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 맞을 각오로 추천한다

SF 영화를 보다 보면 자주 접하게 되는 이름이 있다. 필립 K 딕'이다. 상품성과 작품성에서 좋은 점수를 얻은 작품으로는 << 블레이드 러너 >> , << 토탈 리콜 >> , << 스크리머스 >> , << 마이너리티 리포트 >> , << 페이첵 >> 등이 있다. 저잣거리 입말로 표현하자면 " 필립 딕'은 본전은 때리는 작가'다. " 그는 스티븐 킹과 함께 할리우드가 가장 탐내는 작가'라 할 수 있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데 영화(아우)가 이 정도면 소설(형)은 얼마나 뛰어날까 ? 그 생각이 미치면 원작을 읽어 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원작을 읽고 나면 당황하게 된다. 소설 속에는 영화 속 영웅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를 " 찌질이 " 가 차지한다.
다시 말해서 소설에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해리슨 포드나 탐 크루즈 같은 영웅 대신에 존 터투로'나 스티븐 부세미 같은 배우가 주인공이다. 여기서 1차 쇼크를 경험하게 된다. 이 경험은 마치 전신 성형으로 미인이 된 사람의 중학교 졸업 앨범 사진을 볼 때 느끼게 되는 감정과 매우 유사하다. " 오오라, 영화와 소설은 많이 다르구나 ! " 여기서 끝이 아니다. < 좋은 이야기 > 는 독자를 얼마만큼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필립 케이 딕 소설은 독자를 설득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는 문장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고 훌륭한 이야기꾼도 아니다. 이야기 전개가 무리 없이 잘나가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논리적 비약이 심해서 독자는 쉽게 납득할 수가 없다.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얍삽한, 논리적인, 스마트한 작가'라면 그런 무리수는 절대 두지 않을 < 수 > 다. 케이팝스타 참가자가 첫 소절부터 애절한 목소리로 양현석, 박진영, 유희열로부터 아빠 미소를 짓게 만들다가 느닷없이 하드 락 창법으로 돌변해서 심사위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꼴이라고느 할까 ? 읽다 보면 세 번 " 뭐지, 이 싼 티 나는 설정은 ??! " 이라는 절망의 추임새를 내뱉게 된다. 필립 딕의 비약과 비논리'에 당황하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 필립 딕의 싼 티 나는 비논리 >> 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들었다. 그는 베드로'였다. 중간 중간에 세 번 절망의 추임새를 넣다가 어느 순간 빠져들게 된다. 책을 덮고 나면 어리둥절하다. < 병맛 > 이라는 게 이런 체험이라면 이런 병맛, 좋다.
내가 처음 읽은 필립 딕 소설은 << 화성의 타임 슬립 >> 이었다. 단편을 읽을 때는 몰랐었는데 장편을 읽다 보니 깨닫게 되었다. < 딕 > 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필립 딕 소설의 비논리와 비약은 SF 장르에 충실하고자 하는 반영이 아니라 뒤죽박죽인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망상'을 그대로 재현했기에 가능했다. 그것은 SF 판타지'라기보다는 과대 망상, 강박적 편집증, 정신 분열이 동반된 환영인 셈이다. 독자들이 보기에는 판타지이지만 작가가 보기에는 리얼리티'인 셈이다. 프로이트가 동시대 사람이었다면 필립 딕 소설에 무한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 실제로 필립 딕'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그는 암페타민 중독자로 온갖 공황장애에 시달렸고 죽을 때까지 불안감에 사로잡혔던 인물이었다.
신경쇠약, 자살 미수, 이혼을 반복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어찌된 셈인지 가는 곳마다, 누구에게나 멸시받았다. " 영화 << 블레이드 러너 >> 의 원작인 <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 > 에서 주인공 릭'은 < 전기 양 > 이 아닌 < 진짜 양 > 을 갖기를 원한다. 그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현상금이 걸린 안드로이드(들)을 제거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보상금으로 진짜 양을 살 계획'이다. 필립 딕'을 관통하는 것은 < fake(페이크) vs reality(리얼리티) > 가 아니라 < imitation(모조품) vs the real thing(모조품의 원본) > 이다. 주인공 릭'에게 있어서 살아 있는 동물인 진짜 양'은 명풍 루이비통 가방'이다. 반면 전기 양'은 진짜와 가짜를 분간하기는 힘들 정도로 정교한 짝퉁 가방이다. 훈련 받은 전문 감식가가 아니라면 구별하기 힘들다.
누가 나에게 <<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 >> 에 대해 줄거리를 20자 내외로 요약하라고 하면 이렇게 작성하겠다. " 진짜냐 짝퉁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이 문제는 필립 딕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화두'다. 그의 소설을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란 쉽지 않다. 괴팍한 소설'을 좋아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소설을 여러분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이유는 < 박근혜 > 때문이다. 소설 속 안드로이드 인간은 진짜 인간과 거의 닮았지만 유일하게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반응하는 < 감정 이입 능력 > 이 없다. 기계'인 안드로이드에게는 공감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슬픔에 대해 가짜 눈물을 흘린다. 릭은 < 감정 이입 능력(공감 능력) > 의 유무로 가짜 인간과 진짜 인간을 구별한다.
다시 말해서 릭은 가짜로 흘리는 눈물과 진짜로 흘리는 눈물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자'다. 릭은 눈물 감별사'다. 박근혜는 언젠가 대국민 담화'를 통해서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주인공 릭'이 이 방송'을 보았다면 그녀를 < 퇴역 > 시켰을 것이 분명하다. 퇴역이 무슨 뜻인가 궁금하신 분에게 이 책을 권한다 ■
덧대기
필립 k 딕'의 풀네임은 Philip K. Dick, Philip Kindred Dick 이다. 독특하다. 남근가족이라는 뜻인가 ? 불알후드의 다른 이름은 Kindred Dick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