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구내서점에 갔다가 미국의 정신과 의사 어빈 얄롬의 소설 <카우치에 누워서>(시그마프레스, 2007)가 출간된 걸 보았다. 원저는 'Lying on the Couch'(1996). 나는 역자의 말을 조금 읽고서야 저자가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리더스북, 2006)의 저자와 동일인이라는 걸 알았다.

찾아보니 심리치료에 관한 책들이 여러 권 더 국내에 소개돼 있었지만 내가 과문한 건 갖고 있는 얄롬의 책이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한권 뿐이기 때문이다(이 책은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소개하고 막바로 구입했었다. 아직 책장에 모셔두고는 있지만).  

 

 

 

 

해서 돌아보니 얄롬의 카우치 3부작이라 할 만한 소설들이 다 소개돼 있다(그가 더 많은 소설들을 썼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다. 그럴 만한 개연성은 충분해 보이지만). 그게 바로 <카우치에 누워서>,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쇼펜하우어, 집단심리치료>(시그마프레스, 2006) 세 권이다. 물론 니체나 쇼펜하우어 같은 저명한 철학자를 다룬 두 작품에 비해 신간은 "환자가 거짓을 고백할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엮어낸 이야기"라고 하니까 양상이 약간 다르긴 하다. 그리고 원서의 출간순서로는 <카우치>가 가장 빠르며 <니체>, <쇼펜하우어>의 순서이다.

요는 한데 모아놓고 읽으면 좋겠다는 것. 사실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들을 꾸준히 출간해낸 역자나 출판사쪽의 노고도 높이 평가할 만한데, 이번에 책을 낸 시그마프레스는 얄롬의 책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시그마프레스, 2000)를 내서 좋은 평가를 얻고 용기를 낸 듯도 싶다(사명감이 보태졌는지도 모르겠고).



 

 

 

알라딘을 기준으로 할 때 실상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보다 많이 팔려나간 책들이 얄롬의 심리치료 사례와 임상에 관한 책들이고, 이 중 두 권이 시그마프레스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어서 <사랑의 처형자>는 현재 (알라딘에서) 품절상태이다. 더 많이 읽히면 좋지 않을까 싶다.

한데, 이 정신과의사는 왜 소설을 쓸까? 그게 제창하는 방법이 '실존적 심리치료'여서가 아닐까? 마치 '실존적 정신분석'을 주장했던 사르트르가 철학자이면서 소설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듯이, 심리치료의 '마스터' 또한 '이야기꾼'을 자임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듯싶다. 마음을 치료한다는 것 자체가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에서 시작한다면 말이다. 

가령 이번에 나온 <카우치에 누워서>만 하더라도 소설의 얼개는 "환자를 분석하고 마음의 치료를 돕는 정신과 의사, 정신과 의사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사기를 치는 환자, 정신과 의사에게 거짓된 고백을 하고 분석케 하는 환자, 그런 거짓 고백을 통해서도 올바른 치료로 이끄는 정신과 의사, 정신과 의사와 환자 간의 관계를 파괴하는 사람들... 얽히고설킨 이야기 속에서 의사는 조금씩 성장해 가고, 환자의 고통이 치유된다"는 것이니까.

해서, 떠오르는 제안. 남들 다 떠나는 여름 휴가를 즐길 만한 여유가 없는, 그래서 마음이 좀 착잡하신 분들은 집에서 소파를 카우치 삼아, 아니면 베개로 '카우치'를 만들어놓고 드러누워 얄롬의 책들을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 그의 책들을 비치 파라솔 아래서 읽는다는 건 넌센스일 듯하지만 스스로가 환자 겸 의사가 되어 '치료의 선물'을 음미해보는 건 괜찮을 듯싶다. 물론 얄롬의 치료도 공짜는 아니다...

07. 07.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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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cinema 2007-08-11 21:21   좋아요 0 | URL
게을러서인지 정신과 의사인 제게도 포착되지 않았던 얄롬의 책을 소개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용이 궁금해서 바로 주문을 해야겠는데요.

Bliss 2008-04-05 09:53   좋아요 0 | URL
얄롬을 알고 읽는 분을 만나 반갑습니다. 지난 겨울부터 줄곧 그의 책을 모두 읽어 보고 있는데요. 자신이 헌신하고 있는 분야를 그처럼 치밀하고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 감탄하며 존경하고 있습니다. 로쟈님 글을 읽으니 니체...와 카우치.. 쇼펜하우어... 는 3부작 시리즈가 맞습니다. 3권 모두 추리소설 보다도 훨씬 더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그 중 쇼펜하우어..에 대해 서평과제를 앞두고 있습니다. 로쟈 님의 코멘트를 기대해도 될까요? ^^


로쟈 2008-04-07 21:15   좋아요 0 | URL
알고는 있지만 읽지는 못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Bliss님의 서평이 기대가 되네요...
 

온라인 학술저널 담비(http://www.dambee.net/)에 '로쟈의 종횡書해'가 연재된다(나도 오늘 알았다!) 사실 이번달부터 담비에 격주로 리뷰성 글을 기고하기로 했었는데(알라딘 페이퍼성으로) 이번주말쯤에나 첫번째 글을 보내려고 했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 '풍경'에 관한 글이었는데, 며칠전에 올려놓은 '선비철학 vs 사무라이사상'(http://blog.aladin.co.kr/mramor/1376328)이 구미에 맞은 것인지 연재의 첫꼭지가 되었다(인용문이 너무 많이 들어간 글이다). 편집자가 밝힌 연재의 변은 이렇다.  

담비에서는 7월부터 격주로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리뷰어로 활동중인 '로쟈'의 글을 연재합니다. 연재의 제목은 <로쟈의 종횡書해>입니다. 동서양 철학과 역사, 과학과 인류학 등 방대한 독서를 통해 폭넓은 시야와 깊이있는 해석을 보여주는 로쟈의 리뷰는 담비와 알라딘 독자들을 전제로 씌어지고 두곳에 동시에 실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통칭 '리뷰어'라고 하지만 알라딘의 분류로는 주로 '마이페이퍼'만 잔뜩 늘어놓고 있기 때문에 내게 붙여진 타이틀로는 약간 어색한 감이 있다(리뷰들을 읽어주는 '리리뷰어'라면 말이 될는지). 하지만 '종횡서해'란 연재의 타이틀은 맘에 든다(아마도 비평고원의 '로쟈의 책의 바다'란 카테고리를 고려한 듯하다). 나는 편집진에 일임했었는데, 애당초 나에게 제시됐던 제목은 '로쟈의 깊이 읽기' 같은 거였다(그 또한 아이러니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종횡서해'는 물론 주윤발과 장국영, 그리고 종초홍이 주연했던 추억의 홍콩영화 <종횡사해(縱橫四海)>(1990)에서 따온 것이겠다. 오래전 지방 소도시에서 본 듯한 이 영화는 이제 보니 오우삼 감독의 영화이다. DVD 타이틀 소개기사를 옮겨온다.

