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이기도 한지라 주기적으로 러시아 관련기사들을 모니터링한다. 오늘은 최근 빚어진 러시아와 영국의 외교 갈등에 관한 기사들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눈에 띈 기사를 옮겨놓는다. 외교와는 무관한, 발레 이야기이다. 러시아발레단(발레 뤼스)의 전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와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와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말미엔 최근의 '신정아 파문'을 언급하고 있는 칼럼이다(물론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는 안목은 예술분야에서 더욱 중요할 터이다). 나로선 그냥 러시아 발레사의 한 에피소드 정도를 상기시켜주는 자료로 스크랩해놓는다. 몇 가지 이미지들과 함께.

중앙일보(07. 07. 28) 디아길레프와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신정아

20세기 예술사를 얘기할 때 러시아발레단의 단장이었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1872~1929)를 빼놓을 수 없다. 1909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년에 걸쳐 러시아발레단을 이끌며 전 세계적 센세이션을 일으킨 디아길레프. 

그는 독단에 가까울 만큼의 추진력을 갖고 일에 몰두해 ‘독재자’로 불렸다. 파격에 가까운 인선 방식이 그런 악명을 낳게 했다. 명성이 채 확립되지도 않은 신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일을 맡겼다. 모험에 가까운 인재 기용은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결국에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인사는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1882~1971)를 채용한 일일 것이다(*사진은 디아길레프와 스트라빈스키).

친구의 아버지인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문하생이었던 스트라빈스키는 정작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했던 무명의 젊은이였다. 디아길레프는 그의 관현악 작품 ‘꽃불’을 듣고 단번에 발레작품 ‘불새’의 작곡을 맡겼다. 원래 기성 작곡가인 리아도프에게 작곡이 의뢰돼 있던 터라 단원들의 반발은 극심했다. 하지만 디아길레프는 스트라빈스키의 재능에 대한 확신 때문에 계약을 철회하지 않았다.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이 남자는 곧 유명해질 테니까.” 디아길레프가 스트라빈스키를 두고 이렇게 말하자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비웃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불새’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스트라빈스키는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이어 디아길레프와의 재계약을 통해 완성된 ‘페트루슈카’(1911년)와 ‘봄의 제전’(1913년)으로 스트라빈스키는 31세에 일약 거장으로 떠올랐다.(*'봄의 제전' 관련영상은 http://www.youtube.com/watch?v=t8lY6gBqHmM 참조)

바츨라프 니진스키를 발탁해 20세기 최고의 발레리노이자 안무가로 만든 것도 그였다. 디아길레프의 동성 연인이기도 했던 니진스키는 ‘봄의 제전’에서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못지않은 혁신적인 안무를 보여주었다. 자연히 디아길레프의 주위에는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아래 사진은 스트라빈스키와 니진스키).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이며 멀티예술가였던 장 콕토도 러시아발레단을 위해 대본을 썼다. 장 콕토의 권유로 그의 친구인 파블로 피카소가 후안 미로와 함께 의상과 무대장치를 맡았다. 라벨·드뷔시·프로코피예프도 발레곡 작곡에 참여했다. 이렇게 해서 러시아발레단은 몰락 위기의 서유럽 발레를 되살린 구세주가 됐다.



디아길레프는 1929년에 급사하고 러시아발레단도 해체됐지만, 스트라빈스키는 현대음악의 최고 거장으로 남아 노년까지 계속 창작을 했다. 71년 89세로 사망한 그는 베네치아에서 디아길레프 근처에 묻혔다. 러시아발레단의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영국과 미국의 발레를 키워낸 주역이 됐다.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신정아씨의 가짜 예일대 박사 소동에 이어 각계 인사들의 가짜 학력이 드러나면서 곳곳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물론 최대의 피해자는 당사자인 신정아씨 자신이다. 학력 위조가 드러나면서 미술계에서 쏟아부었던 10년간의 노력과 성취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특이한 논리이다. 같은 논리라면 최근 불거진 병역파문의 최대 피해자는 싸이이며 대선 후보검증의 최대 피해자는 이명박이겠다. 반대로 별걸 다 들추는 이들은 가해자이고). 신뢰라는 사회적 가치를 파괴한 그의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한국 미술계, 아니 한국 사회에도 가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말로는 실력을 중시한다면서도 간판과 연고를 따지는 풍조에 대한 왜곡된 대응으로 신씨의 학력위조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유럽 예술계를 좌지우지했던 디아길레프는 발레단을 위해 말 그대로 ‘올인’했다. 그는 작품의 주제를 직접 결정했다. 각 분야 담당자를 직접 선정하고 작품이 통일성을 갖도록 최선을 다했다. 높은 직위를 즐기면서 일은 적당히 하는 허위의식을 철저히 경계했다. 그가 베네치아에서 사망했을 때 은행 잔액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고, 가진 것이라고는 코트 두 벌뿐이었다.(*이미지는 <디아길레프와 그의 시대>(2001)란 책의 표지) 

