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라 테일러의 영화 <지젝!>에 나오는 한 강연에서 대표적인 데리다주의자로 지젝이 거명하는 이름이 '아비탈 로넬'이었다. 그때 잠시 이 여성 철학자에게 흥미를 가진 적이 있는데, 마침 '해체론의 후계자'로 로넬의 철학을 소개하는 기사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기사 덕분에 야코프 타우베스에게서 수학했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됐다.   

교수신문(09. 04. 13) 해외 학자_해체론의 후계자 아비탈 로넬 뉴욕대 교수 

아비탈 로넬(Ronell, Avital: 1952- )은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유대학자이자 저명한 종교철학자였던 야코프 타우베스에게 수학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괴테, 휠덜린, 카프카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파리에서 "해체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쟈크 데리다, 그리고 뤼스 이리가레이, 쥴리아 크리스테바와 함께 현대 프랑스 페미니즘의 큰 축을 이루는 엘렌 씨수등과 공부하였다. 현재는 뉴욕대학에서 독문학과 비교문학을 가르치고 있고, 스위스의European Graduate School의 철학과 교수로도 재직중이다. 2004년 데리다가 타계하기 직전까지 뉴욕대에서 우정, 환대, 용서, 괴물등의 주제로 매해 가을 대학원 세미나를 함께 강의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저서로 『받아쓰기(Dictations)』(1986), 『전화수첩(The Telephone Book)』(1989), 『마약전쟁(Crack Wars)』 (1992), 『어리석음(Stupidity)』(2003), 『테스트욕동(The Test Drive)』(2005) 등이 있다. 



글쓰기의 기원으로서 타자
칸트에서, 프로이드, 니체, 하이데거, 레비나스, 블랑쇼, 데리다, 라쿠-라바르트와 들뢰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워즈워드, 도스토예프스키, 클라이스트, 뮤질, 괴테, 플로베르, 카프카까지, 또한 텔레비젼, 전화, 가상현실, 정신분열증, 걸프전, 오페라, 후천성면역결핍증, 마약중독, 트라우마, 소문, 무지함, 공권력 등 아비탈 로넬은 특유의 거침없고 신랄한 문체로 서양철학과 문학, 문화이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종횡무진한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영역과 요소들을 천착하며, 인위적인 경계를 넘고 닫힌 뚜껑을 열고 상식을 의심하고 정돈된 명제들을 휘저어 놓는다. 걸러지지 않은 듯한 거리의 언어, 그 거칠음, 무모함, 대범함이 문헌 (혹은 쟁점)에 대한 숨막힐 정도의 미시적 엄밀성과 이성의 변두리에 대한 무르익은 윤리적 성찰, 그리고 섬세한 여성적 감성과 함께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러나 펜을 든 그의 손을 움직이는 것, 이 아름답고 힘있고 거침없는 글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로넬 자신이 아니다. 무엇인가가 뒤에서 그를 원격조정한다. "유령에 홀린 글쓰기," "몽환적 글쓰기," 혹은 "수동적 글쓰기" (받아쓰기, 립씽크, 윤리적 채무관계, 부름에의 부응, 볼모 등으로 표현되는) 라고 스스로도 말하고 있지만, 이 수동적이고 비자발적인 글쓰기를 조정하고 있는 그 힘이 정확히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는 로넬 자신도 알지 못한다. 개념화 할 수도 개념화 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 힘의 기원을 "타자"라고 한다면, 그에게 글쓰기란 언어를 읽어버린, 혹은 언어 밖에 있는-그러나 끊임없이 말하기를 갈망하는- "타자"를 위하여 자기 손을, 자기 몸을 빌려주는 행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로넬의 글들에는 "왜 나는 내가 쓰고 있는 이것을 쓸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성찰과 고뇌가 밑바닥에 깔려있다. (글쓰기의) 주체가 생성되기 이전, 자아가 이루어지기 이전부터 자아에 각인되어 있는 타인의 흔적에 대한 채무의 이행이든, 그 희미한 기억에 대한 집착이든, 욕망이든, 어쨌든 그는 호텔 프론트의 전화 교환원처럼 리셉션 데스트에 앉아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그의 귀에 들리는 소리를 받아쓴다.

