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너는 누구냐 ?



 

 

 




                           글쓰기 요령을 가르치는 책에서 바른 문장을 만들 때 접미사 < -적的 > 은 가급적 사용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글쓰기 강사는 " 가급적 " 대신 " 되도록 " 이나 " 될 수 있는 대로 " 따위로 순화해서 사용하라고 덧붙인다. " ~的 " 이 일본어식 표현법'이라는 것. 그런데 문제는 일상 대화'에서 " ~ 적 " 을 필요로 하는 표현이 굉장히 많다는 데 있다. " 그는 인간적이다 ! " 라는 말을 다른 말로 바꿀 만한 마땅한 표현이 없다. 的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니 " 的 " 만 쏙 빼서 " 그는 인간이다 ! " 라고 말하면 대뜸 " 그러면 우리는 짐승이었냐 ? " 라는 앙칼진 말방구가 되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는 순둥이다,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생각해 보면 < 인간 > 과 < 인간적 > 은 다른 의미'다 . 

 

그 차이'를 딱히 설명할 길은 없으나 < 인간 > 과 < 인간적 > 은 같은 것 같으면서도 같지 않고, 그렇다고 같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하기에는 마땅한 명분이 없었다. 바로 이 애매모호한 정체성이 내 뇌하수체를 통해 시냅스로 거쳐 전두엽을 자극했다. 전두엽에 나에게 명령한다. 주먹 꽉 쥐고 괄약근에 힘 줘라잉 ~ 적을 알아야 승리를 할 수 있는 법. 그래서 나는 너에게 묻는다. " 的, 너는 누구냐 ? " 적은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럴수록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만나면 밥은..... 먹고 다니냐, 라는 따스한 말 한 마디를 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어느덧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게 되었다.

 

입은 한여름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쩍쩍 마르고, 똥줄은 다이너마이트 심지'처럼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초조한 마음,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으리오. 밀어서 잠금 해체의 열쇠'를 제공한 이는 뜻밖에서 배우 이병헌'이었다.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둔 어느 날,  이병헌의 카톡 내용이 내 눈에 포착된 것이다. 로, 맨, 틱, 성, 공, 적!   형사로서 쏴싸싸아아아아아아아아한 느낌이 왔다. 박하사탕을 톡하고 씹을 때 뒤통수가 밝아지는 느낌처럼 말이다. 영화 << 살인의 추억 >> 에서 송강호가 직감이라고 부르는 그 feel이 온 것이다. 아기 다리 고기 다리던 적을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다니,  이 얼마나 극적인 만남이었나.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는 특별수사본부팀'에 마지막 전보를 쳤다. 밤 11시 53분이었다. 드,라,마,틱,성,공,적.  

 

" 로맨틱하다 " 는 "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 는 뜻. 곰곰 생각하면 < -的 > 은 영어의 < - tic > 과 꽤 닮았다. 이병헌은 -tic 과 -的이 (얼굴은 다르지만 한 뿌리에서 자란) 이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 roman > 이 순도 100% 로망'이라면 < romantic > 은 순도 60%쯤 되는 로망'이다. 낭만적인 구석'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구석은 쪼가리의 심리적 은유'다. < 성공적 > 도 마찬가지'다. 이 단어 또한 성공 100% 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병헌이 " 로맨틱 성공적 " 이라고 말한 데에는 미완성으로 남은 로맨틱과 성공적을 로망과 성공'으로 완성하자는 힘찬 결의'가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들 아시겠지만 그는 결국 < 로맨틱- > 에서 < 틱 > 을 제거하지 못했고, < 성공적- > 에서 < 적 > 을 떼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명사에 붙은 < -적 > 은 그 명사와 유사한 성격을 띠지만 오롯이 그 명사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안드로이드 로봇이 인간의 형상과 매우 닮았다고는 하나 결국 인간일 수는 없는 노릇'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할 수 없고 형을 형이라 할 수 없었던  홍길동 선생은 길동 아범 가계도에 편입될 수 없는 " brotherhoodtic " 이요, 혈연적 관계'이며, 불순물이었다.  이처럼 < -적 > 은 대상을 흉내, 모방, 시늉을 내거나 척하는 혹은 티를 내는 성향이 있다. 우리가 어떤 인물에 대해 " 그는 귀족적이다. " 라고 말한다면 그 말에는 실제로 귀족도 아니면서 귀족인 척한다, 혹은 귀족인 티를 낸다는 속내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간파해야 한다. " 그는 귀족이다. " 라고 하지 않고 " 그는 귀족적이다. " 라고 말하는 이유는,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가 귀족이 아니라는 데 있다.

