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 낙관주의는 우울한 비관주의보다 위험하다.
생일 선물로 < 冊 > 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말하고는 하지만 책을 선물 받고는 종종 난처'한 경우가 있다. 내 독서 취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요령껏 책을 골라 선물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무조건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선물하는 경향이 있다. 아, 그러나 나는 베스트셀러'는 읽지 않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건방지게 말하자면 < 베스트셀러란...... > "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한 책 " 이라기보다는 "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마저 일단 사고 보는 경우 " 이다. ( 문학'은 제외하자 ! ) 베스트셀러'란 책을 항상 읽는 사람들이 만든 결과'가 아니라 평소에 책을 사지 않는 사람들이 주머니'를 턴 결과이다. 냉소적 태도로 말하자면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읽지 않아도 되는 책들이다. 짧은 기간 안에 왕창 팔리는 책보다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이다.
오래 전, 누가 나에게 < 시크릿 > 이란 책을 선물한 적이 있다. 부제가 1% 부와 성공의 비밀'이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소개된 이후 해리 포터'를 능가한 판매고를 올렸다는 대대적인 선전을 하고 있었으니 사람들이야 동할 만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웠다. 베스트샐러에 대한 불신과 자기계발서와 성공학'에 대한 너절한 혐오'를 가지고 있던 내게 이 책은 그야말로 읽으면 좆될 것 같은 책 가운데 하나였다. 고맙다는 인사말을 하기는 했으나 읽을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읽기 시작했다. 내용은 환상적이었다. 자기계발서와 기업형 대형교회 특유의 긍정신학을 접목한 성공학은 묘하게 비술적 분위기를 풍겼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이루어진다. >
2002 월드컵 붉은 악마 버전으로 말하자면 "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 이며 에스케이 텔레콤 버전으로 말하자면 " 생각대로 T " 이고, 아침이면 날마다 도착하는 " 고도원의 아침 편지 " 이며 한 달에 한 번 발간하는 " 좋은 생각 " 이다. < 긍정 > 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 어떤 대상을 욕망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대상을 간절히 원할 때 종종 나쁜 결과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된다.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라면 가까이 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포기'는 반드시 나약하며 부정적인 소극적 태도'라고 할 수는 없다. 긍정과 부정 사이에 놓인 것이 바로 포기다. < 포기 > 는 빠를수록 건강에 좋다.
불평이 금지된 사회'보다 더 병적인 사회는 칭찬'만 할 수 있는 사회'다. 김일성 세습 체제'는 말 그대로 김일성에게 칭찬만 해야 하는 사회가 아니었던가. 긍정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사회'는 포기'를 나쁜 태도'로 평가하지만, 사실 < 포기 > 의 반대 진영에 속한 < 집착 >은 좋은 쪽으로 흘러가면 열정이요 순애보이지만 나쁜 쪽으로 빠지면 스토커'가 된다. 또한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하지 않으면 가수 성진우의 예언처럼 " 닭고기 아줌마 / 다 포기하지 마. " 가 된다. 누군가는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예로 들며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르겠으나 그에 대한 답은 피파가 선정한 < 최악의 오심 베스트 텐 목록 > 을 확인하기 바란다. 6, 7, 8, 9위에 오른 오심은 모두 2002년 월드컵 때 한국과 치룬 경기'였다.
피파가 선정한 결과만을 놓고 보면 4강 신화는 " 간절히 " 원해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라 심판의 도움으로 " 간신히 " 이룩한 결과였다. 오심으로 이룬 결과마저 긍정적으로 본다면 당신은 진정한 " 시크리터 " 다.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30분 읽다가 쓰레기통에 버렸다. ( 농담이 아니라 진짜 버렸다 ! ) 내용이 하도 병신 같아서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쉿 ! 이 사실은 당신과 나만이 아는 특급 시크리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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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부와 성공을 다룬 비서'에 가까운 귀한 책은 공교롭게도 알라딘 중고 장터에 쏟아져 나온 모양이다. 성공학 최고의 책은 중고 장터에서 1000원에 떨이로 팔리는 모양이다. 숫자를 보니 600권이나 나도는 모양인데 팔리지도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가지는 가치가 아닐까 ? 왜 이토록 귀한 책을 읽고서는 내다버렸을까 ?
긍정의 대가 하면 우선 떠오르는 인물은 < 캔디 > 다. 그녀는 외로워도 슬퍼도, " 내가 왜 울어 ?!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기 왜 우니 ? " 라고 반문한다. 그리고는 방긋 ! 이라이자 쌍년'이 그토록 괴롭혀도 캔디는 울지 않는다. < 하니 > 도 마찬가지다. 나애리, 나쁜 계집애'가 괴롭혀도 참고 참고 참다가 이 세상 끝까지 달린다고 헛소리를 한다. 뭐, 뛰어서 마라도까지 가겠다는 것인가 ! 소녀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훔칠 뿐이다.
