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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서툰 사람들 - 불가해한 상실 앞에 선 당신을 위한 심리학자의 애도 강의
고선규 지음 / 아몬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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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서툰 사람들(고선규 지음)

부제는 ‘불가해한 상실 앞에 선 당신을 위한 심리학자의 애도 강의’ 이다.

29년의 우울증 기간동안 죽고 싶은 생각을 많이 했었다. 우울증이 심해질때면 늘 자살 생각을 했었다. 여기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일부로 쓴 것은 이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터부시 되지만, ‘자살’이라는 단어는 더욱 더 터부시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죽음’이나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기 꺼리는 것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다루는 일이 두렵고 무섭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울증 기간이 길다보니 우연한 기회에 책을 읽으며 ‘자살사별자’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자살한 사람 주변의 사람들을 ‘자살사별자’라고 일컫는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터부시 되는 사회이기에 자살사별자들은 자신의 슬픔을 제대로 이야기 하기가 더욱더 쉽지 않다. 자살사별자들 또한 심적 고통을 오래오래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고선규 선생님을 알게 된 건 고선규 선생님의 <우리는 모두 자살사별자입니다>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얇은 책자인데 우리 사회에 ‘자살사별자’ 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책이다. 그리고 이어서 <여섯 밤의 애도>라는 책을 읽었다. 애도 작업을 하고 있는 다섯분의 자살사별자들과 함께 여섯 밤의 애도 시간을 가진 책이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고통을 인내하는 걸 힘들어하는 사회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자신의 슬픔을 온전히 다 이야기하지 못하게 오히려 입을 닫아라고 외치는 사회이다. 물론 누군가의 아픔을 바라보는 일은 힘든 일이다. 쉽게 조언하고 시간이 약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빨리 회복되어 그들의 고통을 오래 보고싶지 않은 마음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는데 그 치유와 회복이 어떻게 빠를수가 있겠는가. 누군가는 3년만에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돌아오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10년이 지나도 힘들어 한다.

<슬픔이 서툰 사람들>은 애도와 상실에 대한 영화 열편을 골랐다. 영화속 주인공들이 내담자가 되어서 상담 선생님에게 자신의 사연과 고민을 털어놓으면 고선규 선생님이 상담실에서 내담자를 대하듯이 영화주인공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세번째 챕터에서는 영화속 주인공과 관련된 상실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 준다. 열편의 영화중 두 편만 본 영화였다. <아무르>를 예전에 봤을때는 존엄한 죽음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상실과 애도를 타인들과 함께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으로 제시해주어서 좋았다. 고레에다 히코카즈의 장편데뷔작인 <환상의 빛>도 상실과 애도의 측면에서 다시 반추해보았다. 집에는 넷플릭스와 쿠팡 OTT만 있어서 그중에 블랙 미러 시리즈2의 “돌아올께”편을 봤고, 쿠팡에서 1400원 대여를 해서 <매스>를 짝지랑 같이 봤다. 나머지 여섯 편도 기회가 있으면 보고 싶다.

에필로그 글에서 영화 <스틸 라이프>를 소개해 주셨다. 런던 구청에서 일하는 공무원 존 메이는 무연고 시신을 처리하는 업무를 한다. 존은 무연고 시신들의 사연을 찾아 정성을 다해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구청입장에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시신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는 이유로 그를 해고한다.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들. 정상적이지 않다고 여겨져 무시되는 사람들. 우리들은 사회에서 버려지지 않으려 무단히 애쓰고 괜찮은 척 연기하며 살아간다.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에 대한 애도는 어떻게 보면 내 안의 그런 요소들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읽었던 <양양>에서 가족의 역사속에서 지워진 고모의 흔적을 추적하던 감독님의 모습도 존이 하는 역할과 비슷하게 여겨진다. 죽음은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오는 것이 아닌데도 늘 외면하며 살아가다가 어느날 막닥드리게 되면 당황하고 억울해 한다. 짝지랑 나랑 건강하게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지만, 어느날, 1년 혹은 2년뒤에 짝지에게 큰 병이 생길수 있음을, 내가 어느날 시한부 선고를 받을수 있음을, 짝지나 나 중에 크게 다쳐 장애가 생길수 있음을 한번씩 생각해 본다. 우리 모두 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그건 이 세상 누구도 알수 없는 일이다. 내 부모의 죽음을 생각해 보고 돌아가시기 전 까지 어떻게 애도하고 상실을 받아들일지 미리 공부해둘 필요가 있다. 부모의 죽음을 형제들과 미리 이야기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무례가 아니다. 잘 이별하기 위한 준비이고 돌아가시기 전 까지 충분히 사랑하고 시간을 잘 보내려는 노력이다.