 

만약에 그가 실제로 귀족이라면 " 귀족적 " 이라는 말은 모독에 가까운 소리'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자. 우리가 어떤 대상을 향해 " 인간적 " 이라고 말하는 속내에는 속으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됨됨이가 훌륭한 척( 혹은 티)을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인간적이라며 귓바람 불며 달달한 알랑방귀를 뀌면 환희의 휘파람 대신 분노의 주먹을 날릴 필요가 있다. 시간 날 때마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주변사람들로부터 " 인간적 " 이라거나 " 인간성 " 이 좋다는 소리를 과하게 듣는 사람은 의심을 해보는 것이 좋다. 정치가가 가장 인간적일 때는 선거 때이다. 누군가는 이완구가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흘린 눈물을 인간적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 눈물이 역겨웠다. 싸구려 신파극을 보고 있는듯한 느낌 ?!

 

자연스럽게 웃는 것보다 쉬운 연기가 바로 눈물 연기'다. 하늘 높은 관직에 있던 정치가들이 선거 때만 되면 스스럼없이 시장 상인들과 노숙자와 함께 한마음이 되는 풍경은 꽤나(?) 인간적이었다. 또한 사기꾼은 사기 행각이 발각되기 전까지는 인간성 좋고, 매너 좋고, 친절한 인간인 척하거나 그런 인간인 티를 내는 법이다. 그렇기에 나는 인간적인 인간'은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된다. 사실 인간이라는 동물에게서 배울 것은 그닥 많지 않다. 그건 그렇고, 적을 쫓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고급 정보'다. 잠시 고민하다가 함께 나누기 위해 정보를 공유한다. < -的 > 은 반드시 한자로 구성된 명사 뒤에만 쓰일 수 있다. < 인간적이다 > 라는 표현은 가능하지만 < 사람적이다 > 라는 표현은 쓸 수 없으니까. 이 정도면 나는 관대하다. 휴머니스틱humanistic 성공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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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5-04-27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적이다 보단 사람(의)적이다가 옳을듯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8 04:12   좋아요 0 | URL
만애비 님 정점 언어유희`에 맛을 들이신 듯...

돌궐 2015-04-27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맥락에서 `마음적으로`란 말도 어색한 표현인데, 참 많이들 쓰시죠.
이수열, <우리말 바로쓰기>에 보면 `-적`의 쓰임에 대해 다양한 예들을 들고 있는데요,
적을 안써도 되는 경우도 분명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쓴다고 해도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문장의 분위기나 흐름에 따라 글쓴이가 선택하면 되는 것이죠.
참고하시라고 아래에 내용을 옮겨 봅니다. 옛날에 썼던 초록에서 복사했습니다.^^

(1) 마음적
중국어에서는 `~적`이 체언을 속격과 형용사형, 부사형으로 표현하는 데 필요한 형태소지만, 우리말에는 관형격 조사 `의`가 있고 용언의 관형사형, 부사형 활용어미가 풍부하므로 `문학적, 예술적 가치`, `국제적 문제`, `적극적이다`, `공적으로` 등 `~적`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개념어말고는, 모두 우리말의 고유한 조사와 활용어미를 올바르게 써서 품위 있게 표현해야 한다.

