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아트앤스터디의 강좌 중에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라는 게 있다(http://blog.naver.com/artnstudy?Redirect=Log&logNo=110081840384). 문화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택광 교수의 강좌인데, 교재로 예고된 책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글항아리, 2010)가 이번주에 출간됐다.   

 

두 가지가 키워드인데, 먼저 '가이드'에 대한 설명. 책소개를 참조하면 이렇다.  

‘가이드guide’라는 꼬리표가 붙은 다소 생뚱맞은 이 책은 ‘이론의 종언’에 맞서 ‘이론의 복원’을 요청하는 문화평론가 이택광의 본격적인 이론적 퍼스펙티브가 담긴 저작이다. 지난 십 년 한국사회를 배회한 각종 패배주의와 냉소주의 중에서도 ‘이론 무기력증’이란 것이 있었다. 이것은 지력으로 사물의 본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지성주의’와 지성과 이성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먹고사니즘’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고 곧 전면화되었다. 저자는 이런 태도에 종지부를 찍고, 마르크스주의 비평과 정신분석 이론이 결합한 이론 공부와 이론적 글쓰기가 생산성과 비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저자는 푸코와 들뢰즈 이후 등장한 지젝과 랑시에르 같은 새로운 사상가들의 이론이 어떻게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유산에 발을 디디고 있으며 그들이 과거의 이론과 오늘의 정치 지형 속에서 서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분석함으로써, 2000년대 후반 이후 다시 범람하기 시작한 유럽 발 이론의 백가쟁명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독자들에게 ‘거시적 안목’을 마련해주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철학자 김영민과의 대화하던 중에 나왔다는 '인문좌파'라는 말(그러니까 김영민과 이택광이 '인문좌파'의 견본이다).   

“한국사회에서 ‘교환가치’를 갖는 고전적 인문학, 군주를 보필하고 관료를 양성하는 ‘동양적 인문학’의 유령이 느껴지는 이 인문학과 구분해서 나는 인문좌파라는 말을 사용한다. 인문좌파는 단순하게 ‘정치적 좌파’라고 규정할 수 없다. 기존의 우파와 좌파의 이념 모두를 회의하는 독특한 사유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합의된 공동체의 윤리를 의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역할이 인문좌파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개념은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개념을 창조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필연성에 붙잡혀 있는 우발성을 풀어놓는다는 말이다. 재현체계를 벗어나는 힘을 드러내는 것이 인문좌파의 일이다. 사유가 실천이라는 명제는 여기에서 정당성을 얻는다. 다르게 사유한다는 것은 공동체의 규범을 거스르는 탈영토화를 의미한다. 이 메커니즘을 지배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무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백의 동요이다.”(11~12쪽)

몇 개의 규정이 중첩돼 있는데, 기존의 우파와 좌파의 이념 모두를 회의하는 사유의 주체가 제3의 포지션이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 하더라도 '인문좌파'란 말은 그 자체로 명명효과를 갖는다. 지시대상이 없어도 의미효과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니까. 유니콘처럼. 아무려나 여러 곳에서 '인문학 가이드' 노릇을 하는 처지에서 재미있게 읽어볼 만한 책이 출간돼 반갑다(개인적으론 한 술자리에서 저자와 함께한 적이 있는데, '이론적 만담'의 최고 수준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저자는 슬라보예 지젝과 직접 통화해보겠다고 하여 일행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인문좌파'란 말이 영어에도 있는지(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그 동네의 용어로 하자면 아마도 '라캉주의 좌파' 정도가 저자의 이론적 입장이 아닐까 싶다. 마르크스와 라캉(프로이트)이 그의 문화비평의 주된 이론적 바탕이니까.  

참고로, '라캉주의 좌파'와 그냥 '라캉주의'가 어떻게 다른지는 맹정현의 <리비돌로지>(문학과지성사, 2010) 같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라캉에 대한 정치적 독해를 강조한 지젝(슬로베니아 라캉학파)을 전혀 경유하지 않은 라캉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언급하는 현대철학자는 들뢰즈/가타리와 푸코 정도이고, 알튀세르와 지젝은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란 말도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10. 04.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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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의 인문학 위기와 강남좌파 한비야
    from 당신 덕분에 꽃이 핍니다♡ 2010-04-06 17:15 
    삶의 의미나 존재의 이유,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고민하는 사람은 ‘넘사벽’이 되어 손가락질 당하고 있습니다. 넌 그런 거 생각할 여유가 있냐면서 비아냥거림을 받아야 하는 시대죠. 경영학과를 복수전공하면서 조금이라도 취업에 유리하고자 아등바등해야 하는 대학생들의 모습과 집값과 펀드, 자기 자녀가 무슨 대학 들어갔는지 열나게 이야기한 뒤 TV와 연예인 연애이야기밖에 할 게 없는 중년층들까지, 사회는 속되게 변해갔습니다.
  2. 인문좌파와 비가시적인 정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4-12 23:23 
    아침신문을 밤중에야 읽었다. 최근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글항아리, 2010)를 펴냈을 뿐만 아니라 한겨레21('노 땡큐!'란)과 교수신문의 연재(격주로 '세계사상지도'를 다룬다)를 새로 시작하는 등 문화비평가로서 '시즌2' 활동에 나선 이택광 교수의 인터뷰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사실 낮에 한겨레21에서 드라마 <추노>에 대한 칼럼도 읽었기에 이런 정도의 활동 빈도라면 '기록'해두어야
 
 
구보 2010-04-06 12:47   좋아요 0 | URL
<이론적 만담의 최고 수준>에 호기심이 생깁니다.
넘치기 마련인 출판사 카피가 아니라서 더 궁금하네요.

로쟈 2010-04-07 01:09   좋아요 0 | URL
술자리 만담과 책은 또 다를 수 있는데, 여하튼 재미는 있을 거 같아요...

시몬느 2010-04-06 20:0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어제 다지원에서 인사드린 인디고 서원의 박용준입니다.
어제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왔습니다.
어제 하루종일 이사를 하고, 강의를 갔더니, 강의 중간에 졸음이 와서...죄송했습니다. ^^

강의 내용뿐 아니라 '이론 투쟁'에 관한 선생님의 언급이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의미를 둘러싼 투쟁.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그리고 늘 선생님의 건승을 빕니다!
다음에 또 인연이 닿아 뵐 수 있기를... :)

로쟈 2010-04-07 01:0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책은 뜻밖의 좋은 선물이었어요.^^

비로그인 2010-04-06 20:34   좋아요 0 | URL
"합의된 공동체의 윤리를 의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역할이 인문좌파의 몫이기 때문이다." ... 그냥 '철학자'나 '지식인'의 기본덕목 아닐까요? 좀더 뚜렷한 상이나 규정이 있어야 저처럼 개념이나 실천이 짬뽕인 사람들이 헷갈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여간 저는 "The Left"부터 좀 읽어봐야겠습니다.

로쟈 2010-04-07 01:10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지시대상이 모호하다고 적었는데, 사실 저자도 그냥 수사라고 했어요...

phrensy 2010-04-07 03:19   좋아요 0 | URL
좋은 소개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10-04-14 23:36   좋아요 0 | URL
^^

bplat 2010-04-14 17:52   좋아요 0 | URL
이거 추천하시는 거 맞죠? 로쟈님이 추천하시는 책이라면 믿고 질러봐야겠네요ㅎㅎ 그렇지 않아도 이제 한물간 취급을 받는 루카치를 다시 읽어보자는 문단 제목에 확 꽂혔었는데.. 이 책이 절 제대로 입문시켜 주면 좋겠네요. 물론 그전에 베이스가 어느 정도 있어야겠지만..