씨네21(06. 04. 07) 한편의 프랑스영화 같은 오우삼의 낭만 로맨스, <종횡사해>

바바리코트, 쌍권총, 남자들의 뜨거운 우정과 비장미는 오우삼 영화의 일관된 색깔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의 초기 작품에서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뜻밖이겠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허관영, 허관걸 형제를 앞세운 <발전한>과 같은 코미디영화도 존재한다. <종횡사해>는 오우삼의 숨은 코미디 재능과 자신의 능력이 최고조로 발휘되는 하드액션 장르의 유연한 결합을 시도한 작품이다.

영화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명화를 훔치는 세 남녀의 모험과 우정, 그리고 로맨스를 경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명의 주인공 아해와 제임스, 그리고 홍두는 고아 출신으로, 어린시절 악독한 악당에게서 도둑으로 길러진다. 이들의 어두운 성장과정 때문에 피비린내나는 복수의 한 마당이 벌어질 것 같지만, 영화는 관객의 그런 기대를 저버린다.

<종횡사해>는 음침한 홍콩의 뒷골목을 벗어난 화창한 날씨의 유럽이 배경이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고독한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병상에 있다가 복귀한 주윤발은 시종일관 여유와 쾌활함을 잃지 않는 아해를 연기하며, 장국영은 로맨티스트 제임스를, <종횡사해>를 끝으로 은퇴한 종초홍은 이들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아름다운 홍두를 연기한다. 이 세명의 캐릭터에게서는 오우삼의 각별한 애정이 느껴진다. 단순히 비극의 무대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이 가장 해보고 싶었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오우삼은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영화를 흠모하며 동경했다. <종횡사해>는 그 애정의 부산물 같은 영화다. 제목부터 로베르 앙리코 감독이 연출하고 알랭 들롱이 주연했던 <대모험>(Les Aventuriers)의 중국식 제목에서 따왔고,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라는 삼각관계 또한 영향을 받았다. <종횡사해>는 누아르 액션에서 조금 외도는 했지만, 기존 팬들을 위한 총격전은 라스트에서 일부 선보이고 있다. 하나 비장미 넘치는 폭력과 심금을 울리는 신파를 기대한다면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 대신 오우삼의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여유와 낭만, 충만한 로맨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특히 휄체어를 탄 주윤발과 종초홍, 장국영의 댄스장면(사진)은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명장면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영웅본색>에서 마음 좋은 택시회사 사장으로 영웅들과 호흡을 맞추었던 증강이, 이번에는 정반대의 악역으로 나와 주윤발과 장국영을 괴롭히는 설정이라는 것이다. DVD 타이틀에 수록된 부가영상으로는 독특하게 악역을 맡은 증강의 인터뷰, 포토 갤러리, 예고편을 수록했다.(김종철)

흥미로운 건 이 영화의 영어제목이 'Once a Thief'라는 것. '전직 도둑'쯤 될까? "동서양 철학과 역사, 과학과 인류학 등 방대한 독서를 통해 폭넓은 시야와 깊이있는 해석을 보여주는 로쟈의 리뷰"란 표현에서 내가 상기하게 되는 것은 '전직 도둑'과 '종횡사해' 사이의 간극이고 아이러니이다(음, 첫번째 글부터가 인용문으로 도배돼 있는 걸 보라!). 

어느샌가 로쟈는 '방대한 독서'를 하는 걸로 가정되는 주체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여기서 나의 부인의 제스처는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어느 자리에선가 '2만권을 읽은 사람'으로 오인되기도 했는데, '2만권의 타이틀' 정도를 읽은 걸로 해두자). '폭녋은 시야와 깊이있는 해석'은 담비에서 앞으로 요구하는 바 같은데 나의 전력으로 미루어 보아 장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다만 그런 '시야/해석'이란 명품을 훔쳐오기 위해 노력은 해봐야겠다. 해서 가끔은 '총격전'을 보여주기도 하겠지만 '로쟈의 종횡書해'의 기본장르는 코미디이고 주된 정조는 책과의 로맨스이다. 로맨스가 될 것이다...

07. 07. 09.

P.S. 기껏 책과의 로맨스인가? 그건 종초홍(1960- ) 같은 파트너가 은퇴해버렸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생각이 난 김에 그녀의 근황을 다루고 있는 한 기사를 읽어본다.

해럴드경제(06. 08. 08) 周潤發와 호흡 척척… 40代불구 청초한 매력 여전

홍콩영화 전성기였던 1980~1990년대, 그 많던 홍콩스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중추홍(46ㆍ鍾楚紅)이 은퇴한지도 어느덧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때 왕주셴(王祖賢)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중추홍이지만, 지금은 그런 스타가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다. 화려한 스타의 쓸쓸한 뒤안길이라고 할까.

1979년 미스홍콩대회에 출전해 아쉽게 4위에 머물렀지만 중추홍의 매력을 눈여겨 본 광고계 인물들 덕분에 CF 몇 편에 출연한 게 연예계 데뷔 계기가 됐다. 스크린 데뷔작은 '벽수한산탈명금(碧水寒山奪命金ㆍ1980)'. 이듬해 영화 '호월적고사(胡越的故事ㆍ1981)'에 당대 최고 배우인 저우룬파(周潤發)와 출연해 루키 탄생을 알렸다. 사실 다섯 살 연상인 저우룬파와는 인연이 각별한 편이다. '호월적고사'를 비롯해 총 8편의 작품에 함께 출연했다.

우위썬(吳宇森) 감독의 영화 '종횡사해'(1991)에서도 저우룬파와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에는 저우룬파 외에 장궈롱(張國榮)도 나와 중추홍의 인기를 증명해보였다. 고아 출신 골동품 전문 털이범 남매가 고성에서 고가의 그림을 훔친 뒤 보안 레이저를 피하기 위해 와인잔에 와인을 부어 레이저를 확인하는 장면은 '미션임파서블'이나 '엔트랩먼트' 같은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 손색없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또, 중추홍이 장궈롱과 휠체어를 탄 저우룬파 사이를 오가며 탱고를 추는 장면은 알 파치노의 '여인의 향기' 탱고신보다 더 감각적이다.

