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 선택과 간택 사이.
시작부터 설레발이 요란스러워 눈살을 찌푸리는 이도 있을 테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나는 5,6세 정도 되는 아이들에게 꽤 인기'가 좋다. 3등신인 아이들이 보기에는 7등신, 8등신인 어른보다는 4등신에 가까운 내가 친근한 까닭이다. 느낌 아니까.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이들이 와서 먼저 말을 건다. 사인sign'을 요청하는 아이들과 있다. 티븨'에서 많이 본 얼굴이란다. 아이들만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학창시절에는 또래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남고'인데도 불구하고 극기 훈련이나 수학 여행을 갔다오면 몇몇이 기념품을 챙겨서 내게 주고는 했다. 심지어는 일진들도 나를 챙기고는 했다. 이러한 인기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문제는 이성애자'가 아닌 동성애자'에게서 인기가 좋았다는 점이다.
통계에 의하면 전체 인구에서 이성애자는 98%를 차지하고 동성애자가 약 2% 정도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2%에 해당하는 남자'들이었다. 공교롭게도 남자들과 아이들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고 남자는 무관심을 떠나서 혐오하는 수준이다. 불행은 지금부터다.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으로 두루두루 사랑받던 나는 공교롭게도 젊은 여성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인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폭탄 수준이었다. 키는 작은 데다 목소리는 모기가 앵앵거리는 수준이고 시장에서 생선이나 파는 몸이니 인기가 없을 만도 했다. 더군다나 아토피로 고생을 심하게 해서 이곳저곳 긁으니 젊은 여성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다.
왜 그렇게 몸을 긁으세요 ? 아토피'입니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이 나를 싫어하는 태도에 대해 원망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것이 진화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자신과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조건을 선호하게 된다. 사냥에 능숙해야 하고 적과 싸워서 가족을 지킬 수 있는 힘 있는 남자를 선택하게 된다. 그러한 진화 과정에서 여자는 키가 크고, 힘이 센 남자를 고른다. 현대 사회에서는 힘이 센 남자는 곧 지위가 높은 사람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진화 과정 중 특이한 점은 여성이 낮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낮은 목소리가 성적 성숙, 큰 몸집, 건강한 유전자, 지배적 성향을 가진 남자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 진화를 살펴보면 여성들이 몸집이 작고 모기 앵앵거리는 목소리를 가진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성들이 이러한 선택을 하는 이유는 속물이라기 보다는 진화에 따른 본능적 태도'라는 점이다. 슬프게도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아이들 세계에서는 나름 스타이고 동성애 사회에서는 나름 잘생긴 축에 속한다는 것에 만족하자, 시바. 그건 그렇고 어제는 하루 종일 sbs 연애 다큐 < 짝 > 에 대한 불행한 소식으로 소란이 일었다. < 짝 > 에 출연했던 여성이 촬영 기간 중 자살을 한 사건이다. 이 방송을 한두 번 본 게 전부여서 섣불리 말은 못하겠지만 여성과 남성의 짝짓기 전략을 엿볼 수 있어서 나름 흥미로웠던 기억은 난다.
하지만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선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가 한 여성이 자살을 하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내가 " 언제가 그럴 줄 알았어... " 따위의 훈수를 둘 생각은 전혀 없다. 분명한 것은 자살과 우울을 무조건 하나로 엮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우울증 때문에 자살을 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자살한 사람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말은 성립이 안된다. 상당수는 격정적 충동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다. 내 말은 자살이 오랜 준비 끝에 완성된 비극은 아니라는 말이다. 길을 걷다가, 아파트 계단을 오르다가 느닷없이 슬픈 격정에 쌓이고 망설임없이 몸을 던진다.
< 짝 > 은 상대방으로부터 선택을 받지 못하면 징벌을 받는다. 혼자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 시청자에게 즐거운 오락거리를 선사하기 위한 벌이지만,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체벌에 가까운 징벌이다. 내가 남자 3호로 출연했다면 날마다 혼자서 도시락을 먹다가 성질이 나서 카메라를 쳐다보며 < 이명박의애제자이며전원일기둘째아들인유인촌문화부장관 > 처럼 말했을 것이다. " 에이, 승질 뻗쳐서... 찍지 마. 찍지 마. 시바. " 짝짓기에 실패한 사람을 위로는 못해 줄망정 조롱거리로 삼는 것이 온당할 수는 없다. 출연자는 이 장치 때문에 이중 삼중으로 소외된다. 첫 번째는 사랑받지 못한 존재라는 슬픔과 두 번째는 경쟁에서 도태되었다는 두려움이다. < 짝 > 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올 정도면 스스로 어느 정도 자신감에 차 있기에 신청했을 것이지만 혼자 도시락을 먹는 순간이 오면 자신감'은 우르르 무너지게 되어 있다.
