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신간 <들뢰즈 커넥션>을 읽고 있지만, 아직 다른 책들이 다 차지 않은 까닭에 이 신간 소개 연재를 미루어두고 있었는데, 드디어 반가운 책이 한 권 나왔고 그걸 빌미로 50번째 '책 수다'를 시작한다(대개 너무 말이 없다는 얘기를 듣는 내가 유일하게 수다스러울 때가 책얘기들을 늘어놓을 때이다). 호기심에 언제 이 연재를 시작했는지 찾아봤더니 2002년 12월 20일로 돼 있다(*다시 확인해보니 10월이다). 대략 2년 8개월만에 50회를 채우는 건데, 작년 러시아 체류 기간을 제외한다면, 실질적으로는 1년 9개월 정도만이다. 이를 스스로 기념하여 맨처음 소개했던 책 다섯 권을 다시 꼽아본다.





지젝의 <향락의 전이> 개역판(인간사랑, 2002), 아렌트의 <칸트 정치철학 강의>(푸른숲, 2002), 에른스트 마이어의 <이것이 생물학이다>(몸과마음, 2002), 김상환의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창비사, 2002),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동식 <프래그머티즘>(아카넷, 2002)가 그 다섯 권의 책들이다. 이 다섯 권의 책을 나는 모두 소장하고 있고, <이것이 생물학이다>와 <프래그머티즘>을 제외한 세 권의 책을 읽었다. <향락의 전이>의 원서는 내가 '지젝'에 빠져들도록 만든 책이면서, 동시에 그 번역본은 오역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든 책이다(오역의 진창에서 살아남는 일은 마치 전장을 방불하게 한다. 나를 단련시키지 않으면 살아남을/읽어낼 수 없었는바, 나의 독해력을 키워준 건 8할이 오역서들이다. 나의 친애하는 적들인 셈). 나머지는 모두 훌륭한 책들이다. 그런 책들과의 '첫'만남을 나는 이런 누추한 자리에서나마 기억해두고자 한다. 그것이 이 연재의 소임이다.





이번에 다룰 첫번째 책은 <이기적 유전자>로 잘 알려진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신간 <악마의 사도>(바다출판사)이다. 언젠가 드나들던 도킨스의 홈피에서 이 책이 출간된 2003년쯤에 이와 관련한 얘기를 얼핏 본 듯하다. 하지만, 러시아에 1년 가 있으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말 번역본이 '알아서' 출간된 것. 마치 생일선물을 받은 듯이 반갑다. 번역도 전문번역가의 작품이라 신뢰가 간다. 책은 일종의 에세이집인데(우리의 경우 최채전 교수가 잘 쓰는) 소개에 따르면 "지난 25년간 리처드 도킨스가 썼던 기고문과 연설문, 회고록과 논설문, 서평과 헌사 가운데서 정수만을 가려 뽑아 엮은 책"으로서 "다윈주의나 과학 전반을 다룬 글, 도덕을 다룬 글, 종교와 교육 및 진리와 과학사를 다룬 글, 개인적인 이야기를 쓴 글 등 종횡무진한 32편의 에세이가 담겨있다."
나는 <확장된 표현형>(을유문화사, 2004)를 제외한 그의 책들을 모두 읽었으며, 아직 번역되지 않은 그의 책 <풀리는 무지개(Unweaving the Rainbow)>는 원서로 갖고 있다. 그러니 애독자로서의 자격은 충분하다고 본다(<이기적 유전자>의 경우 나는 동아출판사에서 나온 초판 번역과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개정판 번역을 모두 읽었다). 그런 자격으로 도킨스 입문서를 들자면, 물론 <이기적 유전자>부터 읽어나가는 게 제일 간편한 지름길이지만, 분량이 많다 싶은 독자는 에드 섹스턴이 쓴 <도킨스와 이기적 유전자>(이제이북스, 2002)를 먼저 읽어볼 수도 있겠다. 그보다 좀더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독자라면 킴 스티렐리의 <유전자와 생명의 역사>(몸과마음, 2002)도 유익하다. 책의 원제는 '도킨스 vs. 굴드'이니까 이 두 스타과학자에 대한 예비지식을 갖고서 읽는 게 좋겠지만(곁말을 덧붙이지면, 이 책은 알라딘에서 '도킨스'란 검색어로 뜨지 않는다. 어정쩡한 우리말 제목이 책의 성격을 드러내주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책이 안 팔려도 당연한 일). 잠시 홍보를 하자면, 이 책은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와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라는 두 석학의 주장을 통해, 지난 수십 년 동안 현대 진화생물학계에서 벌어진 논쟁을 다룬다." 읽어볼 만하다.
