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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바로 이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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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 열풍 " 이 많이 발생하는 나라'다. 눈만 떴다 하면 진원지를 알 수 없는 " 열풍 " 이 분다. < 태풍 >은 적도에서 물 먹은 구름이 극지방 방향으로 올라오면서 먹었던 물을 죄다 토해 내는 " 숙취로 인한 구름의 구토 현상 " 으로 이해하면 간단하게 해결되지만, < 열풍 > 은 딱히 실체가 없다는 점'에서 원인을 찾기 힘들다. 실체가 없으니 신드롬 분석이라는 게 사실은 뜬구름 잡는 꼴'이다. 한때 좌파 지식인에 속했던 아무개는 당시 2002년 붉은 악마 광장 응원 열풍을 분석하면서 " 전통 마당놀이의 확대 버전 " 이라고 진단한 후 " 군사정권이 만든 밀실 문화에 대한 혐오와 반항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터져나온 현상 " 이라고 말한 적 있었는데 자신이 10년 전에 했던 말은 깡그리 잊은 듯하다.
요즘 그는 " 민중이 촛불 들고 광장으로 모이는 현상을 불순한 세력이 개입한 결과 " 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10년 후에 종복 좌파의 개입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렇듯 신드롬 분석은 이현령비현령이요, 어울렁더울렁'이며, 거시기가 거시기'고, 도긴개긴이다. 워터 홀릭인 태풍 씨 얘기가 나왔으니 본문과는 상관없이 잠시 고주망태 태풍 씨에 대해 짧게 언급하기로 하자.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다음과 같은 기상천외한 질문을 던졌다. " 대한민국은 왜 태풍 씨만 오냐 ? 자주 보니 질린다. 호호. 난 요즘 거친 허리케인 씨 멋지드라. 호호 마초 몸뚱이 밑에 뭉가져서 숨을 헐떡이며 신음소리 내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네. 허리케인 씨 내한 공연 오면 꼭 보러갈 거야 ! "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도 동조했다. " 맞아 ! 허리케인 씨 너무 멋있는 거 같드라. 사이클론 씨도 보고 싶지 않니 ? 태풍을 한국말로 하면 대풍大風이잖아. 대풍이 뭐야, 대풍이 ! 촌스럽게 양촌리 김회장 댁 둘째 아들 이름 같잖아. 사이클론, 이름도 얼마나 21세기적이야. 호호. 사이클론 씨'라면 치매 노인이 자신이 싼 똥을 뭉가듯이 그 몸뚱이 밑에 뭉가져서 붕가붕가 하며 싸지르고 싶다, 증말....... " 두 아낙네가 은밀하게 토해내는 섹스 판타지를 옆에서 듣고 있지나 어이가 없는 거라. 내가 말했다. " 향숙 씨 ! 허리케인은 결코 내한 공연 따위는 하지 않아. 만약에 허리케인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그것은 미국行 비행기가 궤도를 이탈해서 대한민국 인천 공항에 비상 착륙할 때나 가능한 시츄에이션이야. "
열대성 저기압은 발생해역에 따라 명칭이 다른데 △북서태평양 필리핀 근해에서 발생하는 것을 태풍(Typhoon) △ 북대서양, 카리브해, 멕시코만, 북태평양 동부에서 발생하는 것은 허리케인(Hurricane) △ 인도양, 아라비아해, 뱅골만 등에서 생기는 것은 사이클론(Cyclone) △ 호주부근 남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윌리윌리(Willy-Willy)이다.
열풍도 다양한 분야에서 제각각 분다. 동의보감에서 우려낸 건강 식품 열풍은 계절마다 등장한다. 봄에는 가시오가피'가 만병을 다스리는 불로초로 둔갑했다가 가을에 되면 오시오가피'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대부분은 질병 공포증과 건강 염려증을 이용한 상업적 계산이 깔린 수작이다. 다음해에는 자시오가피 열풍이 불어닥칠 것이다. 가시오'와 오시오 따위가 아무리 몸에 좋다 한들, 과하면 독이 되는 게 음식'이다. 동의보감 문헌이 상업적으로 악용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티븨에 나와 동의보감 한 구절 인용하고 나서 출연료 받아 챙기는 꼴을 보면 한심한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땅에는 " 불로소득 " 이라는 독초는 무성하게 자라지만 " 불로초 " 는 없, 어요.