결정되지 않은 한계의 순간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이성적 사고가 그 체계 유지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은폐하고 망각해 온, 끊임없이 철학의 주변으로, 이성의 뒤꼍으로 배재해 온 그 "것"이 로넬의 철학적 사고가 향하고 있는 곳이다. 망각되고 배재되고 지워지는 과정에서 그 저항의 손톱 자국이라도체제 안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며, 그 사유되지는 않지만 어떤 식으로든 각인 (inscribed, written) 되어있는 그 변형과 소멸, 왜곡과 망각의 흔적을 문헌에서 찾아 읽는 것, 그것이 로넬의 해체철학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손에 잡히지 않고, 설명하거나 개념으로 가둘 수 없지만,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닌 - 유령과도 같이 - 그것, 즉 단일자 (singularities)에 대한 긍정과 celebration에 로넬철학의 핵심이 있다. 해체는 결코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테러리스트적 파괴가 아니다. 부정을 위한 부정도, 냉소적 허무주의도 아니다. 해체는 가혹하리만치 세밀한 문헌분석과, 타자, 단일자, 혹은 ‘유령’의 부름에 응하는 진실하고 엄밀한 글쓰기, 그리고 익숙한 사유체계의 뼈대가 드러날 때까지 확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끝까지 몰아 부치는 의심과 회의이다. 목소리를 빼앗긴 자들의 소리 없는 비명과 눈물 (로넬은 이를 "ethical scream"이라고 말한다), 쉽게 개념화 할 수 없는 내 몸에 난 타자의 흔적, 역사의 결에 거꾸로 난 손톱 자국…  로넬의 철학은 그것들을 향해있지만, 굳이 그것을 설명하고 정리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언어가 목젓까지 올라왔다가 나오지 못하고 목에 걸려버리는 그 순간, 그의 펜은 그곳에 머문다. 이것이 한계인지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가능성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몫일 것이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그의 언어 속에서 철학은 끊임없이 그리고 가차없이 흐트러지고 다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아비탈 로넬을 다룬 영화로 로넬 외에 슬라보이 지젝, 쥬디스 버틀러, 마사 누스바움, 코넬 웨스트 등 동시대를 사는 흥미로운 서양 철학자 8인을 담은 아스트라 테일러 (Astra Taylor) 감독의 <음미되어진 삶: Examined Life> (2008)가 있다. 또한 로넬의 <전화수첩 The Telephone Book>에서 영감을 받아 아리아나 레인즈 (Ariana Reines)가 각본을 쓴 연극 <전화: Telephone>가 현재 뉴욕의 Cherry Lane Theatre에서 상연 중이다.(장지은 뉴욕대 박사과정)  

09. 04. 14.  

P.S. '어리석음'에 대한 로넬의 연속 강의 동영상은 http://www.youtube.com/watch?v=SaP6rRor32Q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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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슴츠레 2009-04-15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루는 사상가들과 주제들을 보니 벤야민이나 지젝을 방불케 하는 '전방위 비평가'이신 것 같군요.ㅎㅎ이제는 좀 파렴치한 기대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부디 '번역되어 주시옵소서'하는 바람이 듭니다.

로쟈 2009-04-15 21:30   좋아요 0 | URL
책들이 두꺼운 편이어서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싶네요...
 
다큐멘터리 <지젝!> 상영전
레닌주의와 대중유토피아

이번주 한겨레21의 출판면 기사를 옮겨놓는다.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에 대한 간략한 리뷰이다. 아스트라 테일러의 <지젝!>에 대한 페이퍼와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을 다룬 '레닌주의와 대중유토피아'를 같이 참고할 수 있다.    

한겨레21(09. 04, 20) 정치 경제, 두 겹의 싸움이 필요하다

아스트라 테일러의 다큐멘터리 영화 <지젝!>(2005)에서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슬라보예 지젝은 “철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다시 정의하는 것입니다. 철학은 아주 겸손한 학문이에요. 철학은 단지 ‘네가 이것이 참이라고 할 때 의미하는 게 뭐냐?’라는 식으로 질문할 따름이지요. 그런 겸손함이 역설적이지만 철학의 위대성입니다.”라고 답한다. 지젝 스스로 자신의 대표작의 하나로 꼽은 <시차적 관점>(마티 펴냄)은 철학에 대한 그의 정의에 충실한 책이다. 그는 지금까지 제기해온 문제를 해결하지도, 새로 더하지도 않으며 다만 ‘시차(視差, parallax)’라는 개념을 빌려서 재정의하며 재구성한다.  

