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대신 순댓국을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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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는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다음날이다. 숙취로 인한 고통은 식도에 통증을 느낄 정도로 구토를 해야 알 수 있다. 괄약근 조이고 주먹 불끈 쥐며 다짐을 하고는 한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으리라. 하지만 구토 증세가 사라지면 결심은 작심삼일'이 된다. 술을 마시다 보면 일정한 패턴이 반복된다. 나는 늙수그레한 꾀죄죄 아저씨이기에 코스는 늘 정해져 있다. 1차, 2차에서 헤어지지 못하면 3차로는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하며 원기를 복구한 후 다시 4차로 이어진다. 새벽 닭이 울고 배가 출출하면 얼큰한 국물에 해장을 하며 다시 술을 마신다. 그리고는 뭐..... 공터에 앉아 캔맥주나 까며 넋두리나 늘어놓지. 술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 있다.
사소한 일에 욕이 오가고 주먹을 휘두르기 일보직전까지 간다. 술주정뱅이 주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다음날이면 주워담지 못할 말'에 대해 땅을 치며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못된 습속일수록 버리지 못한다. 이병률은 시 << 여전히 남아있는 야생의 습관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전히 남아있는 야생의 습관
-이병률-
서너 달에 한번쯤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오는 습관을 버거워 하면 안된다
서너 달에 한번쯤, 한 세 시간쯤 시간을 내어 버스틀 타고 시흥이나 의정부 같은 곳으로 짬뽕 한 그릇 먹으러 가는 시간을 미루면 안된다
죽을 것 같은 세 시간쯤을 잘라낸 시간의 뭉치에다 자신의 끝을 찢어 묶어 두려면 한 대접의 붉은 물을 흘려야 하는 모른 체 하면 안된다
자신이 먹는 것이 짬뽕이 아니라 몰입이라는 사실도, 짬뽕 한 그릇으로 배를 부르게 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타이르는 중이라는 사실 까지도
이 시는 짬뽕이란 단어를 빌려 말하지만 사실은 간을 파 먹는 천년 여우에 대한 이미지처럼 읽혔다. 인간이 된 여우가 먹는 것은 새빨간 짬뽕이 아니라 새빨간 간이 아니었을까 ? 한 대접의 붉은 물은 막 꺼낸 생간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에 대한 은유이리라. 시를 왜 그따구로 해석하느냐고 묻지 마라. 내 마음이다 노마드적 삶을 버리지 못하는 어느 천년 여우의 " 변장술 " 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내가 이 시를 읽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 해장술 " 이었다. 여우는 여자로 둔갑하는 데 성공했으나 입맛을 버릴 수는 없던 모양이었다. 천년 여우가 느끼는 허기'는 " 환상통 " 에 가깝다. 그 식욕은 결핍이 만든 결과'다. 여우 꼬리를 잘라 사람이 된 죄로 그는 결핍이 만든 허기에 시달린다.
그 식욕은 가짜 통증이지만 여우는 그 사실을 모른다. 타는 듯한 허기'만 남아있을 뿐이다. 여우의 허기는 잘린 꼬리의 환상통이었다. 시인 김신용은 << 환상통 >> 이라고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나무도 환상통을 앓는 것일까 ?
몸의 수족들 중 어느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듯한, 그 상처에서
끊임없이 통증이 베어 나오는 그 환상통,
살을 꼬집으면 멍이 들 듯 아픈데도, 갑자기 없어져 버린 듯한 날
한때,
지게는, 내등에 접골된
뼈였다
목질의 단단한 이질감으로, 내 몸의 일부가 된
등뼈.
언젠가
그 지게를 부수어버렸을 때,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돌로 내리치고 뒤돌아섰을 때
내 등은,
텅 빈 공터처럼 변해 있었다
그 공터에서 쉬임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런 상실감일까 ? 새가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떨리는 것은 ?