反도킨스를 표나게 내세운다는 점에서 굴드와 한편에 서고 있는 이가 그의 동료 닐스 엘드리지인데, 도킨스가 못마땅한 이라면 그의 책 <우리는 왜 섹스를 하는가>(조선일보사, 2004)을 참조할 수도 있다(나는 아직 못 읽어봤다). 책의 부제는 '이기적 유전자의 성이론에 대한 반박'으로 노골적이다. 내 기억에 굴드와 엘드리지는 단속평형론이라는 진화론을 공동으로 주창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에 대한 도킨스의 반박은 <눈먼 시계공>(민음사, 1997)이 강력하다. 도킨스에 대한, <이기적 유전자>에 강력한 옹호로는 최재천 교수의 해제(동아일보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해제)가 있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 권의 책 때문에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내게는 <이기적 유전자>가 바로 그런 책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인생관, 가치관을 조금 바꿔준 책 몇 권을 꼽아본다. 나대로의 대학 신입생 추천도서 목록인데(신입생이 제일 먼저 알아야 할일은 자신이 얼마나 '밥통'인가라는 사실이며, 가장 먼저 해야 할일은 비스듬히 고개를 숙여서 돌자갈 같은 관념들을 말끔히 비워내는 것이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 듀란트의 <철학이야기>(문예출판사), <장자>(현암사) 등이 그것이다(장자의 경우는 특히 '내편'). 물론 이 목록은 들뢰즈식의 '연결접속'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 같은 책들이 그 추가적인 접속의 대상들이다. 주체로서의 '나'는 그 책들이 통과해간 어떤 '자리'를 지칭할 따름이다. 이러한 목록에 한국책들이 앞자리에 놓이지 않은 것은 나의 '편식' 탓이겠다. 뭐하면, 대학 1학년때 제일 처음 읽은 책 중 하나인 정진홍 교수의 <종교학 서설>(전망사, 1984)을 슬쩍 올려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절판된 책이라 이미지는 비슷한 성격의 책 <종교문화의 이해>(청년사, 1995)를 가져왔다). 그런 책들을 읽었고, 읽고 있으며, 읽을 것이다.

두번째 책은 이미 언급한, 라이크만의 <들뢰즈 커넥션>(현실문화연구)이다. 역자의 기준대로 하자면, 저자 라이크만과의 인연은 나름대로 '깊은' 편이다(여기에 이어서 어제 한시간 반쯤 쓴 글이 날아갔다. 그때그때 '등록'을 안해둔 탓이니 할 수 없는 노릇이고, 다시 쓴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절반으로 줄여서 쓸 작정이다). 그가 쓴 <미셸 푸코: 철학의 자유>(인간사랑, 1990)을 (비록 원서는 아니었지만) 나도 읽었기 때문이다. 그 책은 드레피스/라비노우의 <미셸 푸코: 구조주의와 해석학을 넘어서>(나남, 1989)와 함께 가장 좋은 푸코 입문서로 꼽히던 책이다. 게다가 라이크만의 <진리와 에로스: 푸코, 라캉, 윤리의 문제>와 <들뢰즈 커넥션>의 원서를 진작부터 복사해서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다시 <들뢰즈 커넥션>의 번역서를 마주하게 되니 '감회가 남다르다.' 비록 들뢰즈의 사상에 대한 적절한 입문서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역자에 따르면 "이 책은 한국에서 중요한 입문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특히 예술과 미학을 다루는 6장은 이 책의 백미다. 들뢰즈의 철학은 바로 미학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6장까지 다 읽지 못했기 때문에(나는 현재 3장까지 읽었다) '백미'를 읽어본 소감은 아직 적을 수 없겠다. 하지만, 경험론과의 관계를 다룬 2장(실험), 3장(사유)은 충분히 읽을 만했다. 물론 역자의 '독자적인' 역어들에 먼저 익숙해져야 하는 애로사항은 감수해야 한다. '들뢰즈 전공자'의 번역으로 책의 표지도 훌륭하지만 책의 편제는 그닥 '프로'답지 않으며(너무 많은 외국어 병기가 오히려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군데군데 오역(실수)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도 아쉬운 점. 이에 대한 자세한 검토는 나중에 다른 자리에서 다루겠지만, 일례를 지적하자면 이런 식이다.