로쟈 2010-04-14 23:36   좋아요 0 | URL
가이드삼아 읽으셔면 될 거 같아요.^^
 

어제 마쓰오카 세이고에 관해 포스팅하기 전에 올리기 전에 고심했던 건 이론물리학자 리 스몰린(1955- )에 관한 페이퍼였다. 지젝의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개정판 서문을 읽다가 보게 된 이름이고 바로 '뒷조사'를 해둔 터였다. 국내에는 <양자중력의 세 가지 길>(사이언스북스, 2007)이 소개돼 있고, 짧은 글을 담은 책도 두 권쯤 나와 있다.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마이리스트로 처리해놓는다. 저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 연구소인 페리미터 연구소의 연구원과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의 물리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리 스몰린은 상대성 이론과 우주론을 양자론에 통합하려는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혁명가적인 이론 물리학자이다. 현대 이론 물리학의 양대축이 고리 양자 중력 이론과 초끈 이론을 통일하려는 연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그는 우주론과 이론 물리학에 대학 다양한 책을 쓰기도 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코스모스의 삶>,<물리학의 말썽거리>등이 있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그의 책 두 권도 마저 소개되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컴퓨터와 인공지능>이라는 네 번째 책이 내년에 나오는 걸로 예고돼 있다). 위키백과에서 그의 나머지 책은 각각 <우주의 일생(The Life of the Cosmos)>(1999)과 <물리학의 문제점: 끈 이론의 부상, 과학의 쇠퇴, 그리고 그 다음에 무엇이 오는가(The Trouble With Physics: The Rise of String Theory, the Fall of a Science, and What Comes Next)>(2006)로 표기됐다. 지젝이 언급하고 있는 건 후자다. 이론물리학자의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미치오 가쿠 이후에 오랜만이다.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강의>(책갈피, 2009)부터 다시 읽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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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ouble with Physics: The Rise of String Theory, the Fall of a Science, and What Comes Next (Paperback)
Lee Smolin / Mariner Books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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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 리 스몰린이 들려주는 물리학 혁명의 최전선
리 스몰린 지음, 김낙우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9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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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Roads to Quantum Gravity (Paperback, Reprint)
Lee Smolin / Basic Books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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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the Cosmos (Paperback, Revised)
Lee Smolin / Oxford Univ Pr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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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0-04-06 00:19   좋아요 0 | URL
읽어보셨다는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개정판은 국역본인가요? 새로 번역되어 나온다면 꼭 읽어보고 싶네요. 건강하시죠?^^

로쟈 2010-04-06 00:45   좋아요 0 | URL
영어본 개정판입니다. 지젝의 새 서문만 다시 붙어 있어요. 라클라우의 서문 대신에. 국역본은 절판됐는지 다시 안 나오네요...

비로그인 2010-04-06 20:40   좋아요 0 | URL
로쟈님 옛날 시집 서문에서처럼 재밌는 과학 응용담을 기대합니다.

로쟈 2010-04-07 01:11   좋아요 0 | URL
어느 시집을 말씀하시는지요?^^:

비로그인 2010-04-07 09:18   좋아요 0 | URL
자작시집 한 권 '자체제작'하신 적 있지 않았나요? (엉뚱해서 기억에 남았어요. 소싯적 로쟈님이 그런 깜찍한 짓을 하셨다는 사실이^^).
하여간 제가 말하는 글 자체는 이거요.
http://blog.aladdin.co.kr/mramor/777665

로쟈 2010-04-07 18:39   좋아요 0 | URL
아, 그거였군요.^^ 자작시집은 댓 권쯤 만들었어요. 소싯적 일이지요.^^;
 
나루케 마코토-김훈-기타노 다케시

알라딘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마쓰오카 세이고의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추수밭, 2010)를 읽었다. 지난 금요일에 서점에 잠깐 들렀다가 무슨 책인가 싶어 펼쳐봤는데, 우연히도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다. 자신의 '링크를 늘리는 편집적 독서법'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니시다 기타로의 책과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책과 오오시마 유키코의 만화책과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책과 롤랑 바르트의 철학책이 있다고 합시다. 제가 이 책들을 읽고 나면 거기에는 다양한 '메모' '강조' '내용 분류' '인용 대상'이 남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별도의 노트에 각 항목별로 옮겨놓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작업은 머릿속에서는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해보면 알게 됩니다만, 니시다 기타로와 타르코프스키와 오오시마 유키코와 에도가와 란포와 롤랑 바르트의 일부 구절이나 문장은 놀랄 정도로 같은 항목에 속하거나 인접해 있습니다.(156쪽) 

이전에 읽은 나루케 마코토의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뜨인돌, 2009)와는 종류가 좀 다른 책이란 생각이 들어서 수중에 넣기로 했다. 가령 나루케와 달리 마쓰오카는 문학을 존중한다. 그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꼭 읽었으면 하는 책'으로 추천하는 작가가 도스토예프스키이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에피스드도 털어놓고 있다. 나도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읽은 소설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다.   

여하튼 타르코프스키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그날 버스 안에서 반쯤 읽고, 오늘 저녁을 먹고 나머지 반을 읽었다. '지의 거인'(나루케 마코토)이나 '독서의 신'이란 평판을 얻고 있는 저자의 독서법을 일목요연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유익했다. '책쟁이'나 '독서가'라면 다른 명망가의 서재를 한번쯤 엿보고 싶은 호기심도 갖고 있는 것이니까. 읽다 보니 '다독술'보다는 그의 '편집공학', 그러니까 저작술이 궁금해서 <만들어진 일본>(프로네시스, 2008)이나 <지의 편집공학>(지식의숲, 2006)도 읽어보려 한다. 다독술 자체는 크게 새로울 게 없지만, 요즘처럼 원고에 치일 때 도움을 받을 만한 뭔까 뾰족한 (편집공학적) 글쓰기 수단이 있을까 싶어서다. 그런 게 있다면 좀 알아두어야겠다(밀린 일들 때문에 휴일마다 '우울증'에 시달리느니!).  

이미 리뷰들이 많이 올라온 책이라 내용에 대해선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것 같고, 두 가지 생각할 거리와 오류에 대한 지적만 챙겨놓도록 한다. 생각할 거리란 건 독서문화와 관련된 것인데, 먼저 북클럽 얘기. 마쓰오카에 따르면 서양과 달리 일본에서도 별로 발달하지 못한 게 북클럽이다.  

"북클럽은 일종의 독자 조직입니다. 물론 책을 읽고 책을 사랑하기 위한 조직이나 모임입니다만, 여기에서 책을 공동 구입하거나 배포하는 행위가 일어납니다. 독일에서는 연간 2,000만 권 정도가 북클럽을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도 이런 북클럽 회원이 약 1,000만 명 이상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258쪽)

일본에서는 왜 이런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는가란 원인을 분석하면서 마쓰오카는 그 중 한 가지로 교육 문제를 든다. "서양에서는 어린이 교육의 중심을 '다독'과 '토의'에 두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260쪽)라는 게 그의 주장이고 나도 전폭적으로 공감한다. '경쟁력 교육' 같은 헛소리를 늘어놓기 전에 '독서 교육'이나 제대로 하면 좋겠다.  

그리고 역자와의 대담에 나오는 것인데, 일본의 대형서점 마루젠 본점에 '마쓰마루' 서점을 오픈했다는 얘기. 마쓰오카의 '마쓰'와 마루젠의 '마루'를 결합한 이름으로 책의 분류나 배열을 모두 마쓰오카가 기획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일반서점의 도서 분류법 대신 새로운 방법으로 책을 배열하고 있습니다. 잡지나 단행본, 문고판, 고서, 수입서가 하나의 책장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책이 똑바로 꽂혀 있지 않고 일부러 옆으로 눕혀 놓은 책도 있고, 겹쳐서 꽂아 뒤의 책이 잘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그리고 같은 책이 여기저기에 여러 권 꽂혀 있기도 합니다."(293쪽) 

개인 서가라면 모를까 일반서점에서 이런 독창적인 분류/배열을 시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대학로의 이음책방 정도가 떠오르는데, 규모가 너무 작다는 아쉬움이 있다. 서점마다 할인율이나 인테리어로 경쟁하기보다는 이런 개성적인 분류/배열 방식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오류라고 한 건 대단한 게 아니라 표기와 정보에 관한 것이다. 73쪽에서 니체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 '루 자로메'는 '루 살로메'가 우리의 통용 표기이고, 156쪽 각주에서 타르코프스키 소개에 나오는 <버찌 통조림>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작품이다. 무얼 잘못 읽어야 '버찌 통조림'이 되는 것인지? '벤야민'(73쪽)과 '베냐민'(214쪽) 표기에 혼동이 있고, 211쪽 각주에서 푸코의 책 <광기와 비이성>은 무얼 말하는지 모르겠다. <광기의 역사>라면 일본에서도 그렇게 번역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215쪽, 도나 해러웨이의 <원숭이와 여자와 사이보그>는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동문선, 2002)로 번역돼 있다.  

