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짧은 논평 2 :
La Strada , 1954
ㅡ 사랑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날 찍을 장면에 필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 바람 " 이었다고 한다. 영화 감독은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를 찍고 싶었으나 그날은 유독 바람이 불지 않았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촬영을 미루고, 미루고, 미뤄 바람이 불어오기를 바랐으나 기다렸던 바람은 쉬이 불어오지 않았다고.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기울고 감독은 고민에 빠졌다. 촬영을 접어야 할까, 아니면 바람 없는 밋밋한 풍경을 찍는 것으로 만족할까 ? 그때였다. 감독이 마음속으로 철수를 결정하려던 순간, 기적 같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은 그가 원했던 방향과 그가 원했던 세기와 그가 원했던 소리로 감독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지나갔다. 감독은 서둘러 그 장면을 필름에 담았다고 한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이 바람은 신이 가난한 예술에게 주는 선물이구나 ! " ㅡ 정확한 기억의 복기'는 아니지만 장 뤽 고다르'가 했던 말로 기억한다.
예기치 않는 바람'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연출한 << 거울 >> 이라는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지금까지 내가 영화 속에서 본, 그 " 모오든 바람 " 을 통틀어서 가장 멋진 바람'이었다. 여자는 물끄러미 낯선 사내'를 보고 있다. 그녀의 얼굴에는 낯선 남자에 대한 경계'가 뚜렷하다. 남자는 여자의 무표정에서 그 어떤 의미도 포착할 수 없다. 남자는 왔던 길로 다시 걸어간다. 그때 돌풍이 어지럽게 불어닥친다. 풀은 바람이 지나가는 방향으로 눕는다. 남자는 바람이 지나가는 바람길을 따라, 풀이 눕는 길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가 여자의 얼굴과 마주친다. 남자가 본 것은 < 바람의 풍경 > 이 아니라 < 여자의 마음 > 이었다. 아, 했다. 심란한 마음을 이보다 아름답게 표현한 장면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장면은 감독이 의도했던 바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바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바람은 촬영 도중 느닷없이 불었다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돌개바람'이었으나 이 변수는 신이 선물한 장면이 되었다. 내게는 자동차 백미러에 쓰인 경고문이 그런 경우였다. "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 이 문장은 철학자의 사색 깊은 잠언도 아니요, 대문호의 화려한 수사'도 아니었지만 내게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 문장을 발견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영화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연출한 흑백영화 << 길 >> 이었다.
늦은 밤, 차력사 짐파노(안소니 퀸)가 해안가'에서 목을 놓아 통곡할 때, 그는 깨닫고 있었다. " 사랑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 백미러를 바라보다가 문득, 헤어진 < 옛 > 애인이 떠올랐다. 차는 안양 충훈부 버스종점 근처 천변을 달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