52쪽에서 "들뢰즈의 독창성은(...) 철학에서 개념들의 고름이나 정합성이 있기 위해서는 문제들에 의존하게 되고, 이 문제들은 사물들이 동의에 '정착'해서 그 안에 지속적으로 머무르기 전에 도래하는 '바깥'에 의해 도입되었다고 말해다는 데 있다."고 돼 있는데, 원문은 이렇다: "An originality of Deleuze is (...) to say that the consistency or coherence of concepts in philosophy owes its existence to the problems introduced by an 'outside' that comes before things 'settle' into agreements and persists within them."(20쪽) 내용은 단순한데, 다만 역자는 'persists'의 주어를 '바깥(outside)'이 아닌 '사물들(things)'로 잘못 보았다. 다시 옮기면, "들뢰즈가 독창적으로 주장하는바, 철학에서 개념들의 일관성 혹은 정합성은 (철학의)'바깥'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들에 빚지고 있다. 이 '바깥'은 문제가 동의점들로 고정되기 전에 도래하여 거기에 계속 존속한다."
<들뢰즈 커넥션>과 함께 나온 책이 대담집 <디알로그>(동문선)이다. 라이크만의 책의 들뢰즈 저작 약어표에 보면, D(='Dialogues')로 돼 있는 책인데, 불어본은 1977년에 나왔고 나도 갖고 있는 영역본은 1987년에 나왔다. 기존에 번역돼 있는 <대담 1972-1990>(솔, 1994)과는 다른 책이며 분량도 얇다. 영미문학쪽 얘기가 많이 나왔던 걸로 기억된다. 이로써 들뢰즈의 책은 흄을 다룬 들뢰즈 최초의 저작 <경험론과 주체성>(1953)을 제외한 거의 모든 책이 번역돼 나온 듯하다(이 가운데 최악은 <비평과 진단>인데, 거기에 견줄 만한 책이 더 있는지 모르겠다).




세번째 책은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아카넷). 나는 분량으로 보아 <도덕 형이상학>이 출간된 줄로 알았으나 목차를 보니 흔히 <도덕형이상학의 정초>로 불리던 그 책이다. 이 책은 물론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놓기>(책세상, 2002)로 번역돼 나온바 있다. 일반독자로선 <실천이성비판>의 다이제스트 정도로 이해하는 게 좋겠다. '다이제스트'란 말 그대로 보다 이해하기 쉽고, 소화하기 쉬운 책. 더구나 두 권에는 모두 자세한 '해제'가 붙어 있으므로 칸트 도덕철학에 대한 입문서로서 적격이라 할 만하다. 아마 '윤리형이상학'의 원어는 'Metaphysik der Sitten'이며, 흔히 'metaphysics of morals'로 영역된다. 그런데, 칸트에게서 '도덕'이란 게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과는 달리 실질적으론 '윤리'의 뜻을 갖는다(도덕과 윤리의 차이에 대해선 고진의 견해 참조). 역자인 백종현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아예 (기존의 번역관행과는 달리) '윤리형이상학'이라고 '의역'한 듯하다. 일리가 없는 건 아니나, 그 또한 칸트식의 어법이므로 나름대로 존중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게 내 생각이고, 나로선 보다 친숙한 제목인 '도덕형이상학'에 더 애착을 갖는다. 이러한 칸트 윤리학에 대한 가장 '자극적인' 입문서는 내가 읽은 한도 내에서 고진의 <윤리21>(사회평론, 2001)과 주판치치의 <실재의 윤리>(도서출판b, 2004)이다. 후자의 부제는 '칸트와 라캉'이다.


