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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ㅣ 창비시선 238
문태준 지음 / 창비 / 2004년 8월
평점 :
한 호흡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고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워내고
피어난 꽃은 한번 더 울려
꽃잎을 떨어뜨려버리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 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
(12쪽, 한 호흡)
일주일 전 딸아이들 졸업식의 이유로 집에 들어 오게 된
꽃들을 일주일 동안 꽃대 아래 줄기를 쉼없이 잘라주고,
물을 갈아주며,
수명이 다해가는 꽃들을 한없이 바라보게 되고, 관찰하게 된다.
화려하고 예뻤던 꽃들은 하루 하루 자고 일어나면,
꽃잎의 색은 서서히 옅어지고,
꽃대는 쉬이 물러져 있고,
꽃봉오리가 큰 녀석들은 머리가 무거워 자꾸 아래로 처지게 되고,
급기야 간헐적으로 하나씩 흩날리는 내 고장의 눈 소식처럼
꽃잎이 한 장, 한 장 눈송이 날리듯 떨어진다.
그러다 어떤 날은 장대비 쏟아지듯, 꽃잎들이 후두둑.
꽃잎이 다 떨어져 내린 꽃은 탈모 심한 민머리를 가진 노인 같다.
아직은 내가 젊다는 생각을 한다.
시든 꽃을 보며 꽃이 안타깝기 보다는
꽃이 아깝다는 생각을 더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엄마는 시든 꽃을 보며 늘 안타까워 했다.
엄마는 꽃을 좋아해 집 마당 한 켠 자그마하게 화단을 만들어
꽃을 심어 놓아 계절별로 꽃이 피어나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이라
그냥 봄이 되니 꽃이 피었나 보다!
가을이니 노란 국화가 피었나 보다!
좀 무심했었고,
어쩌면 나는 귀찮았던 마음이 더 컸었던 것 같다.
꽃이 피면 벌이 날아드는데, 그 벌이 친구를 불러모아
그야말로 화단 주위는 벌떼가 무성 했었다.
그 벌에 쏘일까봐 무서워서 집밖으로 또는 집안으로
들락날락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게 무섭고, 귀찮았던 벌들이
이젠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어, 가만 앉아서 관찰하곤 한다.
그렇게 떼를 지어 찾아 오던 벌들이 다 사라져 섭섭하고,서운하다.
집에 엄마가 없다는 것을 벌들이 알아챈 것처럼!
엄마는 꽃이 좋아서 꽃을 심었을테고,
집안에서 꽃구경을 했을테고,
그리고 나처럼 꽃이 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치웠을 것이다.
그것을 해마다 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엄마는 꽃이 지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엄마는 나이 들어가는 당신의 모습을 자꾸 시든 꽃에
비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동물이 새끼를 낳고 곧 수명을 다한다는 나레이션을 들으며,
엄마와 함께 바다 깊은 곳에서 유영하며 생명을 다해가는 문어가
나오는 TV 화면을 본적이 있었다.
모녀는 순간 안타까워 신음했었다.
나는 순간의 감탄사 였겠지만, 엄마는 더 크게 와 닿았던지,
사람이나 동물이 똑같네. 새끼를 낳고, 생명이 꺼져가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똑같구나!! 불쌍한 인생.
하고 혼잣말을 하셨던 것이 두고 두고 가슴에 박혔다.
엄마는 그렇게 노년의 인생을 조금 허탈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잘 몰랐다.
그때 그것을 눈치챘더라면 내가 좀 더 살뜰하게 위로해줄 수 있었을텐데..뒤늦은 후회를 하곤 한다.
살뜰하게,라고 썼지만, 내 새끼들 키운다고 정신없어
아마도 살뜰하게, 라는 단어는 걸맞지 않는 것 같아 빼야겠구나,싶다.
그냥, 엄마의 그 안타까움을 좀 진정성있게
이해해드리지 않았을까, 싶다.
꽃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그리고 시든 꽃을 보면 늘 어김없이 안타까워하던
엄마의 한숨이 생각난다.
이 시든 꽃을 보면 또 안타까워하며 한숨 짓겠지?
그렇게나 알뜰하고, 현실적이며 경제관념 투철했었던 엄마였지만
시든 꽃을 보면 안타까워 하던 엄마는 예순을 넘자마자
떨어진 꽃이 되었고, 한 호흡을 내뱉으신 셈이 되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좀 더 일찍 이 시를 알았더라면,
시든 꽃을 보며 안타까워 하는 엄마에게
엄마, 이건 시들어 버리는 게 아니라, 한 호흡이라고
말해줬을텐데...생각해 본다.
엄마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상상하다 풉 웃게 된다.
웃긴 상황이 연상될지언정
너무 짧은 한 호흡으로 가신 엄마가 안타까운 건지
이 시를 엄마에게 읽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문태준 시인의 <맨발> 이 시집은 2004 년에 출간된 시집이다.
2004 년에 시인의 태어난 해를 계산해 보면 시인은 30 대 중반에 이 시집을 냈다는 말인데, 시를 읽노라면 그 나이의 감성이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감성이? 란 생각이 절로 든다.
경북 김천 출신의 배경이 어릴때부터 정서적 감성으로 자양분이 되었다고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김천 출신들은 다 글을 잘쓰는 걸까? 김연수 작가와 김중혁 작가도 김천 출신인 걸로 알고 있는데...)
여러 시들이 좋았다.
그 중 시든 꽃을 바라보고 있는 이 때, <한 호흡>을 읽으니,
마음을 적시는 부분이 있어 적어 본다.
그리고,
호흡을 끝까지 연장해 보려고
시들어 가는 꽃들을 한데 모아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최근 읽은 올리브 책의 영향 탓인가?
호흡의 끝자락인 노년도 아직은 더 아름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