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여자
결과를 원인으로 잘못 보는 것보다 더 위험한 오류는 없다. 나는 그것은 이성이 본질적으로 타락한 모습이라고 본다.
ㅡ 니체, 우상의 황혼 中
가수 남진이 부른 노래 가운데 << 마음이 고와야지 >> 라는 곡이 있다. 가사가 재미있다. "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 한 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 ......" 가사는 예쁜 얼굴보다는 착한 마음'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노래 가사에서 "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 ? " 라고 묻지 않고 "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 " 라는 반문은 얼굴이 예뻐야 하는 것은 기본으로 설정하고는 여기에 덧대어 마음도 고와야 하고, 한눈 팔지 말고 한 남자만 사랑하는 순애보'도 갖추어야 한다는 소리다. 이 정도면 한국 사회는 여자에게 요구하는 게 너무 많다.
일단 ㉠ 마음이 고와야 하고, ㉡ 얼굴도 예뻐야 하고, ㉢ 일편단심 민들레가 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 조건'이고, 덧대어 ㉣ 애는 반드시 낳아야 하고, ㉤ 너무 많이 배워도 안 되고, ㉥ 남편보다 돈을 많이 벌어도 안 되고, ㉦ 운전을 못해도 안 되고, ㉧ 새빨간 루즈를 칠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 화장을 아예 안 해도 문제가 된다. ( 나머지는 모두 기타 등등... ) 만약에 애가 없으면 조국애도 없는데 모성애도 없는 매국노가 되고 ( ㄹ ), 아는 게 너무 많으면 잘난 척하는 여자가 되고 ( ㅁ ), 돈 많이 벌면 남편 기죽이는 순악질 여사가 되고( ㅂ ), 운전을 못하면 김여사가 되고 ( ㅅ), 화장을 진하게 하면 천박한 여자가 되고 ( ㅇ ) , 맨 얼굴'은 게으른 여자의 표본이 된다 ( ㅈ ).
그런데 남자는 정반대'이다. 여자에게는 착한 마음씨'를 강조하면서 정작 남자에게는 살벌한 직장 조직 내에서는 적당히 나쁜 남자'가 되어야 출세에 도움이 된다고 충고한다. 남성 사회에서 나쁜 남자는 성적 매력을 가지지만 착한 남자'는 성적 매력이 없는 바보로 통한다. 어디 그뿐인가 ? 지나치게 외모에 신경 쓰면 오히려 사내답지 못하다는 소리도 듣는다. 그리고 앞으로 결혼할 미래의 아내를 위해 순결 선언'을 하는 동시에 병신 쪼다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남자는 그냥 " 배짱 " 하나만 있으면 된다. 이처럼 한국 사회가 남자와 여자를 대하는 잣대'가 다르다. 요즘 김태훈이 쓴 칼럼 <<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무서워요 >> 라는 글이 비판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제목부터 살벌하다. 긴 글이지만 전체를 옮겨본다.


내가 논술 시험 채점자라면 " 페미니즘 논란 " 을 떠나서 이 글이 보여주는 논리적 진술에 낙제점'을 주겠다. 영화 << 베트맨 >> 에서 조커가 언급한 " 너는 나를 만들었고, 나는 너를 만들었다. " 라는 대사와 " 무뇌아적 페미니스트 때문에 무뇌아적 일베'가 탄생하게 되었다 " 는 주장을 동일선상에서 엮으려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이 주장은 페미니스트에게 " 네가 일베의 에미다 ! " 라는 커밍아웃처럼 들린다. " 일국의 에미 " 도 아니고 " 일베의 에미 " 라고 하니 듣는 여성 입장에서는 " 이런 니미 ! "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둘 다 한통속'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면 둘 다 똑같은 족속이라는 주장은 얼토당토 목금토'다. 이 논리는 " 미친 년이 짧은 빤스 입고 오밤중에 돌아댕기니께 끔찍헌 일이 생긴 것이여... " 라고 말하거나 가정 폭력 사건을 보며 " 사내가 지 마누라를 그리 때리면 되남. 헌데 여편네가 맞을 짓을 헛으니께 때렸것지, 안 그려 ? " 라고 말하는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
여기서 짧은 미니스커트는 원인이고, 강간 사건은 결과'이다. 둘 다 똑같다고 말할 수 있나 ? 김태훈은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다. 개 주인이 흔히 말하는 " 우리 개는 물지 않아요 ! " 는 <<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 이다. 개가 자신(주인)은 절대 물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물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중간 단계를 검증하지 않고 섣불리 내린 결론이다. 하나만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야말로 대표적인 "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 이다. 하나만 보고 나서 전체를 판단하면 안 된다. 삼세판'은 기본이지 않은가 ? 하지만 김태훈은 터키로 떠난 고등학생이 남긴 " 페미니스트가 싫어요 ! " 라는 말을 단서로 극성스러운 페미니스트 때문에 IS로 떠났다고 판단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수많은 직소 퍼즐 조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수컷 세계에서 도태된 수컷의 좌절이 대한민국을 등지게 만든 요인은 아니었을까 ?
