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에는 한국일보를 우선적으로 사본다. 가장 큰 이유는 고종석의 연재칼럼 '말들의 풍경'을 읽기 위해서이다. 물론 기사들이야 온라인에도 게재되지만 나는 가급적 '신문지'를 읽는다. 어쩌다 '인터넷 서평꾼'으로 불리게도 됐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화면이 아니라 종이이다(무엇보다도 종이책의 부피, 볼륨감을 나는 사랑한다). 지난 수요일에도 이 연재의 48번째 꼭지 '이름의 생태학'을 읽었는데, 고종석의 글답지 않게 오타/오류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바쁜 일들로 며칠을 흘려보내다가 마침 다시 생각난 김에 교정해둔다. 문제가 되는 대목의 전후 문단들을 같이 인용하겠다. 칼럼의 전문은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01/h2007013018505185150.htm 참조.

한국사람의 성명이 이렇게 세 음절로 일반화한 것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다. 중국사람들도 성 한 음절(글자)에 이름 두 음절인 것이 상례다. 또 흔히 이름 두 음절 가운데 한 음절로 항렬을 드러내 왔다. 그래서, 이름으로 선호하는 글자가 서로 조금씩 다르고 두 나라에 고유한 성들이 있긴 하지만, 성명이 한자로 표기되면 당사자가 중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적지 않다. 1970년대 이후 일부 한국인들은 자식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고유어로 지으며 언어민족주의를 실천했다. 그리고 이런 고유어 이름(소위 ‘한글 이름’)의 등장과 함께 한국어 성명의 음절수 제약이 부분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그 기다란 이름 탓에 언론에도 오르내린 박차고나온놈이샘이나씨나 황금독수리온세상을놀라게하다씨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겠으나, 그렇게 별나지 않더라도 고유어 이름이 두 음절 제약에서 풀려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젊은 국문학자 권보드레씨도 그런 경우다. 그러나 고유어로 이름을 지을 때도, 한국인들은 ‘성명 석 자’의 관습을 따라 두 음절 이름을 짓는 일이 많다. 예컨대 (역시 본명인지는 모르겠으나) 연기인 한고은씨나 한예슬씨가 그렇고, 문학평론가 정끝별씨가 그렇다. 그것은 자식의 이름을 너무 이질적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부모의 배려와 관련 있을 게다. 주류 한자어 이름으로부터 떨려나려는 고유어 이름의 원심력을 두 음절이라는 관례의 구심력이 맞버텨주는 것이다.

 

 

 

 

인용에서 젊은 국문학자 '권보드레씨'라고 했는데, '권보드씨'가 맞다. 이름과 관련한 오타이니 아무리 사소하다고 할지라도 본인에게는 실례이겠다. <한국 근대소설의 기원>(소명출판, 2000), <연애의 시대>(현실문화연구, 2003) 등의 단독 저작을 갖고 있는 저자의 이름을 잘못 표기한 건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 필자의 착오가 확신과 결합된 경우가 아닌가 싶은데, 고유명사를 다룰 때에는 '고중석' 위원도 좀 주의하셔야겠다.

현대 유럽인들의 성명은 이름(퍼스트 네임)과 성(라스트 네임) 둘로 이뤄진 경우가 많다. 가운데이름(미들네임)이 있어도 일상적으론 잘 드러내지 않는다. 가운데이름이 들어간 성명은 얼마쯤 귀족적으로, 다시 말해 젠체하는 듯 들리기 때문이다. 현대 이전에는 그런 가운데이름들이 둘 이상 나열되기도 했다. 독일관념론을 완성한 철학자 헤겔의 정식 이름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이고, ‘질풍노도’(슈투름 운트 드랑)를 이끈 시인 실러의 정식 이름은 요한 흐리스토프 프리드리히 폰 실러다.

이름 뒤에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나란히 붙이는 일이 흔한 스페인어권에서는 성명이 세 부분으로(스페인어권에선 이름이 둘인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그 경우엔 네 부분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가르시아는 아버지 성이고 마르케스는 어머니 성이다. 기혼 여성은 어머니 성을 넣을 자리에 전치사 ‘데’(de)를 앞세운 남편 성을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버지 이름을 변형한 부칭(父稱)을 이름과 성 사이에 넣는 러시아어권 사람들의 성명도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 할 수 있다.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들은 알렉세이 콘스탄티노비치 톨스토이라는 성명만 들으면 이 사람 아버지의 이름이 콘스탄티노프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두번째는 러시아인 이름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콘스탄티노비치'라는 러시아어 부칭이 저절로 알려주는 바가 그 아버지의 이름이 '콘스탄티노프'라는 사실이라고 적었지만 오류이다. 그 부칭이 알려주는 이름은 '콘스탄틴'이기 때문이다. 그 콘스탄틴 톨스토이의 아들 알렉세이(알료샤) 콘스탄티노비치 톨스토이(1817-1875)는 우리가 다 아는 거장 레프 톨스토이 가문의 시인이자 작가로 톨스토이보다는 11살이 더 많다. 대표작은 역사드라마 3부작.

레프 톨스토이만큼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또다른 러시아 작가의 이름 또한 톨스토이 백작 가문에 속하는(몰락한 지계의 톨스토이이다), 알렉세이 톨스토이인데, 그의 풀네임은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83-1945)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이름이 '니콜라이'이다. 이름과 성만 가지고는 두 '알렉세이 톨스토이'를 구별할 수 없으며 이런 경우엔 부칭까지 확인해야 되는 것(흔히 러시아인들은 이름과 부칭만을 부른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의 대표작으론 <고뇌속을 가다>(기민사, 1986)와 역사소설 <표트르 대제>(아래는 문고본 사진) 등이 있다...

07. 0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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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2007-02-03 01:18   좋아요 0 | URL
'고유명사를 다룰 때에는 '고중석' 위원도 좀 주의하셔야겠다.'
재미 있네요 일부러 틀리신거죠? 로져님

로쟈 2007-02-03 10:34   좋아요 0 | URL
주의깊게 읽으시는군요.^^

딸기 2007-02-03 12:20   좋아요 0 | URL
코끼리님의 댓글이 더 재밌어요 ㅋㅋ

저 집안은 글을 잘 쓰는 집안인가보군요 ^^

딸기 2007-02-03 12:22   좋아요 0 | URL
알렉시스 톨스토이의 '이비쿠스'라는 책을 갖고 있는데,
그 사람도 저 집안인지 궁금해지네요.

로쟈 2007-02-03 13:05   좋아요 0 | URL
'알렉시스 톨스토이'가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입니다. '알렉세이'를 불어로 읽어준 거 같은데요...

나비80 2007-02-03 18:37   좋아요 0 | URL
좀 지난 이야기지만 '마르시아스 심'씨는 결국 '심상대'로 다시 돌아왔지요.
갑자기 이름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났습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로쟈 2007-02-03 20:49   좋아요 0 | URL
본인은 그게 정말로 가능한 이름이라고 궁금했었죠. 싱거운 심상대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