심장에 좋은 약초는 간에 나쁠 수도 있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열풍따라 건강 식품 챙겨 드시지 마시고 그냥 골고루 드시오, 그리고 잠을 푹 자시오 ! 특정 다이어트 열풍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은 토마토만 졸라 먹더니, 또 어느 해는 바나나만 졸라 먹는다. < 네가 하면 나도 한다 - 주의 > 는 나중에는 < 나도 하니 너도 해라 - 주의 > 가 된다. < I HAVE > 가 < YOU MUST > 가 된다. 자발성이 결국에는 강제성으로 변질되는 경우다. 여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고 결국에는 이상 열기를 낳는다. 좋은 예가 " 노스페이스 신드롬 " 이다. 반면 사람에 대한 열풍도 흔하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주연배우는 CF대박을 터뜨리게 되는데,
종종 배우들이 CF를 따기 위해 드라마를 열심히 찍는 것은 아닌가, 라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화폐 가치를 놓고 봤을 때, 다른 나라에 비해 대한민국 특정 연애인에게 지급하는 광고료가 지나치게 비싼 이유는 소비자가 광고에 나온 제품 자체에 대한 우수성'보다는 그 광고를 찍은 배우에 대한 호감 때문에 제품을 " 묻지마 " 구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열풍에 쉽게 동조하는 것은 출판업도 마찬가지다. 대중에게 인기가 있다 싶으면 출판사에서 기획 상품으로 발 빠르게 내놓는 것이 바로 " 리더십 " 이다. 히딩크 열풍은 히딩크 리더십을 낳고, 이순신 열풍은 이순신 리더십을 낳는다. 한때는 박칼린 리더십이 인기를 끈 적도 있다. 티븨 오락 프로그램에 나와 합창단 지휘 몇 번 했다고 박칼린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
한국인은 겉으로는 공평과 공정한 잣대를 절실히 요구하지만 한편으로는 특권과 특혜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이중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황상민 교수가 제기한 김연아 특혜 논란에 대해 대중이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좋은 예이다. 입으로는 공정 사회를 외치면서 마음 속으로는 특권인에 대한 특별 대우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왜 ? 김연아이니까 ! 스포츠 서사를 애국 서사로 이해할 때 발생하게 되는 흔한 예'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김연아, 박세리, 류현진 같은 선수는 애국심 때문에 열심히 뛰는 게 아니라 자신이 누릴 부와 명예를 위해 열심히 뛸 뿐이다. 이 열풍은 훅 들어왔다 훅 나간다. 열풍은 주로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옛것에 대한 견고한 지지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 무드셀라 증후군 " 를 밑바탕으로 한 레트로 열풍'이 좋은 예이다. 무드셀라 증후군 : 추억은 항상 아름답다고 하며 좋은 기억만 남겨두려고 하는 증후군. 무드셀라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과거를 회상할 땐 나쁜 기억은 빨리 지워버리고, 좋은 기억만을 남기려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현대 대중 음악을 폄하하면서 옛날 가수는 노래 실력이 뛰어났지만 요즘 아이돌 가수는 노래 실력이 형편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요즘 가수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한 연습생 생활을 거쳐 무대 위에 오른다. 오히려 옛날 가수들이 주먹구구식으로 배운 측면이 있다. 현대 대중 가요의 문제점은 형편없는 노래 실력이 아니라 예술적 즉흥성이 배제된 지나친 계산에 있다.
그런가 하면 < 맛 > 에 대한 절대적 지지는 무조건 과거에 고착되어 있다. 맛집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영혼 없이 내뱉는 멘트가 " 옛날 어머니 솜씨 " 다. 맛에 있어서 만큼은 옛날에 먹던 맛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당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가 음식 맛을 맛본다면 ?! 아마도 당신은 A+++ 등급을 받은, 마블링이 기똥찬 한우만 먹다가 (30년 전으로 돌아가서) 평생 밭만 갈다가 늙어서 죽은 일소 : 주로 일을 시키기 위해여 기르는 소. 힘이 세고 발이 넓다. 옛날에는 소가 귀해서 일하다가 주로 늙은 소를 잡았다고 한다. 평생 풀을 먹고 일만 하다 죽었으니 비계가 섞일 리 없다. 당시 소고기는 질겼다고 한다. 의 고기를 씹으면서 질기다고 투덜댈지도 모른다. 30년 전 음식이 더 맛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그 옛날, 당신 혓바닥에 침을 고이게 만든 힘은 < 환상적인 음식 - 맛 > 이 아니라 < 제대로 먹지 못한 - 결핍 > 에 있었다고 진단하는 게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글을 매조지하기로 하자. 내가 주문을 외면 당신은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 셋, 둘, 하나... 레드썬 ! 옛날에 살던 집이 보인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부엌과 연결된, 열린 쪽문 너머로 30년은 젊어진 엄마가 막내를 등에 업고 저녁을 차리느라 분주하다. 엄마.... 울컥, 눈물이 날 것 같다. 엄마는 당신을 보더니 말한다. " 썩을 년아, 뭘 그리 멀뚱멀뚱 본다냐. 엄니 콧잔등에 이슬 맺히는 거 안 보이냐. 바빠 죽것다. 얼릉 밥상 안 차린다냐. " 그 말에 생긋. 밥상이 차려지고, 젊은 시절의 엄마가 만든 김찌찌개 맛을 본다.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래, 이 맛이다 !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때 30년은 젊어진 엄마가 말한다. " 맛나제 ? 허벌나게 귀여운 내 새끼들, 어여 많이 먹고 쑥처럼 쑥쑥 크랑께. 세상 좋아졌어야. 마법의 가루인가 뭔가가 요로코롬 나와뿌려서 국물 맛이 끝내줘야. 맹물에 미원 뿌리면 맛이 기가 막히제... " 엄마의 뒤통수에 정신이 번쩍 든 당신은 곰곰 생각해 보니 어제 자취방에서 요리한 김치찌개와 같은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30년 전 당신이 맛 본 김치찌개 맛은 미원 맛이었다. 1956년. 미원이 출시된 이후 이 제품은 줄곧 사랑을 받았다. 당신이 생각하는 옛날 엄마 음식 솜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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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나 지금이나 엄마 음식 솜씨 비결은..... 도저히 결론을 못 내리겠다. 미완성으로 글을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