279페이지에 있는 고선규 선생님의 글로 리뷰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죽음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사건’ 입니다. 사별자들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슬픔을 안전하게 담아낼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실의 슬픔이 억눌리지 않게 관계속에서 철철 흘러나오길 바랍니다. 슬픔이 흐를 수 있는 사회는 악하지 않습니다. 슬픔이 흐를 수 있는 관계는 치유적입니다. 상실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마주하고 다시 꺼내어 충분히 아파한 뒤 기꺼이 살아낼 용기를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저 역시 계속 애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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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죽을 복 - 순리대로 살다 깔끔하게 가겠다는
신문자 지음 / 한사람연구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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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죽을 복(신문자)

예전에 우울증을 검색해서 관련된 책을 자주 찾아 읽을때가 있었다. 2022년에 <아버지가 우울증에 걸렸습니다>를 읽었다. 여성들의 글을 책으로 엮어내는 ‘아미가’라는 e북 출판사에서 나온 책인데 읽고 후기를 썼었다. 작가님에게 디엠을 드린 것인지 그냥 후기를 올린 것인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작년 말에 신문자 선생님으로부터 디엠이 와서 이번에 나온 책을 보내드리고 싶다고 해서 감사히 받았었다. 출간일 전에 받아본 책이다. <엄마의 죽을 복>

신문자 선생님의 엄마 박순철님은 어느날 파킨슨과 췌장암 3기 진단을 받았고 이 책은 어머님과 아버님을 돌본 기록이다. 어머님이 아프시면 아버지가 어느정도 돌볼 여력이 있으면 괜찮을텐데 작가님은 아버지도 함께 케어해야 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열네 살 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해 평생 쉴틈 없이 일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2년만에 아버지는 여든을 얼마 안남기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다. 소위 자식들 모두 잘 키워 내고 먹고살 만한 시점에 아빠는 우울증에 걸린 것이다. 아빠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고 친목계나 종친회 총무도 도맡았었다. 관절 문제로 고관절부터 발가락까지 크고 작은 수술을 한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심각한 병을 앓은 적이 없었다.

어머니를 돌보는 기간동안 대학병원 두 곳, 노인 요양병원 한 곳, 암 전문 요양병원 한 곳, 요양원 연계병원 한 곳. 총 다섯 곳을 돌았다. 병원과 병원 사이에 응급실 두 번, 입원은 하지 않고 상담만 받은 호스피스 병원도 세 곳이 더 있다. 완치를 바라는 것이 아닌 엄마가 사는 동안 덜 고통스럽도록 암이 전이 되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항암치료를 선택했다. 항암치료는 문제 세포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 세포 또한 공격을 하는 것이라 온 몸을 초토화시킨 뒤 다시 회복을 기다리는 시스템이다보니 치료전보다 엄마의 몸이 더 쇠약해진것에 작가님은 다른 선택을 했다면 하는 미안함 혹은 죄책감을 느끼셨다.

