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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 2010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작
에릭 파이 지음, 백선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그 남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속초에서 달방 생활을 할 때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그는 본사에서 파견한 근로자로, 본사에서 위탁 관리하는 오픈 지점'을 돌면서 현장 관리를 했다. 가족은 서울에 있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내려가 아내와 어린 딸을 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는 집에 내려갔다 올라오면 늘 근심이 가득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딸이 많이 아프다고 했다. 딸이 너무 어린 나이여서 수술을 미루고 있다고 했다. 초조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우리는 자주 술을 마셨다. 2차는 항상 자신이 머물고 있는 원룸으로 향했다. 혼자 사는 남자가 사는 집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깨끗했다. 방바닥은 대리석처럼 반짝거렸다. 손으로 방바닥을 쓸면 머리카락은커녕 티끌 하나 묻어나지 않았다. 돼지우리에서 사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내가 보기엔 청결이 아니라 집착처럼 보였다. 그에게 정돈 강박 증세가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 아니요, 깔끔한 성격이기는 하나 청소를 열심히 하는 쪽이 아니었습니다. 파견 근무 생활만 10년째요, 본사 근무를 신청했지만 번번히 무시되더군요. 결혼 후, 지금까지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습니다. 아내는 아이를 낳을 때에도, 이사를 갈 때에도 언제나 혼자였지요. 늘 미안했습니다. 동기들이 본사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으며 승진을 할 때마다 초조해지더군요. 입사 동기들은 대부분 좋은 자리 꿰찼는데 나는 여기서 뭐하나,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 그때부터 청소에 대한 강박이 생깁디다. " 그는 횡설수설했지만 종합하면 직장 동료에게 무시받지 않기 위해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애매모호한 고백이기는 했으나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술자리가 잦아지면서 그의 원룸에 가는 날도 많아졌다. 갈 때마다 기시감이 들었다. 집안 풍경은 그대로였다. 사물이 놓인 자리는 오차 없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걸레는 네모반듯하게 접혀 화장실 문 왼쪽에 놓여 있고, 빗자루와 쓰레받이 또한 그 자리 그대로였다. 침대보는 구김이 전혀 없었고, 이불은 개서 침대 끝 왼쪽 모서리에 두었다. 그가 사는 집은 깨끗했으나 온기가 없었다. 그가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한 원칙과 절제는 엄격함보다는 자기 학대처럼 보였다. 그는 오랜 객지 생활 끝에 자신에 다니는 직장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흩어진 마음을 숨기기 위해서 정리 정돈에 매달린 것이었다.
얼마 후, 그는 회사를 그만 두었다. 집에 내려가 작은 가게나 하나 차리겠다며 쓸쓸하게 웃었다. 그날, 우리는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셨다. 하지만 코가 비뚤어지지는 않았다.
그( 시무라 씨 ) 는 기상청에서 근무한다. 나이가 56세이니 이제 곧 정년 퇴임 후 노후를 걱정해야 할 나이다. 그 남자는 독신이다. 에릭 파이의 소설 << 나가사키 >> 를 읽다가 문득 속초에서 만났던 그 남자가 떠올랐다. 퇴근하면 하는 일이 없어서 소일거리로 집안 청소를 하다가 이 꼴이 되었다며 웃던 남자는 소설 속 남자와 많이 닮았다. " 사는 일에 크게 실망한 " 그는 작은 빌라에서 혼자 살아간다. 인간에 대한 희망을 품지 않기에 퇴근하면 동료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기보다는 집으로 향한다. 그는 혼자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흩어진 사물들을 모두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물은 조금씩 흩어진 채 발견된다.
냉장고 속에 넣어둔 요구르트가 사라지거나 사물들은 조금씩 오차 범위 밖에서 이동한다. 성격이 무덤덤한 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정돈된 일상은 조금씩 흩어진 상태로 돌아온다. 이 균열은 여자 때문이었다. 남자는 집안 구석구석 cctv를 설치해 놓고 직장 내 모니터를 통해 원격장치로 주인 없는 집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때 한 여자가 유령처럼 나타난다. 모르는 여자다. 여자는 다다미 바닥에 앉아 볕을 쪼인다. 행복한 표정은 아니지만 불안한 표정도 아니다. 오히려 평화로운 얼굴이다. 그는 잠시 그녀에게 연민을 느낀다. 여자는 남자(집주인) 몰래 이불 벽장 속에서 숨어 살았다. 형사가 남자에게 말했다. " 시무라 씨, 아마 좀 전에 이미 아셨겠지만 이 여자는 당신 집에서 당신 모르게 일 년 가까이 살았다는 걸 말씀드려야겠군요. "
남자는 여자를 미워할 수가 없다. 타자(여자)에 대한 동정은 결국 자신(남자)에 대한 연민으로 돌아온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닮았다. 여자 또한 조용하고 쓸쓸했으니깐 말이다. 저자는 파스칼 키냐르의 문장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뿌리가 같은 대나무는 제아무리 세상 멀리 떨어진 곳에 심어도 똑같은 날에 꽃을 피우고 똑같은 날에 죽는다고 한다. " 중편 분량인 이 소설에서 여자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 남자는 여자를 통해서 자신의 쓸쓸한 어깨를, 뒷모습을 본다. 여자도 마찬가지이리라. " 사는 일에 크게 실망한 " 남자는 " 사는 일에 크게 실망한 여자 " 를 본다. 그리고는 이내 마음이 흩어진다. 정돈 강박증에 걸린 사내가 말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여자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을 내놓고 떠난 남자가 궁금했다. 사는 일에 크게 실망했다는 말은 반대로 죽는 일에 대해서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소설은 " 그 남자의 그 후 " 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 한때 나는 내 삶이 실패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자주 했고 괴로웠으며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삶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불안이란 그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초조함이다. 그 가능성이 사실로 증명되는 순간 더 이상 궁금해지지 않는다. 요즘 나는 강박적으로 방을 치운다. 침대보를 정리하고 쓸고 닦고 정돈하기를 반복한다. 속초에서 만났던 그 남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 청소를 하면서 비로소 그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