끝으로, 일본 출판계에 대한 부러움을 갖게 한 책 두 권. 사실 일본책을 종종 들여다보면서 얻는 수확은 서지정보이다. 때론 본문보다도 그러한 '디테일'에 더 이끌리기도 한다. 마쓰오카의 강점은 과학책도 열심히 많이 읽었다는 것인데(하지만 대학은 불문과에 진학하는 '바보짓'을 했다), 그건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다. 어떤 식으로 읽었나?  

"처음에는 이른바 명저라고 불리는 책을 구하거나 도서관에서 찾아 읽어야 할 목록을 만듭니다. 양자역학은 폴 디락이나 도모나가 신이치로입니다. 전자기학은 역시 파인만이고, 상대성이론이라면 아인슈타인이지요."(71쪽) 

 

이런 책들이 처음엔 '이빨'도 들어가지 않지만 다른 참고서나 비슷한 유형의 책으로 보충해나간다는 것. 도모나가 신이치로는 1965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의 물리학자라 한다. 국내에도 <물리학이란 무엇인가>(사이언스북스, 2002), <유카와 히데키와 도모나가 신이치로>(범양사, 1994), <양자역학적 세계상>(전파과학사, 1974) 등이 소개돼 있다. 파인만이나 아인슈타인은 물론 국내에도 여러 책들이 나와 있다.    

  

문제는 폴 디락. 교양과학서에서 자주 이름을 접하지만 국내에 디락의 책이나 강의는 소개돼 있지 않다. 찾아보니 일본에서는 폴 디락의 <양자역학>이 1959년에 이와나미에서 번역돼 나왔다. 이게 현재의 '수준차'가 아닌가 싶다. 한 끝 차이일까? 사실을 말하면 두 끝 이상의 차이다. 자신의 독서일기 <센야센사쓰(千夜千冊)>(전7권과 부록으로 일단 간행됨)에 대해 소개하면서 마쓰오카가 다독술의 핵심인 '키북'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 

"그리고 제3권의 10장 '이미지의 극장'에서는 발트루 사이티스의 <환상의 중세>, 루돌프 비트코베어의 <이미지와 상징>, 프란시스 예이츠의 <세계극장>, 그리고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파사주)와 스기우라 고헤이의 <형태의 탄생>이지요. 이 책들에서는 몇 백 권의 책이 연쇄적이고 중층적으로 연결됩니다."(214쪽)

  

거명된 책 중에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형태의 탄생>은 우리에게도 소개되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권은 먼 나라의 책들이다(비트코베어의 다른 책으로 <르네상스 건축의 원리>(대우출판사, 1997)는 검색이 된다).   

특히 '리투아니아의 상징주의 시인이자 번역가'로 소개되는 '발트루 사이티스Baltru Saitis'란 이름이 눈에 밟히는데, 일단 이름부터가 잘못 표기됐다. '요르기스 발트루사이티스Jorgis Baltrusaitis'다('발트루샤이티스'라고 읽는 게 발음에는 더 가깝다). 이름도 오기할 정도로 생소하니 소개됐을 리는 만무하다. 영어권에도 형태에 관한 에세이 한 권이 소개돼 있는 정도이고, 불어로나 책들이 좀 나와 있다. 아래가 불어본 <환상의 중세>. 이게 일어본으로는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것도 '격차'라면 앞으로 더 좁혀지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일본에서도 잘 안되고 있다는 북클럽을 좀 활성화해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고민들을 해보면 좋겠다... 

10. 04. 04. 

P.S. 독서가로서 마쓰오카 세이고가 떠올려주는 국내인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과 장석주 문학평론가다. 두 사람의 편집공학과 다독술을 결합하면 얼추 마쓰오카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한기호 소장이 마쓰오카에 대해 소개한 칼럼이 있기에 참고삼아 옮겨놓는다.  

 

한겨레(07. 08. 04)[한기호의 출판전망대] 매너리즘 사고를 뒤집고 싶다면 

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대학 4학년 때 아버지가 상당한 빚을 남겨놓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매달 대졸 초임 월급의 2.5배 정도를 갚아도 얼추 5년이 걸릴 정도의 거액이었다. 어머니는 울며불며 네가 빚을 갚아달라고 매달렸다. 순간 이것으로 인생 끝났구나 하는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여러 방안을 모색하다 그는 광고대리점에 취직했다. 딱한 사정을 들은 대리점 사장은 급여는 높게 책정할 수 없지만 커미션(마진)은 나름대로 생각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광고 하나씩 따내서는 결판이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생각해낸 것이 두 개씩 한 쌍의 광고를 따내는 것이었다. 맥스 팬터와 전일본항공, 산토리위스키와 토라야, 대의류옥과 BIC볼펜, 학생 원호회와 게키단 사계 등의 조합이었다. 화장품(맥스 팬터)과 비행기 타기(전일본항공)에서 ‘나들이’라는 연결점을 찾아냈듯이 두 회사나 두 제품 사이의 ‘어떠한 관계’, 즉 한 쌍으로 묶을 만한 무언가를 찾아낸 것이다.

문제는 한 쌍을 어떻게 관계 설정하는가였다. 그래서 밤마다 타깃을 몇 개인가 선정해 놓고 한 쌍을 선택해서 기획안을 짰다. 그러자면 전체 스케치도 필요했고 때로는 가상 캐치프레이즈나 카피도 붙여야 했다. 매일 철야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밤을 새워가며 아침까지 준비했다. 준비가 끝나면 두 회사에 기획서와 전체 스케치를 갖고 찾아갔다. 절대 사적인 인맥은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주위의 소개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일은 상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그렇게 즐기는 과정에서 예상했던 5년보다 2년이나 빨리 빚을 갚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돈보다 더 소중한, 인생 전체를 좌우할 무척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나아가 어떤 기업이나 상품(제품)은 모두 ‘새로운 관계의 상대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실태와 책과 정보는 무언가와 연결되고 싶어서 좀이 쑤신 상태이다 보니 정보는 절대로 혼자서 존재할 수 없었다.

오늘날 하나의 업종은 종적 관계로, 시장은 철저히 세분화되어 있어 날개를 펼치기가 쉽지 않다. 또한 날개를 달아도 어디로 날아가면 좋을지를 알기 어렵다. 기업과 상품뿐 아니라 학문과 기술도 무언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지만 좀처럼 연결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광고를 따낸 경험을 통해 이러한 현실의 이면에는 어떤 질곡이 있음을 느꼈고 그것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어떤 것이든 ‘의미’를 갖고 있겠지만, 현실 사회와 경제에는 이러한 의미가 자유롭게 적용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고, 어떤 영역의 어떠한 사물과 사정에도 적합한 ‘의미 확장 방법’을 생각해서 그 방법을 조금씩 형태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에디팅 프로세스(Editing Process)’라고 말할 만한 의미의 변용과정이 언제나 다이내믹하게, 또한 분류와 영역을 넘어서서 관련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편집공학’(Editorial Engineering)이다. 이 사람은 <지知의 편집공학>(넥서스), <지식의 편집>(이학사) 등의 저서로 국내에서도 지명도를 얻고 있는 마쓰오카 세이고다. 녹슨 가슴과 매너리즘에 빠진 사고 습관을 확 뜯어고치고 싶은 분이라면 이 여름에 한번 그의 책을 펼쳐보기를 강력하게 권한다.(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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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4-05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 떠오르는 페이퍼네요. 경영할만한 지식도 없는데 무슨 소용에 닿을까 싶어 회의하면서도 각 장을 덮을 때마다 이 책의 가장 훌륭한 리뷰는 실천이라고 다짐했었는데 방법적인 면에서 '편집공학'과 비슷한 것 같아요. 로쟈님의 마지막 문장 특히 '강력하게'에 기대어 반드시 읽어봐야겠습니다.