한국 사회와 예술계에도 돈과 간판보다는 오직 실력 제일주의로 예술가의 자존심을 지켰던 디아길레프식의 열정이 살아나야 한다. 그래야 ‘신정아 쇼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천재를 발견하는 천재’로 불렸던 디아길레프의 선입견 없는 시각이 절실해지는 때이다.(이하경 문화·스포츠 부문 에디터)

07. 0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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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7-29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겠네요. 러시아어 발음으론 '쟈길레프'입니다...

로렌초의시종 2007-07-29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라빈스키도 젊었을 때는 꽤 미남이었군요~~!!^^ 그가 베니스에 묻혔단 얘길 듣고 왜 그곳이었을지가 궁금했답니다.ㅋㅋ

로쟈 2007-07-29 23:54   좋아요 0 | URL
이목구비가 똑바른 걸 기준으로 하면 그렇겠습니다...

드팀전 2007-07-2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옛날에 기분 꿀꿀할때 소리 크게 틀어 놓고 듣던 음악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었어요..^^ 원시적 쿵쿵거림은 헤비메탈 저리가라죠.^^

로쟈 2007-07-30 00:31   좋아요 0 | URL
말씀 덕분에 관련영상을 본문에 링크해놓았습니다.^^

드팀전 2007-07-30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링크 연결해서 봤는데...로쟈님 확실하시네요.재미있는 화면입니다..스트라빈스키 인터뷰 부터 자막을 이용한 곡 해설..그리고 무용까지..유투브의 힘이 저런거구만요.전 첨봤어요.^^
덕분에 피나 바우쉬 프로덕션의 영상물까지 볼 수 있게 되었군요..
피아 바위쉬 영상물도 함께 링크해주시면 어땟을까..야하다고 뭐라할라나..^^

로쟈 2007-07-30 19:48   좋아요 0 | URL
피나 바우쉬 공연은 관심있으신 분들은 바로 클릭해서 보시겠지요 뭐...

테렌티우스 2007-07-30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시절 국립극장에서 페트루슈카보고 나오던 기억이 새롭네요. 그때 디아겔레프랑 니진스키 책 사서 읽으며(어느 출판사였나? 청하였나?) 혼자 환상에 빠져 있던 생각이 불현듯 난다는 ...^^
 

며칠전 서점에서 <마르스의 두 얼굴>(연경문화사, 2007)이란 책을 보았다('마르크스'란 말이 들어간 표지들에 익숙해진 처지라 뭔가 빠진 듯하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다른 여러 신간들 틈에서였기 때문에 크게 주목하진 않았지만 뭔가 두툼하다는 게 인상적이었다(그런 두툼한 책으로 클라우스 헬트의 <지중해 철학기행>(효형출판, 2007)도 눈에 띄는 책이다). 거기에 저자가 '마이클 월저'라는 것. 철학자 '마이클 왈쩌'와 동일인인가 하는 게 잠시 가져본 궁금증이었다. 세계일보의 리뷰를 보고서 검색해보니 '월저'가 그 '왈쩌'였다(고유명사들은 웬만하면 통일해주는 게 좋을 터인데). 그리고 생각보다는 비중있는 책이라는 판단이 들어서 따로 자리를 마련한다.  

세계일보(07. 07. 28) '정당한 전쟁'이라도 무고한 시민 희생은 부당하다

세계는 지금 전쟁 중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계사는 전쟁사와 동의어로 쓰일 정도로 인류 역사는 전쟁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종교전쟁, 이념전쟁, 민족전쟁, 영토확장전쟁, 식량확보전쟁 등등.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전쟁은 정치·경제·외교·정보 등 국력의 제반 수단을 이용해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 사용하게 되는 ‘최후의 수단’이다. 전쟁 개시의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나 총리 등 민간인 군통수권자가 하게 되지만 수행은 군인들 몫이다.