‘시차’란 과학용어로 동일한 대상을 서로 다른 곳에서 보았을 때 서로 다른 위치나 형상으로 보이는 것을 말한다. 가장 단순하게는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을 각각 한쪽씩 가리고 보았을 때 나타나는 약간의 차이가 시차다. 서로 다른 시각(관점)이 만들어내는 차이를 시차라고 하면, 이것은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난다. 양자물리학에서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신경생물학에서 의식현상과 회백질 더미, 철학에서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 정신분석학에서 욕망과 충동 사이의 간극, 그리고 성적 삽입의 대상이면서 출산의 기관이기도 한 질(바기나)의 시차 등등.  

지젝은 이 책에서 두 층위 사이에 어떠한 공통 언어나 기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변증법적으로 매개․지양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율배반’을 시차로 재정의한다. 그리고 철학과 과학, 정치라는 세 가지 주요 양식에 나타는 시차적 간극들에 개념적 질서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 작업은 궁극적으로 변증법의 유물론의 철학을 재건하기 위한 시도로 간주된다. 그가 보기에 시차적 간극이라는 개념은 변증법적 사유의 장애물이 아니라 그 전복적인 핵심을 간파하도록 해주는 열쇠다.    

지젝은 ‘시차적 관점’이라는 아이디어를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2001)에서 얻어오지만, 칸트주의를 이론적 전거로 삼는 가라타니와 달리 헤겔적 사유에 접목시킨다. 그가 보기에 헤겔의 근본적인 교훈은 존재론의 핵심 문제가 ‘현실’이 아니라 ‘현상’이라고 본 데 있다. 흥미롭게도 지젝이 들고 있는 다양한 사례 가운데는 분단 한국의 상징적 장소도 포함돼 있다. 바로 비무장지대 남쪽에 위치한 통일전망대다. 이 ‘극장’ 같은 건물에는 ‘스크린’ 같은 창이 설치돼 있고, 북한의 ‘현실’을 전시 가옥들을 통해서 바라볼 수 있다. 아무도 살지 않지만 저녁에는 동시에 불이 켜지는 집들이다. 여기서 현실은 틀에 맞춰진 외양(현상) 그 자체다. 아르헨티나의 사례도 흥미롭다. 2001년 12월 반정부 시위 때, 특히 시위 군중의 표적이 됐던 경제부장관 카발로는 그를 조롱하기 위해 사람들이 쓰던 자신의 가면을 쓰고 집무실에서 탈출했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게 최상의 가면이라는 정신분석적 교훈을 직접 실천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가 보여주는 순수한 차이는 한 요소와 다른 요소 간의 차이가 아니라 한 요소와 그 자체와의 차이다. 여기서 시차는 서로 대칭적인 두 관점이 아니다. 하나의 관점이 있을 때 그것을 빠져나가는 무언가가 있으며 두 번째 관점은 그 첫 번째 관점에서 볼 수 없었던 무언가를 채우게 된다. 예컨대, 지젝은 마르크스의 시차를 경제와 정치 사이의 시차라고 본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궁극적으로 ‘두 옆얼굴이냐 꽃병이냐’라는 시각적 패러독스와 유사하다. 즉, 정치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면 경제는 고작 ‘재화의 공급’으로 격하되고, 경제에 초점을 맞추면 정치는 한갓 기술 관료주의의 영역으로 축소된다.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에서 지적한 대로, 레닌의 위대한 점은 이 두 수준을 함께 사고할 수 있는 개념적 장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했다는 데 있다. ‘레닌을 반복하라!’는 그의 요구는 거기서 비롯된다. 경제가 핵심이지만 그 개입은 경제적이 아니라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거나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는 일면적 슬로건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차적 관점은 두 겹의 싸움을 요구한다. 

09.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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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항의 교착상태와 혁명의 필연성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5-08 21:20 
    중앙대 대학원신문(260호) '冊과 담론' 코너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을 다루고 있다. '한겨레21'에도 서평을 실은 바 있어서 청탁을 받고 주저했지만 초점을 다른 쪽에 맞춰달라고 해서 결국은 수락했다. 하긴 그렇게 초점을 달리하면, 서평은 몇 편 더 쓸 수도 있겠다.    중앙대 대학원신문(09. 05. 07) 저항의 교착상태는 어떻게 돌파해야 하나 슬
 
 
2009-04-14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4 00: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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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4 00: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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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에 번역돼 나온 루소의 <신엘로이즈>(한길사, 2008)에 대한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관련기사가 드물어서 아쉬워하던 차였다. 사실 책은 아직 손에 들 여유가 없지만, 낭만주의 문학이 한때는 '전공'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안 가질 수도 없다. '성의 역사'와 함께 '사랑의 역사'를 더듬어볼 때도 한번쯤 둘러봐야 할 이정표이기도 하다.  

