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
화통을 삶아먹어야 기차는 달리고, 불이 있어야 쇠를 녹여 도구를 만들고, 태양이 있어야 꽃은 피고, 꽃이 피어야 꽃 핀다고 술 한 잔 하고, 꽃이 져야 꽃 진다고 술 한 잔 하다 보면 뜨거운 사랑이 싹 트는 법. 어머, 오빠 몸이 불덩이 같아요. 기승전열 ! 열이 있어야 에너지가 발생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36.5도의 항온성을 유지하는 불씨'를 몸에 담고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불씨가 있어야 불꽃이 되니까.
에너지 소모가 극심한 운동을 하고 나면 몸이 뜨거워지는 이유도 사람은 열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클래식 - 좀비'가 행동이 느린 이유1) 는 불씨가 꺼진 차가운 몸 상태(시체)라는 데 있다. 만약에 좀비가 땀을 흘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좀비'가 아니라 굴비'여, 그려 안그려 ? 불한당(不汗黨)이라는 재미있는 단어가 있다. 영화 << 넘버3 >> 에서 송강호(조필)가 자세히 설명해서 유명해진 단어다. 아니 불(不), 땀 한(汗), 무리 당(黨)으로 이루어진 낱말로 일은 하지 않으면서 남 괴롭히는 일을 일삼는 파렴치한 잔당들이라는 뜻이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유한계급(有閑ㅡ)도 불한당에 속한다.
여기서 < 유한 > 은 有限 : 기한 한' 이 아니라 有閑 : 한가할 한' 이다. 이들이 땀을 빼는 곳은 일터가 아니라 사우나, 헬스장, 모히또'다. 시간은 많고 할 일(노동)은 없고 세계는 넓고 갈 곳은 많으니 "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 하는 족속이 탄생하게 된다.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인 무산(無産ㅡ) 계급 입장에서 보면 속터지는 풍경2) 이다. < 열심 > 이라는 단어도 따지고 보면 " 열 " 과 관련이 있다, 더울 열(熱)에 마음 심(心)이니 말이다. 心을 불태우는 행위가 바로 열정'이다. 유한계급은 무산계급'에게 < 열심 > 을 강조한다. 기업 이미지 광고'를 봐도 < 열 - 찬양 > 이다(꼴마초 군대 문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한화 기업'이 불꽃 투혼이라는 문구로 이미지 광고를 하는 것은 꽤나 상징적이다. 왜 한국 청년들은 불꽃처럼 투혼을 발휘하다 소멸되어야 하나).
열심히 일한 당신은 (여행을) 떠나도 좋다거나, 땀 흘린 당신이 아름답다거나, 아름다운 열정이 보기 좋다고 강조한다.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는 족속이 땀을 예찬하니 웃기는 꼴이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면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는 여유는 부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 열심 > 이라는 단어가 참 엿같다. 노동자는 적당히 일한 권리가 있다. 불한당이 노동자에게 열정 따위 운운하며 땀을 예찬하니 괜히 불한당 소리 듣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열역학 제1법칙에 따르자면 에너지는 형태가 변할 뿐 사라지거나 생성되지는 않는다. 즉, 열 에너지는 소모적이다. 열정을 태우는 것은 촛불을 태우는 것과 같아서 열을 많이 낼수록 심지는 그만큼 줄어드는 것,
열정적인 삶을 산 사람이 박명하는 이유도 어쩌면 열이 유한(有限)하다는 사실에 있는 것은 아닐까 ? 그래서 열심히 사는 것을 강조하는 사회를 볼 때마다 딴지를 걸고 싶다. 일해야 먹고 사는 사회이니 < 열심히 일해라 > 는 당위'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지만 < 열심히 살아라 > 라는 정언'에는 딴지를 걸고 싶다. 일은 일터의 영역이고 삶은 집터의 영역이다. 집에서마저 심지에 불 붙여 열정적인 삶을 살아야 할까. 집에서만큼은 불 붙은 심지를 끄고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는 상상을 꿈꾸며 여유를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행복도 부지런히 뛰어야 얻을 수 있는, 열과 관련된 결과'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아내도 마찬가지'요, 좋은 자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욕망을 타자에게 투영한 결과가 모범적 역할 대상'이다. 모범적 역할 놀이가 제대로 굴러갈 때 행복한 가정이 된다. 