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밭에서 험하게 뒹굴다 보니 친절한 사람을 믿지 않는 경향'이 늘었다. 몇 번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과잉 친절을 보이면 호의 好意 : 친절한 마음씨) 를 갖기 보다는 호의 狐疑 : 여우 호, 의심할 의. 매사에 지나치게 의심하다는 뜻) 를 갖게 된다. 이 친절에는 호들갑스러운 리액션'도 포함된다. 예를 들자면 우는 사람에게 큰소리'로 호통치며 이래라저라래 하며 훈수를 두는 사람 말이다. 우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고민은 몇 년 혹은 몇 십 년 동안 간직한 오래된 고민'인데, 훈계하는 사람'이 한 방'에 해결책을 제시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한 방에 해결될 고민'이라면 그것은 고민'도 아니다. 이 훈계질은 마치 비만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한 끼 먹을 때마다 한 숟가락'씩만 덜어내면 10년 후에는 날씬한 미녀가 될 수 있다거나
평소에 일어나던 기상 시간보다 10분 일찍 일어나서 영어 단어 5개씩만 외우면 10년 후에 영어 회화에 능통할 수 있다고 말한 후, 말미에 심드렁하게 " 참...... 쉽죠이잉 ? " 라고 내뱉는 말투를 닮았다.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된다는 뻔한 잔소리요, 자투리 시간이 모여 10,000시간이 된다는 설레발. " 이봐요, 꼰대 양반 ! 띠끌이 모이면 먼지가 쌓일 뿐입니다. 더러운 먼지, 너나 먹으세요. " < 밥 먹을 때 한 숟가락 덜어내고, 아침에 10분 일찍 일어나는 것 > 은 어렵지는 않지만 < 밥 먹을 때마다 한 숟가락씩 덜어내고, 날마다 10분 일찍 일어나는 것 > 은 매우 어렵다. 일회성은 쉽지만 지속성은 어렵다는 소리'다. 자기계발서는 대부분 지속성을 일회성'인 것처럼 꾸민다. 뱃사공이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리듯이 독자가 약장수의 약파는 소리에 혹하는 이유는 < 마다 ~ > 라는 조사'가 가지고 있는,
반복과 지속이 가지는 " 고해 " 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 날마다 " 를 유독 강조하는 직업군이 있다. 바로 노인들에게 가짜 건강 상품을 파는 약장수'다. 약장수는 항상 멀머리를 날이면 날마다 오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을 소개하지만, 그런 놈은 대부분 날이면 날마다 온다. 얼씨구씨구, 죽지도 않고 또 왔구나. 독자는 " 조사 " 라는 품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 마다 " 라는 조사를 무시했다가 날마다 피똥 싸는 시지프스의 운명을 보라. 그렇기에 날마다 조금씩 ●●하면 변화가 찾아온다는 자기계발서를 믿지 마시라. 친절을 가장한 위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기 곁에서 오랫동안 함께하면서 응원하는 무뚝뚝한 격려'보다는 듣는 순간 입이 찢어질 정도로 듣기 좋은 칭찬 한 마디'에 혹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사 한 방이 아니라 곁을 지키면서 오래 함께하는 것이다.
봄은 야구의 계절이니 야구에 빗대서 이야기해볼까 ? 4할에 가까운 강타자'가 한 경기에서 안타 한두 개'를 때려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 멀티 히트( 한 경기 2안타 이상) " 를 기록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매 경기 안타를 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날에는 4타수 4안타를 기록하다가도 다음날에는 헛 스윙 삼진 아웃 4개로 물러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연속 안타 기록은 조 디마지오가 기록한 56게임 연속 안타'다. 이 기록은 1941년도에 작성되었다. 그렇다면 56게임 연속 안타'라는 기록은 어느 정도의 확률일까 ? 현재 메이저리그 최다 안타 기록을 가진 선수는 스즈키 이치로'로 2004시즌에 기록한 262안타'다. 팀당 게임 수가 총 162경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치로 선수는 매 경기 2안타에 가까운 1안타 이상을 때렸다는 결론이 난다.
그는 한 경기당 안타를 1.6개'나 생산했다. 다시 말해서 스즈키 이치로 선수는 2004 시즌에 두 경기당 안타를 평균 3개씩 때렸다.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그렇다면 타격왕 이치로 선수가 2004 시즌에 기록한 연속안타는 ? 정확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2004시즌에 그가 기록한 연속 안타는 20경기 안팎으로 보인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62경기 연속 안타 기록도 가능한데 말이다. 그만큼 야구 선수가 56게임 연속 안타'를 때린다는 것은 실력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행운의 여신이 입김을 불어줘야 가능하다. 56게임 연속 안타 기록은 3천 원 주고 구입한 로또 3장이 모두 1,2,3등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다. 그만큼 무엇인가를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힘들다. 그런데 친절을 가장한 약장수는 " 참, 쉽죠잉 ? " 이라고 설레발을 친다. 연민에서 비롯된 타자를 향한 위로'는 따스하지만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타자를 향한 위로'는 재수없는 참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너나 잘하세요, 라는 말을 던지고 싶다. 예의가 지나치면 무례가 될 수 있고, 호이가 반복되면 둘리가 되며, 친절 또한 지나치면 불친절이 될 수 있다. 친절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만 반대로 사기꾼은 모두 친절하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친절하지 않은 사기꾼은 없다. 그래서 나는 애교가 많거나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런 사람보다는 차라리 무뚝뚝하거나 목소리가 크지 않은 사람을 신뢰한다. 친절과 불친절 사이에 놓인 " 무뚝뚝함 " 이 좋다. 종교는 의심'보다는 믿음'을 강조하는 영역이고, 인문, 사회, 과학은 믿음'보다는 의심'을 강조하는 영역'이다. < 의심 없는 믿음 > 만을 강조하는 사회는 파시즘 국가가 될 공산이 크고, < 믿음 없는 의심 > 만 강조하는 사회는 분열된 사회'다.
대한민국은 신기하게도 < 의심 없는 믿음 > 을 강요해서 결국에는 < 믿음 없는 의심 > 이 만연한 사회'가 되었다. 국가를 믿지 않는 놈을 모조리 종북이라고 다그치니 국가에 대해 믿음보다는 의심'부터 든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말이 많다. 하지만 맹목보다는 의심'이 낫다. 세상이 좀 " 콰이어트 " 해졌으면 좋겠다. 너무 시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