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 시립도서관에서 대출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레, 2008, 초판1쇄) 반납일이어서 부랴부랴 번역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를 적는다. 내가 읽은 건 <마음>(문예출판사, 2006, 5쇄)이고, 이레판과 웅진판 <마음>(웅진지식하우스, 2010, 재판9쇄)을 참고했다. 범우사판이 가장 먼저 나온 듯하지만,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판본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히는 건 문예판-이레판-웅진판 순이다(적어도 알라딘에서는 그렇다). 

  

일본소설의 번역을 대조해서 읽은 건 기억에 처음이지 싶은데, 작가가 나쓰메 소세키 정도라면 그런 수고를 무릅쓸 만하다. 그래서 더 거창하게 '나쓰메 소세키를 읽기 위하여'란 페이퍼도 구상을 했었지만 3월엔 여유를 얻지 못했다. 몇몇 작품을 더 읽게 되면 나대로 정리를 해볼 계획이다.   

간단히 적으려고 하는 건 현재 가장 많이 읽히는 문예출판사판의 몇 가지 오역이다. 작품의 핵심이 되는 '선생님과 유서' 장은 번역본들마다 문체가 달라서 어느 것이 더 나은 번역인지 판별하기 어렵다. 당장 문예판과 이레판에서 "나는 올 여름 자네로부터 두세 통의 편지를 받았네."라고 옮긴 첫 문장이 웅진판에서는 "나는 이번 여름에 당신에게서 두세 번 편지를 받았습니다."로 돼 있다. 그런 경어법이 원문의 뉘앙스에  더 가까운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느낌은 상당히 달라진다. 거기에 '선생님'이 하숙집 여주인을 부르는 호칭에서도 차이가 나는데, 가령 이런 식이다.  

"나는 주인 아주머니를 늘 사모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여기서도 사모님이라 칭하겠네."(문예판)   
"나는 주인집의 미망인을 항상 사모님이라고 불렀으니, 이제부터는 사모님이라고 부르겠네."(이레판) 
"나는 미망인을 늘 아주머니라고 불렀으니까 이제부터는 아주머니라고 부르겠습니다."(웅진판)

한번 부르고 마는 거라면 별로 상관이 없지만, 이 작품에선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호칭이기 때문에, '사모님'과 '아주머니'는 작품의 색깔마저도 달라지게 한다.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아주머니'는 경어체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아주머니'는 높임말의 쓰임도 갖지만 요즘은 예삿말로 보통 사용되기 때문이다). 번역본은 그런 차이를 고려하여 선택하면 될 듯싶다. 다만, 문예판에서 몇 대목은 교정이 필요하다. 먼저 작품의 서두 부분.  

"나는 그분을 언제나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러니 여기서도 그냥 선생님이라 칭하고 본명은 밝히지 않겠다.(...) 나는 그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곧바로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붓을 쥐고 글을 쓸 때에도 마음은 한결같다. 나에게조차 낯선 이름으로는 도무지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문예, 8쪽) 

"나는 그분을 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그냥 선생님이라 쓰고 본명은 밝히지 않겠다.(...) 나는 그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금방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펜을 들어도 그 마음은 마찬갖지다. 어색한 머리글자 따위는 도무지 사용하고 싶지 않다."(이레, 8쪽) 

"나는 그분을 언제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그냥 선생님이라고만 쓰고 본명은 밝히지 않겠다.(...) 나는 그분의 기억을 되새길 때마다 금세 '선생님' 하고 부르고 싶어진다. 펜을 들어도 마찬가지 기분이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니셜 따위는 쓸 생각이 전혀 없다."(웅진, 9쪽)   

'나'는 그를 항상 '선생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에 관해 쓰면서도 이름 대신에 '선생님'이라고 부르겠다는 것. 이름(본명)을 밝히지 않는 방법으론 이니셜을 쓰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고 싶진 않다는 것. 뭔가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이유에서다. '선생님과 유서' 장에서 선생님은 자신의 친구를 K라는 이니셜로 부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나'와 '선생님'과의 차이도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이니셜을 쓰고 싶진 않다"는 내용으로 옮겨져야 하는데, 문예판은 "나에게조차 낯선 이름으로는 부르고 싶지 않다"라고 다소 모호하게 옮겼다(이름과 이니셜의 차이가 지워졌다).  

그리고 사소한 것으로 "친구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어느 자본가의 아들로 경제적으로 별 부족함이 없었지만 같은 학교에 나이도 나이니만큼 생활하는 수준은 나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문예, 9쪽)라고 한 대목. 다른 번역본을 보면 여기서 '중국(中國)'은 '주고쿠 지방'을 가리킨다. 중부지역의 5개 현을 일컫는 말이라고(당시 중국은 '지나'라고 썼겠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어느 자본가"는 "주고쿠 지방의 한 자산가의 아들"(이레)이나 "주고쿠 지방의 부잣집 아들"(웅진)이라고 옮기는 게 맞겠다.   

부주의에서 빚어진 오역으론 이런 대목도 있다. '내'가 선생님 댁에서 술을 마시게 된 상황에서 선생님과 사모님이 나누는 대화 장면이다.  