로쟈 2010-04-05 10: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산도 편집공학의 원조쯤 되겠네요. '강력하게'는 제 추천은 아니지만, 지식생산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해요...

2010-04-05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6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관내 시립도서관에서 대출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레, 2008, 초판1쇄) 반납일이어서 부랴부랴 번역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를 적는다. 내가 읽은 건 <마음>(문예출판사, 2006, 5쇄)이고, 이레판과 웅진판 <마음>(웅진지식하우스, 2010, 재판9쇄)을 참고했다. 범우사판이 가장 먼저 나온 듯하지만,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판본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히는 건 문예판-이레판-웅진판 순이다(적어도 알라딘에서는 그렇다). 

  

일본소설의 번역을 대조해서 읽은 건 기억에 처음이지 싶은데, 작가가 나쓰메 소세키 정도라면 그런 수고를 무릅쓸 만하다. 그래서 더 거창하게 '나쓰메 소세키를 읽기 위하여'란 페이퍼도 구상을 했었지만 3월엔 여유를 얻지 못했다. 몇몇 작품을 더 읽게 되면 나대로 정리를 해볼 계획이다.   

간단히 적으려고 하는 건 현재 가장 많이 읽히는 문예출판사판의 몇 가지 오역이다. 작품의 핵심이 되는 '선생님과 유서' 장은 번역본들마다 문체가 달라서 어느 것이 더 나은 번역인지 판별하기 어렵다. 당장 문예판과 이레판에서 "나는 올 여름 자네로부터 두세 통의 편지를 받았네."라고 옮긴 첫 문장이 웅진판에서는 "나는 이번 여름에 당신에게서 두세 번 편지를 받았습니다."로 돼 있다. 그런 경어법이 원문의 뉘앙스에  더 가까운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느낌은 상당히 달라진다. 거기에 '선생님'이 하숙집 여주인을 부르는 호칭에서도 차이가 나는데, 가령 이런 식이다.  

"나는 주인 아주머니를 늘 사모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여기서도 사모님이라 칭하겠네."(문예판)   
"나는 주인집의 미망인을 항상 사모님이라고 불렀으니, 이제부터는 사모님이라고 부르겠네."(이레판) 
"나는 미망인을 늘 아주머니라고 불렀으니까 이제부터는 아주머니라고 부르겠습니다."(웅진판)

한번 부르고 마는 거라면 별로 상관이 없지만, 이 작품에선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호칭이기 때문에, '사모님'과 '아주머니'는 작품의 색깔마저도 달라지게 한다.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아주머니'는 경어체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아주머니'는 높임말의 쓰임도 갖지만 요즘은 예삿말로 보통 사용되기 때문이다). 번역본은 그런 차이를 고려하여 선택하면 될 듯싶다. 다만, 문예판에서 몇 대목은 교정이 필요하다. 먼저 작품의 서두 부분.  

"나는 그분을 언제나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러니 여기서도 그냥 선생님이라 칭하고 본명은 밝히지 않겠다.(...) 나는 그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곧바로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붓을 쥐고 글을 쓸 때에도 마음은 한결같다. 나에게조차 낯선 이름으로는 도무지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문예, 8쪽) 

"나는 그분을 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그냥 선생님이라 쓰고 본명은 밝히지 않겠다.(...) 나는 그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금방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펜을 들어도 그 마음은 마찬갖지다. 어색한 머리글자 따위는 도무지 사용하고 싶지 않다."(이레, 8쪽) 

"나는 그분을 언제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그냥 선생님이라고만 쓰고 본명은 밝히지 않겠다.(...) 나는 그분의 기억을 되새길 때마다 금세 '선생님' 하고 부르고 싶어진다. 펜을 들어도 마찬가지 기분이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니셜 따위는 쓸 생각이 전혀 없다."(웅진, 9쪽)   

'나'는 그를 항상 '선생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에 관해 쓰면서도 이름 대신에 '선생님'이라고 부르겠다는 것. 이름(본명)을 밝히지 않는 방법으론 이니셜을 쓰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고 싶진 않다는 것. 뭔가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이유에서다. '선생님과 유서' 장에서 선생님은 자신의 친구를 K라는 이니셜로 부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나'와 '선생님'과의 차이도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이니셜을 쓰고 싶진 않다"는 내용으로 옮겨져야 하는데, 문예판은 "나에게조차 낯선 이름으로는 부르고 싶지 않다"라고 다소 모호하게 옮겼다(이름과 이니셜의 차이가 지워졌다).  

그리고 사소한 것으로 "친구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어느 자본가의 아들로 경제적으로 별 부족함이 없었지만 같은 학교에 나이도 나이니만큼 생활하는 수준은 나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문예, 9쪽)라고 한 대목. 다른 번역본을 보면 여기서 '중국(中國)'은 '주고쿠 지방'을 가리킨다. 중부지역의 5개 현을 일컫는 말이라고(당시 중국은 '지나'라고 썼겠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어느 자본가"는 "주고쿠 지방의 한 자산가의 아들"(이레)이나 "주고쿠 지방의 부잣집 아들"(웅진)이라고 옮기는 게 맞겠다.   

부주의에서 빚어진 오역으론 이런 대목도 있다. '내'가 선생님 댁에서 술을 마시게 된 상황에서 선생님과 사모님이 나누는 대화 장면이다.  

"오늘 웬일이세요. 저한테 잔을 권한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요."
"내가 당신 싫어하잖아. 그래도 가끔씩은 마셔도 되지. 기분이 좋아진다구."(문예, 30쪽)

"웬일이세요. 좀처럼 저한테 술을 권하지 않으시는 분이." 
"당신이 싫어하잖아. 그래도 가끔씩은 마셔도 괜찮아. 기분이 좋아진다니까."(이레, 29쪽) 

"별일이 다 있네요. 나한테 마시라고 한 적은 웬만해서 없었는데."
"당신이 싫어하니까 그랬지. 하지만 가끔씩은 마셔 보라구. 기분이 좋아질 테니까."(웅진, 27쪽)
 

문예판에선 원문에도 없을 법한 '내가'가 왜 삽입됐는지 모르겠다. 이보다 더 중요한 대목은 '나의 아버지'가 천황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접하며 매일 아침 신문 기사를 챙겨 읽다가 하는 말이다.  

"이것 좀 봐라. 오늘도 임금님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왔다."
아버지는 천황을 늘 임금님이라고 부르셨다. "안됐지만 말이야, 임금님의 병환도 선친이 앓았던 것과 비슷한 모양이야."(문예, 129쪽) 

"이것 봐라, 오늘도 천자님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구나."
아버지는 천황을 항상 천자님이라고 불렀다.  
"황송한 얘기지만 천자님의 병환도 내 병하고 비슷한 모양이야."(이레, 124쪽) 

"이거 봐라, 오늘도 천자님 일이 자세히 나와 있다."
"아버지는 폐하를 항상 천자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송구스럽게도 천자님 병도 아버지 병과 비슷한 거 같구나."(웅진, 105쪽)  

'임금님'이란 번역도 아무래도 좀 과한 듯싶고 '천자님'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문제는 당시 메이지 천황이 앓고 있던 병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당뇨병'이었다는 것(메이지 천황은 당뇨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황송한 일이긴 하지만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미천한 자신도 아직 살아있으니까 천황도 괜찮을 거라는 얘기를 '아버지'는 덧붙인다. 그런 문맥에서 보면 "임금님의 병환도 선친이 앓았던 것과 비슷한 모양이야"라고 옮긴 것은 부정확하다.  