 

대학신문(09. 04. 12) 새로운 사랑의 신화, 『신엘로이즈』 

루소는 너무나 다채로운 면모를 가진 천재다. 그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사회학의 방법을 모색했고, 『사회계약론』을 통해 ‘주권재민’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의를 천명했으며, 『에밀』을 통해 교육철학에 한 획을 그었고, 『고백록』을 통해 근대적 의미의 자서전이라는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 그러나 우리는 루소가 일류 식물학자이자 『마을의 점쟁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해 프랑스 국왕의 연금을 받을 뻔했던 탁월한 음악가였을 뿐만 아니라 『신엘로이즈(Julie ou la Nouvelle Heloise)』라는 베스트셀러 소설을 쓴 작가라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은 루소의 다양한 모습들 중 일부에 편중된 번역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번에 서익원 교수(경원대 불어불문학과)의 『신엘로이즈』 완역본이 출간됨으로써 그동안 우리들에게 가려져있던 루소의 한 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루소는 무엇보다도 『신엘로이즈』를 통해 문학적 영광의 정점에 이른다. 루소의 다른 글들이 주로 일부 식자층에서 읽혔다면 이 소설은 매우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하면서 18세기 말까지 적어도 70판이 출판됐는데, 이는 그야말로 유례 없는 성공이었다. 그렇다면 『신엘로이즈』가 이러한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이 작품은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왜냐하면 8백여쪽에 이를 정도로 분량이 많았고 사건들도 거의 없는데다가 결투, 대도시 파리의 풍속, 음악, 교육, 종교 등 일반적인 주제들에 대한 긴 논술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자신을 작품의 주인공들과 동일시하면서 책에 빨려들어 갔다. 거기에 담겨있는 열정은 너무나 격렬해서 당대의 한 평론가는 글이 쓰인 종이를 불태울 정도라고 외쳤고, 낭만주의를 주도했던 스탈 부인은 루소가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연애소설을 써서 미덕을 손상시키기는커녕 미덕에 상상적인 매력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열정으로 만드는”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찬양했다. 그러나 당대 독자들이 열광한 사랑과 미덕을 향한 열정이 현대의 우리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감정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할 수 있다. 루소의 어투를 흉내 내자면 ‘진지한 사랑을 꿈꾸지 않은’ 사람은 이 책을 열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루소가 사랑에 부여한 새로운 의미다. 루소에게 사랑은 관능의 충족을 넘어서 미덕을 지향하는 힘이며,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미덕의 화신으로 이상화한다. 그는 사랑에서 모든 것, 가령 사랑할 때 일어나는 모든 감정 등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시인하지만 그 환상이야말로 인간을 가치의 세계로 고양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미덕은 실천하기 어렵지만, 사랑하는 대상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미덕을 실천할 때 그로 인해 받는 물질적 고통은 달콤한 사랑으로 상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민인 생 프뢰와 귀족 출신인 쥘리는 그들의 사랑이 사회 질서와 충돌하면서 미덕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게 되는 것을 본다. 둘의 관계를 눈치 채고 애태우던 쥘리 어머니의 죽음이 한 예인데, 어떻게 보면 쥘리는 사랑 때문에 어머니를 죽인 셈이 된다. 만약 쥘리가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생 프뢰와 결혼했다면 그녀는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사랑을 파괴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미덕을 추구하는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 헤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그들에게 허락된 사랑의 형식은 그리움뿐이고, 미덕이야말로 내세에서 이 둘을 맺어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그런데 쥘리의 남편인 볼마르는 그들이 앓는 사랑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 생 프뢰에게 자신의 영지인 클라랑에 와서 살라는 제의를 한다. 유물론자이자 이성의 화신인 볼마르는 과거의 쥘리와 현재의 볼마르 부인이 다르다는 사실을 두 사람에게 일깨우려고 그들에게 자기가 없는 상태에서 입맞춤을 하도록 강요한다. 볼마르의 방법은 쥘리와 생 프뢰가 서로에게 사랑과 존경의 시선을 보낼 때 자신의 시선을 의식하게 하려는 것으로, 사실 이것은 ‘클라랑의 질서’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완벽한 행복을 향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클라랑의 질서는 실상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전방위 감시체제’에 기초를 두고 있어서, 하인들은 주인의 이익을 위해서 항상 서로를 감시해야만 한다. 볼마르가 감시하는 시선이 내면화될수록 이 두 사람은 활기를 잃어버리고 쥘리는 일상적인 행복에서 생겨나는 권태감으로 괴로워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클라랑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가장 유효한 방법이었던 감시 체계의 효율성이 결정적으로 의문시된다. 쥘리가 느끼는 권태감은 자신이 자율적이라고 느끼지만 실상은 세밀하게 통제 받는 클라랑 사람들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가능한 결말은 쥘리가 죽는 것이고, 그래서 그녀는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러 물에 뛰어 들어가 아이는 구하지만 자신은 죽을 병에 걸린다. 그녀는 생 프뢰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면서 죽음을 맞는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두 연인은 그동안 겪어야만 했던 모든 고통을 보상받고 심원한 존재 이유를 되찾는다. 쥘리는 미덕으로 인해 받은 고통 덕분에 자신의 사랑을 부끄러움 없이 고백할 수 있었고, 생 프뢰는 지금까지의 고통을 쥘리의 사랑 고백으로 보상받았으며 또 내세에서 쥘리를 만날 희망을 갖고 앞으로 미덕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혼이 돼서 사람의 내면을 직접 느끼고 싶다는 쥘리의 희망과 미덕을 실천하는 자신의 내면을 쥘리가 그대로 느꼈으면 하고 바라는 생 프뢰의 희망은 그 강렬함으로 이미 죽음을 넘어 둘을 하나로 만든다.  