문제는 정치·외교·군사적 목적 달성 혹은 방어적 성격의 전쟁이라 할지라도 그 피해는 어린이와 여성을 비롯한 무고한 민간인들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민간인 봉사단원들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단체에 납치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가까운 예다. 아프간전쟁의 후유증이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 출신인 아미클 월저가 1977년 쓴 ‘마르스의 두 얼굴’은 전쟁 도덕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 집필한 전쟁이론의 고전이다. 마르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군신, 즉 전쟁의 신을 뜻한다. 원제는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역사적 예증에 근거한 도덕적 논거’. 미국 각군 사관학교와 하버드대 등에서 교재로 채택되고 있다. 저자는 상대 국가가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될 경우엔 예방 차원의 공격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9·11 이후 전개되는 대테러전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과연 ‘사랑과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격언은 유효한 것인가.

책에서는 아테네의 멜로스 공격, 1870년의 보불전쟁, 제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때의 미라이 양민학살사건, 제1·2차 걸프전 등 다양한 전쟁에서의 도덕의 문제, 특히 전쟁의 정당성과 부당성 측면을 집중 분석해내고 있다. 책은 침략전쟁과 자위 차원의 전쟁, 국제사회에서의 국가의 권리, 정치적 공동체의 자결권, 간섭과 불간섭의 원칙, ‘예방전쟁’과 선제공격, 중립, 유용성과 비례성의 원칙, 군사적 행위의 ‘필연성’, 전시 민간인과 비전투원의 권리, 부당한 행위에 따른 책임의 문제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개별 주제와 관련해 2개 이상의 역대 전쟁에 돋보기를 바짝 갖다 대며 전쟁의 정당성 여부를 깊게 파헤친다. 저자는 ‘정당한 전쟁’도 ‘전쟁의 정당성’과 ‘전쟁에서의 정당성’으로 구분해 설명한다. ‘전쟁의 정당성’은 외세의 침략에 대항한 자위 차원의 전쟁 등 도덕적 측면에서 정당한 경우이고, ‘전쟁에서의 정당성’은 전쟁을 정당한 수단과 방법으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1차 걸프전 이후 CNN과 인터넷 중계를 통해 전쟁 상황을 세계인들이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전쟁의 수단과 방법을 고려한 전쟁 계획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오늘날 정당한 전쟁에 못지않게 정당한 전투행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군통수권자가 군인을 순조롭게 전장에 동원하기 위해선 분명한 혹은 그럴 듯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때론 정보를 조직해서라도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전쟁 명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군인들이 목숨 걸고 싸우느냐 그러지 않느냐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므로 전쟁의 정당성은 중요하다.

저자는 ‘정당한 대의(Just cause)’ 작전이라 불리는 미국의 1989년 파나마 침공을 정당하지 않은 전쟁이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성전이니 해방전쟁으로 부르는 것에도 반대한다. 즉, 자신의 ‘정당한 전쟁’ 이론이 부당한 전쟁을 방어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불쾌하다고 밝힌다. 저자는 또한 국가 간 혹은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간섭’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한다. 특히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을 제압한 후 일본헌법 제정에 간섭함으로써 일본에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이식한 것을 지지한다. 즉, 타의에 의한 정권 교체를 지지함으로써 적잖은 논란도 낳았다.

책은 이 밖에 한국전쟁을 내전이라는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을 일갈하고, 북한 핵 문제와 독도 및 간도 문제 등 우리의 현안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에서의 법과 질서’ 코너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조정진 기자)

07. 07. 28.

P.S. 수년 전에 석학초청강좌를 위해 내한하기도 했던 마이클 월저(왈쩌)(1935- )는 존 롤즈(롤스)와 함께 각각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내지는 내가 그렇게 알고 있다). 그간에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책들이 많이 번역/소개됐었는데,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이번에 출간된 <마르스의 두 얼굴>이 가장 흥미로울 듯하다(원제는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

공역자들이 모두 사관학교 출신으로 국방대학 등에 몸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책은 미국의 사관학교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관학교(혹은 국방대학)에서도 교재로 쓰이는지 모르겠고. 찾아보니 지난 77년에 출간된 책은 현재 4판까지 나와 있고(국역본에 4판 서문이 들어 있다) 맨왼쪽은 작년에 나온 페이퍼백이다. 월저는 그밖에도 <전쟁론(Arguing About War)>(2004) 등의 저작들을 더 갖고 있는데, '정의'의 문제를 전쟁을 통해서 사유한다는 점에서 독보적이지 않나 싶다(롤즈의 칸트식 정의론과 대비된다).