세련된 이미지 때문인지 중추홍은 대체로 똑 떨어지는 도시여성 배역을 맡았다. 공교롭게도 극의 배경까지 해외인 경우가 많았다. '종횡사해'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중추홍의 대표작인 '가을날의 동화'(1987)는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가을날의 동화'에선 실연한 여인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처량하거나 청승맞아 보이기는커녕 여자를 버린 남자가 미련해보이는 효과가 컸다. 이 영화는 1988년 제7회 홍콩금상장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홍콩 광고계의 거물 주지아팅(朱家鼎)과 결혼한 후 한동안 쇼비즈니스계를 떠나있었던 중추홍이 지난 6월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적 명품 보석 브랜드 피아제의 중국 1호점 개점식에 전속모델로서 등장한 것.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청초한 매력을 발산하는 중추홍에게 '제2의 전성기'가 올지 기대된다.(유지영 기자)

'제2의 전성기'란 건 기자의 예단인 듯하다. 여하튼 그녀는 20년전 스크린의 연인이었다. 이런 연애고백은 또 어떤가?

씨네21(05. 11. 03) [스크린 속 나의 연인] <가을날의 동화> 종초홍

이른 아침 창문을 열고 숨을 들이쉬면, 차갑고 쓸쓸한 냉기가 가슴 깊은 곳까지 퍼진다. 늦가을. 나는 이 때가 가장 좋다. 계절의 변화란 ‘매직’과도 같아서, 가슴에 담아두었던 기억들을 불러낸다. 기억은 쓰디쓸수록 짜릿하다. 그 쓴맛이 선명하게 남긴 흉터가 우리들의 현실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차가운 공기가 거리에 내려앉은 늦가을 이 즈음.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취업준비를 하던 시절, 학교 앞 동시상영 극장으로 숨어들었다. 내 도피행각엔 나름 이유가 있었다. 3년간 놓고 지내던 ‘보캐뷸러리(Vocabulary)’ 책을 다시 끄집어 낸 것도 갑갑했지만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함께 통과했던 한 여자를 먼 곳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극장의 간판엔 저우룬파(주윤발)과 중추훙(종초홍)이 있었다. 어줍은 솜씨로 그린 것이었지만 이들의 표정엔 쓸쓸한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답답했던 시절. <가을날의 동화>는 내 가슴을 절절히 파고들었다.



결혼을 약속한 애인을 찾아 뉴욕으로 날아온 제니퍼(중추훙). 그에게 뉴욕의 가을은 잔인했다. 애인에겐 다른 여자가 생겼고 낯선 뉴욕은 그의 생채기를 자꾸만 건드린다. 어딘지 촌스러웠지만 인공적인 매력에 때 묻지 않은 중추훙의 얼굴은 참 예뻤다. 그 얼굴에서 내가 본 것은 바로 상실감이었다. 낯선 도시, 뉴욕의 빈민가. 별다른 희망 없이 ‘이민의 땅’을 부유하던 삼판(저우룬파)은 제니퍼의 상실감, 그 상실감의 ‘표정’과 ‘깊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제니퍼를 향해 서서히 피어오른 그의 애정은, 그러니까 동질감의 다른 표현이었다.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무작정 미국 이민 길에 오른 홍콩의 청춘들과 내가 공유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1990년대 초반. 80년대 중후반 민주화의 홍역을 치르고 난 대학 캠퍼스는 거대한 무기력에 빠져있었다. 소련의 해체, 독일의 통일, 동구의 몰락…. 그 격변이 가져온 정신적 공황. 이제 곧 내가 편입돼야 할 사회에 대한 불안감. 그 희뿌연 시계(視界)가 자아내는 정체불명의 공포와 상실감을, 나는 제니퍼의 얼굴에서 봤다. 지나친 비약이었을까? 아니면 스치듯 내 마음을 긁어대는 낙엽 소리에 센티멘털했던 것일까?

그 날, 마치 ‘삼판’이 된 듯 제니퍼와의 엇갈린 사랑에 가슴을 치던 나는 <가을날의 동화>를 세 번이나 보고서야 극장을 나섰다. 그리고 친구를 불러냈다. 쓸쓸한데 소주 한 잔 하자고. 결국 소주잔에 쓸어 담은 건, 황량한 서울 거리와 숙취로 남은 감정의 찌꺼기들뿐이었지만….(정기영/ 영화월간지 ‘프리미어’ 편집장)

나는 영화를 연거푸 세번씩이나 보진 않았고 특별한 인상을 받지도 못했지만 종초홍이란 배우의 매력은 느낄 수 있었다. "세련된 이미지 때문인지 중추홍은 대체로 똑 떨어지는 도시여성 배역을 맡았다"고 했지만 그런 이미지를 따라서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떠나지 못했고, 우리는 주저앉았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이젠 휠체어 댄스나 꿈꿀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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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7-0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국영은 떠나고 종초홍도 없고...
괜히 짠하네요.
연재하시는건 축하드려도 되는일이지요? ㅎㅎ

로쟈 2007-07-09 15:47   좋아요 0 | URL
타이틀 때문에 종초홍은 갑자기 떠올리게 됐습니다.^^

yoonta 2007-07-09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종횡書해>라..멋진 타이틀이네요. 로쟈님 따라서 담론비평도 자주 드나들게 되겠네요.

로쟈 2007-07-09 15:48   좋아요 0 | URL
제가 보탬이 되면 다행일 텐데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2007-07-09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7-09 15:48   좋아요 0 | URL
담비에서 표절했나 봅니다!..

Joule 2007-07-09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내용이 아주 종횡서해스럽습니다. 하하

로쟈 2007-07-09 16:26   좋아요 0 | URL
장르가 코미디다 보니까요.^^;

마늘빵 2007-07-09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축하드립니다. 담비도 들어가봐야겠군요. :)

로쟈 2007-07-09 23:05   좋아요 0 | URL
저도 갑자기 '당한' 일이라서 축하(?)를 받아야 할지 어쩔지...

햇빛비둘기 2007-07-10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축하드립니다. 근데 제목이 '종횡書해'라... 괜히 표정훈씨만 생각나고.
오랜만에 궁리나 들어가봐야겠네요.
꾸벅.

로쟈 2007-07-09 23:07   좋아요 0 | URL
맞삽니다. '종횡서해'란 카테고리가 궁리에 있었지요. 본의아니게 표절하게 됐습니다...