도시락 벌칙'은 제작진이 출연진에게 던지는 " 와신상담 " 하라는 메시지'다. 여자 2호님, 바늘 침대에서 주무시고 곰 쓸개를 씹는 심정으로 헝거 게임'에 매진하시죠 ? 이때부터 구애'는 시작된다. 소심한 구애'로는 상대방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판단이 되면 구애는 보다 화려하고 적극성을 띠게 된다. 그런데 구애가 화려할수록 선택받지 못하면 그 상처는 두 배 커진다. 왜냐하면 소심한 구애를 했을 때 퇴짜를 맞는 것과 자존심 버리고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쳤는데 퇴짜를 맞는 것은 그 충격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후자는 따귀 맞는 기분일 것이다. 공작이 꼬리를 활짝 펴서 화려한 춤을 선보였는데 암컷 공작이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면 수컷의 날개'는 얼마나 무안할까 ? 사실 인기 프로그램인 < 짝 > 은 리얼 다큐'를 표방하고 있지만 전혀 리얼'하지 않다.
여기에는 < 남의 시선 의식하기 > 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공공 화장실 세면대에 카메라를 설치한 후, 화장실 이용자가 손을 씻는 횟수를 체그한 실험이 있었다. 단, 여기에는 두 가지 사례가 적용된다. 실험 대상자가 화장실을 나왔을 때 로비에 사람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연출했다. 변화가 있을까 ? 화장실 로비에 사람이 있는 경우 화장실 이용자가 손을 씻는 경우는 80%였지만 화장실 로비에 사람이 없으면 손을 씻는 경우는 20%에 지나지 않았다. 즉, 많은 사람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손을 씻는 것이다. 하물며 24시간 모든 곳에 카메라가 정착된 애정촌에서 벌어지는 행위'는 날것 그대로일까 ? 그렇지 않다. 말투, 표정, 감정 모두 카메라를 의식한 결과'다. 모든 행위는 과장된다. < 짝 > 은 트루먼쇼가 아니다.
트루먼은 적어도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모든 일상이 몰래카메라였다는 사실을 몰랐으니깐 말이다. " 애정촌 " 에서 맺어진 커플이 실제 연인으로 연결될 확률이 낮은 이유는 장기적 짝짓기 전략을 구사하지 않고 단기적 짝짓기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단기적 짝짓기 전략에서 성적 끌림의 기준이 되는 조건들은 장기적 짝짓기 전략 목록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좋은 예가 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여자들은 남자들의 낮은 목소리'에 끌린다. 하지만 이 " 낮은 목소리 끌림 " 은 장기적 짝짓기보다는 단기적 짝짓기에서 더 중요하다. 여자는 바람을 피울 때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남자와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남편감은 다르다. 결혼 상대자 조건으로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남성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애정촌'에 입성한 출연자들은 끊임없이 반복적인 선택 압력에 노출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데 출연자들은 이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이 된다. 이 선택은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여성 출연자 1호가 남성 출연자 7호를 선택한다면, 이 선택은 역으로 남자 출연자 1,2,3,4,5,6호의 간택에 영향을 준다. 사랑은 경쟁의 산물'이다. 나는 이 냉혹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깐 말이다. 나는 여성이 돈 많고, 키 크고, 잘생긴 남자를 선택하는 태도와 남성이 젊고, 예쁘고, 몸매가 좋은 여성에게 환호하는 태도'가 천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짝짓기에 실패했다고 해서 혼자 도시락을 먹게 하고 그 모습을 카메라가 무표정하게 찍는 태도는 천박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헝그리'다. 배가 부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포만감이다. 사랑하는 순간 굶주리게 된다. 그러나 사랑이 헝그리 정신'이라고 해서 " 사랑의 헝거 게임 " 을 벌이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