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지젝!>(2005)이 충무로 역내에 있는 재미동 극장에서 상영된다. 오늘은 벌써 상영이 끝났고, 내일 오후 3시에 두번째 상영이 있다. 어쩌다가 이 영화의 자막 번역과 간단한 해설강의를 맡게 되어 저녁시간을 충무로에서 보냈다. 내일은 강연 없이 영화상영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음놓고(?) 광고를 해둔다(영화의 서두부분은 http://www.youtube.com/watch?v=DhDuYfZa5dE 참조).  

지젝 Zizek!

감독_아스트라 테일러_Astra Taylor
다큐멘터리, 71분

12월 재미동 극장에서는 우리 시대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로 꼽히는 슬라보예 지젝에 대한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지젝!>을 상영합니다. 정신분석학에 기대어 우리 시대의 정치적 문화적 사건에 접근하는 지젝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내밀한 경험을 제공하게 될 것 입니다.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극장
12월 15(금) 오후 7시, 강연 후 상영
12월 16(토) 오후 3시
문의: 02-2273-2392



<지젝!>은 우리시대의 ‘괴물’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이며 문화이론의 엘비스, 슬라보예 지젝과의 만남을 제안한다. 유럽의 변방 슬로베니아 출신의 이 걸출한 철학자는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을 통해서 영미의 이론시장에 등장한 지 15년 만에 ‘우리 시대의 거장’이 되었다. <지젝!>은 이 거장에 관한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이자 다면적 초상화이다. 지젝의 애독자들에게 이 영화는 그의 개인적인 취향과 사생활까지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지젝이 누구인가?’를 묻는 이들에게는 이데올로기와 믿음, 혁명과 유토피아, 그리고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선사할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지젝은 그의 지적 원천이기도 한 라캉이 난해하다는 주장은 ‘계급적 프로파간다’라고 말한다. 그와 동일한 맥락에서 지젝이 난해하다는 주장은 ‘적들의 프로파간다’일 따름이다. 이 영화는 그걸 증명해준다.(로쟈)

아래는 강의자료인데, 20-30분 분량으로 지젝과 이 영화에 대해서 짤막하게 소개하는 것이기에 대략적인 내용만 추렸다. 토니 마이어스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에 대한 서평을 약간 변형시킨, 지젝 소개는 생략하고 영화의 대략적인 아웃라인만을 옮겨놓도록 한다.

<지젝!> 리허설 

 #1. 불균형(실수)의 산물로서의 우주와 사랑

#2. 부에노스 아이레스 강연: “지구의 종말을 상상하는 게 손쉬워진 만큼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화는 점점 더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것이 우리시대의 패러독스이며, 우리는 유토피아를 다시 발명해내야 한다. 유토피아는 가장 긴급한 요구의 문제이다.”(+파시즘과 스탈린이즘)


#3. “슬라보예 지젝은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온 라캉주의-맑시스트 철학자이다. 그는 히치콕, 레닌, 오페라, 9.11 테러 등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서 많은 책들을 썼다. 그의 저작에서 지젝의 목표는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적 비판과, 자본주의가 대중의 상상력에 작용하는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한 정신분석적 폭로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4. “난 인간이 아닙니다. 난 괴물입니다.” - 지젝의 부엌과 서재.


#5. 슬로베니아 대선토론회에서의 지젝. “우리는 당신의 아이큐가 여기 모인 후보들의 두 배는 된다는 걸 압니다.”


#6. 지젝의 이데올로기론: “이데올로기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맑스의 <자본론>의 유명한 문구일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한다.’(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의 근본적인 차원은 사태의 진상을 가려주는 환영(illusion)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현실을 구조화해주는 (무의식적) 환상(fantasy)이다.”(<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영미와 독일, 프랑스의 화장실 이야기.  


#7. 컬럼비아대학 강연. 냉소주의 시대의 믿음. “아무것도 믿지는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도 더 많이 믿는다.”


#8. 파란 잉크, 빨간 잉크 이야기. 편지 검열에 대한 약속: 파란 잉크로 쓰면 진실이고, 빨간 잉크로 쓰면 거짓말이다. 파란 잉크로 씌어진 편지: “모든 게 만족스러워. 빨간 잉크가 없다는 것만 빼면.” ->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모든 자유를 갖고 있다는 데 동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거기에 이것만 덧붙이면 된다. 유일하게 없는 것이 ‘빨간 잉크’라는 사실. 우리는 우리의 부자유를 말할 수 있는 언어를 갖고 있지 못하기에 ‘자유롭다고 느낀다.’


#9. 지젝의 학창시절(영어와 러시아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한 까닭)과 백수시절(반체제 관리대상자).


#10.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1901-1980)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자료화면(1974년 국영TV). “나는 언제나 진리를 말합니다. 하지만 진리의 전체는 아닙니다. 전체를 말한다는 것은 물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전체를 말할 수 있는 충분한 말이 없습니다. 이 불가능성은 진리를 ‘실재’에 가까운 것으로 만듭니다.”(라캉) -> “라캉의 텅빈 제스처는 사기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라 주장/논리이다. 나는 철저한 계몽주의자이다. 나의 작업은 라캉을 명료한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지젝)


#11. CN8 방송의 ‘나이트비트’ 초대석. 전제적 아버지와 관용적 아버지.


#12. 아버지 지젝. “나는 걔를 사랑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죠. 이거 아주 절박합니다.”