네번째 책은 터키문학의 거장이라는 아샤르 케말의 작품집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문학과지성사)이다. 케말의 다른 작품이 번역된 것 같지 않으므로 최초로 소개되는 게 아닌가 싶다. 소개에 따르면, "표제작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는 납치혼과 명예살인이라는 전통에 희생되는 여인의 삶을 아이의 시선을 통해 보여준다. 어머니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었던 아이의 복잡한 심정과 처절한 가족사, 사람들의 질투와 증오가 간결한 문체로 그려진다. 치밀한 심리 묘사와 추진력 있는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 명예살인, 혹은 복수를 다룬다는 점에서 당장에 연상되는 소설은 알바니아의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의 <부서진 사월>(문학동네, 1999)이다. 역시나 "알바니아 북부 고원 지대에 남아 있는 관습법(카눈)의 전통을 소재로 인간 실존의 비극을 형상화한 장편 소설"로서 "소설의 중심 소재는 알바니아의 북부 고원 지대에 남아 있는 옛 관습법(카눈)의 전통이다. 카눈이란 고대로부터 전승되어온 알바니아 고유의 관습법으로 피는 피로써 갚는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문학작품을 많이 읽는 박찬욱 감독이 복수 3부작을 찍으면서 이 '변방'의 소설들을 참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복수의 색깔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본다(<올드보이>에서 이물감이 두드러지지만, '복수'는 한국적인 정서가 아니다. 그닥 '독한' 민족이 아니어서).


마지막 책은 '휴식' 같은 책으로 골랐다. 이란 영화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디자인하우스). 소개에 따르면, "197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직접 촬영한 사진과 시를 수록"한 책이다. "흑백의 간결한 프레임 안에 그의 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이란의 다양한 자연경관을 담아"냈고, "시적인 정취를 드러내는 사진들 사이사이로 짧고 담백한 시들이 아련하게 등장한다"고 한다. 그의 영화들이 그렇지만, 고상하고 고답적인 '문자들'에 멀미가 날 무렵 마음을 비우는 의미에서 한번쯤 뒤적여볼 만하겠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3부작에서 <체리향기>(이 영화를 아직 안 봤군)까지의 '소박한' 그의 영화세계는 한때 영화의 '오래된 미래'란 평을 듣기도 했다. 아마도 영화는 박찬욱의 복수 3부작과 키아로스타미의 이란 3부작 사이에서 좀더 진동하겠지만...
05. 8. 24-25.
P.S.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라>의 영어제목은 'Walking with the Wind'이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바람이 우리를 또 어딘가로 데려갈 때까지 오늘도 나한테 주어진 책들을 읽어가야겠다...
P.S.2. 케말과 관련하여 나귀님의 서재에서 퍼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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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메드>(홍진주 옮김, 학원사, 1988 중판)
야사르 케말의 책으로는 아마도 국내 "최초" 번역본인 듯한 <메메드>. 모두 4부로 구성된 작품 가운데 제1부이다. 본래 이 책은 1982년에 주우(학원사)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한 권으로 출간되었다. 지금 사진에 보이는 것은 훗날 단행본으로 "방법"해서 다시 만든 것이다. 이번에 나온 <독사를>의 작가 연보에는 "메메드"가 아니라 "메흐멧"으로 되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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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GULL, (tr. by Thilda Kemal, NY: Pantheon Books, 1981)
터키에서는 1976년에 나온 소설이라는데, <메메드>와 <독사를>의 작가 연보에는 원제인 Al Gozum Seyreyle Salih 에 해당하는 작품이 없는 듯했다. 과연 무엇일꼬. (여기서 Salih 는 주인공 이름인 듯.) 표지에 US Army Youngsa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