 전에 잠시 훑어보고는 카페 가서 읽어야 겠다는 마음이었다. 꽤 긴 글이었기에 한두 줄 읽다가 내릴 계획이었으나 그만 앉은 자리에서 땀 뻘뻘 흘리며 읽어 내려갔다. 교양을 뽐내려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설득하기 위한 글도 아닌, 담담한 고백이었는데 울림이 컸다. 생강처럼 아렸다. 내가 이런 글을 써본 지가........ 아니, 없는 것 같다. 문득, 내가 < 생강 > 이란 단어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늘이나 생강이나 마찬가지이나 생강은 보다 특별하다.
독(毒)이 있는 것을 사랑했다. 내가 짝사랑했던 대상은 모두 독을 품은 것이었다. 독거미나 독사를 볼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현혹되었다. 사람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가 사랑이라고 말했지만 내 눈에는 상처를 주는 대상이야말로 사랑하는 존재였다. 생강에는 그런 맛이 있다. 그것은 독의 맛이다. 씹으면 통증과 마비를 일으킨다. 어느 것은 꿀과 즙으로 대상을 유혹하지만 생강은 그 어느 누구도 유혹하지 않는다. 아픈 것투성이'다. 김신용, 이연주 그리고 최승자의 시가 그렇다.
Y를 위하여
너는 날 버렸지,
이젠 헤어지자고
너는 날 버렸지,
산 속에서 바닷가에서
나는 날 버렸지.
수술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웠을 때
시멘트 지붕을 뚫고 하늘이 보이고
날아가는 새들의 폐벽에 가득한 공기도 보였어.
하나 둘 셋 넷 다섯도 못 넘기고
지붕도 하늘도 새도 보이잖고
그러나 난 죽으면서 보았어.
나와 내 아이가 이 도시의 시궁창 속으로 시궁창 속으로
세월의 자궁 속으로 한없이 흘러들어가던 것을.
그때부터야.
나는 이 지상에 한 무덤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고
나의 아이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나쁜 몸, 널 죽여 버리고 말 거야
널 내 속에서 다시 낳고야 말 거야
내 아이는 드센 바람에 불려 지상에 떨어지면
내 무덤 속에서 몇 달간 따스하게 지내다
또다시 떠나가지 저 차가운 하늘 바다로,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오 개새끼
못 잊어!
(『즐거운 일기』, 문학과지성사,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