암 전문 요양병원은 4인실 기준으로 월 400만원에서 시작한다. 어머니 처럼 거동이 어려운 경우 병원에서는 개인 간병인을 필수로 요구한다. 간병비는 1일에 13만원, 7일에 91만원. 월 364만원이 들어간다. 여기에 환자의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각종 주사는 따로 금액이 책정된다. 요양 목적으로 보기 때문에 보험 혜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보험으로 받은 암 진단료 2000만원과 아빠에게 받은 1000만원을 마련해 그 돈으로 야금야금 병원비와 간병비를 충당했다. 암전문 병원에서 5개월 동안 병원비로 2300만원, 간병비로 1950만원 총 4250만원을 썼다.

p196~197 - 그래서 요즘 나는 ‘곱게 늙은’ 이라는 말이나 ‘젊은이 못지않은 노인’ 이라는 말이 고깝다. 그 말만큼, 곱지 않게 늙거나 젊은이와 달리 늙고 병든 노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나 사람들의 시선은 더 냉정해지는 것 같아서다. 곱지 않은 노인을 마치 자기 관리에 소홀한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병든 것이 마치 천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sns에 보면 30대 같은 외모를 가진 50대 60대 여성 남성의 릴스를 종종 볼때가 있다. 멋지다기 보다는 늙음을 거부하는 이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슬한 기분이 들곤 했다. 내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내 나이답게 늙어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말이다.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죽고 싶으냐고 물으면 ‘병원에서 짧게 머물고 죽었으면 좋겠다’ ‘정신을 잃기 전에 내 죽음의 방식을 결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상태로 송장처럼 오래 누워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답하지만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부모의 자녀로서의 마음보다는 그래도 부모의 마음을 따라드리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다.

오늘 퇴근할 즈음에 엄마로부터 “오후에 약속이나 일정없으면 집에 올레? 별일은 아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짝지에게 엄마 집에 잠시 들렸다 간다고 전화를 하고 엄마 집에 갔다. 엄마(78)는 홀어머니(99) 밑에서 자랐다. 그래서 늘 모든 고민을 혼자서 끌어 안고 78년을 살아오셨다. 어떤 걱정이 생겼는데, 이제는 혼자만 안고 고민하지 않고 자식에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싶어 문자를 보내신거였다. 간단한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1시간 넘게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의 죽음, 할머니의 죽음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년전에 연명치료 거부 서명도 했다고 하셨다. 나도 엄마가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한 답을 알고 있지는 않아서 나도 집에가서 짝지에게 이야기 하고 같이 관련 정보를 찾아보겠다 했다. 엄마는 예전엔 죽음이라는게 조금 두렵긴 했는데, 이제는 언제가도 아쉽지는 않다고 하시며 내게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셨다. 물론 자신은 오래 살려고 병원도 부지런히 다니고 그러실꺼라 했다.

작가님의 어머님은 이 책이 나오고 한달 정도 지나서 임종을 맞으셨다. 작가님의 인스타에 올라온 부고 소식을 보고 알았다.

p275- 내가 가까스로 도착한 생각은 죽을 복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 정도다……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좌절이거나 패배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니, 몸이 병든 엄마와 마음이 병든 아빠 모두 특별한 불행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살아 내야 할 하루, 그리고 하루가 있을 뿐이다.

책 후반부에 그래도 괜히 항암치료를 했다고 후회하고 죄책감을 크게 가지시기보단 어머님의 늙음과 병듦을 받아들이시는 모습에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했다. 작가님은 어머님과 아버님의 돌봄기간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어떤 것이 조금 더 나은 선택일지 형제자매들과 의논하고 고민하셨다. 무거운 돌봄의 시간에 함께하는 형제자매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p276-‘엄마, 요양원 침대에서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니게 살아도 괜찮아.’
‘엄마, 엄마가 지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든든해. 그러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그래도 괜찮아.‘
’아빠, 엄마 없이 그렇게 잘 견뎌 줘서 고마워. 밥만 겨우 해 먹어도 괜찮아.‘
’아빠, 사람 만나기 싫고 집 안에만 있고 싶으면 그렇게 있어도 돼. 괜찮아.‘
’엄마 아빠가 하루 그리고 또 하루 주어진 날을 살아 내는 것만으로도 장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엄마 아빠,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마지막 구절을 보고 나도 크게 위로 받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자기 부모의 병듦과 죽음을 지켜보는 과정은 쉽지 않을텐데 작가님의 경험을 공유해 주셔서 정보적으로도 마음적으로 큰 도움과 위로가 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아플때 나는 어떤 고민과 선택을 해야할지 참조가 되는 책이었다.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어머님 박순철님의 명복을 빌고 아버님 신동주님도 무기력하더라도 잘 지내시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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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맨손문고 2
이지원 지음 / 곳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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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이지원)