계몽주의자들이 신성을 탈신비화했다면 루소는 이렇게 세속적인 사랑을 신비화하면서, 당시 형성 중인 부르주아 사회를 위해 혹은 그 사회를 견뎌내기 위해서 새로운 사랑의 신화 혹은 종교를 창조한 것이다. 이성적이고 명석한 프랑스어를 몽상과 열정의 언어로 변형한 루소의 글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지나친 직역 때문에 따라 읽기 힘든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공들인 번역을 내놓은 역자의 노고에 루소 전공자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이용철 교수 한국방송통신대 불어불문학과) 

09. 04. 12. 

 

P.S. 본문 중에 이름이 나오지만 스탈 부인(마담 드 스탈) 또한 낭만주의 연구자에겐 피해갈 수 없는 이름이다. 그녀의 <독일론>(나남, 2008)과 소설 <코린나 - 이탈리아 이야기>(문학과지성사, 2002)가 출간돼 있지만 이 역시 아직 손을 못대고 있다. 나의 현실이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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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2 18: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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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2 23: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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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3 0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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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3 20: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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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3 2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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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3 23: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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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사회, 혹은 정보화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으로 잘 알려진 마뉴엘 카스텔의 3부작을 읽어볼 계획이다. 방대한 분량 때문에 엄두를 내긴 어려운데, 실제로 언제나 다 읽게 될는지 장담할 수 없다(다 읽기 전에 개정판이 나올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론 소련의 붕괴를 다룬 3권 '밀레니엄의 종언'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3부작이라고 하니 1권부터 손에 들었다. 리처드 세넷과 지그문트 바우만까지, 내가 주목하는 세 사회학자의 키워드는 각각 '네트워크 사회' '새로운 자본주의' '유동적 근대'이다. 어디서 만나고 갈라지는지는 더 읽어봐야겠다. 참고로, <밀레니엄의 종언>의 원서 표지엔 일리야 레핀의 그림 '볼가강의 배끄는 인부들'이 들어가 있다. 국역본의 밋밋한 표지는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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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ol 2009-04-14 07:38   좋아요 0 | URL
제 경험상 information age 3부작은 읽는데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됩니다 (사실 2권은 건너뛰엇습니다만). 워낙 정보와 자료를 꼼꼼하게 들이대다보니 질릴 정도입니다. 그게 카탈루냐 사람이라서 그렇답니다. 그 사람들이 꼼꼼하기로 유명하다는... 오히려 반대로 미디어에 관한 보다 철학적인 2개의 장 (1권 중후반부)은 너무 허술해서 의아할 정도입니다. 사실 real virtuality, space of flows, timeless time 장이 가장 유명한 챕터지만 미디어 전공자 입장에서 가장 엉성한 장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근데 정말 사소한 걸로는 한국 번역판에는 왜 '마누엘 카스텔스'가 아니라 '마뉴엘 카스텔'이라고 적는지 궁금합니다. 프랑스에서 많이 활동햇으니 프랑스어식으로 읽은건가 의문스럽다가도, 그렇더라도 어쨋든 '마누엘' 아닌가 싶어 더더욱 의아합니다. 혹시 이 사람이 자기 이름은 이렇게 읽어달라고 햇는지...