 

 

 

#13. 철학. “철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재정의하는 것이다 철학은 아주 겸손한 학문이다. 철학은 단지 ‘네가 이것이 참이라고 할 때 의미하는 게 뭐냐?’라는 식으로 질문할 따름이다. 그런 겸손함이 역설적이지만 철학의 위대성이다.”


#14. 오늘날의 쾌락주의는 절제의 쾌락주의와 결합돼 있다. 카페인 없는 커피나 섹스 없는 섹스(사이버섹스) 같은. “만약에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생각과는 반대로 법의 부재는 금지를 일반화한다. “만약에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금지된다.”(라캉) 오늘날의 문제는 금지들을 금지시키는 게 아니라 ‘즐기라는 명령’(외설적 초자아의 명령)을 제거하는 것이다.


#15. 지젝의 신경증. 정신분석 비난에 대하여. <문명 속의 불안>이 의미하는 것. 왜 라캉과 맑스를 결합시키느냐? (나보다) 라캉이 먼저 그랬다.


#16. 맑스의 잉여가치, 라캉의 잉여향락으로서의 대상a, 초자아의 패러독스: “더 많이 먹고 마실수록 더 많은 갈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초자아에 더 많이 복종할 수록 더 많은 죄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17. 지젝의 식사. “그들은 채식주의자이던데요.” “타락(퇴행)이야. 다시 원숭이가 될 거요.”(지젝) “나는 <오페라의 두 번째 죽음>처럼 겸손하게 아무말도 안하는 책을 좋아합니다.”


#18. 지젝의 집에 걸려 있는 스탈린 초상화. “사람들에게 겁주려고 걸어놓았죠.” 파시즘/스탈린이즘에 대한 지젝의 생각.


#19. 비행기 이동과 뉴욕에서의 강연. 새로운 대답을 찾는 좌파의 함정. “우리는 혁명 없는 혁명을 원한다.”


#20. 지젝의 쇼핑. 지젝의 베스트무비 3.


#21. 버소출판사에서의 지젝. 대표작 네 권과 신작 <시차적 관점>의 내용.


#22. 지젝의 ‘글쓰기 없는 글쓰기.’ “나는 아이디어를 적어놓는다. 그리고 편집한다.”


#23. 보스턴에서의 강연.  “나는 교조주의적 라캉주의자인가? 나는 머리에 써붙이고 다니는 라캉주의자이다. 나는 코미디언인가? 나를 유명하게 만든 건 나를 진지하게 간주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래서 일종의 공개적인 자살을 감행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


#24. 지젝의 자살?..


#25.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06.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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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차적 관점이 요구하는 것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13 23:50 
    이번주 한겨레21의 출판면 기사를 옮겨놓는다.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에 대한 간략한 리뷰이다. 아스트라 테일러의 <지젝!>에 대한 페이퍼와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을 다룬 '레닌주의와 대중유토피아'를 같이 참고할 수 있다.    한겨레21(09. 04, 20) 정치 경제, 두 겹의 싸움이 필요하다 아스트라 테일러의 다큐멘터리 영화 <지젝!>(2005)에서
 
 
자꾸때리다 2006-12-1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금요일 가고 잡다. 근데 스케쥴이 겹치네염. (근데 로쟈 님 본명이 노 총각 가수하고 같군요.ㅋ)

로쟈 2006-12-15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가 오히려 고유명사처럼 돼 버렸습니다(글구, 어느 금요일은 말씀하시는지?)...

자꾸때리다 2006-12-15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이 금요일이었군요. 헐. 그럼 내일 3시에는 갈 수 있을 듯. 근데 여기 공짜예요? 제가 동국대 자주 드나드는데 공짜면 꼭 가보고 싶은.....................

로쟈 2006-12-15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무료입니다...

nada 2006-12-16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 지젝 너무 웃기시다.. 아, 다음주면 좋을 텐데.. 나중에 볼 수 있는 기회나 경로가 있을까요?

로쟈 2006-12-16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영화라서 찾으시면 구해보실 수 있을 겁니다...

다크아이즈 2006-12-16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가 해설하는 지젝의 자살? 구미가 당기지만 그림의 떡이네요. 저 그림 속 지젝을 둘러싼 군중들이 부럽네요. 열심히 찾는 자에게 '떠도는 영화'가 접수될까요?

로쟈 2006-12-17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젯밤부터 컴퓨터가 먹통이어서 발빠른 댓글을 달지 못했습니다. '지젝의 자살'은 그가 연출한 자살입니다. 히치콕의 '버티고'를 흉내낸, (대중이 기대하는) '코미디언' 지젝의 자살. 영화는 저도 한 사이트에서 다운받은 적이 있습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으실 겁니다.^^

어부 2006-12-20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매우 유익한 감상이었습니다.. 감사를.. 그런데 한가지. 자막 작업의 기준이 궁금하긴 했습니다. 영어 코맨트를 제외한 화면에 삽입된 영문 캡션들이나 불어대화들에 대한 영문자막들은 번역을 생략하셨더라구요.. 저같은 잉글리쉬 페이션트들에겐 약간의 열등, 소외감을 느끼게 하긴 했다는... ^^

로쟈 2006-12-21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사전에 언급되었으면 좋았는데, 자막파일에 인서트 화면들은 들어있지 않아서 자막으로 집어넣지 못했습니다(그러니까 자막을 처넣을 공간이 파일에는 없었거든요). 시간이 좀 넉넉했다면 기술적으로 알아보고 마저 번역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제가 거기까지 주문받은 건 아니었고요, 오타/오역들도 없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또 기회가 있다면 보완할까 생각중입니다. 혼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