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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찰스 부카우스키의 말년 일기
찰스 부카우스키 지음, 설준규 옮김, 로버트 크럼 그림 / 모멘토 / 2015년 8월
평점 :
고래와 동태에게
빛나는 재능 때문에 좋아하게 되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별다른 재주는 없지만 그냥 정이 가는 배우가 있다. 미키 루크'는 후자의 경우다. 내 기준에 의하면 가장 잘생긴 배우는 미키 루크'였다. " 저 새끼 ! 오질나게 잘생겼구나, 시바...... " 영화 << 나인 하프 위크 >> 를 볼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킴 베이싱어가 아니라 미키 루크'였다. 이상한 일이다. 잘생긴 배우라면 질색을 하는 내가 잘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환호하다니 말이다. 그는 꽃미남 부류였지만 탐 크루즈 같은 기생오라비'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그 눈빛은 야생의 날것 그대로였다. 감독 위주로 영화를 보던 내가 특정 배우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찾아본 것은 해리 딘 스텐튼'을 제외하면 미키 루크가 유일했다.
그런데 < 그 > 는 외모 덕을 볼 생각이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80년대 섹스 심벌이었던 그는 영화판을 떠나 권투 선수'가 된다. 그 이후는 몰락의 연속이었다. 술과 마약 그리고 오토바이 사고로 얼굴이 망가졌고, 망가진 얼굴을 복원하기 위한 잦은 성형 수술은 오히려 독이 되어서 추남이 되었다. 그러니깐 그는 " 두 얼굴의 사나이 " 가 된 셈이었다. 그는 결국 월세 500달러짜리 아파트에서 살면서 친구들이 주고 간 용돈으로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그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아파트에는 그가 키우는 개뿐이었다. 한때 잘나갔던 할리우드 스타는 개 똥을 치우고 오줌을 닦았다. 그렇게 15년을 버텼다. 내가 << 씬시티 >> 라는 영화를 본 이유는 오로지 미키 루크 때문이었다. 나는 죽은 아들 불알 한 번 더 만져보겠다는 심정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관은 시체 안치소'였던 것이다.
그는 분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영락없는 마브'였다. 할리우드의 미남이 노틀담의 곱추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뭉개진 얼굴을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추남으로 돌아온 그가 반가웠다. 그리고 몇 년 후 << 레슬러 >> 를 극장에서 보았다.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추운 겨울'에 내리는 눈처럼 나는 펑펑 울었다. 아, 저 인간...... 사람을 울리는구나. 영화는 레슬러 랜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복서 미키 루크'에 대한 다큐였다. << 레슬러 >> 를 연기한 미키 루크'를 보면서 문득 찰스 부카우스키'가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왜냐하면 미키 루크는 찰스 부카우스키의 자전적 이야기인 << 술고래 >> 에서 핸리 치나츠키'를 연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도 찰스 부카우스키'였다.
미키 루크가 할리우드에서 몸값이 치솟던 80년대 후반에 저예산 영화 << 술고래 >> 에서 주연을 맡았다는 것은 그가 찰스 부코스키에게 호감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거래'처럼 보여진다. 상남자는 상남자를 알아보는 법이니 말이다. 영화 속 핸리는 항상 고주망태'다. 그는 술집 죽돌이(barfly)로 길거리에 눕기 일쑤다. 저러다가는 < 고주망태 > 가 < 얼어죽을동태 > 가 될 판이다. 하지만 그는 꿋꿋하게 술을 마신다. 그가 출판사로부터 목돈을 챙긴 후, bar에 들려 " 고래로 태어났으나 곧 동태가 될 고주망태들 " 의 < 빈 잔 > 에 술을 채워줄 때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공짜술이란 그런 거지, 암 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