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담/ 밀란 쿤데라, 1967 > 에서 주인공 루드빅'은 여자 친구에게 보내는 엽서에다 농담으로 "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ㅋㅋㅋㅋ " 라고 썼다가 트로츠키주의자로 찍혀서 당과 사회로부터 쫒겨난다. 농담 한 마디 했다고 이럴 수는 없다 ! 이 소설은 딱딱한, 숨통이 막힌 체코 사회에 대한 신랄한 조롱'이었으니, 당국이 곱게 볼 턱이 없었다. 그의 농담은 금지되었다. 이정희 의원이 이석기 녹취록 사건을 두고 < 농담 > 이라는 기자 회견을 열었을 때, 문득 < 농담 > 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농담 한 마디'에 통진당을 향하여 마녀 사냥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정희의 속내가 읽힌다. 나는 이정희 의원의 < 농담 > 이란 해명이 더 < 농담 > 같다. < 음모 > 에서 < 왜곡 > 으로, < 왜곡 > 에서 < 날조 > 로 설정하더니 결국에는 < 농담 > 으로 최종 가닥을 잡은 모양이었다. 이석기 녹취록은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 hard > 하지만, 내란 음모'라는 차원에서 보면, 철없는 맹신자가 내뱉은, < soft > 한 망상'에 불과하다. 애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농담도 아니고 진담도 아닌, 소프트하면서 동시에 하드하다. 애매모호하다.
이 남자, 주사파'다 !
지금 이 시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 hot " 한 화제는 단연 이석기'다. 공공의 적은 이제 < 종북 > 이거나 < 주사파 > 같은 " 빨갱이 " 가 되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씁쓸하다. 누군가는 21세기 남조선 빨갱이는 상상 속 허구'라며 " 스나크 사냥 " 에 비유했지만 혈연에 가까운 경기 동부 혈맹'은 그 실체를 드러냈다. 이정희'는 " cool " 하게 이 모든 것을 < 농담 > 이라고 말했지만 이 궁색한 변명은 오히려 < 농담 > 이 사실은 < 진담 > 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농담은 할 말 못 할 말 사이에 놓인 애매모호한 경계'다.
농담이 없는 대화는 지루하지만 예의를 벗어난 농담은 무례하고 정도를 벗어난 농담은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준다. 농담이 지나치면 욕'이 된다. 설령 이정희 의원 말마따나 그것을 농담'이라고 정의내려도 이 농담은 무례하고 모욕적이니 농담 한 것 가지고 왜 그려셔셔셔 ! 라고 어정쩡하게 넘어가면 안 된다. 국회의원이 모임 강연에서 내뱉을 말이 아니다. 할 말은 과천 경마장으로 보내고 못 할 말은 제주도로 보내야 하는데 이석기는 마포구 합정동'에 못 할 말'을 쏟아낸다. 그가 못 할 말'을 데리고 합정동 종교 시설'로 끌고 간 이유는 무엇일까 ? 훈시와 교시가 난무하는 지령'은 맹신자들에게는 당근이었나 ?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국회의원은 우두머리가 아니라 유권자를 대표하는 심부름꾼'이다. 요즘 말은 당근보다 각설탕'을 좋아한다. 참고하시라. 하지만 나는 이석기'가 < 내란 음모죄 > 혐의에서 무죄가 되었으면 한다. 법이란 기본적으로 손과 발이 저지른 못된 짓'에 대해서 처벌을 하는 것이지 골(뇌/마음)이 저지른 상상'에 대해서까지 처벌을 할 수 없다. 골 때리는 상황에서 골 싸매고, 골 썩이며 다시 생각해도 머릿속 " 지랄 " 은 법적 책임이 없다. 녹취록 내용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무례하고, 모욕적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내란 음모죄'로 확대하는 것은 신념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입말은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다. ( 입말'이 < 구어 > 의 북한어'였다는 사실은 이번 사태를 통해 처음 알았다. ) 그러나 책임은 져야 한다. 하지만 " 입 말 " 의 책임으로 신체를 구속할 수는 없다. " 일 말 " 의 양심이 있다면 당을 위해서 본인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예의'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는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 두 말 " 하면 잔소리요, " 세 말 " 하면 입 아프니 " 내 말 " 의 요지를 간단하게 요약하자. 국회의원으로써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 어찌 " 다 말 " 로 표현하랴. " 옛 말 " 틀린 것 하나 없다. 혓뿌리 잘못 놀리면 집안 망한다. 국회의원은 자신이 한 말에 대에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 이런 식으로 말 놀이'가 거칠게 오고갈 즈음에 이석기 체포 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찬성 258표, 반대 14표, 기권 11표, 무효 6표'다. 80%가 넘는 압도적 박수 세리머니'다.