소개에 따르면, 그는 "미국의 베트남전 이후 반전운동의 지도적 인물 중 한 사람이기도 했으며, 2001년 9.11사태 이후에는 '야만의 방식이 아니라 문명의 방식으로 답하자'(뉴욕타임즈 2001년 9월 21일자)는 기고를 통해 사뮤엘 헌팅턴을 필두로 한 보수적 지식인과 에드워드 사이드, 노암 촘스키 등의 진보적 지식인들을 동시에 공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까지 월저(왈쩌)의 책들은 5권이 나와 있는 듯하다(나는 두 권을 갖고 있다). 특히 <해석과 사회비판>(철학과현실사, 2007)은 바로 지난달에 나온 책이다. 이 정도면 월저식 정의론과 사회철학을 한국어로도 읽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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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의로운 전쟁은 어떻게 가능한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9-10 20:21 
    지난주 신간 가운데 리뷰가 뜨길 기다렸던 책은 마이클 왈저의 <전쟁과 정의>(인간사랑, 2009)이다. 이미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을 논한 <마르스의 두 얼굴>(연경문화사, 2007)이 소개된 터여서 의외의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9.11이 낀 주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한번쯤 손에 들어봄 직하다.    연합뉴스(09. 09. 10) 전쟁에 정의의 잣대 들이대기  오늘날 많은
 
 
마늘빵 2007-07-28 13:10   좋아요 0 | URL
매우 끌리는 책이 번역되었군요. 롤즈를 읽고 마이클왈쪄를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주제는 롤즈보다는 왈쪄가 더 끌리는데, 아무런 기반도 없이 덤벼들 수 없엇, 논문은... 음... (.. )

로쟈 2007-07-28 14:16   좋아요 0 | URL
'정의'를 추상적인/이론적인 사변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사례(전쟁!)를 통해서 접근해가는 게 월저의 장점인 듯합니다. 저도 처음 안 것이지만...

마늘빵 2007-07-28 15:05   좋아요 0 | URL
근데 그의 이전작들은 껍데기가 허섭한데, 이번건 깔끔합니다. 보고 싶게 만들어졌는데요?

로쟈 2007-07-28 15:07   좋아요 0 | URL
철학과 현실사의 책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쪽은 주로 '철학'에만 신경을 쓰는지라...

未知生焉知死 2007-07-28 15:07   좋아요 0 | URL
공리주의를 배척하고 계약론의 입장에서 '정의'를 규명하려는 롤즈의 규범적 구성주의는 처음 이론이 나왔을 때보다 여러 학자들의 비판으로 더욱 형이상학적이 되면서 이해하기가 어려워졌는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정의에 접근한다니 읽어봐야겠군요.

로쟈 2007-07-28 15:10   좋아요 0 | URL
네, 말씀대로 그게 장점일 거 같습니다. 헌팅턴과 촘스키를 모두 비판할 수 있는 포지션도 궁금하구요...
 

내일자 신문들에 실리는 이번주 북리뷰들을 잠깐 훑어보니 역시나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김영사, 2007)이 가장 크게 다루어지고 있다(이제 생각해보니 'The God Delusion'이란 원제가 '신이라는 망상' 대신에 '만들어진 신'이라고 완화된 표현으로 번역된 것은 '망상'의 힘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미 소개한 책이라 덧붙일 말은 없고 대신에 눈길을 주고픈 책은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개마고원, 2007)이다. 고종석에 대해서야 두말하면 잔소리이겠고(http://blog.aladin.co.kr/mramor/1048104) 책은 이미 주중에 서점에 깔린바 알다시피 작년 한해(그리고 올 2월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된 칼럼이고 나도 몇 차례 옮겨온 바 있다. 책은 생각보다는 늦게 나온 셈이지만 그럼에도 소장도서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어림짐작에 80% 이상은 읽은 셈이 되지만). 한국일보의 리뷰를 옮겨놓는다(아마 내년 이맘때는 현재 연재중인 '도시의 기억'이 책으로 묶여 나올 터이군)...

