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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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이 되면 찾아오는 계절성 우울에 젖어들 즈음. 피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자진해서 빠져들자싶어 아주 우울하고 슬퍼질 수 있는 책을 찾아 나섰다. 앤드류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과 신형철의 책표지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흐느끼고 있을 것 같은 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꽉 다문 입술에 모였다가 턱 아래로 흘러내리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가 시와 소설, 영화와 평론, 정신분석, 노랫가사 등에서 찾아낸 슬픔과 고통, 상실과 애도, 처절함에 대한 글들이 질서정연하고 정교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작가의 차분한 문체에 매료되어 그가 권하는 책들로 서가를 채우며 작가가 공부한 슬픔을 공부하고 슬픔으로 빨려들어갔다.

책 곳곳에서 작가는 '빚을 지고 있는' 작가와 글들을 언급하며 겸손한 자리에서 좋은 글을 소개하고 읽어준다. 프로이트의 '덧없음' 대한 짧은 에세이와 박형준의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가 가장 선명하게 남았다.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도하고 일가친척이 유태인 학살의 희생자가 된 끔찍함을 겪은 프로이트가 삶의 덧없음에 동의하지 않고, 어떤 시인이 토로한 삶에 대한 환멸의 본질을 통찰해내는 부분에서 묵직한 감동이 일었다. 작가가 썼듯이 "그렇다고 갑자기 낙천주의자로 변신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의 환멸이 조금은 덧없어졌다."

작가는 좋은 시를 소개하고 그 시를 읽어준다. 행간의 의미와 맥락을 아주 섬세하고 생생하게. 그리고 작가의 감정을 쑥 밀어넣어서. 가난하고 미련하고 답답한 한 천진한 사내가 여자에게 차이는 어떤 장면을 묘사한 '생각날 때 마다 울었다' 를 읽으며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어눌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이들이 살아가기엔 세상이 너무 팍팍하고 약삭빠른 것 같아서 누가 이 사내에게 눈치밥이라도 먹여줬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일었다.

이 책을 읽는 중에 유난히도 쓸쓸한 사람을 많이 만난 것 같다. 내가 쓸쓸하니 남들도 그렇게 보이는 투사(projection) 일 수도 있고, 이 책 덕분에 타인의 슬픔에 대한 민감성이 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서 전해지는 쓸쓸함과 슬픔을 비춰주고 함께 머물러주는 타인이 되어주는 경험은 어떤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었고, 쓸쓸함을 가치있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덧없음에 대한 프로이트의 단상이 그가 전쟁의 끔찍함과 대량학살을 경험하기 이전에 씌여진 글이지 않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만년의 프로이트가 구강암을 앓으며 제대로 된 마취도 없이 30여차례가 넘는 수술을 감당하며 저술활동에 매진한 삶의 태도를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실을 추구하고 허위를 거둬내고자 했던 그의 집념어린 삶은 결국 '인간에 대한 희망'이 아니었겠냐고..

작가는, 희망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 능력의 산물' 이라고 정의한다. 슬픔을 공부하고 타인의 슬픔에 무심하지 않고자 하는 것은 결국 희망을 버리지 말고 슬픔의 연대를 만들어 함께 버텨가자는 조용한 선언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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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집단정신치료의 이론과 실제 - 제4개정판
IRVIN D.YALOM 지음, 장성숙.최혜림 옮김 / 하나의학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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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상담 뿐 아니라 일반 상담과 심리치료에 관심있는 사람들, 집단의 심리와 실제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집단상담 최고의 교과서이다. 그 방대한 양에 질려 선뜻 손을 뻗게 되지는 않겠지만...

집단치료는 대인관계의 상호작용을 통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하고 이해하도록 도우며, 궁극적으로는 각자의 부적응적 양상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존주의 심리치료자로써 얄롬은 정신교육학적, 인지행동적 원칙을 따르지 않고,  지금 - 여기(Here and Now)에서의 작업에 집중한다.  '내용'을 통해서가 아니라 '과정'을 통해서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는 개인들간의 관계의 본질을 꿰뚤은 것이야말로 치료자의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보았다. 집단을 움직이는 이러한 과정 속에 구성원들 각자의 경험과 느낌을 끌어 내고, 구성원간에 이것들을 표현하고 서로 상호작용 하는 것 자체가 치료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집단에서 경험한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집단 자체가 이미 하나의 '미시사회'이기 때문이다.  응집성 있고 안전감을 느끼는 곳에서 자신의 감정과 무의식, 환상을 토로하고, 이것이 안전하게 수용되고 지지받는 경험은 대인관계의 두려움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미덕은 풍부하고 섬세한 임상사례를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30여년전 초판을 출간한 이후 4판에 이르기 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분야에서 헌신하고 연구하는 학자적 자세에서 우리는 한 인간의 성실과 존엄을 보며 임상가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 낼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이며, 실존주의 철학가,  교수, 임상가, 작가이기도 한 얄롬의 진지하고도 탁월한 통찰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눈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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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과 심리치료
앤 배리 율라노프 지음, 이재훈 옮김 / 한국심리치료연구소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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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앤 율라노프 박사의 한국 방문  강연 내용을 이 재훈 박사의 훌륭한 번역과  함께 원문도 소개한 책이다.   정신분석가이자 신학자인 Ulanov는 심층심리학이 신학적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최선의 학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파괴성과 그 변형', "위니캇의 영성', '융의 영성' 이라는 3개의 논문은  인간의 심리적인 측면과 영적인 측면의 통합을 추구한다. 

울라노프 박사는 영성 생활을  형이상학적인 논리과 교의적 논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 자신으로, 가족과 공동체 안에서 발생화는 불화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며 해결해 할 것을 권고하는데, 심층심리학이야 말로 이것을 위한 최선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위니캇과 융의 심리학은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의 영성을 이해하는 통찰의 틀을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본인이 목회상담가이기도 한 역자는 상담과 심리치료의 영성적인 차원에 관심이 있는 목회상담자들이 꼭 한 번 읽어 보아야 할 책임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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