가을산 2007-07-09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좋은 리뷰 및 리리뷰 잘 부탁해요.... ^^;;

로쟈 2007-07-09 23:07   좋아요 0 | URL
네, 앞으로도 관심을 가져주시길.^^;

향기로운 2007-07-10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축하합니다^^*

로쟈 2007-07-11 00: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2007-07-10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온라인으로는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기사들을 지면으로 읽으면 챙기게 되곤 한다. 지난 주말 신문을 읽다가 '발견'한 건 '세계 최고의 소총'이라고 할 만한 AK-47과 그 발명자 칼라시니코프에 관한 것이다. 내용이야 옮겨놓은 두 건의 기사를 죽 훑어보시면 된다. 기사에도 적혀 있지만, AK-47이 '47년산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이란 뜻이니까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애용된다는 이 '대량살상무기'가 계속 애용되는 한 칼라시니코프의 이름도 길이 남을 만하다. 푸틴의 언급대로 '러시의 자랑'인지는 좀 헷갈리지만('칼라시니코프'는 철자대로 표기하자면 '칼라슈니코프'나 '칼라쉬니코프'가 더 자연스러운데, 개정된 외국어 표기안에 따라 '칼라시니코프'라고 통일된 듯하다).

 

경향신문(07. 07. 07) [여적]칼라시니코프

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소련군 탱크부대 하사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독일과의 전투에서 심한 부상을 입었다. 병상에서 그는 자동화기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다. 소련군이 독일에 밀린 것은 자동화기가 열악했기 때문이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1947년 그는 마침내 뛰어난 성능의 소총을 개발했다. 모델명은 AK47이었다. ‘칼라시니코프가 1947년 개발한 아프토마트(자동소총)’란 뜻이다.

이 때부터 칼라시니코프 소총은 숱한 전쟁과 분쟁·내전지역을 누비며 전설을 만들어 나간다. AK47의 최대 강점은 단순과 견고다. 따라서 고장이 적고 분해 조립과 조작이 쉬웠다. 제작비도 쌌다. 미국이 1957년 개발한 M16에 비해 길이가 짧아 휴대도 간편했다. 물에 젖거나 모래가 들어가도 큰 문제가 없었다. 베트남전쟁 당시 늪 속에 파묻혀 있는 녹슨 AK47을 발사해 보니 아무 이상이 없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베트콩한테서 노획한 AK47이 미군들에게 M16보다 인기가 높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장점 덕분에 칼라시니코프 소총은 전세계로 팔려 나갔다. 지금까지 1억정 이상이 유통된 것으로 추산된다. AK47에 이어 1974년 개발한 AK74, AK101∼AK105 시리즈 등 자매모델들이 속속 나왔다. 아프리카 내전 지역 10대 초반 소년병의 어깨에 걸린 총도 십중팔구 칼라시니코프 모델이다. 이렇게 AK가 널리 유통되는 이유는 싼 가격이다. 제3세계에서 유통되는 중고 AK47은 ‘닭 한마리 가격’이란 말도 있다.

칼라시니코프 소총은 어떤 무기보다 많은 사람들을 살상하고 있다. 매년 이 총으로 죽는 사람은 25만명으로 추산된다. 그렇다면 진짜 대량살상무기(WMD)로 불릴 만도 하다. 작년 말 워싱턴포스트는 “이라크에서 미국이 애타게 찾던 WMD가 나왔다. 바로 낡은 AK47이다”는 칼럼을 실었다. 상당수 미군이 AK47에 희생되는 현실을 비꼰 것이다.

AK47이 5일로 개발 60주년을 맞았다. 푸틴 대통령은 AK47이 러시아의 창조적 천재성의 상징이라고 치하했다. 하지만 올해 87살인 칼라시니코프 자신은 어떤 감회일까. 필시 침략군을 물리치겠다는 애국심에서 개발한 무기가 강도와 테러리스트, 소년병의 손에 들려진 현실을 보고 후회막급일 것 같다.(김철웅 논설위원)

AK-47 소총을 만든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6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러시아 공군 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소총 발명 60돌 기념식’에 참석해 총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 연합

한겨레(07. 07. 07) 옛소련 자동소총 ‘AK-47’ 개발 60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옛 소련군 탱크부대 하사관으로 나치 독일과 싸우다 부상당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21)는 요양중 자동소총 개발에 몰두했다. ‘나치 침략에 맞서 조국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에 불탄 칼라시니코프는 마침내 자동소총 개발에 성공했고, 이 소총은 소련군 개인화기로 채택됐다. 이 소총이 AK-47이다. AK-47의 A는 자동소총, K는 개발자 칼라시니코프, 47은 소총 개발이 완료돼 소련군 개인화기로 채택된 해를 뜻한다.

AK-47는 전세계 소총 시장의 80%를 차지하며 전세계에 1억정이 넘게 돌아다닌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은 메시지를 담은 비디오를 녹화할 때 옆에 AK-47을 세워둔다.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국기에는 국방을 상징하는 AK-47이 들어 있다.

AK-47이 전세계 분쟁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무기가 된 비결은 단순함과 튼튼함, 높은 명중률이다. 구조가 단순해서 사용하기 쉽고 싼값에 대량생산할 수 있다. 분쟁지에서 중고 AK-47은 ‘닭 한마리 값’에 유통되며, 미국돈 20~30달러에 암거래된다. 워낙 튼튼해서 정글, 사막, 눈, 비 등 악조건에도 좀체로 고장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11월26일 “이라크에서 미국이 그토록 찾던 대량살상무기(WMD)가 나왔다. 미군 병사의 목숨을 앗아간 WMD는 낡은 AK-47 소총이었다.”고 보도했다. 이 총에 맞아 전세계에서 해마다 25만명이 숨지는 것으로 추산된다.

칼라시니코프는 야전병원에 후송된 소련군 병사들이 “우리도 독일군 기관단총 MP40처럼 좋은 총이 있었으면…”하는 한탄을 듣고 소총 개발에 나섰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6월 국제 총기확산방지회의를 앞두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만든 내 총을 갱과 테러리스트가 쥐고 있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 가슴 아프다”며 테러의 상징처럼 된 AK-47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5일로 AK-47 완제품이 세상에 나온지 60년이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열린 AK-47 개발 60주년 기념식에서 “유명한 칼라시니코프 소총은 대담한 발명 정신 뿐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재능, 창조적 천재성의 상징이 됐다”고 치하했다. AK-47이 식민지해방전쟁에도, 민간인에 대한 테러에도 사용되긴 했지만, 세계에서 으뜸가는 소총이며 러시아의 힘과 안보의 상징이란 점은 분명하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권혁철 기자)

07. 07. 08 - 09.



