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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메르세데스 ㅣ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오늘의 요리 : 설탕 팍팍, 소금 듬뿍, 기름 넉넉
이런 말을 하면 욕을 먹겠지만 : 내가 보기엔 셰익스피어보다 뛰어난 작가는 스티븐 킹'이다. 그가 " 개똥에 쌈 싸 드셔 ! " 라거나 " 바셀린 잔뜩 바르고 오른손으로 딸딸이나 치셔 ! " 라고 말할 때마다 독자로서 키득키득거리며 웃게 된다. 교양머리 없는 노인네, 여전하시구나 ! 잔머리나 굴리는 교양 소설 작가'보다는 차라리 교양머리 없지만 솔직한 작가'가 낫다는 생각이 든다. 찰스 부카우스키(찰스 부코스키를 요즘은 찰스 부카우스키'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그런데 나쁘지 않다. 이름이 길면 길수록 뭔가 러시아 작가 혹은 추운 나라에서 온 작가 냄새가 나서 그렇다. 릴케라는 이름보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고 길게 부를 때 느끼게 되는 어감 따위를 좋아한다. 뭐, 개인적 취향이다)
또한 셰익스피어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의 일기(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를 보면 셰익스피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백에 어느 독자가 분노에 찬 편지를 보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편지'에 대한 반응은 역시 찰스 부카우스키답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 야, 좆까. 그리고 난 톨스토이도 좋아하지 않아 ! " 교양이 철철 넘치는 독자는 찰스 부카우스키와 스티븐 킹의 천박한 저잣거리 입말(비속어)을 거론하며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속어'를 남발한다고 해서 작품성이 없다고 한다면 같은 논리'로 셰익스피어 작품도 형편없는 문학'이라고 지적해야 한다. 셰익스피어야말로 작품 속에 비속어를 남발한 대표적 작가에 속한다. 오죽했으면 셰익스피어 비속어 사전'이 출간되었을까 ? 이름부터가 프로이트의 범성론적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 SEX/FEAR " 라니 ! 하여튼 취향의 문제이겠으나, 나는 SEX/FEAR'보다는 KING이 좋다. 이름부터 근사하다. 킹 ! 그가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王씨 성을 얻었을 것이다. 스티븐 왕 ?! 뭐니 뭐니 해도 내 기준에 소설의 미덕은 " 재미 " 다. < 재미 > 를 천박한 대중소설의 하찮은 날파리'따위로 치부한다면, 당신은 8월 무더위 속에서 제임스 조이스 장편소설 << 율리시즈 >> 를 읽고 나서 A4용지 20장 분량의 리포터를 제출하느라 엉덩이에 땀띠가 나 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 " ....... 시바, 소설은 역시 재미야 ! " 쓰는 기계, 스티븐 킹이 내놓은 신작 << 미스터 메르세데스 >> 는 그가 최초로 선보인 추리소설'이란다(나는 그가 공포 소설 작가'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처음 도전한 장르에서 에드거 상'을 수상했으니 교양머리 없는 싸구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재능의 스펙트럼이 어디까지인지가 궁금하다. 스티븐 킹'에게 수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4,50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 나는 킹이 파놓은 함정을 간파했다. " 제목이 미스터 메르세데스(살인자 별명이다)인 걸 보면, 범인은 여성이군 ! " 왕 영감, 감이 옛날만 못하십니다. 하지만 내 추리는 다음 페이지'에서 산산조각난다. 범인은 남자'다. 더군다나 이 소설은 시작부터 범인을 노출시킨 채 진행한다. 킹도 나처럼 어리석은 돌팔이 독자'를 염두에 둔 듯하다. 그는 이렇게 쓴다.
호지스(은퇴한 형사 반장)는 미스터 메르세데스가 사실은 미즈 메리세데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원칙적으로는 가능하고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이라면 깔끔한 해답이 될 수 있지만 이건 현실이다
- 460 쪽
이 소설은 트릭이 정교하거나 반전이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트릭이 정교하거나 반전이 뛰어난 추리소설'보다 재미있다. 킹은 트릭과 반전 대신 미스터 메르세데스'라 불리는 범인의 심리'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읽다 보면 뚱땡이 은퇴 형사'에게도 동정이 가고, 미스터 메르세데스'에게도 동정이 간다. 참신한 소설을 쓴 작가는 참신한 작가'다. 기발한 소설을 쓴 작가도 좋은 실력을 가진 기발한 작가'다. 하지만 매 작품마다 참신한 소설과 기발한 소설을 쓰는 작가는 거의 없다. 참신한 소설로 혜성처럼 등장한 작가'가 진부한 소설'을 쓰다가 결국에는 나자빠지는 경우는 흔하다. 트루먼 카포티처럼 말이다.
스티븐 킹은 진부한 내용(캐릭터)를 가지고 참신하게 쓸 줄 아는 재능을 가진 작가'다. 가늘고 길게 살겠다(쓰겠다)는 쩨쩨한 심산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매 경기'마다 전력 투구하는 강속구 투수이기보다는 대충 던져서 맞춰 잡는 투수에 가깝다. 한 작품에 모든 걸 쏟고 나서 나자빠지는 유형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탐정 소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다. 스티븐 킹은 세필(細筆)로 세밀화를 그리는 대신 대필(大筆)로 크로키'를 그린다. 하지만 킹은 진부한 캐릭터를 생생하게 만드는, 시든 시금치를 파릇파릇한 시금치로 만들 줄 아는 셰프'다. 그는 글을 가지고 요리한다.
애초에 거창한 레스토랑 음식을 만들 생각은 없는 모양. 설탕 팍팍 넣고, 기름 넉넉하게 두르고, 고춧가루 팍팍 뿌린다. " 요리할 땐 코는 파지 마세요 ? HA, HA, HA ! " 그리고 이영돈 피디가 들으면 기절할 소리지만 조미료도 아낌없이 뿌린다. 그가 말한다. " 코딱지 여러분, 안녕 ? 어때유, 오늘 요리. 고급지쥬 ? "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동의한다. " 네, 무척 고급집니다 ! "
-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을 읽는 인간으로 설정했다면 스티븐 킹은 쓰는 기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