한국일보(07. 07. 28) 우리시대의 언어를 켜켜이 들춰본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말했다. 고종석씨의 언어는 신문 기자, 언어학도, 작가라는 존재 양식이 중첩된 지점에서 올려진 축조물이다. 그가 2006년 3월~지난 2월 까지 한국일보에 전면 기사로 연재했던 <말들의 풍경>이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글 맨 뒤에 찍혀져 있는 년월일은 신문에 게재된 날짜다. 저자는 “리모델링하지 않고, 신문에 실었던 그대로의 ‘날글’을 그대로 실었다”며 “우아함을 포기하고, 글들이 쓰여질 당시의 맥락을 살려 씌어진 시점의 발언으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한다”고 양해를 구한다.

그 저널적 풍경은 2005년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시인 공화국 풍경들>의 연장선상에 있다(*이 연재는 <모국어의 속살>(마음산책, 2006)로 출간됐다). 한국 현대시에서 한국어, 나아가 언어 일반으로 관심의 지평을 넓힌 결과물로서의 글들은 당대와 밀접히 호흡해야 하는 신문 글의 새 전범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책은 현대 한국어를 주제로 해 펼칠 수 있는 논의의 지평이 얼마나 넓은지를 입증한다.

<청산별곡>에서 홍희담의 <깃발>까지 시대를 가로지르며, 여성성과 남성성의 언어 등 이 시대 언어 현상의 정곡을 찔러 들어 간다. 한국어는 수천여개를 훨씬 넘는 언어들 가운데 12~13번째로 사용자가 많은, 매우 큰 언어라고 책은 쓴다. 그러나 남북한의 인구가 감소ㆍ정체되는 현실에서, 한국어의 위세는 현실적으로 훨씬 더 초라해진다며 주의를 촉구한다.

정부ㆍ기업ㆍ대학과 연구소 등이 힘을 모아 한국어라는 조붓한 길을 정성스레 가굴 때, 그 길로 걷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맨 마지막(2월 21일자) 글에는 필자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져 있다.
본문 바로 뒤에 달린 작은 박스들은 법령, 대담 기사, 저잣거리의 노래 가사, 시대적 발표문 등 온갖 층위의 언어를 텍스트로 하여 분석, 바로 앞의 논의를 풍성히 해 준다. 책의 제목은 작고한 문학 평론가 김현 유고 평론집에서 따왔다고 저자는 자서(自序), 즉 서문에서 밝힌다.

“김현의 파트너이자 맞적수라 할 김윤식”에 대한 논평은 물론, 강준만ㆍ홍승면ㆍ임재경ㆍ정운영 등의 저널리즘적 글쓰기와 전혜린ㆍ양주동 등 문사의 글에도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고종석씨는 “다채로운 층위로 이뤄진 한국어의 켜를 하나하나 들춰보려 했다”고 썼다.(장병욱 기자)

07. 07. 26.

P.S. 저자가 “리모델링하지 않고, 신문에 실었던 그대로의 ‘날글’을 그대로 실었다”고는 했지만 확인해보니 내가 발견했던 오타들은 모두 교정돼 있었다(http://blog.aladin.co.kr/mramor/1053323 참조). 한편, <말들의 풍경>과 함께 <감염된 언어>(개마고원, 2007)도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1999년에 첫 출간되었으며, 이번에 나온 것은 장정을 바꾸고, '섞임과 스밈-언어순수주의에 거는 딴죽'이라는 글을 추가한 것"이라 한다. 개인적으론 가장 좋아하는 고종석의 책 두어 권 중 하나이기에 여유만 된다면 모두 책꽂이에 꽂아둘 터인데 당분간은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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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7-07-27 22:37   좋아요 0 | URL
ㅎㅎ개인적으로는 모국어의 속살이 맘에 들었어요. 음악을 감상하는 것 같은 차분한 시선이 맘에 들었달까요^^ 이번에 나온 책도 기대는 되지만, 내년에 나올 도시의 기억이 더 당겨요. 그냥 읽고 싶은데 한번에 책으로 읽으려고 일부러 안보고 있거든요~

로쟈 2007-07-27 22:43   좋아요 0 | URL
그의 연재들이 일정한 품격을 갖추고 있지요. 어디에 꽂아두더라도 므흣한...

마늘빵 2007-07-28 01:03   좋아요 0 | URL
허참. 책을 또 내셨더군요. 이전 책까지. 같은 책이어도 다시 삽니다. 강준만도 또 책냈던데 따라가기 힘듭니다. 대단한 열정이에요.