P.S. 칼라시니코프란 이름과 관련된 건 '소총' 외에 '보드카'도 있다(알콜 도수가 41%란다). 러시아에서 여러 주종을 섭렵해본 건 아니어서 보드카 칼라시니코프가 얼마나 고급인지, 또 얼마나 애음되는지 모르겠지만 이 '러시아의 영웅'과 보드카는 이미지가 잘 들어맞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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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7-0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통력과 살상력은 뛰어난 반면 반동과 소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소총이라고
하더군요.이 총과 반대개념에 있는 소총은 M16보다는 H&K사에서 나온 자동소총
들이라고 생각됩니다..테러리스트들의 피를 먹고 자랐다라고 하더군요..

로쟈 2007-07-09 17:44   좋아요 0 | URL
그런 반동과 소음에도 가장 애용된다고 하니까 '명품'이긴 한가 봅니다...

잉크냄새 2007-07-09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한 노벨과 비슷한 심정인가 봅니다.

로쟈 2007-07-09 17:45   좋아요 0 | URL
보드카를 마실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죠.
 

지난 6월에 소개되었어야 하는 전시회 소개와 그 리뷰(http://www.culturenews.net/read.asp?article_num=8036)를 컬처뉴스에서 옮겨놓는다. 리뷰 자체가 며칠 전에 올라온 것인데, 이 리뷰를 읽고 알게 된 것이지만 <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 전시회는 아직 계속되고 있고 그 사진집은 지난 5월에 출간됐다. 타이틀 대로 '다시 배우는' 한국전쟁인 만큼 이 정도 '뒷북'이 대수이겠는가. 기사에서 저자주는 생략했다.

컬처뉴스(07. 07. 03) 다시 배우는 한국전쟁

《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2007. 5. 18. ~ 2007. 8. 18, 서울대학교박물관 2층 특별전시실)는 한국전쟁 중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두 영국인 장교 안소니 영거(Anthony Younger)와 키스 글래니-스미스(Keith Glennie-Smith)의 개인 사진 기록들을 발굴해 소개한 전시이다. 전시와 함께 사진집『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서울대학교 엮음, 눈빛, 2007) 가 발간됐다.

전방위적 한국전쟁 기록 수집하기

『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는『지울 수 없는 이미지』시리즈(박도 엮음, 눈빛)가* 보여주는 전쟁에 대한 기록의 규모 면에서나, 기록사진으로써 구성과 형식의 완성도에 비교할 수는 없다. 물론 상대적 평가의 측면에서 그렇다.『지울 수 없는 이미지』의 기록 사진들 역시 정확한 지명이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정체가 모호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지울 수 없는 이미지』가 보여주는 한국전쟁에 대한 기록 사진들은, 미국의 시각과 필요에 의한 것들이란 점을 감안하고 봐야하며, 이것이 한국전쟁의 온전한 총체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지울 수 없는 이미지 1․2․3』를 보면, 미국의 보유하고 있는 한국전쟁 관련 기록의 일부인데도, 미국의 기록, 수집, 보관에 대한 인식과 능력의 우수함과 선진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그 셋째 권은 지난달에 출간됐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주체가 된 기록 문화에서도 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점을 보완하기에 우리와 관련한 타인들의 기록을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특정 집단과 특정 국가의 시선은 그 자체만으로 제3자의 시선이 있지만, 그 집단과 국가의 이해관계에 편향되는 한계 역시 따른다. 때문에 다각적으로 세계 속의 시각들을 모아갈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더불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은 국가 차원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어떻게 얼마만큼 기록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진다. 이런 자료들을 비교해 본다면 국가라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전쟁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 수 있는지, 그 안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의 접합점은 무엇인지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대중이 관련 사진 자료들을 중심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책으로『그들이 본 한국 전쟁』시리즈(2005, 눈빛)가 있다. 그 중『그들이 본 한국 전쟁 1』은 1959년 중국 해방군화보사에서 참전기념 화보집 형식으로 출간된 것을 재출간한 것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중공군의 실체와 한국전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것 역시 중국 공산당의 목적과 그들의 시선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봐야 할 것이다.『그들이 본 한국 전쟁 2』는 미 해외참전용사협회에서 참전 기념호로 출간된 것을 재출간 한 것이고,『그들이 본 한국 전쟁 3』은 미군 사진병과 군속 사진가가 찍은 전쟁의 기록들을 모은 것이다.

이들 사진집에는 사진 자료 이외에도 국제관계, 한국현대사, 정치 등 관련 분야 전문가의 한국전쟁에 대한 글들(『지울 수 없는 이미지』시리즈)과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보고서(『그들이 본 한국 전쟁 2』), 맥아더 장군의 뒤를 이어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재임했던 리지웨이와 클라크 장군의 보고서(『그들이 본 한국 전쟁 3』)는 물론, 미국에서 수집한 북한 측의 삐라와 포스터와 서류는 물론 중공군․북한군 포로들이 가지고 있던 사진과 편지 등(『지울 수 없는 이미지3』)이 함께 실려 있어,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한 한국전쟁,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크다.  

 

 

 

 

 

 

 

 

 

전체가 간과한 기억을 되짚는 특별한 통로

다시 이번 전시로 돌아와서, 영거와 스미스는 비교적 전문적인 사진 촬영 기술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들 사진의 완성도 자체는 높이 평가할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거와 스미스의 사진 기록물들은 사진의 예술성이나 한 컷의 사진이 갖는 구성적 완결성 면에서가 아닌, 기록의 희소성으로부터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의 한국전쟁과 전쟁 직후의 사진 기록들은, 종군 사진 기자들의 취재나 일종의 첩보 활동에 의한 그것들과는 다른 성격과 분위기를 전해준다. 한국의 생활상을 담은 외국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 부대 안팎에서 참전 중 군인의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을 느낄 수 있다. 그건 그들이 참전 군인이기는 했지만, 전투 외의 여가 시간에 개인 취미 생활의 측면에서 사진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전쟁 중 격전 현장과 전투 상황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휴식과 휴가 중 전투 이외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휴전 직후의 상황에 대한 여유로운 기록들이다.

그 전쟁중의 여유로운 풍경은 그들이 1950, 51년의 긴박한 상황보다는, 남북은 물론 관련 국가들의 이익과 관련해 전쟁을 지지부진 끌어가던 1952, 53년 사이에 참전했기 때문에 더 도드라지는 것이다. 이들의 사진 속에는 휴전이 발표된 직후 전선에서 방금 전까지 총부리를 겨누며 사투를 벌이던 유엔군과 중공군이 인사를 나누고 기념으로 화폐에 사인을 해 주고 받는 모습마저 담겨 있다.  

