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나라
누군가 말했다. " 대한민국은 눈먼 자들의 나라야 ! " 아마도 그 사람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 눈먼 자들의 도시 >> 를 빗대서 한 말일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 눈먼 자들의 도시 >> 는 맹목적 인간 사회에 대한 우화'이다. 문학뿐만이 아니라 저잣거리 입말에서도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은유로 사용된다. 내가 이 소설에서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앞을 보지 못한다는 데에서 오는 청결 문제'였다. 깔끔 떨기로 유명한 현대 도시 문명인이 < 눈 > 을 잃자 거주자의 주거지는 똥더미로 변한다는 이야기. 몇몇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나는 < 똥 ㅡ 얘기 > 를 좋아하는지라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찰스 부코스키에게 열광하는 이유도 " 똥 " 때문이었다. 잠시, 샛길로 빠지자면 찰스 부카우스키는 << 우체국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이스는 마침내 달팽이를 삼켰다. 그러더니 접시에 담긴 다른 것들도 천천히 살폈다.
- 모두 작은 똥구멍이 달렸어 ! 끔찍해 ! 끔찍하다고 !
- 똥구멍이 뭐가 나쁘냐고 ! 당신한테도 똥구멍은 있잖아. 나도 똥구멍이 있다고 ! 가게에 가서 큼지막한 쇠고기 스테이크를 하나 사봐. 거기도 똥구멍은 달렸어 ! 지구상에는 똥구멍이 널렸단 말이야 ! 어떤 면에서는 나무들도 똥구멍이 달렸는데 못 찾는 것뿐이야. 나무들도 이파리를 싸잖아. 당신 똥구멍, 내 똥구멍, 세상에는 수십억 개의 똥구멍으로 가득 찼어. 대통령도 똥구멍이 있고, 세차장 직원들도 똥구멍이 있어. 판사들도 살인자들도 똥구멍이 있다고. 심지어 자주색 넥타이핀 남자도 똥구멍이 있어 !
- 아,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
그녀는 다시 구역질을 했다. 미친년. 나는 사케를 따서 한 잔 마셨다.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 똥 > 이 진리로구나. 똥은 인간을 평등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오브제'다.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여배우가 새처럼 우아하게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나는 그 여배우가 화장실에 가서 똥을 싸는 상상을 떠올리고는 한다. " 그래, 인간이란 똥 싸는 존재. 다 거기서 거기'다. " 모든 인간은 한통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똥구멍이 달렸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똥구멍이 달렸으며, 티븨 화면 속 월드스타도 똥구멍이 달렸고 대통령도 똥구멍이 달렸다. 인간은 평등한 것이다. 아니, 똥은 World 를 초월하여 WWW 적이다. 양익준 감독의 << 똥파리 >> 를 보고 나서 미국인에게 물었다.
ㅡ 똥파리는 영어로 뭐임 ?
ㅡ 똥파리 !
ㅡ 그러니까 똥파리를 영어로 뭐라고 하냐고 ?
ㅡ 똥파리 !
ㅡ 이 사람, 말귀가 막귀네. 아니, 똥파리를 영어로 뭐라고 하냐고 ?
ㅡ 그래, 똥파리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똥파리를 영어로 " dung fly " 라고 한단다. 내 귀에는 이 단어 발음이 " 똥파리 " 처럼 들린다. 이 사실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똥파리는, 그러니까.... 그게, 음... 세계적으로 통한다 ! 각설하고, 주제 사마라구의 << 눈먼 자들의 도시 >> 를 재미있게 읽어서 후속작인 << 눈뜬 자들의 도시 >> 도 읽었지만 이내 실망하고 말했다. << 눈먼 자들의 도시 >> 가 똥(더러움)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 눈뜬 자들의 도시 >> 는 깨끗함에 대한 이야기였다. 흥미는 절반으로 반감되었다. << 눈뜬 자들의 도시 >> 는 그저 그렇고 그런 소설이 되었다. 인류사를 놓고 볼 때 더러움과 깨끗함에 대한 분류는 사실 오랜 세기 동안 구분이 모호했다. 독일 사회학자 노르페르트 엘리아스의 << 문명화 과정 >> 과 미셀 푸코의 << 감시와 처벌 >> 은 " 위생 " 이 부르주아의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내가 이 지점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과연 앞을 볼 수 없다는 것과 무질서(더러움)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눈먼 자들의 생활 공간과 눈뜬 자들의 생활 공간을 비교했을 때 무질서한 곳은 오히려 눈뜬 자들의 생활 공간이다. 눈먼 자의 생활 공간이 오히려 질서정연하다. 눈먼 자는 사물이 제자리에 놓여 있어야지만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눈먼 자의 집을 방문하면 사물들이 한치의 오차 없이 놓여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오히려 뒤죽박죽인 상태인 곳은 눈뜬 자의 집'이다. 병따개를 찾으려면 집구석 전체를 뒤져야 한다. " 어디다 뒀더라 ? "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 대한민국은 눈먼 자들의 나라야 ! " 라고 말했던 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 대한민국은 눈뜬 자들의 나라'다 ! " 뒤죽박죽인, 더러운 국가를 만든 이는 눈먼 자들이 아니다. 볼 수 있다는 권력, 그 권력이 주는 오만과 방자함. 결국 무질서는 항상 눈뜬 자'가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