그리고 '장모님'의 병환에 관한 대목도 "그러는 동안에 장모님이 병으로 돌아가셨네.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보니 도전히 완치할 수 없는 병이라 했네. 나는 정성스럽게 간호해드렸네."(문예, 333쪽)라고 돼 있는데, 다른 번역본에서 "그러던 중 장모님이 병에 걸렸네."(이레, 307쪽), "그러던 중에 아내의 어머니가 병으로 눕게 되었습니다.(웅진, 265쪽)라고 옮겨졌다. 결과적으론 병으로 돌아가신 게 맞지만, 논리상 진찰도 받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 건 너무 앞지른 것이고, 다른 번역본을 보더라도 "병으로 누우셨네."정도가 맞겠다.   

참고로, <마음>을 읽는 데 참고할 만한 자료로는 윤상인 교수의 <문학과 근대와 일본>(문학과지성사, 2009)에 실린 '국민 속의 <마음> - 국민국가 이데올로기와 정전'과 가라타니 고진의 <언어와 비극>(도서출판b, 2004)에 수록된 '소세키의 다양성 - <마음>을 둘러싸고' 등이 있다. 국내 전공자들의 논문집도 나와 있지만, 학회용 성격의 책이다.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 데는 고모리 요이치의 <나는 소세키로소이다>(이매진, 2006)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자세한 작품론은 아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소세키론이 더 소개되면 좋겠다(단행본을 쓴 건 아니지만 가라타니는 여러 편의 소세키론을 쓴 바 있다)...  

10.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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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겨보아야할 죽음의 의미
    from 창조를 위한 검은 잉크의 망치 2010-04-27 12:23 
      주인공 나는 방학 중 가마쿠라 해변에서 처음 선생님을 만난다. 도쿄에 돌아와서도 정기적으로 선생님을 방문하며 선생님과 꽤 친해졌다. 그러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간 사이 선생님은 나에게 두툼한 편지를 남겨놓고 자살을 한다. 선생님의 유서에는 자서전이라 할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쓰여 있다. 외아들인 선생님은 스무 살 무렵 장티푸스로 거의 동시에 부모님을 잃는다. 부모님이 남긴 유산을 맡아 관리하던 작
 
 
반딧불이 2010-04-04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유리와 박유하를 놓고 어떤 것을 읽을 것이냐 망설이다가 박유하 번역을 선택했어요. 이렇게 비교해주시니 도움이 많이 되네요. <언어와 비극>에 실린 글은 전혀 몰랐었는데 참고해야겠습니다.

그런데 로쟈님. 일본인에게 아버지와 천황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요?

로쟈 2010-04-04 11:22   좋아요 0 | URL
그렇게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어렵구요,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엔 알다시피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하진 않았습니다. 그의 문학에 나타난 가족관계에 대해선 국내에도 연구서가 나와 있습니다. 그의 천황론은 의견이 분분하던데, 윤상인 교수의 책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론 <마음>에서 선생이 말한 '메이지 정신'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가라타니 고진의 견해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는 메이지 10년대와 20년대를 구분하고 메이지 10년대의 시대저정신을 소세키가 말하는 '메이지 정신'이라고 봅니다...

2010-04-27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7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 원인과 관련하여 어제 국방장관이 다시금 어뢰를 지목하고 어뢰의 파편을 찾겠다고 나섰다. 점입가경이다. 더 이상은 이 잔혹 부조리극을 관람할 용의가 없다. 거짓말을 키우면서 국방부는 아마도 자기 무덤을 파게 될 듯싶고, 상황에 따라서는 MB정부의 수명도 단축될지 모르겠다. 이 사건에 대한 가장 납득할 만한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는 칼럼을 옮겨놓는다(http://www.kookminnews.com/news/service/article/mess_03.asp?P_Index=631&flag=).  

 

국민뉴스(10. 04. 01) [포커스]나름대로 분석해본 천안함 침몰 진상 

1.아군 혹은 미군에 의한 오폭 오조준의 가능성

지금 일각에서 가장 많이 제기되는 이 가설에 대해서 가능성을 높게 상정해봤지만,다음의 몇 가지 반대되는 근거 때문에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첫째, 사고 당시 주변해역에 있었던 미해군 혹은 우리 해군의 함포 그 어느 것으로도 천안함 정도 되는 배를 한번에 두동강을 낼 수가 없습니다. 현대 해군의 함포는 적함의 상부구조물을 무력화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지 과거 전함시대의 거포처럼 한번에 적함을 바다 속으로 처넣을 수 있는 대구경 함포가 아닙니다. 물론 작은 경비정 정도는 단 일격 으로 수장이 가능하지만 만재배수량 1500톤이나 되는 천안함 정도를 한번에 두쪽을 낼 수 있는 함포는 당시 해역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함포를 두들겨 맞았다면 선체 곳곳에 피탄 흔적이 나타나야 하고 실종자가 지금처럼 후미와 바닥에 모두 쏠려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근 속초함의 연이은 함포발사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결론부분에서 다시 보충해드리겠습니다.

둘째, 현재 상황에서 천안함을 한번에 두동강을 낼 수 있는 무기는 사실상 어뢰뿐 인데, 문제는 천안함이 침몰한 위치가 어뢰나 기뢰에 피격될 수 있는 해역이 아니기에 이 역시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현대의 어뢰는 과거처럼 배 옆구리를 뚫고 들어가 폭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부분 선박의 바닥 바로 밑에서 폭발하여 거대한 수중 진공상태를 만들어 목표 선박의 용골을 비틀어 반쪽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 곳곳에 나돌아다니고 있는, 순식간에 반토막이 된 채 침몰해버리는 표적함들의 동영상이 바로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죠. 천안함 역시 어뢰에 피격되면 그렇게 함이 두동강이 날 수 있다고 가정을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천안함이 침몰된 해역은 그런 어뢰를 쓰기에는 바닥이 너무 얕다는 게 걸립니다. 미해군이건 우리건 설사 북한잠수함이라고 해도 어뢰를 발사했다면 사고 당시 천안함의 위치에서는 미처 명중되기도 전에 바다 밑바닥에 처박혀 버렸을 겁니다. 누가 어뢰를 발사했건 천안함을 현재의 모습대로 두동강을 낼려면 최소한 심도가 50미터는 되어야 합니다. 현재 천안함 침몰지점의 심도로 볼 때 불가능하죠.

다음은 기뢰에 피격되었을 경우인데, 문제는 그렇게 얕은 해역에는 기뢰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것과 만약의 경우 유실된 기뢰에 피격되었다면 천안함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침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정말 기뢰에 의한 것이라면 분명히 사망자들의 시신이나 기름과 선체조각 등 각종 부유물들이 천지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주변해역에 널려 있어야 하는데, 현재까지 해군이나 해경이 건져낸 물품들을 봐도 그렇고 생존자를 제외한 사망자들의 시신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선체의 절단면을 만져본 수중구조대원들의 증언이 선체의 절단면이 아주 깨끗하다고하니, 분명 기뢰에 의한 외부 폭발에 의한 침몰은 아닌 듯 합니다. 기뢰에 맞았다면 선체의절단면은 분명히 너덜너덜 걸레쪽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 두가지 가설들을 입증해줄 또 다른 단서는 바로 부상자들의 상처유형입니다.만약 함포에 맞았거나 어뢰 혹은 기뢰에 의해 피격되었다면 부상병들 가운데 반드시 화염이나 화약의 폭발에 의한 화상 환자들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부상자 대부분은 충격에 의한 골절상이나 타박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고 생존자들의 증언가운데 화약냄새가 없었다는 대목은 그들의 증언이 맞다는 가설 하에 어뢰나 함포에 의한 피격은 아니라는 분석이가능합니다.