지원쌤을 문학의 곳간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합천에서 독서모임을 하러 부산까지 온다고? 그 원동력이 궁금했다. 대성쌤이 하는 글쓰기 수업에 여러차례 참석을 했고, 곳간에서 나온 <살림문학(2024)>에 징원쌤의 글이 많이 실렸는데, 지원쌤에 대한 호기심으로 지원쌤 글만 우선적으로 먼저 찾아 읽었다. 다른분들의 글도 좋지만, 지원쌤의 글이 내게는 흥미로워서 더 관심이 갔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글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신앙인임에도 불구하고 다양성과 소수자성의 이야기에 열려있는 태도가 있는 분이라 오히려 지원쌤의 관점과 이야기가 궁금해서 매번 곳간 모임을 기다렸다. 아버님의 사랑을 흠뻑 받았고 직장암4기를 선고 받고 아버지 곁을 지킨 경험이 있다. 부모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은 경험이 없는 나로서 지원쌤의 경험이 궁금하고 신기했다. (물론 나는 짝지로부터 충만한 사랑을 받았고 받고 있다. 충만함의 성격으로는 비슷한 거 같다) 대성쌤이 맨손문고 시리즈로 얇은 책을 두 권 내는데, 지원쌤의 책이 한권이라 해서 너무너무 읽고 싶었다.

<살림문학>에서 읽었던 글도 좋았지만, 더 깊이 들어가고 분량도 조금 더 긴 글들을 만날수 있어 좋았다. 글을 계속 쓰시다가 또 다음 책이 엮어 나온다면 그 책은 묻지 않고 사서 읽고 싶은 글이었다. 아버님에게서 받은 사랑, 아버님을 향한 애착, 아버님의 마지막을 곁에선 지킨 이야기가 한권의 책으로 엮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 일상을 구체적으로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글을 종종 쓴다. 궂이 그런것까지 디테일하게 쓸 필요가 있나 싶을정도로 평범한 일상속의 어떤 이야기들을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선택하는 방식이다. 타인에게 말걸기에 필요한 일상의 디테일 묘사다. 지원샘이 사시는 곳은 합천이고, 살림과 양육을 하고 사각사각이라는 글방을 2017년부터 운영했고, 시골에서의 생활은 단조로움에도 불구하고 지원쌤의 글은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라 좋았다. 살림의 일상속에서 폄범한 속에서 비범한 것들을 발굴해 내는 시선이 있다. 그래서 그녀의 활동반경이 그리 넓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글 하나하나가 흥미롭고 흥미진진하다. 고요하고 평화로운데 그안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읽힌다.

중1, 여덟살 딸 두 명과 일곱살 막내아들과의 생활을 읽었다. 그 아이들은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범생이스럽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아이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이들 각자가 자신의 경험으로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자녀들과 거리감도 적절히 두려고 한다. 첫째가 지니는 무게감을, 둘째가 중간에 낀 자녀로서의 느끼는 눈치, 긴장감, 그래서 어른스러울수 밖에 없는 것을, 누나들과는 다르게 조용하고 에겐남 같은 막내의 특성들을 잘 이해하고 그 특성에 맞게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양육방식은 무엇언지 고민하는 양육자다. 아이들이 놀이처럼 책을 읽고 마이쮸와 뒹구는 아이들의 소란함이 있는 독서교실‘사각사각’을 운영한다. 한번도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없이 함께 책을 읽고 즐기고 대화를 나누다가 공감하고 질문하는 선생님이다. 강남 대치동에서 강사로 일할때는 생각할수 없는 시골이기에 가능한 교육방식이지만, 요즘은 시골도 입시의 압박을 무시할수 없기에 그녀의 교육방식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선명한 글도 있고 모호하고 불안정하고 잡히지 않는 글도 있다. 나는 선명한 글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책 뒤쪽에 실린 불안함과 혼란의 마음들을 잡아보려는 글쓰기도 좋았다.