" 캔디와 하니 양 ! 눈물을 훔치면 감옥 갑니다. 허허허허. 저는 남산 은행나무 은행을 털었다고 은행 강도로 몰려서 감옥 갔습니다. 외로울 땐 외로울 필요가 있고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릴 자유가 있답니다. 대한민국은 자유주의 민주 공화국이니깐 말이죠. 이라이자 쌍년이 지랄을 하면 주먹을 날리세요. 그리고 나애리 나쁜 계집애를 깐족거리면 먼저 선빵'을 날리십시요 ! "
바바라 에런라이크는 < 긍정의 배신 > 에서 현대 미국 사회'를 힐링과 멘토링을 흉내 낸 자기계발서, 동기 유발 산업, 초대형 교회의 긍정 신학과 긍정 심리학'이 지배한 사회'라고 진단한다. 초대형 교회가 찌라시처럼 유포하는 " 쾌활한 자기 만족 " 메시지가 전하는 바는 세상 만사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징징거리지 마라, 똥개 눈에는 똥만 보이나니 부정적 사고'는 부정적 결과를 얻을 뿐이다. 사회에 대해 불평 불만을 갖지 말지어다. 초대형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지, 송충이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 ! 사회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말고 분수에 맞게 살라는 뜻.
<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 > 라는 제목을 다른 식으로 정하면 < 쥐와 인간 > 이 적당할 것이다. 두 명의 인간과 두 마리의 쥐'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쥐와 인간'은 치즈'를 찾아 미로 구조로 이루어진 방을 들락날락거린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치즈 창고를 발견한다, 야호 !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좋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그 많던 치즈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바닥이 났다. 인간은 마지막 남은 치즈를 뜯으며 불평 불만'을 쏟아낸다. " 어라, 시부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 "
나태한 인간과는 달리 쥐들은 창고에 치즈가 잔뜩 있었을 때에도 치즈가 바닥이 날 날을 대비해서 틈틈이 치즈'를 찾아 미로를 헤맸다. 결과는 첫 번째 발견한 치즈 창고보다 더 규모가 큰 치즈 창고를 발견'하는 결과를 얻었다. 어디서 많이 본 서사 구조'다. 그렇다 ! 이솝 우화'다. < 개미와 베짱이 > 에서 개미를 쥐로 바꾸고 베짱이는 인간'으로 바꾼 것이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 놀지 말고 열심히 일 해라 ! " 이솝은 알다시피 노예'였다. 주인은 평소에 이솝이 전해주는 말빨에 폭풍 감동하야 노예인 이솝을 풀어주었으니..... ( 한편 웅이네 가족은. )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 ! 도대체 무엇이 주인 마음에 쏙 들었을까 ? 주인 입장에서 보면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이솝'이라는 노예가 기특했을 것이다. 꾀부리지 말고, 게으름 피우지 말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만족하며 살자는 것이야말로 주인이 노예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 주인이 잔소리를 해야 할 상황에서 노예가 나서서 속 시원하게 긁어주니 기특한 것이다. 결국 이솝 우화'는 주인이 노예에게 전하는 훈화'다. 월요일 아침이면 학교 운동장에서 지긋지긋하게 듣던 교장 선생의 " 삼복 삼복... 삼복..... 삼복........ 어린이... 어린이... 이.....이...........이..........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 " 으로 시작하는 그 훈화 말이다.
< 쾌활한 자기 만족' >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기에 좋다. 맹목적 낙관주의'는 우울한 비관주의'보다 위험하다. < 무조건적 긍정 > 의 반대말은 < 무조건적 부정 > 이 아니다. 같은말'이다. 어버이연합과 주사파'는 극과 극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비판적 부정'이지 무조건적 부정이 아니다. 긍정도 마찬가지'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말하기에 앞서 먼저 사회적 모순에 대한 지적이 선행되어야 한다. 행복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주장하는 혜민 스님의 위로는 틀렸다. 반대로 레비스트로스의 위로는 옳다. 인간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인간을 변화시킨다.
스펜서 존스의 <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 > 에서 게으른 인간'을 비난하기에 앞서 먼저 미로'라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낄낄거리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비판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 " 야, 이 씹새야 ! 네가 뭔데 거대한 미로를 만들어 놓고는 구경을 해 ? 인정머리없는 새끼. 닥쳐 ! 이 새끼야. 변명은 변소간에서 똥 쌀 때나 해라. 그리고 쥐새끼, 너희들도 나빠, 이 새끼들아. 치즈 창고를 발견했으면 넌지시 동료들에게 알려주면 안 되냐 ? 그동안 인간이 너희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곡간을 열어두었느냐. 싸가지없는 놈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