로쟈 2009-04-14 23:1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닥 읽고 싶은 학자는 아닌데, '지명도'라는 것 때문에...^^;

evol 2009-04-15 01:49   좋아요 0 | URL
'책이 후졋다'는 얘기는 아니엇구요, 읽을 가치는 잇습니다. 두껍고 위트도 없이 꼼꼼하게 진행되는 책이니만큼 지루함을 견뎌야 한다는 얘기엿습니다 ^^

로쟈 2009-04-15 07:05   좋아요 0 | URL
네, 재미에 대한 기대는 접고 있습니다.^^;
 

검찰의 PD수첩 수사뿐 아니라 MBC 9시 뉴스의 신경민 앵커와 라디오 진행자 김미화 씨 교체 문제로 다시 한번 현 정부의 언론'탄압'이 화제가 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책 두 권이 눈길이 끈다, 국역본의 제목부터가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이다. 권력에 안주하는, 아니 권력 자체가 돼버린 언론과 그 하수인 정도를 자처하는 기자들에겐 언감생심이겠다. 우리의 처지가 아니어서 유감스럽지만, 미국에서도 '전설'로 회자되는 사건 아닐까. 다시 한번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한다. 최소한 리뷰 정도라도 일독해보시길.

한겨레(09. 04. 11) '망할 애송이 기자’ 대통령 무릎 꿇리다 

1972년 6월17일, 워싱턴 워터게이트 호텔 단지 안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몰래 침투한 괴한 5명이 체포당했다. 비즈니스 정장 차림에 외과수술용 장갑을 낀 그들은 최신형 도청장치를 지니고 있었고, 일련번호가 이어지는 100달러짜리 고액권 수천 달러를 갖고 있었다. 망명 쿠바인들이 저지른 ‘3류 주거침입’ 또는 ‘절도사건’(그들 중 4명이 쿠바 출신자였다)쯤으로 치부되던,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그 사건은 불과 2년 뒤 대통령의 치욕스런 하야라는 미국 역사상 초유의 대사건으로 번져간다. 법무장관과 백악관 비서실장, 백악관 고문, 국내 수석고문 등 한때 기세등등했던 권력실세들 사십여명이 감방으로 갔다.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한 로버트 레드퍼드,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대통령의 음모>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그 진실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사건은 미국 사회와 역사를 바꿨고 미국과 세계 언론의 존재양식도 바꿨다. 최근 반동적 역류로 어지럽지만, 한국 저널리즘이 고난을 무릅쓰고 줄기차게 도달하려 애써온 이상향도 상당부분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쟁취한 미국 언론의 성과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 언론은 그 뒤 변질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을 둘러싼 미국 언론 쟁투를 통해 우리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와 문제를 좀더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973년 4월 말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보좌관을 통해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사건 담당기자 보브 우드워드를 협박했다. “그 망할 애송이 녀석들 좀 조심하라고 해.” ‘녀석들’은 당시 30살의 우드워드와 그의 29살 취재 단짝 칼 번스틴. 하지만 이미 닉슨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 며칠 뒤인 4월30일 그의 최고보좌관 해리 홀드먼 등이 사임했고 해고당한 백악관 법률고문 존 딘은 옛 주인을 공격하고 있었다. <워싱턴포스트> 외엔 거의 침묵을 지키던 미국 언론들이 그 무렵엔 다시 워터게이트로 모두 몰려들고 있었다. 우드워드와 번스틴은 그때 처음으로 자신들이 “정부를 전복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자신만만해 보였다. 닉슨 재선운동본부 책임자를 지낸 전 법무장관 존 미첼은 자신의 비리에 관한 폭로기사가 나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전화로 번스틴을 협박했다. “만약 그 기사가 진짜로 나가게 되면 캐서린 그레이엄(워싱턴포스트 사주)의 젖꼭지를 거대한 압착기계로 비틀어 짜버릴 줄 알아.” 로널드 지글러 백악관 대변인은 보도내용을 모조리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다.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은 <워싱턴포스트>를 근거 없는 기사로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비열한 신문이라며 국민을 선동하고 다른 언론사들을 이간질했다.  