2. 북한에 의한 공격가능성

일부 냉전극우들과 조중동에서 슬슬 현정권 면피를 위해서 냄새를 피우고 있지만, 몇가지 사실 때문에 사실상 아니라고 봅니다. 사고 시점이 한미 양국해군의 훈련기간이었다는 점, 당시 미해군의 이지스함 2척이 해역에 이미 들어와 있었고 우리해군의 이지스함도 작전중에 있었습니다. 미군의 첨단 군사첩보위성과 정찰시스템들이 총동원 되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시점에 감히 특수부대나 잠수함 혹은 반잠수정을 침투시켜 "긁어 부스럼"을 만들만큼 저들이 멍청할까요? 그랬다간 바로 전면전으로 치닫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그것도 고속정도 아닌 천안함 정도의 대물을 노리고서? 이미 십여년전에도 상어급 소형 잠수함의 침투경로를 출항지에서부터 추적해 모두 알고 있었을 만큼 북한의 움직임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이 자국 함정이 작전하고 있는 수역에서 이러한 북한의 움직임을 과연 용인했을까요?

또 다른 반증하나는 사고 당시 이례적으로 평양에서 직접 정찰기를 띄워 백령도까지 내려 왔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해주인근 전방 레이다나 통신감청으로 사고당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을 북한당국이 왜 평양공항에서 직접 정찰기를 띄웠을까요? 그 얘기는 좀 더 최신의 기종으로 더 상세히 상황을 파악할 필요성 때문이었을 겁니다. 평양주변에 집중 배치된, 그들에게는 가장 최신예 기종인 미그 29의 정찰카메라로 백령도일대 해역의 상황을 모니터링해야 후일 남조선 정부의 그 어떤 대응도 가능하다는 정치적인 판단이 작용했을 겁니다. 북한의 움직임은 그들도 지금 이곳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뭔가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는 소립니다. 그러니 통상적인 해주인근의항공정찰보다 더 좋은 장비를 가진 평양인근에서 출격해 직접 최고위층에 보고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그들이 뭔가 기습적인 공격을 주도했다면 이러한 예외적인 정찰은 애초부터 불필요했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이명박정부가 자신들에게 책임을 덮어씌울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했기에 정찰을 강행했다고 봅니다. 요즘 중국방문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김정일 입장에서 설사 세 번째 서해교전의 보복을 하고 싶었다 해도 지금은 뭘 감안해도 그럴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미 국무성이 이례적일만큼 빠르게 그럴 가능성을 차단해버렸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한국내 일부의 고질적인 북한신경과민증세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미 국무부의 "북한 개입 가능성 없다" 라는 발표는 그쪽으로의 사태 와전을 좌시하지 않겠다 는 미국의 의중이 담겨져 있습니다. 6자 회담 재개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에서 더더욱이나 그럴 이유가 없지요.  

3. 사건진실의 핵심: 왜 천안함이 평소 가지 않던 백령도 연안으로 침로를 잡았는가

김태영 국방장관은 천안함이 15차례나 그 해역을 지나다녔다고 발표했지만 이것은 명백히 허위진술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대 동형함종을 지휘하거나 탑승했던 예비역 제독들과 장교들 그리고 천안함에서 근무했었던 전역자들이 모두 일치되게 천안함 같은 함종이 그렇게 얕은 바다로 진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더구나 견시를내세워도 안전이 보장되기 어려운 깜깜한 밤중에 연안으로 배를 몬다? 이건 예삿일이 절대로 아니지요. 천안함보다 더작은 참수리급 고속정들도 그렇게 얕은 곳은 잘 안들어가는 해역에서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모든 진실은 거기에 전부 숨어 있는 것 아닐까요? 분명 천안함은 그렇게 얕은 바다로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부여되거나 발생하고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사고가 난 천안함은 예사롭지 않는 행동을 계속하다 결국 예사롭지 않게 가라앉았습니다. 그 사실을 깊게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 시점에서 실종자 가족들의 예사롭지 않은 증언 하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천안함이 자꾸 물이 새서 불안하다"는 실종 부사관의 아내 되시는 분의 증언.

해군의 특성상 자주 교체되는 장교들보다 한배에서 오래 근무한 부사관들 특히 기관이나 선체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부사관들이 배 자체에 대해선 더 정통 합니다. 누구보다 자기가 탄 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부사관의 입에서 물이 새서 불안하다는소리는 천안함의 상태가 뭔가 비정상적인 요소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천안함이 물이 새서 불안하다는 증언은 그 외에도 실종병사의 부모도 같은 말을 했고 주로 배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면 신빙성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게다가 지난 2차 서해교전이후 피해분석과정에서 가장 크게 대두된 사항은 바로 최전방에서 작전하는 참수리급 고속정들에게는 "천안함과 같은 초계함의 엄호가 반드시 필요하다"였고 아마도 이 때문에 천안함과 같은 초계함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예전보다 더잦은 작전에 투입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잦은 작전투입은 선체의 피로도를 과중시키는 첩경이고 그렇다면 천안함은 불과 20년이 조금 넘은 선령이지만 이미 선체의 핵심적인 부분 어디에선가는 골병이 들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이 시점에서 잠시 우리는 사고 발생시각에 대해서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비롯한 해군당국은 사건 발생 시각에 대해서 생존자들이 있음에도 계속말을 바꾸고 사건 발생시각을 은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생존자들을 지금병원에 몰아넣고 일체의 언론접촉을 막고 입단속을 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이럴까요?

그 점 역시 천안함이 예외적으로 백령도 해안에 근접했었던 사실과 무관치 않습니다. 군당국은 사고시점을 9시 30분전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제 생각에는 사고는 분명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 단적인 예로 한겨레 신문에 보도된 실종된 차균석 하사의 여자친구 핸드폰 문자메시지 단절시각을 놓고 보면 9시 15분을 전후해서 뭔가 심각한 상황이 천안함에서 발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차하사의 문자메시지를 보면 여친의 대답이 늦다고 되려 핀잔을 주던 상황에서 갑자기 15분을 전후해 비번이던 차하사의 메시지가 끊어진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국방부, 해군 그리고 생존 최함장이 말하는 것처럼 사고는 9시 30분 혹은 그 이후에 갑작스레 발생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랬다면 당시 비번인 부사관 혹은 병사들의 휴대전화 통화와 메시지들이 일제히 9시 15분을 전후해 끊어졌을 이유가 없습니다.

위 두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천안함의 이상행동에 대한 가설들을 세워보면, 선체중앙 혹은 용골등의 핵심 부위에서 균열 혹은 그에 준하는 선체의 안전을 매우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 상태가 9시 15분을 전후해 발생했고 보고를 받은 함장은 이에 전원 비상전투배치 혹은 위기시 대응행동을 명령했을 겁니다. 그랬기 때문에 비번이던 승무원들도 핸드폰을 모두 팽개치고 나갔을 거구요. 특히 선체의 기관부와 안전을 담당하던 부사관들과 사병들이 일제히 선체 하부 사고지점에 달려들어 비상복구를 하는 동안 당연히 함장은 백령도 연안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 어떤 선박도 비상상황이 되면 연안으로 접근하지 외해로 나가는 짓은 하지 않지요. 그런데 문제는 선체 하부에서 상황을 반전시키기도 전에 배는 두동강이 나버렸고, 그와 동시에 선체 하부에서 복구작업을 벌이던 거의 절반에 달하는 인원들은 미처 손쓸새도 없이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을겁니다. 틀림없이 사고지점으로 긴급 복구 작업을 위해 내려가면서 수밀격벽을 폐쇄했을겁니다. 아마도 총지휘는 실종자중 가장 계급이 높은 선임원사가 맡았겠지요.