"오늘 웬일이세요. 저한테 잔을 권한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요."
"내가 당신 싫어하잖아. 그래도 가끔씩은 마셔도 되지. 기분이 좋아진다구."(문예, 30쪽)

"웬일이세요. 좀처럼 저한테 술을 권하지 않으시는 분이." 
"당신이 싫어하잖아. 그래도 가끔씩은 마셔도 괜찮아. 기분이 좋아진다니까."(이레, 29쪽) 

"별일이 다 있네요. 나한테 마시라고 한 적은 웬만해서 없었는데."
"당신이 싫어하니까 그랬지. 하지만 가끔씩은 마셔 보라구. 기분이 좋아질 테니까."(웅진, 27쪽)
 

문예판에선 원문에도 없을 법한 '내가'가 왜 삽입됐는지 모르겠다. 이보다 더 중요한 대목은 '나의 아버지'가 천황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접하며 매일 아침 신문 기사를 챙겨 읽다가 하는 말이다.  

"이것 좀 봐라. 오늘도 임금님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왔다."
아버지는 천황을 늘 임금님이라고 부르셨다. "안됐지만 말이야, 임금님의 병환도 선친이 앓았던 것과 비슷한 모양이야."(문예, 129쪽) 

"이것 봐라, 오늘도 천자님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구나."
아버지는 천황을 항상 천자님이라고 불렀다.  
"황송한 얘기지만 천자님의 병환도 내 병하고 비슷한 모양이야."(이레, 124쪽) 

"이거 봐라, 오늘도 천자님 일이 자세히 나와 있다."
"아버지는 폐하를 항상 천자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송구스럽게도 천자님 병도 아버지 병과 비슷한 거 같구나."(웅진, 105쪽)  

'임금님'이란 번역도 아무래도 좀 과한 듯싶고 '천자님'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문제는 당시 메이지 천황이 앓고 있던 병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당뇨병'이었다는 것(메이지 천황은 당뇨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황송한 일이긴 하지만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미천한 자신도 아직 살아있으니까 천황도 괜찮을 거라는 얘기를 '아버지'는 덧붙인다. 그런 문맥에서 보면 "임금님의 병환도 선친이 앓았던 것과 비슷한 모양이야"라고 옮긴 것은 부정확하다.  

그리고 '장모님'의 병환에 관한 대목도 "그러는 동안에 장모님이 병으로 돌아가셨네.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보니 도전히 완치할 수 없는 병이라 했네. 나는 정성스럽게 간호해드렸네."(문예, 333쪽)라고 돼 있는데, 다른 번역본에서 "그러던 중 장모님이 병에 걸렸네."(이레, 307쪽), "그러던 중에 아내의 어머니가 병으로 눕게 되었습니다.(웅진, 265쪽)라고 옮겨졌다. 결과적으론 병으로 돌아가신 게 맞지만, 논리상 진찰도 받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 건 너무 앞지른 것이고, 다른 번역본을 보더라도 "병으로 누우셨네."정도가 맞겠다.   

참고로, <마음>을 읽는 데 참고할 만한 자료로는 윤상인 교수의 <문학과 근대와 일본>(문학과지성사, 2009)에 실린 '국민 속의 <마음> - 국민국가 이데올로기와 정전'과 가라타니 고진의 <언어와 비극>(도서출판b, 2004)에 수록된 '소세키의 다양성 - <마음>을 둘러싸고' 등이 있다. 국내 전공자들의 논문집도 나와 있지만, 학회용 성격의 책이다.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 데는 고모리 요이치의 <나는 소세키로소이다>(이매진, 2006)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자세한 작품론은 아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소세키론이 더 소개되면 좋겠다(단행본을 쓴 건 아니지만 가라타니는 여러 편의 소세키론을 쓴 바 있다)...  

10.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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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겨보아야할 죽음의 의미
    from 창조를 위한 검은 잉크의 망치 2010-04-27 12:23 
      주인공 나는 방학 중 가마쿠라 해변에서 처음 선생님을 만난다. 도쿄에 돌아와서도 정기적으로 선생님을 방문하며 선생님과 꽤 친해졌다. 그러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간 사이 선생님은 나에게 두툼한 편지를 남겨놓고 자살을 한다. 선생님의 유서에는 자서전이라 할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쓰여 있다. 외아들인 선생님은 스무 살 무렵 장티푸스로 거의 동시에 부모님을 잃는다. 부모님이 남긴 유산을 맡아 관리하던 작
 
 
반딧불이 2010-04-04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유리와 박유하를 놓고 어떤 것을 읽을 것이냐 망설이다가 박유하 번역을 선택했어요. 이렇게 비교해주시니 도움이 많이 되네요. <언어와 비극>에 실린 글은 전혀 몰랐었는데 참고해야겠습니다.

그런데 로쟈님. 일본인에게 아버지와 천황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요?

로쟈 2010-04-04 11:22   좋아요 0 | URL
그렇게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어렵구요,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엔 알다시피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하진 않았습니다. 그의 문학에 나타난 가족관계에 대해선 국내에도 연구서가 나와 있습니다. 그의 천황론은 의견이 분분하던데, 윤상인 교수의 책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론 <마음>에서 선생이 말한 '메이지 정신'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가라타니 고진의 견해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는 메이지 10년대와 20년대를 구분하고 메이지 10년대의 시대저정신을 소세키가 말하는 '메이지 정신'이라고 봅니다...

2010-04-27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7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