로쟈 2007-07-28 15:04   좋아요 0 | URL
'연재'이니까 '열정'이기도 하면서 '밥줄'도 겸하지 않을까요.^^

베토벤 2007-07-29 12:33   좋아요 0 | URL
'감염된 언어'가 새로 나왔다니 정말 반갑네요. 제게는 대학시절에 막연한 '순수'에 대한 환상에서 기분좋게 깨어나게 해줬던 책이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세월의 힘을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로쟈 2007-07-29 17:33   좋아요 0 | URL
증보판이 나온 것으로 보아 저자 자신도 애착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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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들어진 신-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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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7-07-27 20:34   좋아요 0 | URL
굴드의 [판다의 엄지] 다윈주의 서적 중에 가장 재밌게 읽어본 책인데 출판사가 망해서리 살 수는 없네요.ㅡㅡ;; [생명,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Wonderful Life]도 참 내용은 좋은데 너무 내용이 지루할 정도로 세세하고 반복된다는.... ㅡㅡa

로쟈 2007-07-27 22:31   좋아요 0 | URL
도킨스나 굴드의 책들을 다 거명하자면 두 손가락에 모자라지요.^^

수유 2007-07-28 17:32   좋아요 0 | URL
God Delusion이죠? 어서 구입해야할것 같아요. 번역은 이한음씨고..출판사가 김영사네요..

로쟈 2007-07-28 18:03   좋아요 0 | URL
며칠전 페이퍼(http://blog.aladdin.co.kr/mramor/1446434#C1259734)를 참조하시길...
 

'지아장커'란 이름으로 내겐 더 익숙한 중국 감독 자장커의 영화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의 근작 3편을 상영한다는 '자장커 스페셜'이 그것이다. 작년에 워낙 호평을 받은 영화 <스틸 라이프>는 나도 구해놓은 지 오래됐지만 차일피일 미루면 못 보고 있었는데, 이 참에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니까 '나대로 스페셜'이다).  

 

문화일보(07. 07. 26) 고속성장 뒤편의 고허한 소시민, 중국의 ‘속살’을 본다

중국 내 독립영화의 흐름을 일컫는 ‘지하전영(地下電影)’.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 감독으로 분류되는 자장커(賈樟柯) 감독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서울 낙원동 소재 필름포럼이 26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개최하는 ‘자장커 스페셜’은 국내에선 다소 낯설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중국 사회의 이면에 숨겨진 소시민들의 공허함과 혼란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잇따라 선보여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의 작품 3편을 모았다. 자장커 감독은 ‘플랫폼’ ‘소무’ ‘임소요’ 등 그동안 만들어온 작품들이 중국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친 탓에 중국 내 영화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우선 2006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스틸라이프’는 중국 양쯔(揚子)강 중상류 싼샤(三峽)지방을 찾은 두 남녀를 통해 해체와 파괴가 엇갈리고 있는 지금 중국사회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영화. 세계 최대 규모로 지어지고 있는 싼샤댐이 오랫동안 쌓아온 역사와 흔적을 지우는 현장을 담아낸다. 지난 6월 필름포럼에서 개봉했던 작품은 특히 단관 개봉임에도 현재 1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장기 상영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선 또 ‘스틸라이프’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동’도 소개된다. ‘동’은 신도시 개발과 함께 댐 건설로 2000년 고도가 무너지는 현장을 찾아간 현대화가 류샤오둥의 여정을 자장커 감독이 담은 것. 신도시 건설현장의 노동자들, 그리고 방콕의 젊은 여자모델들을 화폭에 담는 화가의 뒤를 쫓으며 현재의 중국을 예리한 시선으로 고발하는 작품이다. ‘동’은 이번 행사 후 국내에 정식 개봉된다.



이와 함께 상영될 2004년작 ‘세계’는 베이징의 ‘세계공원’에서 댄서로 일하는 타오와 공원 순찰관인 타이셩 등 청춘남녀의 일상을 통해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모순을 지적하는 작품. 에펠탑, 피라미드로 가득한 공원은 지구의 축소판이며, 현재 중국의 모습이다.

