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영화 << 캐롤 >> 을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 제가 느끼기엔, 테레즈한테는 동성애적인 사랑이 필요한 게 아니고 캐롤이 필요한 겁니다. 근데 하필이면 캐롤이 여자였을 뿐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어떤 동성애를 다루는 영화에서는 상대방이 여자라는 게 핵심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성애적인 정체성에서 내가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야 라는 것이 그사람을 말하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최근에 개봉을 앞두고있는 대니쉬걸 같은 바로 그 영화가 그런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쉽고 선명하다. 동성애 코드를 이성애 코드로 전환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자는 제안이다.
그는 이 수사법을 적용하기 위해서 이상한 논리를 전개하는데, " 동성애적 사랑 " 이라는 문장에서 < 동성애적 > 이라는 문장을 지우고 < 사랑 > 에 촛점을 맞춘다. 비로소 동성애'라는 의제는 흔적으로만 남는다. 그것은 일종의 매끈한, 흔적 없는, 이음매가 보이지 않는, 안전한, 깨끗한 봉합'이다. 그가 그런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주류 이성애 남성'이라는 데 있다. "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 영화일 뿐입니다. 얼마나 영롱하고, 아아....... 깨끗한가요. " 그런데 이동진이 말하는 << 보편성 >> 은 사실 폭력적'이다. 왜냐하면 보편성은 항상 주류와 다수'라는 요소가 성립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보편성에는 비주류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동진은 이 사실을 잘 모른다. 그는 그저 심심해서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졌을 뿐이다.
이성애자 남성이 사랑하는 여성에게 " 당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사랑한 게 아니라, 하필 당신이 여자였을 뿐... " 이라고 고백하는 경우는 없다. 이성애자 남성은 상대방이 반드시 여자이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 그렇기에 이성애자'다. 그렇지 않은가 ?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테레즈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캐롤이 " 여자 " 였다는 데 있다. 캐롤'이라는 고유명사는 여자'이기에 앞서 인간'이기도 하지만 사람이기에 앞서 여자'다. 어떤 것을 우위에 두는가에 따라서 정치적 스펙트럼이 드러난다. 테레즈가 < 사람 > 을 사랑하느냐, 아니면 < 여자 > 를 사랑하느냐는 문제는 결국 아가페적 사랑이냐 에로스적 사랑이냐에 대한 태도의 문제로 귀결된다.
만약에 이동진이 이 영화를 아가페적 사랑으로 해석한다면 이 영화를 두고 " 멜로드라마의 역사가 장르에 내린 햇살 같은 축복 " 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 된다. 에로스가 빠진 아가페적 사랑을 두고 멜로드라마라고 하는 것은 꽤나 어색한 표현이 아닐까 ? 이동진은 보편성이라는 다수의 입장으로 소수를 억압한다. 마이클 키멜은 " 특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인종, 젠더, 계급이 보이지 않는다 " 라고 말한다. 백인 여자는 거울을 볼 때 여자를 보고, 흑인 여자는 거울 속에서 흑인 여자를 발견하고, 백인 남자는 거울 속에서 인간을 본다. 이동진도 마찬가지다. 그는 영화 << 캐롤 >> 이라는 거울 속에서 인간을 본다. 마이클 키멜의 지적은 고스란히 박영선 국회의원에게도 통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하고서는 소수 정당의 설움에 대해 울면서 말했지만, 이 통곡은 자기 기만'이다. 그녀는 고난의 피에타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없는 자의 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고백한 그녀가 한기총에서 쏟아낸 말들은 놀랍게도 다수의 입장(주류, 기독교, 한국인, 이성애)에서 소수(비주류, 이슬람, 외국인, 동성애)를 억압하는 말들이었다. 박영선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 나라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3당 대표 초청 국회 기도회 >> 에 참석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께 다시 한번 동성애법, 차별금지법, 인권 관련 법, 그리고 이슬람 문제 등을 저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강하게 말씀드립니다. 쉽게 말해서 소수자 차별에 찬성한다는 소리이다.
소수 정당의 설움에 대해서 말하던 사람이 정작 소수를 억압하는 군주가 되어 그들에게 유리 가루가 박힌 채찍을 휘두르는 것이다. 이동진과 박영선에게 필요한 것은 < 결핍의 거울 > 이다. 레즈비언은 영화 << 캐롤 >> 을 볼 때 캐롤이라는 여성을 보고, 박영선은 거울을 볼 때 자기애가 섞인 연민에 빠진다. 짐승은 죽을 때 자기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는다. 인간만이 자신의 죽음을 슬퍼한다. 박영선의 연민, 그 눈물이 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