 

 

 

 

 

 

 

 

 

또 사진집『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안에는 영거가 쓴 한국참전 경험과 전란 속의 한국에 대한 기억들이 담겨있어, 한국전쟁에 대해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서문에서 안소니 영거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순전히 개인의 시각과 기억의 착오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음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특성과 감성이 결합한 개인의 기억이란, 때로 전체의 기억이 간과하고 있는 세밀한 부분들을 찾아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통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통로로 들어간 사람들 중에는 공적 기억에서 배제된 기억을 상기해내거나 그 감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고, 대화와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탄피로 만든 와인잔으로부터

그 중 인상적인 기억의 몇 가지는 이렇다. 전쟁 중 원화 가치가 떨어져 사실상 화폐로서 쓸모가 없게 되자 시장에서 맥주병이 돈으로 사용됐다든가 탄피(탄환이나 포탄의 껍데기)나 통신선 등 그릇이나 장바구니 등 생활용품을 만들어 썼다는 이야기다. 이런 모습들을 구체적 사진 기록들로 충분히 담겨있지는 않지만, 기억에 대한 기록과 수집 물품의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점이 이채로웠다. 전시장 중앙에는 안소니 영거가 간직하고 있던 탄피와 당시 한국의 시장에서 사서 아직도 즐겨 쓰고 있다는 탄피로 만든 와인잔이 유리관 안에 전시돼 있었다.『지울 수 없는 이미지3』에서 탄피의 다양한 재활용의 실체를 증명하는 탄피로 만든 교회의 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놋그릇과 철재들이 모아져 전쟁물자로 조달되고 난 후, 그 전쟁의 폐품들이 일상용품들로 재활용되는 전쟁의 궁핍상과 전쟁의 생산성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이런 교차는, 새삼 전쟁의 경험이 상품화되어 경제적 가치를 갖고 정치적 목적으로 끊임없이 재활용되고 있는 모습들 속에서도 계속해서 재현돼 오고 있다. 더구나 파괴적인 전쟁이 철학과 예술과 과학은 물론 경제 같이 많은 것을 잉태하고 발전시켜낸 생산적인 면모들조차 함축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그러나 '전쟁의 상품화와 재활용' 자체에 무턱 대고 나쁘다는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기는 어렵다. 그러고 보면 선만이 선을 악만이 악을 잉태하지 않으며, 선이 악을 잉태하기도 하고 악이 선을 잉태하기도 하는, 인간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어느 날 한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이것은 나쁜 것, 저것은 좋은 것이라 가르치지 말고, 좋게 쓰면 좋은 것 나쁘게 쓰면 나쁜 것이라 가르치자는 것이다. 가령 ‘거짓말은 나쁘다. 칼은 나쁘다’는 틀렸다는 것이다. 선배의 이야기는 섣부른 가치판단으로 아이들의 사고와 행동을 가두지 말자는 뜻에서 충분히 이해했고, 공감하고 귀담아 들었다. 하지만 모호해지는 면도 있었다. ‘전쟁은 나쁘다’, ‘살인은 나쁘다’, ‘도둑질은 나쁘다’는 틀린가 하는 것과 ‘전쟁과 도둑질과 살인도 좋게 쓰면 좋은 것이다’가 맞는 말일까 하는 것이었다. 답은, 특히 집단의 이익과 관련해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도둑질인 적군․적국의 첩보 활동은 나쁜 것이다. 그러나 조국․아군의 첩보 활동에 대해서는 나쁘다는 가치판단이 들어설 틈이 없으며, 우리 집단 전체를 위한 진취적이고 긍정적이며 의롭고 사명감 있는 행위로 여겨진다. 살인 역시 그렇다. 국가를 위한 경우는, 적․악에 대한 응징으로써, 우리 집단을 위한 정의로운 희생으로 추앙되고, 감히 ‘살인’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낱말을 갖다 부치는 것이 적절치 않게 느껴진다. 전쟁 역시, 적의 전쟁 도발은 나쁜 것이고, 이 나쁜 것에 대해 우리를 지키기 위한 대응으로, 또는 우리 집단의 영역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쟁은 정의로운 힘으로 추앙된다.칭기즈칸의 영토 확장이 서구에서는 폄하되고 아시아에서 미화되듯 말이다.

거짓말도 그렇다. 사람들은 선의의 거짓말이 성립할 수 있는가를 놓고 설왕설래하곤 하는데, 사람은 거짓말도 정의롭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쉬운 예로 일제로부터 독립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나쁜 것이다. 독립군 활동을 전개하는 중에 효과적 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일제를 속이는 거짓말을 아주 잘해야 하고, 못하는 것이 못난 것이다. 고작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라 훌륭하고 숭고한 거짓말조차 존재하는 것이다. 독립군의 거짓말 이야기가 너무 먼 이야기일까.

반공 교육과 ‘한국전쟁’교육의 차이

물론 겨우 탄피 와인잔의 일화에서 이야기가 너무 거창하게 흘러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7년은 한국전쟁 57주년을 맞은 해이다. 전쟁 발발로부터 어느새 환갑이 가까웠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전후 세대들의 집단적 경험들 중 많은 부분은 한국전쟁과 관련한 반공 교육이 차지하고 있다. 불조심 포스터를 그리고 표어를 짓 듯, 매년 6월에는 반공 포스터 그리기, 반공 표어 짓기, 반공 글짓기 대회 같은 것을 해왔고, 돼지와 늑대의 모습을 한 북한 공산당에 대항해 불쌍한 북한 주민을 구하는 똘이 장군의 활약상을 담은 만화 영화를 보며 성장했다.

