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풍경
신기한 일이다. 전생에 나라 팔아먹은 죗값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사하는 날만 되면 비가 왔다. 뚜껑 달린 트럭에 짐을 실은 적이 없어서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 단단히 묶인 ~ 살림살이'을 벌건 대낮에 거리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부끄럽고 초라한 일이다. 더군다나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말이다. 어떤 새끼는 나라를 팔아먹어도 고관대작을 누리며 세상을 호령하던데 내 죗값은 이사하는 날 비 오는 것이란 말이냐. 비나이다 ! 비나이다, 제발 그러지 마시라. 이사하는 날, 비가 내렸다. 억수가 쏟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따름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흔적은 주저흔처럼 < 책 > 에 남아 있다.
가장 큰 수해를 입은 해는 5년 전이었다. 폭우 속에서 4시간을 달리다 보니 바닥에 깔린 놈은 죽고 위에 쌓인 놈은 살아남았다. 나는 죽은 책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눈물 젖은 책을 헌책방에다 팔려고 했더니 주인은 손사래를 쳤다. " 신파는 사양합니다 ! " 결국 고물상에 폐휴지로 팔렸다. 그런가 하면 주인의 지랄같은 성정 때문에 팔린 책들도 있었다. 낮술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귀신이 씌였는지 헌책방 주인을 불러 책장 두 개와 그 책장 속에 사는 책을 " 싸그리 " 팔았던 적도 있다. 팔려가는 책들이 아우성쳤다. " 아이고, 성님 ! 이게 웬 말이오. 나 좋다고 밤새 희롱하며 침 바르던 양반이 언질 한마디없이 이리 내몰면 어떡하오 ! "
책 판 돈으로 술을 마셨다. 피 같은 돈으로 술을 마시는구나. 아, 눈물이 앞을 가려서 더 이상 < 책의 이별사 > 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련다. 오늘도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물론 이사하는 날이다. 말이 좋아 포장 이사'이지 무늬만 포장 이사였다. 짐꾼이라고 노인 세 분'이 오셨으니 젊은 놈이 이래라저래라하기 뭐해서 함께 짐을 옮겼다. 가구들이야 무겁기는 하지만 부피 또한 상당하니 옮긴 보람이 있지만, 책은 사정이 다르다. 박스 하나에 40kg에 육박하니 옮기다 보면 다리가 후들거리기 마련 ! 옮기다 지쳤는지 노인이 내게 물었다. " 책이 많구려 ! 책, 많이 읽었으니 공부도 많이 했겠구려. 나는 젊을 때 노는 걸 좋아해서 이 나이에 짐꾼이 되었구려. "
생각해 보니, 나이 어린 책이 나이 많은 노인 등에 엎히는 꼴이었다. 나귀 주인이 나귀를 등에 엎고 가는 꼴이라고나 할까 ? 점심 시간에 짬을 내서 책을 일렬종대로 세웠다. 내가 말했다. " 똑바로 서, 오호츠크 시밤바들아 ! 팔다리 없다고 등에 엎어 옮기고 닦고 했더니, 그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일렬로 서. 똑바로 안 서 ? 내 말 잘 들어라. 사람들이 하도 책은 인류의 보물, 어쩌구저쩌구해서 너희들이 기고만장해진 것 같은데, 책을 귀하게 여기던 시절은 말 그대로 책이 귀하던 시대에 통하던 말들이렸다. 지금이야 플라스틱 바가지 생산하듯이 찍어내고, 개나 소나 책을 쓰는 시대이다 보니 책이 귀하다는 말이 이미 옛말이 되었다.
야, 구탱이에서 귀 파는 책 ! 너, 너너너너 ! 몸에 < 엄마를 부탁해 > 라는 문신 새긴 놈 말이야. 이 새끼, 언론과 문단에서 칭송하니 우쭐대던데 내가 보기엔 넌, 그냥 쓰레기 낭비야. 고물상에 팔리지 않으려면 조신하게 있어라. 글구, 몰락의 에티카 ! 너, 요즘 인기 좋더라 ? 가관이더군. 그런데 어쩌냐. 주인을 잘못 만났다. 나는 네가 질색이야. 꼴도 보기 싫다. 너희를 등에 엎고 옮기느라 허리에 금 가는 소리가 들려. 지금 내 서정이 말이 아니거등. 됐고 ! 조용히 찌그러들 있어라. 성질 나면 비오는 거리에 쏟아버릴 테니깐. " 내 호령에 우야우야 떠들던 책들은 찍소리도 못했다. 혹자는 내 글을 읽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것이다.
" 책이 말을 하나 ? " 에둘러 말하지 않고 서둘러 말하자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책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농담이 아니다, 은유도 아니다. 하물며 책장도 말을 한다. 내 서재는 항상 시끄럽다 ■
아이유 제제 : 아이는 어른의 " 프리퀼 " 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