1973년 초 워싱턴포스트 주가는 주당 38달러에서 21달러로 폭락했다. 정부가 이 신문사 소유 텔레비전 방송국 두 곳 재인가 문제를 걸고넘어졌기 때문이다. 1973년 9월15일 녹음된 닉슨의 발언은 이를 예고했다. “가장 중요한 건 워싱턴포스트가 이번 일로 정말 지옥 같은, 지독한 고생을 하게 될 거라는 점이지. 그 회사는 텔레비전 방송국들을 소유하고 있으니까. 정부로부터 허가를 갱신받아야 해. 앞으로 엄청나게 험악한 싸움이 벌어지게 될걸.” 하지만 불과 얼마 뒤 지옥에 떨어진 건 닉슨 자신이었다.

중국과 화해하고 베트남 북폭을 강화하는 등 권력의 절정에 있던 닉슨의 1972년 대선 재선이 확실한 상황(49개 주에서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을 눌렀다)에서 대다수 언론들은 침묵했다. <뉴욕타임스>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초기에 경쟁했던 일부 신문들마저 워터게이트에 눈감았다. 우드워드에 따르면, “관청 쪽 배포기사에 대한 더러운 애착을 지닌 포로들”, “겉으로만 센 척”하고 “정보를 이리저리 분류하며 정작 할 일은 하나도 안 하는 놈들”, “정부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 적기나 하는 약아빠진 속기사”였던 백악관 출입 고참기자들은 백악관을 화나게 하면 돈과 명예가 보장되던 백악관 출입기자 자리를 잃을까 걱정했고, 워싱턴포스트의 새파란 전담 신참기자들(우드워드는 사건 발생 당시 입사 9개월, 번스틴은 11년차였다)을 깔봤다.  

백악관 출입 정치부 기자가 아니라 사회부 수도권 담당 기자였던 우드워드와 번스틴은 기성 제약들에서 해방돼 있었다. 그 ‘애송이들’이 잠복근무와 관계자 야간취재 등 오늘날 ‘탐사보도’의 핵심기법으로 알려진 집요하고 저돌적인 취재방식을 미국 언론사상 그때 처음 도입했다. 사주와 편집인, 데스크가 똘똘 뭉친 워싱턴포스트는 외로웠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1971년 6월 베트남 전쟁 확전 주범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폭로한 ‘펜타곤 페이퍼’ 보도와 더불어 그때가 미국 언론으로서는 권력을 견제하는 ‘제4부’로서의 존재감이 가장 선명했던 전성기였다. 워싱턴 지방신문 4개 중에서도 3위에 머물렀던 워싱턴포스트가 일약 뉴욕타임스에 버금가는 일류 전국지로 거듭난 게 그 시기였다. 워싱턴포스트 성공의 최대 공로자는 물론 우드워드와 번스틴이었으나 또 한 사람, 닉슨의 역설적 ‘공덕’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닉슨은 2기 임기 절반도 못 채운 채 1974년 8월 9일 사임했다.  

아메리칸대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있는 알리샤 셰퍼드가 2007년에 낸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WOODWARD AND BERNSTEIN- Life in the Shadow of Watergte)은 바로 그 과정을 우드워드와 번스틴의 캐릭터와 활약상에 초점을 맞춰 보여준다. 예일대 졸업에 해군 중위 출신의 전형적인 백인 엘리트 우드워드와 장발에 줄담배를 피우는 삐딱한 유대인 대학중퇴자 번스틴의 전혀 상반되는 캐릭터가 워터게이트를 매개로 최상의 조합으로 변모해가는 과정, 그리고 제대로 알려진 적 없는 출세 이후 그들의 인생유전이 중심을 이룬다. 마지막 장에 미국 언론 사상 최대의 미스터리였던 ‘딥 스로트’, 곧 결정적인 국면에 우드워드를 도와줬으나 33년간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던 정부 고위 관계자(연방수사국·FBI 2인자 마크 펠트)의 커밍아웃 과정을 따로 다뤘다.(한승동 선임기자)    

한겨레(09. 04. 11) 미 언론 키운 한마디 “오케이, 보도합시다”