그러면서 그들 중 많은 경우 비슷한 형태의 반공 의식과 관련한 꿈까지 공유하는 독특한 경험조차 있다. 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가 가끔 가다 한 번씩 태권브이를 타고 북한 공산당을 무찌르는 꿈을 꾼다고 하자, 한 친구는 무장공비들이 침투했거나 전쟁 중이었거나 하는 상황에서 북한 공산군을 피해 마을과 산 속으로 숨어 다니는 꿈을 간혹 꾼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형태의 꿈을 꾸는 것을 보면,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삶의 형태가 사람들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듯 대한민국 전후세대들의 집단적 삶과 의식 안에도 한국전쟁은 어김없이 어떤 양상으로든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집단적인 무의식의 공포로만 작용해서, 우리를 갇혀 있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겠다. 북한과 미국도 그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친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어이 없어할 만큼 어리석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동안 우리의 역사, 정치는 물론 사회와 문화 모든 분야의 교육이 반공 교육에만 치우침으로써, 한국현대사의 가장 굵직한 사건인 한국전쟁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은 외면되어 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한 전쟁의 역사, 우리가 가진 전쟁의 상처를 우리의 미래에 좋고 이롭게 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고 알고 실천해 나가야 할까. 바로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이 한국전쟁과 관련한 기록들을 발굴하고 공유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곧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지도를 찾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들이기 때문이다.(한영신/ 자유기고가)

07.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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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북리뷰들을 둘러보았는데 지갑을 열 만한(아니 카드를 그을 만한) 책들이 다행히 눈에 띄지 않았다. 소장도서로 분류할 책이 없지는 않지만 당장에 구매할 필요는 없는 책들이다(도서관련 지출이 많아진 즈음이라 다행스럽다). 막간에 민족주의에 대한 책 두 권의 리뷰나 챙겨둔다. 그 두 권이란, 하나는 최근 출간된 장문석의 <민족주의 길들이기>(지식의풍경, 2007)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4월에 출간된 한스 울리히 벨러의 <허구의 민족주의>(푸른역사, 2007)이다(특이하게도 조선일보의 리뷰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벨러의 책은 얇은 분량이지만 (서구)민족주의 입문서로 적절해 보인다(한국 민족주의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반론들을 고려하자면. 가령 http://blog.aladin.co.kr/mramor/839351). 벨러의 책은 어제 구내서점에서 손에 들었다가 약간 파손된 상태여서 다시 내려놓았던 책이다.

경향신문(07. 07. 07) '두 얼굴’의 민족주의와 공존하기

“억눌린 것이 돌아왔다. 그 이름은 민족주의다.” 캐나다의 역사가인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1993년 이같이 선언했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집을 나갔던 ‘탕아’인 민족주의가 귀환했다. 냉전이 끝나면 세계화 물결이 지구촌을 뒤덮을 것이라는 석학들의 예언은 빗나갔다. 인종과 종교, 문화를 구심점으로 한 민족주의라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유럽을 휘감고 있다. 오늘날 서구 세계에서 ‘민족주의’는 불길한 이름이다. 민족주의는,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폭탄 테러와 피의 보복을 일삼는 분리주의자들의 이념이며, 끔찍한 전쟁과 국지전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러나 과연 민족주의는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민족주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저자는 “민족주의는 팽창과 정복에 따른 억압, 나치즘과 파시즘에 의한 대량학살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 속에서 민족주의는 같은 구성원이라는 민족의 정의와 삶을 일치시키려는 부단한 노력 속에서 평등과 민주주의의 폭을 넓혀왔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민족주의에 대한 서구의 시각을 강하게 비판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합리적이고 시민적인 데 반해 ‘서양 속의 동양’인 독일과 이탈리아는 감정적이고 종족적이라는 이분법은 서유럽 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틀에서 이해한 민족주의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영국이나 프랑스에도 종족적 민족주의의 요소는 존재했다. 영국의 한 총리는 “신께서 어려운 일을 행하고자 하실 때는 영국인이 아니라 잉글랜드인을 부르신다”고 말해 뿌리 깊은 잉글랜드 중심주의를 드러냈다. 이와는 달리 감정적이고 후진적인 민족주의 국가로 지목된 독일의 사회민주당 정권은 프랑스의 이민정책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통합적인 이민정책을 펼쳤다. 이 것은 종족적이지 않은 민족주의이다.

또 민족주의는 특정 국가의 고유한 성격에서 비롯됐다기보다 국제관계의 산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근대 초기 영국에서는 에스파니아, 프랑스 등과의 대립을 통해 민족주의가 형성됐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대한제국의 위기와 식민지 경험을 거치면서 또렷해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민족의 종족적 뿌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보면 민족주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자생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종족과 민족의 근원적 차이를 지적하는 입장에서 보면 민족주의는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지난 근대적인 현상이다. 민족에는 전 근대 시대의 종족에 담긴 문화적 논리와 근대국가 시민에 담긴 정치적 논리가 공존하는 셈이다.

저자는 근대의 시작과 함께 형성된 민족주의는 국적과 상관없이 종족적인 성격과 공민적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이미 만성질환이 돼 버린 민족주의를 당장 버릴 수도 껴안을 수도 없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을 달래며 살아가는 것과 같이 민족주의를 길들여 인류의 미래에 기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결론내린다. ‘민족주의의 민주적 속성을 최대한 발화시켜 스스로 연소하게끔 하자’는 것이 이 책에 담겨있는 실천적 문제의식이다.(예진수기자)

조선일보(07. 04. 28) "민족주의는 근대 서양의 잘못된 발명품”

근대세계사의 주역은 민족과 민족국가다. 산업화와 국가간 교섭의 확대가 특징인 근대사에서 민족과 민족국가는 내적인 근대화와 외적인 국가간 경쟁의 주체였다. 그리고 민족이 역사의 기본단위라는 민족주의는 민족과 민족국가를 이끌고 가는 기관차였다. 이는 민족국가가 먼저 태동한 유럽과 북미는 물론 그들의 침략을 받으며 뒤를 따른 중남미·아시아·아프리카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민족주의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민족간 갈등을 유발할 뿐 아니라 세계화가 급속히 진전되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족국가간의 극심한 충돌로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더하다. 지난 50년 유럽연합을 건설하며 초(超)민족국가를 실험해온 유럽에서 민족주의는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다. 세계대전들의 도발자였던 독일은 이런 경향이 특히 심하다.

독일의 저명한 역사학자 한스-울리히 벨러(Hans-Ulrich Wehler)가 쓴 이 책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저자는 민족이 근대의 산물이라는 점을 먼저 지적한다. 민족주의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고안된 질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족이 무(無)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종족(種族)에 기반한 통치체제의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강조한다. 이는 민족을 불변의 실재로 보는 1980년대 이전의 민족주의 연구와 가변적인 것으로 보는 그 이후의 민족주의 연구를 결합한 것이다.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직후인 1871년 1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빌헬름 1세의‘독일 황제 즉위식’은 독일 민족국가 수립의 상징적인 의식이었다. 가운데 흰 옷을 입은 사람은 비스마르크다. 푸른역사 제공

민족주의는 서구문화권의 발명품이다. 근대초기 구미(歐美)가 당면한 정치적 혁명, 종교적 갈등, 위계질서의 동요 등 구조적 위기들에 대한 해법으로 민족주의가 등장했다. 민족과 민족국가를 통해 통치질서를 재확립하고 대중을 통합하려는 것이었다. 스페인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일으킨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이런 움직임은 영국·미국·프랑스에서 모범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들 세 나라의 근대화는 19세기 중반 이후 다른 나라들의 모방을 가져왔다.