95p - 무엇을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라 가리고자 하는 글쓰기. 쓰고 싶은 무엇을 쓰려는게 아니라 쓰고 싶지 않은 무엇을 외면하기 위해 쓰는 글.

곳간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외면하는 지원쌤을 만난다. 그런데 아마 지원쌤은 그 주제들을 오랫동안 천착해가며 글로 자기 마음을 잘 퍼올릴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의 지원쌤의 글쓰기도 기다려지고 궁금해진다.

세 아이를 키우며 자기 시간을 내어 글을 계속해서 써내는 것은 특별하고 대단한 일이다. 나도 내 일상속에서 부러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고 그림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일상을 담은 글을 쓴다. 지원쌤의 이야기와 내 이야기가 전혀 결을 달리하기도 하지만, 어떤면에서는 만나는 느낌이 든다. 합천이 아니라 양산이나 부산, 경주, 울산에 사셨다면 아마 차한잔하며 이야기 나누고 싶어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SNS도 안하시기 때문에 내가 지원쌤을 만나는 기회는 한달에 한번 곳간이 유일하다 그녀가 들려줄 이야기가 기다려져서 한달을 설레며 기다린다. <사각사각>을 읽으니 이지원 유니버스를 조금 만난 것 같아 흡족하다. 자신이 쓰는 글을 누가 읽을까 하는 생각은 글을 쓰는 사람이면 자주 하는 질문이다. 지원쌤에게 독자한명이 있다고, 그러니 누군가 읽는 글이라 생각하고 오래오래 계속 글을 써 달라고 이야기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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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 반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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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하루치의 낙담(박선영)

서평 이벤트를 신청해서 받은 책인데, 읽어보니 좀 난감하다. 내 취향의 책이 아니었다. 서평을 쓰겠다는 약속으로 받은 책이니 서평을 써야겠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별로였던 이유를 길게 나열하기는 좀 그렇다. 그래서 책에서 나온 몇가지 주제에 대한 내 생각들을 적고 마무리 하려고 한다.

저자는 한국일보에서 17년간 근무하셨고, 직장을 그만두고 7년이 흘러서 이 책이 나왔다. 저자는 윤리적 허영이 있다고 인정하고, 건강염려증 환자라 고백하고, 중증 의미병 환자라 고백하고, 있어보일러티 때문에 있어보이고 싶어서 신문기자가 된거 같다고 고백하고, 훌륭한 인간이 되고 싶어하고, 망상적 자아비대 문학도였음을 고백하고, 한때 여행에 대한 게걸스러운 식탐이 있었음을 고백하고(여행 강박증), 인간으로서 조금은 숭고하고 싶다고 말하고, 성공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분열적인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 점을 좋게 보는 독자도 있는 것 같지만, 내게는 맞지 않았다. 솔직하게 이 책의 컨셉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담백하게 쓰는 걸 좋아하고, 자신이 아는 범위안에서만 쓰는 걸 좋아한다. 세상을 분석하거나 한국인을 분석하는 하거나 사람에 대해서 분석하는 것 보다는 그냥 내가 살아온 삶속에서 내가 경험한 것만 이야기 하는 것에 더 마음에 가는 편이다.