이 지점에서 놀라운 점'은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31표에 대한 언론의 신경질적인 반응이다.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행위를 납득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어느 패널은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31명을 국회에서 암약하는 주사파'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교양이 지렁이 똥만큼이라도 있는 놈'이라면 그런 소리가 얼마나 헛소리'인지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원성'을 존중하는 사회이다. 100% 몰표가 나오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북조선 김 씨 왕조'에서나 가능한 상황이다. 김 씨 일가는 항상 100% 국민 지지를 얻은 위대한 수령 동지가 아니었던가 ?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고 31표의 사상적 색깔을 의심하는 것이야말로 파시즘'이다.
주사파'라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석기보다 독한 강골 주사파'는 광명에 사는 ○○○ 씨'였다. 유학은 가지 않았으나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넉넉한 집안 자손이었다. 그지깽깽이들만 모여 있는 영화판에서는 나름 부잣집 도련님이란 소릴 듣곤 했다. 그는 평상시에는 할 말 못 할 말 가려 했다. 아니 입이 무거운 형'이었다. 하지만 술만 마시면 개'가 되었다. 정신을 놓는 순간, 그는 술안주를 동시에 5개나 시키고는 했다. 그때부터 그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취미는 술 먹고 욕하기요, 특기는 옆 테이블에 가서 사람들 뒤통수를 때리는 것이다.
사정 후에 잠이 쏟아지듯이, 그는 난동을 부린 후 인사불성이 되어서 깊은 잠에 빠졌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깨어나 봤자 또 다시 난동을 부릴 것 아닌가 ! 부잣집 도련님인 그는 통 크게 술 한 잔 쏘겠다며 사람들을 불러냈지만 정작 술값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었다. 나는 안주가 아까워서 페리카나처럼 허겁지겁 입속에 안주를 쑤셔넣었다. 마,디,꾸, 나 ! 그는 그렇게 하루에 다섯 군데 술집을 돌아다녔다. 난동 다섯 번과 유체이탈 다섯 번이 이어졌다. 다음 날, 그는 어제의 일은 깡그리 잊어버리곤 했다. 할 말 못 할 말 다 한 그, 다음 날 할 말 못 할 말 가려 했다. " 기억은 개나 줘. 허허허허허. 어제 아무 일도 없었지 ? 합죽이가 됩시다. 합 ! 허허허허. " 환장하고 미칠 노릇이었다.
이런 식으로 술자리가 30번 정도 진행되다 보니 나중에 알게 되었다.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것이 아니라 술값을 안 내기 위한 위장이었단 사실을 말이다. 필름이 끊겼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참다 참다 참다 참치'가 되어버린 나는 할 말 못 할 말을 쏟아냈다. 취한 척하지 마라. 잠든 척하지 마라. 째째하게 살지 마라. 쇼 하지 마라.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술을 대접 채 마신 후 신림동 8차선 도로로 뛰어들었다. ( 실화다. 100% ) 그리고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바지를 벗더니 양말까지 벗었다. 그리고 팬티도 벗었다. 아마도 취한 척하지 마라, 는 내 말에 진짜 취한 취한 모습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 제 정신이면 내가 도로에서 옷을 벗겠냐 ? " 이런 메시지를 내게 전달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아직도 기억난다. 멈춰선 차들, 빵도 아니면서 빵빵거리는 클락숀 소리들, 신경질적으로 깜빡이등을 켰던 빛들. 그리고 빛이 점멸할 때마다 달랑거리던 그 형의 불알. 아, 아아 ! 술에 취한 남근은 작았으나 유독 불알은 당구공 만했던 불알......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그 이후의 일은 모른다. 나는 미친 놈을 내버려두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주사파 최고의 강골'이었다. 이 정도면 이석기는 한수 아래였다. 이 남자야말로 진정한 주사파다! 그 이후로 그 형과는 술자리'를 가지지 않았다. 귀한 자손이던 주사파 형'은 더 이상 술을 함께 마실 동료를 모두 잃었다. 앞뒤 사정 모르고 그와 처음 술을 마신 사람들만 된통 당했다는 소리는 바람이 전해주었다.
어쩌면 그는 완벽하게 도덕적 인간이었던 이명박이 발명한 " 주폭 " 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범위가 좁혀졌는지도 모른다. 어두컴컴한 방구석에서 혼자 자작을 하고 있을 것이다. 주사파도 酒사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난동을 부리면 부릴수록 동료들의 지지를 잃는다. 철 지난 병정놀이에 빠져서 < 대한민국 스타워즈 > 를 찍으면 안 된다. 술 처먹고 파출소 습격하지 마라. 유류 저장소에 가서 빤스 내리지 마라. 빤스 내리거든 최소한 양말까지 벗어라. 몽상은 자유다. 자위도 자유다. 하지만 자위'란 공공장소에서 하면 공연음란죄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석기는 < 내란 음모죄 > 에서는 무죄'다. 그의 사상적 자유를 지지한다. 술 먹고 난동을 부렸다고 해서 내란 음모죄'라고 우기면 그것은 과대망상'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석기 같은 인간을 지독하게 혐오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극우와 극좌는 닮았다. 진보는 극우도 아니고 극좌도 아니다. 이석기는 진보가 아니다. 술 취한 주폭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