그런데 이상적인 행복을 얻기 위해서 상대에게 역할 모델을 강요하게 되면 역효과'가 발생하게 되리라는 사실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상대가 롤 모델에 실패하게 될 경우 옆집 남편은, 아랫집 아내는, 윗집 아들은, 친구 며느리는...... 으로 이어지는 잔소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열심히 살 필요 없다. 적당히 살아야 한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적당히 살아야 한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열심, 열정, 투혼, 근로3), 행복 따위는 모두 열 -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 에너지는 생성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피로 사회'다. 노동을 무시하고 근로를 찬양하는 사회이다보니 과열/과로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DON'T TRY. 애쓰지 마라. 찰스 부카우스키의 묘비명이다 ■
덧대기4)
구의역 희생자의 母
바쁘신 와주신 와중에 우리 아이 이야기를 들으러 온 기자들에게 감사한다. 제가 엄마이기 때문에 용기를 내야 한다고 해서 왔다. 한 가지 부탁한다. 동생이 있다. 동생이 상처로 다치지 않도록 사진과 목소리 변조 부탁한다.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뭐가 필요하겠는가. 아들이 살아서 제 곁으로 왔으면 좋겠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우리 아들을 살려 달라. 저는 지금도 우리 아이가 온몸이 부서져 피투성이로 안치실을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회사 측에서 지킬 수 없는 규정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우리 아이가 지키지 않아 그 과실로 죽었다고 한다. 죽은 자가 말이 없다지만 너무 억울하다.
메트로 설비 차장이 저희를 찾아와서, 보고하지 않아서 우리 아이의 과실이라고 말했다. 전찰 운항 중에 작업하면 죽는다는 걸 가장 잘 아는 게 정비기술자인데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키를 훔쳐서 규정을 지키지 않고 그 위험한 작업을 하겠나. 우리 아이는 입사 7개월의 20살이다. 우리 아이가 잘못한 것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배운 대로, 시킨 대로 했을 뿐이다. 규정을 지키지 않아 개죽음을 당했다니요? 간절히 부탁하고 싶어서 이렇게 섰다. 제발 부탁한다. 힘이 없어서 저희가 여론에 기댈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 잘못이 아니라는 걸 밝혀 원한을 풀고 보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우리 아이를 확인하라고 해서 (안치실에) 들어갔는데 머리카락이 피로 떡이 져 있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고 뒷머리가 날아간 시체가 누워있었다. 20년을 키운 어미가 그 아들을 알아볼 수가 없다. 저 처참한 모습이 우리 아들이 아니다. 길을 가다가 뒤통수만 봐도 알아볼 수 있는 아이인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 수가 없다. 뒤통수가 날아가 있는 시체가 절대 우리가 아이가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짙은 눈썹과 옷가지가 있는데. 그날 입고 나간 옷이 맞다. 어느 부모가 아이를 잃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 아이가 죽는 날 나도 죽었다. (울음)
눈을 감아도 아이 얼굴이 기억이 안 난다. 마지막에 봤던 처참한, 찢어진 모습만 떠오르고 전동차에 치이는 모습이 떠오른다. 제 심장이 저 지하철 소리같이 계속 쿵쾅거린다. 혼자 얼마나 두려웠을까, 무서웠을까. 3초만 늦게 문을 열었더라면. 그 얼굴을 볼 수가 있는데. 제 남은 인생은 숨을 쉬고 있어도 죽은 그런 삶을 살겠지만 그래도 부모로서 우리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명예회복밖에 없다. 간절히 부탁한다. 우리 아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면 우리 아이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저도 우리 아이를 보내주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억울하게 보낼 수는 없다.
