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지랄 : 좋든 싫든, 오늘 이 세계는 남성의 작품이다
<<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 에서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 좋든 싫든, 오늘 이 세계는 히틀러의 작품 " 이라고 지적했다. 히틀러 때문에 소련은 "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초강대국에 올라섰 " 으며 미국은 " 퀄리티 하이 " 를 찍었다. 그리고 " 유대인들은 히틀러 이후에 국가를 갖게 되었다... 히틀러가 아니었다면 이스라엘은 없었을 것이다. " 결국 히틀러가 아니었다면 세계는 지금과는 다른 세계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 세계는 좋든 싫든 히틀러가 만든 작품이다. 요즘 서점에서는 페미니즘 서적이 잘 팔린다고 한다.
역설적이지만 다른 때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일베 때문이다. 여성 혐오가 극성을 부리자 그에 따른 반작용이 작동한 것이다. 역지사지라고 했던가 ? 그들은 남성의 말투를 흉내 내어 고스란히 남성에게 되갚아준다. 한국 남성은 어느새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남성 입장에서는 여성들이 남성을 싸잡아서 잠재적 범죄자'라고 하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분 나빠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좋든 싫든, 오늘 이 세계(꼴페)는 남성의 작품이다. 김태훈은 칼럼에서 IS보다 페미니스트가 더 무뇌아적이다, 라고 말했지만 그는 " 무뇌아적 드센 여성 " 을 만든 것이 바로 윽박지르는 남성'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여기서 원인은 < 윽박지르는 남성 사회 > 이고, 그 결과가 < 대드는 여성 > 인 셈이다.
니체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현대 사회의 병폐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데서 온다. 원인을 결과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김태훈의 오류도 바로 여기에 있다. 드센 여성 목소리'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여성이 드센 목소리로 바뀐 데에는 윽박지르는 남성 사회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간 질환 때문에 잦은 설사에 시달린다면 간을 치료해야 하는데, 김태훈은 항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꼴이다. 여성 입장에서 보면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가 맞다. 폭력과 강간은 90% 이상 남성에 의해 자행된다. 비록 자신은 평화주의자'라고 해도 여성의 두려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 잠재적 범죄자 " 라는 지적에 동의한다.
이제는 " 여성의 지랄 " 에 대해 인정해야 될 때가 되었다. 불알후드의 온갖 지랄은 관대하면서 유독 여성의 지랄에 대해서는 불편해 하는 것은 차별이다. < 지랄 > 은 발화의 주체가 권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르다. 가령, < 장동민이 팟캐스트 방송에서 여성에게 욕을 한 것 > 과 < 나꼼수가 팟캐스트 방송에서 각하에게 욕을 한 것 > 을 비교했을 때, 동일한 잣대로 둘 다 비판하는 것은 옳은 태도일까 ? 전자와 후자는 상황과 설정이 비슷하지만 동시에 전혀 다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황과 설정이 아니라 발화의 주체가 권력을 가졌는가에 있다. 전자의 경우는 강자가 약자를 윽박지르며 조롱했다는 측면에서 < 비하 > 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약자가 거대 권력자를 조롱했다는 점에서 < 반항 > 다.
이 반항은 정당하다. 남성을 향한 여성의 지랄은 후자'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주류이자 권력의 주체인 남성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점에서 반항'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좋든 싫든, 이 세계는 남성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