실종된 인원 대부분이 그와 같은 임무에 투입될 위치에 있는 병사들과 부사관들이고 그에 비해서 나머지 인원들 특히 장교들이 전부 생존했던 것은 바로 그 위급한 시각에 그들이 자기 정위치인 함교나 선체 상부에 있었기에 설명이 가능합니다. 통상 수심 25미터 내외의 얕은 바다로 가지 않아야 하는 천안함이 작전상황도 아닌 그 시각에 그토록 백령도 연안으로 근접했었던 이유는 선체가 안전을 위협받고 있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배 밑바닥에 물이 엄청나게 새기 시작했던가,아니면 사람으로 치면 척추에 해당하는 배의 용골이 비틀리거나 부러져 이대로 가다간 배가 두동강이 나는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도대체 천안함 함장 최중령이 그런 얕은 바다로의 침로변경을 지시했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마도 함내 전체 비상이 발동되기 몇 시간전부터 이상징후가 보고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일부에서는 천안함이 모종의 특수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추측하고 계시지만, 만약 그런 종류의 극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면 비번의 부사관이 한가로이 여자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는 일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함정의 운영 특성상 정말 임무수행중이었다면 모두들 자기 전투위치에 서있었을 테니까요.지금 이러한 제 주장을 입증시켜줄 가장 명백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는 바로 실종자들의 평소 함내 위치와 근무장소 그리고 보직입니다. 그들 모두가 천안함이 침수 혹은 균열시 이를 복구하거나 막아야 할 임무를 가진 병사들이었습니다. 만약 함포나 어뢰와 같은 외부 피격에 의한 것이었다면 생존자와 실종자는 이렇듯 보직이 확연하게 구분될래야 될 수가 없습니다. 어뢰나 미사일, 함포에 의한 피격이라면 사망자나 실종자는 계급과보직과는 상관없이 무작위로 발생해야 맞습니다. 일부의 주장대로 만약 기뢰에 접촉했다면 틀림없이 시신들이 여기저기 사방에 떠올라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여태 그 엄청난 수색에도 불구하고 시신하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요?

그런데 지금 생존자들과 실종자들의 보직과 계급을 보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됩니다.놀랍게도 함장이하 장교들이 모두 살았습니다. 부사관과 사병들도 선체 하부 복구와 관련이 없는 부서 근무자들은 전원 무사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하는 것일까요? 분명 천안함이 백령도 연안으로 접근했어야했던 긴박했던 이유와 생존자와 실종자가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예사롭지 않은 우연은 이 사고가 분명 급작스러운 것이 아님을 말없이 대변합니다.그리고 이것이 명백한 필연에 의해 생과 사가 갈렸던 대형사고였음을 말해줍니다.그들 대부분이 선체 하부에서 뭔가 심각한 임무에 종사하다가 그대로 매몰된 채 바다에 가라앉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4. 급작스런 사고의 발생 그리고 은폐조작 시도: 석연치 않은 행동이 설명가능

근본적으로 함장의 말대로 9시 30분 무렵 갑작스런 사고 발생이라면 9시부터 사고발생시점까지의 모든 통신기록을 공개안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공개를 할 수 없습니다. 함에 심각한 뭔가가 발생한 시각은 9시 30분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죠.

구조된 이후 함장이 보고를 구실로 그렇게 빨리 현장을 떠나버렸던 행동 역시도 총체적인 조작과 상부의 구체적인 지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얘깁니다. 함장은 사건의 핵심증언자인데, 사건 현장을 그렇게 쉽게 내버려두고 도대체 어딜 그리 급하게 갔어야 했고 왜 핸드폰까지 들고서 상부에 보고를 그렇게 긴급하게 했어야 했을까요?

저의 가설에 따라 현 정권의 행동들을 분석해보면 왜 그들이 지금 저런 행동을 취하고 있을지는 보다 더 수월하게 설명이 가능합니다. 함장은 아마도 계속 가동되고 있었을 통신을 통해서 천안함이 계속 항해하기 어려운 매우 심각한 상황에 도달했음을 보고했을 것이고 백령도 연안으로 긴급하게 대피기동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비상을 걸어 선체보수반원들을 총동원해 투입했겠지요. 그러나, 배는 결국 연안근처에서 두동강이 나버렸고(선체가 처음엔 후미가 부서졌다고 하더니, 지금 상황에선 선체 절반이 뚝 부러졌다는 사실이 밝혀진 걸 보면 애초부터 이 사고는 선체의 구조적인 하자 문제였습니다) 격실을 폐쇄하고 선체복구에 나섰던 절반에 가까운 보수반원들은 결국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게 된겁니다. 해경에게 구조되면서 마지막 구조 인원들이 '우리가 마지막이다'라는 말을 한게 우연이었을까요? 떨어져나간 선체에 갇힌 보수반원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 당장 구조를 할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소리지요.

자, 이 시점에서 왜 대통령과 안보담당 주요장관들이 벙커에 들어가 숙의와 논의를 거듭하게 되었을지를 따져보겠습니다. 가뜩이나 이런저런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번 사고가 곧이곧대로 발표되면 정권의 입지는 바로 레임덕으로 직행하게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뻔히 내다보이는 상황에서 저들은 이유야 어떻든 사고를 최대한 은폐하기로 작정합니다. 그러면서도 당장 북과는 관련이 없다는 식의 차단을 한 것 역시도 그만큼 내부사정에 정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최대한 잃어버린 선체 후미의 수색을 지연한 것도 혹시나 생존자들이 나와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도록 미필적고의가 작용했다고 보여집니다.

심해작업을 하는 수중구조대에게 필수적인 감압실을 고작 하나만 떨렁 들고와서 작업을 한다든지, 정지된 물체를 찾기위해서는 기뢰수색장치를 갖춘 함정이 필수인데도 그 출동에 늑장을 부린 것이라던지, 이미 실종자들의 죽음을 기정사실화 하고 실종자 가족들 대기 장소에 일찌감치 빈소를 만들려다가 가족들을 격분시키고 어영부영 철수한 것이라던지. 충분히 부표설치가 가능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표설치를 고의적으로 하지 않은 점이라던지, 국방장관의 말대로 떨어져나간 선미의 위치를 알고 있었지만 어선이 찾아낼 때까지 수색을 게을리 했던 점 ...그것도 부족해 실종자 가족을 가장하고 가장 민감할 실종자 가족들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경찰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이 사고에 대해서 정부가 사실상 팔짱을 끼고 있다는 명백한 정황은 사건 발생직후 혈맹이라는 미해군에게 일체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봐도 분명합니다. 아무리 조류의 흐름이 빨라 구조활동이 원활치 않고 우리 해군의 장비가 빈약해 진척이 어렵다는 변명은 명백히 눈가리고 아웅에 불과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미해군걸 빌려도 됩니다. 미해군이 평소 이런 일에 우리를 거부할 사이이던가요? 가상적국인 러시아 잠수함 침몰사건때도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하던 미국이 동맹국이 요청만하면 그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한데도 지금 정부는 우리 해군 단독으로 수색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미해군을 투입했다가 혹시라도 곤혹스러운 사실이나 정황이 외부에 드러나는 일은 애초부터 막겠다는 의지가 아니고서는 지금 이럴 수는 없습니다. 선체 잔해 수색을 위해서 최첨단 무인수중 탐사기 정도는 요청만 하면 미해군은 전세계 어디로도 24시간안에 수송이 가능하며 깊은 바다에서 작업하는데 필수인 감압실 역시도 얼마든지 추가 지원이 가능합니다. 미해군의 무인 수중탐사기는 수천미터 심해와 각종 험악한 곳에서도 금속탐지장치와 열영상장치등의 최첨단 탐지기능으로 잔해를 찾아내는데는 일가견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고해역의 시계가 불량하다한들 고작 25미터 내외의 얕은 바다에서 반경 1킬로도 떨어져 있지 않은 선체후미 잔해를 미해군의 첨단 탐색장비가 못찾았을까요? 아니죠, 정권은 미해군에게 이를 부탁했다가는 너무도 빨리 이를 찾아낼 것을 알고 있기에 절대 미해군의 힘을 빌리지 않은 거죠.

