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뽕짝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 시리즈
4화, 빨개요
올해 초, 곡에 가사를 입히는 작업을 했다. 알음알음 알게 된 작곡가가 부탁을 하길래 처음에는 손사래치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다가 결국에는 작업에 참여했다. 작곡가는 내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시작부에 ㄲ, ㄸ, ㅃ, ㅆ, ㅉ 같은 된소리를 피하면 되고 가급적이면 받침이 어려운 단어는 사용하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뭐,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것만 지키면 내용은 자유란다. 그런데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된소리와 격음을 피해서 글자 수를 조절한다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결국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작업을 넘겼는데 의외로 ok 사인이 떨어져서 당황했다. 그 사이,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원래 이 곡은 신인 가수'가 부르기로 했는데
계획이 변경되어서 실력파 가수가 부르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나가수에 출연했던 가수이니 실력과 대중성은 확보된 경우였다. " 잘하면 저작권료 받아먹게 생겼구나 ! " 일은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스튜디오 녹음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이후는 감감무소식이다. 음반 산업이 워낙 불경기인 데다가 10대를 겨냥한 추파춥스용 음악이 아니면 음반을 제작해서 이윤을 남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 제작을 꺼리는 모양이다. 이번 작업을 계기로 한 수 배우겠다는 자세로 인기 있는 노래 " 가사 " 에 관심을 가지고 음악을 듣게 되었다. 시장에서 생선 팔던 놈이 작사가로 직업을 갈아타겠다는 욕심은 아니다. 그냥 궁금했다.
자연스럽게 추파춥스用 " 소년소녀떼거지율동단 " 이 부른 노래 가사를 듣게 되었다. 오, 놀라워라 ! 평소 듣긴 들었으나 가사를 생각하며 듣지 않아서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 가사를 제대로 파악하면서 들으니 닭살'이었다. 현아가 부른 < 빨개요 > 는 압권이었다. 전체 가사는 다음과 같다.
더 hot하게 레드 립스틱 좀 더 빨갛게 / 더 cool하게 더 hot하게 레드 립스틱 좀 더 빨갛게 um~ / 새빨간 립스틱 발라도 빨개요 / 깨물어 주고 싶은 내 귀가 예술이예요
(현아's back uh)
왠만한 애들보다 잘빠진 몸매는 내겐 full option / 몸 좀 풀고 달려볼라니까 / 빨간거 그게 나니까 / (이제 무대 위로 올라가볼까) / 날 두고 떠나지 마 / 나 지금 너무나 외롭단 말이야 / 너만은 나를 떠나지마 / 여긴 나 하나밖에 없다고 / (나 지금 변해버릴지 몰라)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what) / 빨간 건 현아 현아는(yeah) / so cool하게 더hot하게 / 레드 립스틱 좀 더 빨갛게 / so cool하게 더hot하게 / 레드 립스틱 좀 더 빨갛게 / 다 그만해 따끔하게 / 혼내줄테니까 엉덩이 대 / (감당 안 돼) / 밤마다 say h y u n 그리고 a
죽이는 댄스 무대위 킬러 / 콧대는 하늘을 찔러 / 긴말은 생략할게 /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what) / 빨간건 현아 현아는(yeah) / 현아는 빨개요
날 두고 떠나지마 / 나 지금 너무나 외롭단 말이야 / 너만은 나를 떠나지마 / 여긴 나 하나밖에 없다고 / (나 지금 변해버릴지 몰라)
우선 이 노래 가사는 서사가 붕괴되었다. 앞 문장과 뒤에 오는 문장 간 개연성이 없다. 섹시한 입술 얘기하다가 느닷없이 깨물어 주고 싶은 " 내 귀가 예술 " 이란다. 그리고는 원숭이 어쩌구저쩌구하다가 혼내준다며 엉덩이 대란다. 신나게 떠들다가도 느닷없이 외롭다 한다. " 횡설 " 과 " 수설 " 이 얽힌다. 이 분열적 서사는 전형적 정신분열증 환자가 사용하는 서사 구조와 유사하다. 가사만 보면 전형적인 조울성 장애'다. 이 노래 절정은 "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 빨간 건 현아 / 현아는 ( yeah ) / 현아는 빨개요 " 다. 이 후렴구에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다. 동요 가사'대로 한다면 빨간 건 사과인데 이 노래에서는 빨간 건 현아'가 된다.
