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라는 이름의 신화.
내가 황상기, 황유미 부녀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던 곳은 속초였다. 속초시'가 市이기는 하지만 다른 시'와 비교하자면 동네 읍네 수준이다. 속초시 인구수가 8만 명 정도이니 서울시 관악구 인구수는 물론이고 봉천동 통합 인구수보다도 적다. 규모가 작다 보니 명색이 市인데도 극장은 5개관인 소규모 극장 하나가 전부이고, 여고생이 갈 수 있는 학교도 속초여고와 속초상고'가 전부다. 그러니깐 한 다리 건너 알음알음 모두 다 아는 사이'다. 그래서 번화가인 속초 시내에서 술을 마시면 서로가 안면이 있어서 인사를 하고는 한다. 학교 선배이거나 후배이거나 동네 이웃이다. 한 다리 건너 모두 아는 사이'인 도시에서 나는 늘 고약한 상상을 하고는 했다. " 시바, 이 도시에서는 불륜을 저지르면 안 되겠구나 ! " 그도 그럴 것이 술집에 손님들이 오고가면 사람들은 술집을 나간 사람에 대해 시시콜콜 다 알고 있었다.
" 개동이 저 새끼, 향숙이랑 봉숙이 사이에서 양다리 걸쳤다며 ? " " 어머, 어머머머 ! 봉숙이 언니랑 사귀었어요 ? " 이런 식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웃의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모두 알고 있었던, 있었던, 있었던 것이었다. 속으로 뜨끔했다. 치질 때문에 대장항문과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이때 담당 여의사가 내 항문을 보더니 국화 무늬'라고 칭찬했다며 말방귀처럼 떠들고 다녔는데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국화 무늬가 미스코리아 진'에 해당된다면 얼갈이배추 무늬는 가장 못생긴 축에 속하는 항문이었는데 내 항문은 얼갈이배추 무늬였다. 술집에서 그 대장항문과 여의사와 마주친다면 그 의사는 주위사람들에게 내 항문이 얼갈이배추 무늬라고 속삭였으리라. 그 생각만 하면 얼굴이 홧홧했다. 그러다 보니 황씨 부녀의 안타까운 사연도 술자리에서 알음알음 들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황상기 씨가 회사에 백지 사표( 백지 수표가 아니라 백지 사표'다.) 를 내고 받은 돈은 500만 원이었다고 한다. 회사를 위해 일하다가 죽을 병에 걸렸는데 사측에서 동냥하는 거지에게 적선하듯이 던진 돈이다. 황상기 씨가 사측에 요구했던 것은 거액의 보상금이 아니라 산재 인정'이었다. 그래야지 국가로부터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은 이를 거부했고 황상기 씨는 그때부터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딸은 둔내 지나 싸리재 고개를 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딸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부모의 초라한 뒷모습이었다. 그녀에게 대한민국은 춥거나 더운 나라'였다. 꽃 피는 봄이 없는 나라였다. 딸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는 더욱 강해진다. 그가 거대한 골리앗과 외롭게 싸우자 여기저기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500만 원으로 시작한 보상금은 점점 액수가 커진다. 황상기 씨가 점점 커져가는 보상금 앞에서 단호하게 거부의 몸짓을 보이자 삼성은 사회단체 사람들과 상대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보상금 10억을 제시한다.
황유미 가족은 이 거액에 흔들렸을까 ? 흔들렸을 것이다. 파이가 커지면 커질수록 유혹은 강렬하니깐 말이다. 만약에 황상기 씨가 기나긴 싸움에 지쳐서 삼성에 제시한 당근을 덥썩 물었다면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힘겨운 싸움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문득 삼성이 제시한 10억이라는 액수의 정체성이 궁금해졌다. 삼성이 제시한 10억은 과연 통 큰 액수일까 ? 그렇지 않다. 목숨값은 500만 원에서 10억으로 늘어났지만 역설적이게도 삼성이 자사 노동자를 바라보는 목숨값은 500만 원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삼성 반도체 노동자 피해자 145명의 목숨값을 모두 합쳐서 황상기 씨에게 몰빵함으로써 입막음으로 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깐 10억은 거액이 아니라 500만 원 숨값을 한 사람에게 몰아준 것이다. 이 기만은 삼성이라는 기업이 얼마나 승자 독식 방식 ( The Winner-Take-All Society ) 을 선호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천박한 몰빵 정신은 천재 한 명이 만 명의 노동자를 먹여살린다, 라는 " 이건희 식 천재론 " 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 몰빵 > 이 모든 혜택을 한 사람에게 몰아준다면 반대로 < 연대 > 는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서 다윗들이 단결한다. 영화 < 변호인 > 에서는 송우석 변호사를 돕기 위해 99명의 변호인이 기립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나온다. 이 직립은 좋은 문장이 나오면 그 문장에 밑줄을 긋는 행위와 같다. 저자의 문장과 내 생각이 동일할 때, 혹은 그 문장에 동의할 때 긋는 것이 바로 밑줄이 아니었던가 ? 그것은 공감이며 연대'이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제작 두레 방식에 동참한 만 명의 변호인'을 목격할 수 있다. 제작 두레에 참여한 그 수많은 이름은 얼굴이 등장하지 않지만 송강호의 클로우즈업된 얼굴보다 더 감동적이다.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이 알 수 없는 신화적 낭설'은 여전히 대한민국를 사로잡는 헛것이다 기업 하나가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한다면 그 나라는 차라리 망하는 게 낫다. 그런 식의 논리가 맞다면 소니가 망했으니 일본'은 침몰해야 한다는 공식도 성립한다. 그렇지 않은가 ? 소니는 망해도 일본은 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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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개봉하면 첫째 주는 관객수와 상관없이 일주일을 버틸 수 있다. 문제는 다음 주'이다. 각 극장은 날마다 관객 스코어를 본사에 보내는데 본사 프로그램 팀은 주말 스코어에 따라 상영 시간표를 다시 짠다. 그러므로 주말 스코어'가 매우 중요하다. 대기업 영화 사업 본부단'이 이 영화를 꺼리는 이유는 영화 시작 전에 상영되는 광고 때문이다. 극장 수입 중 티켓 발부에 의한 수익보다는 상당 부분이 바로 팝콘과 콜라 그리고 극장 내 광고에서 보충된다. 그래서 기업형 극장 체인'이 이 영화를 걸지 않는 이유이다.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한 푼 두 푼 모아서 만든 영화이다. 성공하길 바란다. 좋은 선례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