마지막으로 천안함 근처 속초함이 계속 사격을 했던 이유를 따져볼까요?

원래 76밀리 함포는 상부의 허가 없이는 발사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서슴없이 속초함은 76밀리 함포를 5분간이나 사격했습니다. 연막을 피워야 하니까요. 속단일지는 모르나 속초함의 사격은 뭔가를 봐서 사격한 것이라기보다는 천안함 침몰사고의 본질을 흐리기 위한 일종의 연막이었을 공산이 큽니다. 그런데 이러한 속초함의 행동은 북한의 추가정찰과 샤프 한미연합사 사령관의 급거 원대복귀를 낳았지요. 다들 이게 뭔일인가 했던것이지요. 샤프 연합사 사령관은 한국정부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고 북한은 나름대로 엉뚱하게 독박을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요. 또한 인도적인 구조를 위해서라면 남다른 협조를 아끼지 않는 미국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빨리 샤프사령관을 복귀시켰을 거구요. 물론 샤프 사령관의 협조제의는 우리정부가 정중히 거절했을 거 같네요.

천안함은 선체에서 예상치 못한 급작스런 균열과 침수로 백령도 연안으로 피신했던 것이고 그 와중에 결국 붕괴를 막지 못하고 선체가 둘로 갈라지면서 침몰한게 아닌가합니다. 물론 저의 가설이 정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드러난 정황증거를 보면 외부의 공격이나 오폭 보다는 그들 자체의 문제였던 거 같습니다. 생존자와 실종자가 극명하게 가려진 것도 급작스런 선체 분해가 아니라면 일어나기 어렵지요.

문제는 지금 이 상황에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났을 경우 가장 큰 비난을 뒤집어 쓰게 될게 명약관화한 이명박 정권이 대대적인 은폐를 위해서 예의 그 벙커회의를 수차례 주재하게 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않구서야 뻔한 사실들을 이렇게 오래도록 감추고 말을 바꿀 이유가 저들에게 없습니다.(권종상 객원논설위원) 

10. 04. 03.  

P.S. 더불어, 국방부가 발표한 사고 발생 시각에 대한 의문도 킬럼의 추정을 뒷받침해준다(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414002.html). 

한겨레(10. 04. 03) 천안함이 침몰하게 된 ‘비상상황’이 발생한 정확한 시각은 언제인가?

해양경찰청(해경)은 지난 28일 ‘해군함정 침몰관련 수색 구조 상황’이라는 이름의 보도자료에서 상황발생시각을 ‘26일 오후 9시15분’으로 특정했다. 이는 당시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밤 9시30분’보다 15분이나 이르다. 국방부가 1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탐지한 지진파 발생시각을 근거로 공식적으로 제시한 ‘9시22분’보다도 여전히 7분이 이르다. 어찌된 일일까?

이에 대해 해경 관계자는 2일 “해군에서 해양경찰청 경비국에 통보해온 상황 발생 자료를 보고 보도자료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해경이 자체 판단한 게 아니라 해군의 통보 자료를 근거로 했다는 얘기다.

국방부가 1일 내놓은 천안함 관련 해명자료에도 “사고발생 시간을 오후 9시22분경으로 판단한다”는 국방부의 ‘판단’과 다른 내용이 들어 있다. 국방부는 이 해명자료에 “해군 해난구조대(71명)는 상황 발생 40분 만인 21시55에 비상소집”됐다는 내용도 명시했다. 국방부의 이 설명대로라면 상황 발생시각이 오후 9시15분이 된다. 국방부의 ‘9시22분 사고발생’과 어긋나며, 오히려 해경이 밝힌 ‘오후 9시15분’과 일치한다. 국방부가 공식 발표한 사고발생 시각에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욱이 실종자 가운데 1명이 여자친구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 26일 오후 9시16분께 갑자기 연락이 끊어진 것도 국방부가 발표한 사고 시각보다 이른 시각에 사고가 일어났을 수 있다는 정황증거로 거론된다.

국방부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 발생 시각을 사고 발생 시각의 근거로 들지만, 폭발은 오후 9시22분에 났을지 몰라도, 그 앞 6~7분 정도 사이에 천안함 안에서 ‘특이 상황’이 생긴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가능한 상황이다.

아직도 ‘해명되지 않는 7분’을 둘러싼 의혹을 불식시키려면 국방부가 천안호의 교신·항적 기록 및 해경과의 구체적인 교신일지 등을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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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제트 원인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5-02 23:37 
    오늘 아침 CBS 라디오의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하여 美 브루킹스연구소 박선원 초빙연구원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http://www.cbs.co.kr/radio/pgm/?pgm=1378). 국방부와 합동조사단의 잠정 결론과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서 인터뷰 내용을 스크랩해놓는다. 의혹만 부풀려진 상태이지만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믿는다. 전 국민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을 테니까... 
 
 
2010-04-03 0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3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YLA 2010-04-03 01:39   좋아요 0 | URL
구조작업하던 배가 또 사라졌다는데 애꿎은 사람들만 계속 죽어나가네요. 자연을 해치고 국고를 낭비하는 것도 속 터지지만 이렇게 사람목숨을 갖다 버리는 행태에는 정말 두손두발 다 들고싶습니다.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어요

로쟈 2010-04-03 08:53   좋아요 0 | URL
무능과 사악함을 계속 오가고 있습니다...

비로그인 2010-04-03 10:51   좋아요 0 | URL
르네 톰의 카타스트로피 이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군요. 이 모든 사태들에 대해.

로쟈 2010-04-03 20:26   좋아요 0 | URL
문제는 '인재'라는 점이죠. 짐작에 군 지휘부는 사고 발생시 '매뉴얼'대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휘책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건을 몰고가는. 그래서 이게 대단히 엄청난 사건이란 점에 대한 '감'이 없는 것 같고요...

blanca 2010-04-03 11:34   좋아요 0 | URL
저인망 어선까지 저렇게 되고 나이 이제는 정말 분노와 슬픔이 범벅이 되네요. 이 정권이 국민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절실하게 느낍니다.

로쟈 2010-04-03 14:49   좋아요 0 | URL
제가 보기엔 '정권' 문제라기보단 군부에 휘둘리는 듯한 인상입니다. 북한과 무관하다고 미국과 청와대에선 밝혔지만, 군은 계속 어뢰 타령을 하고 있어요. 이유야 짐작가능한 대로고요...

비연 2010-04-03 20:13   좋아요 0 | URL
정부의 발표내용이나 국방부장관이라는 작자가 하는 말도 안되는 얘기들을 듣고 있으면 가증스러움을 지나쳐 슬퍼집니다. 국민들 수준은 저 높이 있는데 저들은 도대체 우리를 뭘로 보는 걸까요. 누가 봐도 다 알만한 내용을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저러는 거 보면 저들의 머리에 어뢰가 박힌 것 같습니다...

로쟈 2010-04-04 11:23   좋아요 0 | URL
김우룡 사태 때도 그랬지만, 상식적으로 부조리해보이는 일들이 그쪽에선 일상적인 거 같아요. 둘러대고 축소하고 왜곡하고 하는 일들이 '매뉴얼'인 것이죠...

학생 2010-04-04 01:32   좋아요 0 | URL
결국 MBC에서 한 건 터트린 것 같습니다.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600562_5780.html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600548_5780.html

로쟈 2010-04-04 11:22   좋아요 0 | URL
군에선 곧바로 부인했더군요...

쥬베이 2010-04-04 20:05   좋아요 0 | URL
로쟈님 오랜만에 들렸습니다.
정말 소름돋는 글이에요.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는데 저런 가능성도 있네요.

로쟈 2010-04-05 10:09   좋아요 0 | URL
함선에 물이 샌다는 얘기는 국방부 자체 보고서에서도 나온다네요. 그런 것부터 숨기고 있으니 군의 발표를 전혀 신뢰할 수가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