허리 굽은 할머니가 재활용 폐품을 담은 리어카를 끌고
골목길 끝으로 사라진다
발자국은 없고, 바퀴 자국만 선명한 골목길이 흔들린다
사는 일이, 저렇게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라면 얼마나 가벼울까 ?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창 밖,
몸에 붙어 있는 것은 분명 팔과 다리이고, 또 그것은 분명 몸에 붙어 있는데
사라져 버린 듯한 그 상처에서, 끝없이 통증이 스며나오는 것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 김신용, 환상통 전문
군산에서 살 때 숙취로 인해 " 죽을 것 같은 세 시간쯤 " 을 견디면서 군산 쌍용반점이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는 했다. " 한 대접의 붉은 물을 흘려야 " 속이 풀릴 것 같아서 도저히 " 모른 체 "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술 때문에 속을 비우고, 비우고, 비우고 할 때마다 관장을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눈물이 찔끔 났다. 남들은 똥구멍으로 관장을 하는데 나는 입으로 뱉는구나. 내가 쏟아내는 것은 토사물이 아니라 물똥이구나. 비우고 나면 가벼워진 느낌이 들어 다시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쌍용반점을 찾고는 했다. " 자신이 먹는 것이 짬뽕이 아니라 몰입이라는 사실도,
짬뽕 한 그릇으로 배를 부르게 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타이르는 중이라는 사실 " 을 강제로 주입시키면서 말이다. 바로 이 맛 아니겠습니까 ? 아침 8시까지 술을 마시고 나서 버스를 탔다. 생각해 보니 술을 마시느라 정작 대빵 큰 달은 보지 못했다. 버스 안에서 군산 쌍용반점에서 먹던 짱뽕과 전주 웽이집에서 먹던 콩나물 국밥이 생각났다. 나는 버스 기사에게 소리쳤다. 쌍용반점 따따블 !!! 은 농담이다. 버스에서 내려 무작정 첫 번째 오는 버스를 다시 탔다. 공교롭게도 안양행 버스였다. 천변에 내려 물 따라 길을 걸었다. 이 길을 따라 가면 버스 보관소가 있는 충훈부에 도착한다. 나는 이곳에서 살았다. 버스 종착역은 비루한 지역이었다.
근처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후, 때를 미는 지지대 위에 올라 잠시 잠을 잤다. 불알 까고 대자로 누워 자는 게 부끄러워서 하얀 수건으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대물을 가렸다. 목욕탕은 전체관람가이니까. 어린이에게 내 거대한 대물을 보여준다는 것은 교육에 좋지 않아. 아빠 것은 보아도 되지만 내것은 안된단다. 목욕탕에서 꿈속에서 묘령의 여인과 섹스하는 꿈을 꿨다. 얼마나 지났을까. 수근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니 내 앞에 어렴풋이 후지산이 보였다. 내 페니스는 쟈크와 콩나물에 나오는 거대한 콩나물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었고 수건은 텐트 모양으로 아슬아슬 가리고 있었다. 나는 솟대처럼 솟은 대물을 보며 속으로 외쳤다. " 좆됐다 ! "
우우, 우우우우우 !!!! 전체관람가인 줄 알고 왔더니 18세 이하 관람 불가 영화를 상영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라는 후지산 이야기는 농담이고 목욕탕 휴게실에 앉아서 추석 특집 << 진짜 사나이 >> 하일라이트를 보았다. 목욕탕을 나와 천변 근처 놀이터 그네에 앉아 그네를 탔다. 하지만 곧 그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꼬마들이 몰려와서 그네를 내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순순히 응했다. 놀이터는 어린이 관람가이고 나는 18세 이하 관람 불가아니까. 나는 다시 자리를 옮겨 놀이터 벤치에 앉아 책을 베개삼아 잠을 잤다. 인기척에 깼다 잤다를 반복했다. 일어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순댓국집에 가서 순댓국을 먹었다. 땡초 하나를 된장에 발라 씹었다. 독한 맛에 입 안이 얼얼했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자신이 먹는 것이 순댓국이 아니라 몰입이라는 생각을 하며 먹었다. 내 허기는 내 몸 어딘가를 잘라내고 얻게 된 환상통이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 문득 내가 살던 충훈분 반지하 35촉 알전구 반짝거리던 집에 살았던 전 세입자 생각이 났다. 추운 겨울이었다.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그때 나는 속초에 있었다. 전화가 걸려왔다. 안양 경찰서였다. 형사가 낯선 이름을 부르며 당신이 그 사람의 동거인이 맞냐고 물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자 형사는 이내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인정했다. " 서류를 살펴보니 곰곰발 씨와 그 사람과는 동거인이군요. 그 사람이 이사갈 때 퇴거를 하지 않은 상태여서 당신과 그 사람은 서류상 동거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
내가 정확히 무슨 일이냐고 묻자 형사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거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사고 원인이요 ? 아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동사이고요. 사체 처리를 위해서는 가족 동의가 있어야 하거든요. 현재 그는 행불처리된 사람입니다. " 그에게는 " 죽을 것 같은 세 시간쯤을 잘라낸 시간의 뭉치에다 자신의 끝을 찢어 묶어 두려면 한 대접의 붉은 물을 흘려야 하는 " 짬뽕을 살 돈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날 혼자 동명항 방파제 포장마차에서 죽은 자에 대한 위로를 핑계로 술을 마셨다. 첫잔은 그를 위해 바닥에 뿌렸다. 사람은 짬뽕을 먹을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인생이란 생각보다 단순하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집에 돌아오니 이미 날은 어두웠다.
왁자지껄한 명절이 지나면 사람들은 쓰린 속을 달래며 짬뽕을 실컷 먹을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해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람들은 시원한 맛에 짬뽕 국물을 들이키지만 사실 국물은 뜨겁다. 이 또한 환상통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