자장커 감독은 행사기간에 맞춰 방한해 관객과의 대화시간(28일 오후 3시) 등을 가질 예정이다. 자세한 상영작 정보와 행사일정은 필름포럼 홈페이지(www.filmforum.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강연곤기자)

경향신문(07. 06. 21) [영화 가로지르기]스틸 라이프

‘스틸 라이프’(감독 자장커)는 가족을 찾아 먼길을 떠난 두 사람의 이야기다. 산밍(한산밍)은 자신의 아내와 딸을 찾아 16년 만에 산샤로 돌아온다. 그러나 산밍이 도착한 산샤는 건설되는 댐 때문에 많은 지역이 수몰된 상태다. 한편 2년 동안 남편과 연락이 끊어진 셴홍(자오 타오)도 남편을 찾아 산샤로 온다. 셴홍은 달라진 남편의 모습에 실망하며 혼자 산샤를 떠난다.

자본주의의 물결은 제일 먼저 인간관계를 이해관계로 대체해 버린다. 영화에는 산밍과 셴홍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상황이 존재한다. 두 사람은 모두 보상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웃들간의 격렬한 아귀 다툼을 우두커니 지켜본다. 이처럼 개발의 광풍은 오랜 인간관계에까지 개입하고 간섭한다.

수몰된 지역을 바라보는 산밍의 눈길에 포착된 풍경은 스산하다. 그 풍경에 스며든 적막은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 서민들의 무력한 침묵으로 이어진다. 산밍과 아내의 대화는 서먹하다. 그 대화의 간극을 채우는 것은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가난한 자들의 슬픈 침묵이다. 그 침묵에는 개발의 이름으로 삶의 뿌리가 뽑힌 사람들의 울분과 회한이 서려 있다.



번영의 이미지로 치장한 건설과 개발은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을 ‘합법적’으로 추방한다. 이제 오래된 건물들과 거주하는 사람들은 개발의 걸림돌로 여겨질 뿐이다. 그들은 그 개발의 축제에 초청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개발의 횡포 앞에 정직한 육체로 맞설 수밖에 없는 자들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줄타기를 하는 어느 노동자의 모습은 일하는 사람들의 정직한 육체가 처한 위태로운 처지를 상징한다. 이제 그들은 다시 낯선 도시의 가난한 주변부를 향해 떠나야 한다. 산밍도 또 다른 일거리를 찾아 노동자들과 함께 산샤를 떠난다.

개발의 과정은 그곳에 터잡고 살아온 사람들을 냉혹하게 추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들이 정처없는 유랑민이 되어 현대판 유배 생활을 떠나는 것으로 완성된다. 가난한 자들을 추방하여 그들에게 유랑을 강요하는 개발의 논리는 아무리 합법을 가장하더라도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스틸 라이프’의 산밍이 개발 예정지에서 목격한 것도 소외와 폭력이 아니었던가.

우리 사회 역시 신도시 개발을 둘러싼 풍문 한마디에 요동치는 ‘개발 지향적 사회’다. 한국 사회야말로 개발을 구원으로 맹신하는 ‘개발 강박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발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추방당하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낯선 곳으로 ‘자본에 의한 유배’를 떠나야 하는 것일까.

치밀한 사실성으로 무장했지만, ‘스틸 라이프’에는 초현실적 장면들도 등장한다. 하늘로 발사되는 기이한 건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발의 논리 앞에서는 결국 그 건물도 언젠가는 철거를 위한 쇠망치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초현실적 장면에는 한꺼번에 하늘로 사라지지 않는 한 그 건물 역시 철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그런 공상을 통해서라도 철거를 막고 싶은 주변부 주민들의 절박감이 섞여 있다.

개발의 논리 앞에서는 ‘개발된 곳’과 ‘개발되지 못한 곳’의 구분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삶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공간들은 가차없이 서열화된다. 하지만 개발의 폭력은 단지 자연적 풍광만을 수몰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추억도 더불어 수몰됐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공간이 수몰될 때,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숨결과 자취도 함께 사라진다.

가난한 자들의 기억, 개발의 걸림돌이 되어버린 자들의 추억은 그렇게 폐기된다. 그들의 추억은 공권력이나 자본에 의해 기록되거나 보호되지 않는다. 사탕과 차를 통해 겨우 자신들의 추억을 되살려 내야 하는 그들의 막막함은 개발에 어울리지 않는 기억들을 모두 수몰시키려는 자본의 위세 앞에서 이내 절망감으로 변한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산밍과 동료 노동자들의 눈에는 일하는 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온기가 담겨 있다. 그 담담한 온기는 가난한 자들 간의 우정이자 유대감일 것이다. 건설현장에 버려진 하숙집 청년의 주검을 수습하는 것도 결국 그 노동자들이다.