같은 이유로 " 사과는 맛있어 " 라는 가사 자리에 " 현아는 맛있어 ! " 가 자리 잡는다. 물론 이 노래에서는 검열을 의식해서 " 맛있어 ! " 라는 부분은 생략했지만, 대중이 지워진 욕망을 복원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현아는 맛있어 ?! 맛있으면, 뭐.. 뭐, 어쩌라고 ? 현아가 가지고 있는 터질 듯한 육감적 몸은 식욕과 성욕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상품이다. 말 그대로 비싼 " 몸값 " 이다. 현아는 자기 몸값이 비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상품화된 < 현아 - 소프트 바디 > 가 < 남성 - 하드 바디 > 를 살살 녹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자기 이름을 건 브랜드를 출시했다. 그것은 마치 < 원조 > 와 < 장충동 왕족발 > 사이에 할머니 이름을 삽입한 족발집 간판과 동일한 노림수'다.
하지만 PPL이 지나치면 염불에는 관심 없고 젯밥에만 관심 있다는 군소리를 듣게 된다. 섹스'라는 코드를 끼워서 상품을 " 판매 " 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 강매 " 를 하게 되면 문제가 된다. 현아의 < 빨개요 > 라는 노래는 섹스 코드를 내세워서 상품을 소비자에게 강매하는 인상을 준다. 꼰대처럼 섹스 어필에 대해 비판할 생각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은 가전 상품이 아니라 공포와 섹스를 이용한 상품이니까. 아니라고 ? 정말 그렇다니까 !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 하물며 대중 욕망에 편승해야 하는 연예 오락 사업에서 섹스 코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요, 세 말 하면 입 아프다. 노래 잘하는 가수가 섹스 어필도 가능하다면, 그것은 제구력 좋은 투수가 강속구마저 보유한 것과 같다.
하지만 지나치게 노골적인 섹스 어필 강요와 PPL 노출은 반감을 불러올 수 있다. 정글 사회에서 강속구만 가지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내 말이 거짓말이라면 지금 당장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투수를 살펴보면 된다. 강속구 투수들이 수두룩하다. 빠른 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지만 빠른 공만 던져서는 좋은 투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 메이저리그로 승격하지 못한 ) 마이너리그'는 증명한다. 대체로 빠른 공과 함께 좋은 변화구 한두 개 정도는 던질 줄 알아야 좋은 투수가 될 자격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섹시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현아는 이효리를 잇는 차세대 섹시 디바로 자리했다. 하지만 현아의 세 번째 미니앨범은 지나치게 " 섹시 " 만을 강조한다.
여자 가수에게 " 섹시함 " 은 훌륭한 무기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힘을 빼고 던질 수 있는 좋은 변화구가 없으면 오래 사랑받기는 힘들다. 현아는 좋은 가수지만 이번 미니 앨범은 실패했다. 마돈나는 늘 파격적 무대를 선보였지만 항상 자기 목소리( 메시지 ) 를 담으려고 노력했던 디바였다. 약간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마돈나는 섹시한 디바였지만 동시에 희노애락이 느껴지는 디바이기도 했다. 현아에게는 뭇 남성을 후, 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끈 달아오르게 만드는 육체를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여성으로써의 자기 목소리는 실종되었다. 그녀 노래에는 메시지는 없고 마사지'만 있다. 쇼윈도우에 걸린 예쁜 인형 같다. 노래는 현아가 부르지만 사실 남성이 부르는 것과 같다.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발성, 현아가 마돈나에게 배워야 할 부분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 현아 씨, 잘못하다가는 원숭이 되는 거예요 ? " 아무래도 나는 추파춥스 노래 가사'보다는 트로트 가사를 써야 할 것 같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현아 팬이다. 좋은 노래 가사는 태평양을 건너 / 대서양을 건너 / 인도양을 건너 / 시대를 뛰어넘는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노래 한 곡 띄운다. " 박상철이 부릅니다. 무조건 ! " 좋은 사랑, 슬픈 사랑, 운명적 사랑, 눈먼 사랑, 지독한 사랑, 잔인한 사랑, 사랑, 사랑, 사랑, 그 많은 사랑 중에 도대체 특급 사랑이란 어떤 사랑일까 ? 한 남자의 순애보를 다룬 슬픈 노래 가사 때문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
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