(2) 합목적적, 유목적적
교육을 연구한다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로 `합목적적 행동`, `유목적적 활동` 등으로 표현한다. `합목적적`은 `목적에 맞는`으로, `유목적적`은 `뚜렷한 목적이 있는`이라고 하면 된다.

(3) 그 밖의 아무렇게나 쓰는 다양한 보기
* 전국적으로 비가 내립니다.
→ 전국에 / 전국에 걸쳐

* 개성적인 문장
→ 개성 있는 / 개성이 드러난 / 개성을 드러낸

* 자의적으로 행동한다.
→ 자의로 / 제 마음대로

* 점차적으로 변한다.
→ 점차 / 점점 / 천천히

*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 연속해서 / 연속 / 잇따라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8 04:12   좋아요 0 | URL
이런 댓글 만나면 뭐라.... 로또 맞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수열 님 이름 들으니 문득 제 블로그 이웃 중 한분이 생각납니다.
이분이 기자이신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뭔가 하고 보니 이수열 님이 보내신 것인데
문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을 빨간 펜으로 수정한......

그래서 제가 그거 잘 보관하라고 했습니다.
이수열 그 분이 그분 맞죠 ?

붉은돼지 2015-04-27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곰발님은 정말 글을 맛깔스럽게 쓰시는 것 같아요^^

마지막에 `적`은 반드시 한자 명사 뒤에만 쓰인다고 하셨는데....
위 돌궐님 말씀마따나 `마음적으로`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마음적으로` 라는 말이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거기에 ˝~다가˝를 붙이면 금상첨화
무식한 인간이 유식한 척 하는 듯한 그 어감, 세상을 아래로 보는 듯한 그 느낌...
어쨋든 어색한 듯 하지만 웃기고 재미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입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8 04:10   좋아요 0 | URL
사전에 올라온 수많은 적`을 살펴보니
연속적, 점차적, 개성적, 성공적 따위는 관형사로 인정을 해서 사전에 삽입되어 있는데
마음적은 없네요. ㅋㅋㅋㅋ 우리가 흔히 쓰는 잘못된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전 찾아보니 심적`은 있네요.

cyrus 2015-04-27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하면 이제 이산타의 `너 로맨틱 성공적`이 떠올려요. 문제의 카톡이 공개되면서 이산타는 대중의 적이 되었죠.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8 05:15   좋아요 0 | URL
로맨틱 성공적`이 있군요. 마, 맞다맞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얼릉 본문에 삽입하겠습니다. 아, 로맨틱 성공적을 왜 몰랐지 ? 수정하고 나니 글이 찰지네요..ㅎㅎ

오쌩 2015-04-28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상관은 없지만,
저는 일본식 표현이라고 쓰지말라는 조언들에 대해 반항하고 싶어요ㅎ
영어표현이나 단어들을 보면 불어나 독어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렇다고 배척하지 않아요.
스페인 포루투갈어 이태리어 역시 서로 견련관계로 섞이고 이를 인정하는데..

우리나라랑 역사적으로 밀접한관계에 일본에 영향을 받는건 당연한거 아닌가요.
저는 여러가지 언어의 표현방식이 뒤섞이게 될때 또다른 문체와 감각적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8 04:07   좋아요 0 | URL
그래서 가끔 한자로 구성한 한글 낱말`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보면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어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을 언어 오염으로 인식하지 말고 풍부한 어휘를 늘려준다는 측면에서 보면 언어의 발전에 도움이 될 터인데 마치... 보면 때려잡자 한자 단어... 뭐, 이런 느낌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오뎅`으로 불러도 된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원조에 대한 예의 아니겠스비까.
태권도 보십시오. 원조에 대한 예의로 다른 나라 사람 모두 차렷, 쉬어.. 이런 구호로 부르잖습니까.

다만 문법적 틀에서 일본식 표현법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적당히 쓰면 충분히 아름다운 문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