<‘워싱턴포스트’ 만들기>의 원제는 <멋진 인생>(A GOOD LIFE: Newspapering and Other Adventures). 편집국장, 편집인으로 닉슨 정부에 맞서 싸우며 오늘날의 <워싱턴포스트>가 있게 만든 또 한 사람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 주역 벤저민(벤) 브래들리의 자전적 회고록이다. 1971년 6월13일 <뉴욕타임스>가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해 폭로한 초대형 특종을 했을 때를 브래들리는 이렇게 회고한다. “<뉴욕타임스>는 그 연구보고서 한 부를 입수해 10여명의 민완기자와 에디터들을 석 달 동안 투입한 끝에 10여 꼭지의 기사를 만들어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런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경쟁지 기사를 베껴 쓰는 창피스런 입장이었다. 우리는 문단을 바꿀 때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이라고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우리 눈에만 보이는 피가 흘렀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법무장관 존 미첼이 보도를 전면 중단하고 랜드연구소 군사전문가 대니얼 엘스버그가 빼낸 7000쪽에 달하는 자료를 모두 국방부에 넘기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주춤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 틈에 같은 내용의 4000쪽짜리 보고서를 긴급 입수해 닷새 뒤 실었다. 그 과정에서 정부 조처를 의식한 변호사 등 일부 간부들이 보도에 강력히 반대해 일대 공방전이 벌어졌다. 그때 대표적 보도 강행론자가 브래들리였고 도쿄 특파원을 지낸 돈 오버도퍼도 그의 편이었다.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은 처음엔 망설였으나 마침내 “오케이, 갑시다. 보도합시다”라는 말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버렸다. 브래들리는 그 한마디가 “워싱턴포스트의 사풍을 완전히 바꿔버렸다”고 추억했다. “(그 한마디로) 새롭고 독립적이고, 단호하고, 자신있게 바꿔버린 <워싱턴포스트>를 모든 편집자와 기자들이 얼마나 각인하게 될지 우리는 몰랐다. 우리는 대통령과 대법원과 법무장관에 단호하게 맞서게 되었다. 고개를 빳빳이 쳐든 신문은 흔들리지 않고 원칙에 따라 나아갔다.” <워싱턴포스트>는 그 다음날 법원의 게재 금지 명령이 내려지기 전 한 차례 더 보도를 강행했다.

세기적인 워터게이트 특종은 그때의 경험이 토대가 됐다. “사내에서는 펜타곤 페이퍼의 경험으로 그레이엄 일가와 편집국의 신뢰가 견고해졌다. 또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명감을 공유하게 됐다. 펜타곤 페이퍼 이후 우리가 함께 극복하지 못할 어려운 결정은 없었다.” 하지만 군소신문이었던 <워싱턴포스트>가 미국을 대표하는 정론지로 거듭난 결정적인 계기는 뭐니뭐니해도 워터게이트 특종.

브래들리에 따르면 워터게이트 특종은 언론을 국가적 존경을 받는 지위로 밀어올렸고, 특히 <워싱턴포스트> 기자들, 그중에서도 보브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은 미국 젊은이들에게 영웅으로 비쳤다. 고교와 대학 진로를 앞두고 고민하던 학생들은 언론에 매료됐고 언론학부 등록생 수가 치솟았다. “누구보다 언론을 싫어했고 이해하지도 못했던 닉슨이 가장 유능하고 젊고 강인한 활동가들을 언론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였다.” 그 사건 뒤 개혁적 정치인들이 등장하게 된 점도 특기할 만하다. 워런 하딩 대통령 때 권력에 빌붙다가 몰락을 자초했던 <워싱턴포스트>는 국민과 민주주의 편에서 권력에 맞붙어 싸움으로써 재생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자체의 전체 윤곽은 우드워드, 번스틴의 삶에 초점을 맞춘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보다는 여러 사건을 두루 다룬 <‘워싱턴포스트’ 만들기>가 간결하지만 오히려 더 잘 요약하고 있다.(한승동 선임기자) 

09. 0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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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4-11 23:17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 벤 브래들리를 기억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아요.물론 저널리스트들이야 알고 있겠지만요. 호프만과 레드포드가 나왔던 All The President's Men에서 밴 브래들리의 연기를 했던 제이슨 로바드는 정말 멋졌습니다.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라는 전통적인 구호가 가장 잘 어울리는 편집장 역할이었습니다.영화 속의 워싱턴포스트 에디터 회의는 명연기자들의 집합소였지요..이름들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을 보면 알만한 훌륭한 연기자들...

로쟈 2009-04-12 12:05   좋아요 0 | URL
이미지를 찾다보니 편집부 사진이 눈에 띄더군요. <미디어 모노폴리>를 보면 현재의 미국 언론시장이 그다지 민주적이지 않은데, 워터게이트 특종 같은 건 더이상 나오기 힘든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