산밍은 딸과 아내를 데려 가기 위해 산샤를 찾는다. 하지만 산샤를 떠나며 그가 동행한 사람은 딸과 아내가 아니라 산샤에서 만난 노동자들이었다. 함께 땀방울을 흘린 노동자들과 길을 떠나는 산밍의 모습에는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에서 작은 희망을 찾으려는 감독의 의지가 녹아 있다.(황승현|영화평론가)

07. 07. 27.

P.S. 영화 <스틸 라이프>에 대해서는 작년 가을 씨네21에서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장문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1&article_id=42355). 영화를 보고 나면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P.S.2. 이번 '스페셜'을 위해 내한한 지아장커와의 인터뷰 한 꼭지도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07. 30) 중국 독립영화 대표주자 지아장커 감독 내한

중국 독립영화의 대표주자 지아장커(賈樟柯ㆍ37) 감독이 서울에서 진행 중인 자신의 특별전을 맞아 방한했다. 감독은 28일 ‘지아장커 스페셜’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 필름포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속 성장의 그늘에서 소외되고 파편화된 소시민들의 이야기”라고 자신의 작품들을 설명했다.

“싼샤(三峽) 댐 건설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람의 터전을 떠나야 했고, 7,8개의 도시가 사라졌어요. 도시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도 해체되고 있어요. 너무도 빠른 속도로.” 데뷔작 <소무>부터 그의 시선은, 일관되게 현대화의 광풍 속에 사라지는 것들을 향해 있다.

이 시선은 세계 최대의 댐 공사인 싼샤공정(三峽工程)에 멎어, 최근작 <동>과 <스틸라이프>를 낳았다. “2,000년 된 도시가 2년 만에 사라지고 있다고. 미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거야.” <스틸라이프> 속 수몰민들의 이 대사에, 감독의 안타까운 절규가 겹쳐진다. 이 영화는 감독에게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안겼다.

“중국에서 점점 ‘현실’을 얘기하는 작가들 사라지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더 (현실의 문제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감독은 최근 중국영화의 경향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첸카이커(陳凱歌), 장이머우(張藝謀) 등 중국영화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선배들이 상업영화로 전환, 판타지에 가까운 사극만 만들어 내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심의를 쉽게 통과하기 위해, 또는 해외에서 팔리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두들 사극만 찍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그런 영화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지하전영(地下電映)’이라고 불리는, 중국적 인디영화의 정신을 이어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감독의 뜻이 얼마나 반향을 불러 올 수 있을까. 그는 지극히 개인화, 자본주의화하는 중국 젊은이들의 모습에 종종 울분을 토해 왔다. “<스틸라이프>의 DVD가 60만장 정도 팔렸어요. 인터넷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고요. 이 영화를 보고 싼샤로 여행을 가는 젊은이들도 생겼다고 들었어요.” 세계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 상영관을 찾기 힘든 그이지만, 3,4년 전에 비해서 그의 목소리는 분명히 희망적이었다.

감독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UFO 등 초현실적 이미지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변화 속에서, UFO의 등장도 그다지 비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며 “모두들 행복을 쫓아 정신없이 달려가지만, 그 행복은 UFO 같은 존재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영화의 호흡이 매우 느리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우리 생활이 너무 빨라지고 있다. 생활의 과정을 보여 줄 새도 없이 지나가 버린다. 원래 그대로의 ‘시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로우예(婁燁ㆍ42) 등과 함께 6세대 감독으로 분류되는 지아장커는 <임소요> <플랫폼> <소무> 등, 화려한 성장의 외피에 가려진 중국인들의 아픈 내면을 영화에 담아 왔다. 그의 영화는 중국 정부의 개발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 때문에 2004년까지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다음달 2일까지 진행되는 지아장커 스페셜에서는 싼샤댐을 다룬 다큐멘터리 <동>과 극영화 <스틸라이프>, 세계화 흐름 속에 중국 민중의 현실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세계> 등 3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자세한 정보는 필름포럼 홈페이지(www.filmforum.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유상호 기자)

07. 0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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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7-28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과 <세계>를 <스틸라이프>와 함께 필름포럼에서 아주 짧게 올리더군요. 난 <스틸라이프>를 보았고 그것은 꼭 <동>과 함께 보아야 한다는 정성일의 말대로 <동>을 볼 생각입니다.
뒤늦게 지아장커의 팬이 되었어요..

로쟈 2007-07-28 17:30   좋아요 0 | URL
나중에 감상을 좀 들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