제가 이 자리에서 뭐하는 것인지(울음) 아직 빈소도 마련하지 못했다. 차가운 안치실에 저희 아이가 있다. 제발 아이를 떳떳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 힘도 없고 백도 없는 부모로서 이렇게 부탁하는 게 전부다. 죽은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차라리 팔다리가 끊어진 것이라면 제가 수발을 들어주며 살 수 있다. 어미로서 할 수 있는 게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밖에 없다.
우리 아이를 기르면서 책임감 있고 반듯하라고 가르쳤다. 우리 아이 잘못 큰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둘째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책임감 있고 반듯하게 키우지 않겠다. 책임자 지시를 잘 따르면 개죽음만 남는다. 산산조각난 아이에게 죄를 다 뒤집어 씌웠다. 둘째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첫째를 그렇게 키운 게 미칠 듯이, 미칠 듯이 후회가 된다.
우리 아이 겉모습은 무뚝뚝하지만 속 깊고 착한 아이였다. 그 나이에도 엄마에 뽀뽀하며 힘내라고 말하는 곰살맞은 아이였다. 대학을 포기하고 공고를 가며 돈을 벌겠다고 스스로 선택했다. 장남으로 책임감으로 공고를 가서는 우선 취업해 가정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대학은 나중에 가겠다고 했다. 그때 진짜 말렸으면 정말…. (울며 한동안 말을 못함)
취업을 하고 백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을 받고는 적은 월급 쪼개서 지난 1월부터 적금을 5개월, 백만원씩 다섯번 부었다. 동생 용돈을 주는 착한 아이였다. 끼니를 걸러가며 일하고 그걸 혼자 견디고 집에 와서는 씻지도 못할 만큼 지쳐 쓰러져 잤다. 힘든 내색하지 않고 그 직장에 다녔다. 안전장치도 하나 없는 환경에서 끼니를 굶어가며 일했다. 솔직히 얘기를 했다면 부모로서 당장 그만두라고 했을 것이다. 백만원이 뭐라고 당장 그만두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남으로 책임감이 있어서 부모가 걱정하고 그만두라고 할까봐, 조금만 더 참으면 공기업 직원이 된다는 희망으로 참았나보다. 차라리 책임감 없는 아이로 키웠다면 피시방을 가고 술이나 마시는 그런 아이였다면, 그런 아이였다면 지금 제 곁에 있을 것이다. 왜 책임감을 쓸데없이, 왜 그렇게 지시에 고분고분하라고, 회사에 들어가면, 회사 다니면 상사 얘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는지. 그렇게 안하면 잘리잖아요.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그런 게 다 후회가 된다. 더 잘해주지 못한 게 한이 된다.
아이 친구들이 찾아왔다. 졸업하고 친구들끼리 여행갈 계획을 세웠는데 우리 아이가 주말에 일하니까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다음에 간다고 우리 아이는 못 간다고 했다고 한다. 그 내용도 저는 몰랐다. 친구들 내용을 듣고 보니까 또 부모를 위해 여행을 못 간 건가 싶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 제가 속상할까봐 말을 안 했을 것이다. 살아있다면 우리 아이가 속이 깊다고 표현하겠지만 가슴이 찢어진다. 사고가 난 다음날이 우리 아이 생일이다. 다른 날도 아니고. 태어난 날. 그날 잘 갔다오라고, 올 때 케이크라도 사서 식구들과 축하해준다고 말했는데. (울음)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죽은 당일에도 보니까 하루종일 굶고 시간에 쫓기며 일했을 뿐이다. 근데 우리 아이가 잘못해서 죽은 거라니 너무 불쌍하고 억울하고 원통하다. 유품이라고 그 회사에서 갈색 가방을 병원에서 받았다. 가방을 처음 열었다. 학교 다닐 때만 검사한다고 가방을 열어봤지 처음 열어봤다. 왜 거기에 사발면이 들어있나. 여러 가지 공구와 숫가락이 함께 있다. 비닐에 쌓인 것도 아니고. 그 사발면은 한끼도 못 먹어서 그걸 먹으려고 했던 것인데. 나중에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니 그것도 먹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그것도 먹지 못하고. 그냥 대기하다가 그것이라도 먹고 출동하려고 숟가락을 그 공구와 함께 섞어놓았다. (울음) 우리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나. 규정을 어겼다니요. 무슨 규정을 어겨서 배를 곯아가면서 왜 그렇게 했나. 19살짜리가 임의로 그렇게 했다는 게 말이 안된다. 시킨 것은 자기들인데 규정을 어긴 것은 우리 아이라니.