이렇게 시작된 민족주의는 네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영국·미국·프랑스의 ‘통합민족주의’,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민족주의’, 동유럽·러시아·오스만제국의 ‘분리민족주의’,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들의 ‘전이(轉移)민족주의’가 그것이다. 뒤의 세가지는 상대적인 낙후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어적 근대화의 이념이었다. 이런 고통스런 근대화의 경험은 민족주의의 극단화를 낳았다. 민족과 민족국가를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은 내·외부의 적(敵)과 이방인에 대한 적대를 가져왔다. 더구나 민족주의에 내재한 소명의식과 형제애는 타자(他者)를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것은 때로 ‘원수’에 대한 폭력의 행사를 정당화했다.

독일근대사에 대한 분석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독일에서 민족주의는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179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프로이센의 팽창 정책으로 독일 민족국가가 탄생했다. 그러나 이때 이미 독일 민족주의는 공격성을 띠고 있었다. “프랑스를 때려 죽여라”는 선동이 지식인의 입에서 나올 정도였다. 1차 대전의 패배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 결과는 히틀러라는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집권이었다. 2차 대전 패전 후 독일이 민족주의의 주술로부터 풀려나서야 독일의 번영은 찾아왔다.

저자는 근대세계의 성공, 즉 경제성장·입헌-법치국가·사회복지 등을 민족국가와 연결시키는 분석을 거부한다. 그것은 우연에 불과하며, 민족국가에 부당한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내부적으로 평화로운 시민공동체와 외부적으로 민족국가들끼리 협력하는 평화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따라서 이제는 민족주의 개념을 걷어내고 대신 헌법국가, 법치국가, 사회복지국가라는 보편적인 토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비(非)서구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별로 비중을 두지 않는다. 일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 민족주의의 토대가 되는 종족적 전통이 없었다. 이 때문에 정치지배 시스템이 불안정하게 됐고, 그 결과 개발도상국은 근대화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안정된 민족국가는 서양에만 존재한다”는 주장에서 비서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한국은 종족적 전통에서 출발한 민족주의를 토대로 근대국가 건설에 성공했다. 그러면서도 독일과 같은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이제 중국과 인도 등 다른 비서구 국가들도 한국이 걸은 길을 뒤따르고 있다. 이들의 역사적 경험까지 포괄하는 더 폭넓은 민족주의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제 Nationalismus.(이선민 논설위원)


 
더 읽을 만한 책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책 중에서 시기적으로 앞서고 널리 알려진 것은 프랑스 철학자 에르네스트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책세상, 신행선 옮김)이다.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전한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1882년 ‘이성(理性)의 사도(使徒)’ 르낭이 소르본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담은 이 책은 민족을 종족적·언어적 실체가 아니라 주관적 귀속의식을 토대로 한 정치적 실재로 파악했다. “민족의 존재는 매일매일의 국민투표”라는 유명한 구절은 이 주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민족주의란 무엇인가’(창비, 백낙청 엮음)는 민족주의에 대한 세계 학계의 학문 연구 중 주요 성과들을 한데 담았다. 한스 콘, E H 카 등 민족주의 연구의 선구자로부터 어네스트 겔너, 앤터니 스미스, 톰 네언 등 현재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연구자, 그리고 제3세계의 민족주의론까지 망라하고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단행본은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창비, 강명세 옮김)와 인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나남출판, 윤형숙 옮김)다. 홉스봄은 민족과 민족주의가 근대의 산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는 프랑스대혁명에 의해 처음 등장한 민족주의를 발전단계에 따라 태동기(1780~1870), 발전기(1870~1918), 극성기(1918~1950), 쇠퇴기(1950~)의 네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앤더슨의 책은 민족을 왕조국가가 쇠퇴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문화적 조형물로 본다. 그는 민족주의가 중남미의 지배층이었던 크리올(유럽 이민자의 후예)에서 기원하여 유럽과 다른 지역으로 전파됐다고 주장한다. 

07. 07. 07.

О русском национализме

P.S. 개인적으로 민족주의 일반론 이상으로 러시아 민족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러시아에서는 종교철학자 이반 일리인(1883-1954)의 <러시아 민족주의에 대하여>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로 뜬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만큼이나 고려되어야 할 것은 '종교로서의 민족주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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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07 10:57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한겨레 보면서 윗 책 찜해놨어요. 두번째 책은 조선일보에만 소개된거군요. 민족주의에 관련된 몇몇 책들을 사놨었는데 아직 필을 못받아 못보고 있습니다. 아직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외에는 살펴본게 없네요. -_-

로쟈 2007-07-07 11:25   좋아요 0 | URL
논란이 되는 주제이지만 저로서도 당장 흥미를 갖는 주제는 아닙니다.^^;

yoonta 2007-07-07 13:33   좋아요 0 | URL
rss로 로쟈님글을 바로 확인해서 보니 너무 편리하네요 ^^

비로그인 2007-07-07 14:35   좋아요 0 | URL
제국이 쓰러져간 자리에 미친 민족주의만 죽순처럼 나부껴! 제게는 가장 와닿는 말이군요. 근데 FTA적 전횡으로 치닿는 또 다른 제국의 형상 앞에 우리는 과연 어떤 평화의 제국을 꿈꿔야할런지, 꿈꿀수나 있을지 암담합니다.

로쟈 2007-07-07 22:41   좋아요 0 | URL
yoonta님/ 그게 뭔가요?^^;
쏠다님/ 꿈과 악몽은 때로 구별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그 '제국'과 '민족주의' 바깥에 놓여 있지 않다는 인식이 우선적이어야 한다고 보고요...

드팀전 2007-07-08 12:26   좋아요 0 | URL
장벽이 무너진 자리엔 모든 것이 장벽이다...라는 시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yoonta 2007-07-08 13:03   좋아요 0 | URL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1&dir_id=10801&eid=PwlZ4j4c2aKivflHiSlZl/iQyeHxRu5g&qb=cnNz

이글 읽어보시면 될듯합니다. 저는 설치형으로 했는데 컴퓨터 부팅하자마자 바로 로쟈님글 업데이트를 확인할수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