슬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챕터가 있다. 고통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슬픔과 힘듦은 수시로 나에게 덥치는 것이다. 29년의 우울증 기간속에서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힘든 줄 알았다. 아픔속에 깊이 빠져 있으면 자신밖에 보지 못한다. 우울증이 심해질때마다 늘 옥상에 올라갔고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 봤다. 몸이 멀쩡한데도 삶이 이렇게 힘든데, 혹여나 자살에 실패하면 그 삶을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고 확실히 죽을게 아니라면 시도할 수 없었다. 무섭기도 했다. 이런 형편없는 나라도 살고 싶은 욕망이 있음을 느꼈고, 그래서 살아야 겠는데 어떻게 살아야 이 우울증을 벗어날수 있는지 몰랐다. 개인상담과 집단상담을 그렇게 반복적으로 오래 받았어도 우울증은 늘 수시로 찾아왔다. 내가 과연 나아질수 있을지 미래를 장담할 수 없었다. 주변에 좋은 어른도 없었고 롤모델도 없었다. 롤모델을 찾기 위해서 생전 책을 읽지 않던 내가 도서관을 찾았다. 롤모델이 어려움을 극복한 극복스토리의 주인공이라 생각지 않았다. 이 우울증이라는게 극복할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걸 인식은 했던거 같다. 평범하지는 않는데 자신의 방법을 찾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 당시 우울증 책은 없었지만 우울증 외에도 다양한 소수자의 이야기들을 읽었다. 세상에는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겁지만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는 그 이야기들이 위로가 되었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그 많은 힘든 사람 중에 하나라니 약간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우울증이 없어지는건 아니었다. 페미니즘은 내게 ”괜찮다“라는 말을 해주었다. 초중고 대학 친구가 없고 대학을 중퇴했고 군대에서 손목을 그었고, 미래가 두렵고, 우울증이 있어도 그냥 내가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큰 아픔을 겪은 사람과 무난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사람이 보는 시선은 전혀 다르다.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걸 배웠고, 세상에는 소수자로서 부당하게 차별받고 아픔을 겪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다. 내가 지금 누리는 행복이 내 노력만으로 얻은 것은 아니라는 겸손을 배웠고, 내 행복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걸 배웠다. 세상의 멸망을 내가 막을수는 없지만, 무언가라도 내가 할수 있는 방식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중요한 것은 멸망하는 세상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한 것임을 배웠다. 29년간의 우울증의 시간이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그 시간들이 앞으로 남은 생에서의 나에게 엄청난 원동력이 되어주었음을 이제야 그 시간을 끌어안을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아픔과 내 우울증에 한해서 전문가이지,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그래서 타인의 아픔들을 찾아 읽는다.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우려고 읽는다. 내가 모르는 다른 아픔을 지닌 사람 옆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옆에 있어야하는지 알기 위해 읽는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그 누군가와 함께 살기 위해 공부하고 읽는다. 나는 내 아픔만 알 뿐이다.
(서평이벤트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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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의 시간 - 안희정 몰락의 진실을 통해 본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속성
문상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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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의 시간(문상철)-안희정 사건을 둘러싼 정치의 속성을 다룬 책

부제는 ‘안희정 몰락의 진실을 통해 본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속성’이다. 중반부까지는 저자가 안희정의 참모로 일하며 겪었던 정치판의 풍경을 그렸다. 좀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 어떻게 일하는지, 정치인의 취약함을 어떻게 대하고 상대진영으로부터 공격받지 않게 방어하는지, 차기 대선주자라는 말을 들을정도로 권력을 가지게 되었을때 어떻게 그 권력에 잠식되어 가는지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안희정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기 위해 대통령 경선 후보 수행팀장인 문상철씨에게 악역을 맡길 권했다. 의전의 전혀 없는것처럼 보이도록 하되, 의전을 적극적으로 누리고 싶어했다. 안희정을 악마화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권력을 가졌을때 그 권력에 취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 질문을 던진다. 권력이 있는 자리에는 권력을 쫓아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도 많이 모이게 마련이다. 정치라는 것이 서로의 이익을 쫓아 서로가 원하는 합의점으로 움직이는 것이지만, 그 속에서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는 항상 생각해야 한다.