그는 21세기는 온전히 페미니즘의 시대'라고 단언한 후 " 온전한 페미니즘의 증후 " 를 나열한다. 남녀평등은 상식이 되었고, 이혼 제도는 재산의 절반을 보장하고, 성희롱을 한 남자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고 불만이 섞인 뉘앙스로 말한다. 그러니까 그는 이러한 요구가 억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재산 공동 분할, 가사노동 인정, 군 가산점 제도 철폐'가 진정한 페미니즘인가라고 되묻는다. 불만이 뚝뚝 묻어나는 논조'다. 여성이여, 찌질하게 자기 밥그릇 싸움하지 말고 좀더 대의적인 투쟁을 선언합시다 ! 여기서 김태훈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주장은 과잉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단순하고 오래된 평등권'에 대한 욕망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다. 반면 김태훈은 필수를 선택 항목이라고 우긴다. 모든 투쟁은 밥그릇 싸움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저열한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것이다. 미숙한 부분은 곳곳에 보인다. 뜬금없이 << 설국열차 >> 을 인용하며 " 싸워야 할 적은 남녀가 아니라 빌어먹을 시스템 때문 " 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그가 얼마나 논리에 약한 사람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구조적 문제가 남녀 불평등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페미니스트 혹은 페미니즘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부분이 바로 구조적 문제(시스템)이다. 그렇기에 김태훈은 페미니즘을 신랄하게 조롱하면서 동시에 페미니즘이 문제를 제기하는 구조적 문제에 동의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한다. 남성 우파 기득권을 신나게 지지하다가 좌파 코스프레를 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것은 마치 우측 깜빡이를 켠 채 느닷없이 좌회전하는 꼴이다. 김태훈 씨, 하나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지는 맙시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녹록치 않다. 사회는 너무 많은 것을 여성에게 요구한다. 나쁜(못난) 여자는 나쁜 여자대로, 예쁜 여자'도 예쁜 여자대로 살기 힘든 사회'다. 한국 사회는 나쁜 남자에게는 관대하지만 나쁜 여자에게는 관대하지 않는 나쁜 사회'다. 불알후드여, 치질하게 굴지 말고 눈알 불알리며 불철주야 항문에 힘쓸 필요가 있다. 만약에 대한항공 사태에서 조현아가 남자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물론 비판 여론은 있겠지만 조현아에 비해 비난 여론은 축소되었을 것이다. 조현아가 뭇매를 맞는 것은 " 갑질 " 에 더해서 " 나쁜 여자 " 라는 프리미엄이 상승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불난 데 기름 부은 격이다. 만약에 바비킴 기내 난동 사건과 조현아 기내 난동 사건이 동시에 발생했다면 어느 쪽이 뉴스를 선점하게 될까 ? ( 혹은 라면상무 사건과 땅콩회항 사건이 동시에 발생했다면......)
바비킴에 대한 여론과 조현아에 대한 여론이 극명한 온도 차를 보이는 원인은 나쁜 남자와 나쁜 여자를 대하는 대중의 이중적 잣대 때문이다. 니체는 << 우상의 황혼 >> 에서 " 결과를 원인으로 잘못 보는 것보다 더 위험한 오류는 없다. 나는 그것은 이성이 본질적으로 타락한 모습이라고 본다. " 라고 말했다. 김태훈도 똑같은 오류를 범한다. 그는 현재의 페미니즘이 김 군을 IS로 떠나게 만든 원인'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또래 문화와의 단절, 왕따, 소통 단절 따위가 만든 낮은 자존감'이 결과적으로 "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어요. " 라는 선언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페미니즘 혐오와 IS행 선택은 또래 집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안티테제인 셈이다. 니체가 이 글을 읽었다면 이성이 본질적으로 타락한 증후로 이해했을 것이다. 마음이 반드시 고와야 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