제발 억울함을 밝혀달라. 한창 멋 부리고 여자친구 사귈 나이에 죄를 뒤집어쓰고 원통하게 보낼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 살아 있는 게 아니다. 동료가 안부를 물으며 전화해서, 제가 “정말 아줌마는 너 그만두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시점에도 지하철은 돌아가고 2인 1조로 내보지 않고 혼자만 내보내고 누군가 계속 죽어가고 있다. 죽은 아이 잘못이라니. 정말 엄마가 용기 내서 이렇게 말한다. 간곡히 부탁한다. 다른 것 필요 없다. 살아올 수 없지 않나. 사흘 못 봤는데 너무 보고 싶다. 군대 가거나 유학 갔다고 생각하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몇 년 참을 수 있지만, 군대 가면 휴가라도 나오고 유학 가면 영상통화로 볼 수가 있다. 저는 평생 아이를 볼 수가 없다. 우리 식구를 모두를 죽여놓고 아이 원통함이라도 풀어달라.
우리 아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저희 아이만 죽이는 게 아니다. 진실을 알아주고 원통함을 풀어달라. 우리 아이 얼굴만 보여줬지만 뒤통수 날아간 것이 아니라는 것 안다. 팔이 다리도 부서져서 없고…. 어제 구의역 사진이 인터넷에 나왔는데 저한테 안 보여주려고 하는데 언뜻 봤다. 유리창이 다 깨져 있고 피투성이더라 (울음) 제발요. 부탁 좀 드린다. 우리 아이 제발 차가운 데서 꺼내서 보내줄 수 있도록 제발 부탁한다. 저희 아이 잘못 아닌 것 알고 있지 않나. 정말 부탁드린다, 정말 부탁드린다. (울음)
1) 개인적으로 행동이 재빠른 좀비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2) 유한계급은 돈 주고 땀을 빼고, 무산계급은 돈 받고 땀을 빼는 계급이다.
3) 근로자(勤勞者)와 노동자(勞動者)는 같은 뜻을 가진 낱말이지만 다르다. 근로자는 " 땀 흘리며 부지런히 일(勤: 부지런한 근)해라 " 에 방점이 찍힌 단어이고, 노동자는 " 움직이다(動) " 에 방점이 찍힌 것이다. 노동자의 평균 노동량이 1이라면 근로자는 2'이다. 정부가 노동자의 날을 근로자의 날'이라고 고쳐쓰는 이유이다. 근로자는 불한당의 욕망이 투영된 단어'이다.
4)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열정에 대한 가치'는 사실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요구하는 가치'일 뿐이다. 열정이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 구의역 희생 노동자의 가방 속에는 컵라면 한 개와 숟가락 한 개가 여러 장비와 함께 뒤섞여 있었다고 한다. 밥 먹을 시간마저 주지 않는 노동 환경인 것이다. 마트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캐셔는 화장실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어서 물을 최대한 마시지 않으려고 한다는 기사를 접한 적 있다.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무시하는 자본가가 과연 열심히 일하라, 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