중반 이후부터는 안희정의 성폭력 사건과 그 이후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김지은씨의 미투 직후 안희정의 성폭력 사건을 알게 된다. 자신 또한 이 범죄를 용인한 무수히 많은 공범중 하나다 라는 생각을 하며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197 -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과 가해자로 의심되는 사람의 힘의 불균형이 눈에 쉽게 보이는 상황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제가 자초지종을 물어보는 것보다는 격리 조치부터 먼저 하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조치한 것입니다.

많은 것을 함께 했고 안희정과 나은 세상을 만들기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저자이기에 고민이 깊었고 신중할수 밖에 없었고, 안희정에 대한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피해자 편에 서기로 한다. 그러나 안희정은 범죄를 시인한 메세지를 낸후 다시 하루도 안되어 입장을 번복했다. 아마 자신이 그동안 기울였던 노력과 그것으로 인해 누리던 것들을 하루아침에 날리기 싫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루도 안되어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태도를 바꾼다. 그리고 안희정 이름세의 이익을 누리려는 자들의 엄청난 2차가해가 이루어지고 피해자를 지지하는 저자도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안희정이 죄가 확정되고 복역중 모친상이 있었는데도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고 스스로 말하던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조화를 보내거나 조문을 했다. 그러니깐 정치인들에게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고 젠더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나도 떨어지는 집단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사건이 끝나고 저자는 정치권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어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안희정의 최측근이었던 저자를 받아주지 않아서 결국은 정치를 그만둘수 밖에 없었다. 정치는 떠나지만, 한국정치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세가지 정도를 말한다.

첫째는 운동권 세력의 가부장성이다. 장자나 적자라라는 말, 형님, 누나라는 말, 식구라는 말. 모든 것이 가족중심적이고 가부장중심적인 언어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민주적이다 말하지만, 젠더적인 부분에서는 자주 가부자성들을 드러내기에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한국에 과연 진보세력이 있을까. 그들의 이권을 중심으로 행동하는 보수세력일 뿐이다. 국힘은 너무 오른쪽에 있는 집단이다보니 민주당이 진보적으로 보일 뿐이다. 매일매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살인 사건들이 뉴스에 올라오고 있는 현실에는 관심이 없는지 남성들의 역차별 문제에 대처라하는 지시를 내리는 이재명 대통령이다. 행정적인 일은 잘하는지 모르겠지만, 젠더 의식은 배워야 하는 수준이 아닌가 싶다.

둘째는 정치권에서의 팬덤문화의 위험성이다. 물론 팬덤문화의 장점도 있다. 어느 지점까지 팬덤문화의 영향을 막을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박원순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때 박원순이 해온일 때문에 형성된 그 팬덤문화가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2차가해를 한 것이다. 박원순지지집단은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며 2차가해를 서슴치 않았다.

세째는 인연, 혈연, 지연이 아닌 정치 지망생들이 정치를 배울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고 깊이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정치를 하러면 기존에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과 가 닿을려고 한다. 그 연들로 인해 피해자를 지지했던 저자가 공격받았고 결국 정치에서 떠날수 밖에 없었고, 피해자 김지은씨 또한 엄청난 폭력을 당했다.

<김지은 입니다>를 읽어보면 위력에 대한 성폭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성폭력” 이 아니라 “위계에 의한”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내 주변인중 가해자가 있거나 피해자가 생겼을때 어떤 태도를 지녀야할지 알게 된다. 그런 인식과 공부가 없으면 나또한 누군가의 가해를 방조하거나 2차가해를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용기 있는 김지은씨와 김지은을 지지하는 사람들 모임과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제대로된 진실이 가려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큰 빚을 졌다. 나는 그런 가해자가 안될꺼야, 2차가해를 하지 않는 사람이야 라고 확신하지 말았으면 싶다. 성폭력이 이루어지는 속성을 모르면 나또한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판은 떠났지만, 문상철씨의 삶을 응원하고, 김지은씨 또한 그 어느 곳에서 하루하루 잘 생존해 살아나가시길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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