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장커'란 이름으로 내겐 더 익숙한 중국 감독 자장커의 영화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의 근작 3편을 상영한다는 '자장커 스페셜'이 그것이다. 작년에 워낙 호평을 받은 영화 <스틸 라이프>는 나도 구해놓은 지 오래됐지만 차일피일 미루면 못 보고 있었는데, 이 참에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니까 '나대로 스페셜'이다).  

 

문화일보(07. 07. 26) 고속성장 뒤편의 고허한 소시민, 중국의 ‘속살’을 본다

중국 내 독립영화의 흐름을 일컫는 ‘지하전영(地下電影)’.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 감독으로 분류되는 자장커(賈樟柯) 감독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서울 낙원동 소재 필름포럼이 26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개최하는 ‘자장커 스페셜’은 국내에선 다소 낯설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중국 사회의 이면에 숨겨진 소시민들의 공허함과 혼란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잇따라 선보여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의 작품 3편을 모았다. 자장커 감독은 ‘플랫폼’ ‘소무’ ‘임소요’ 등 그동안 만들어온 작품들이 중국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친 탓에 중국 내 영화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우선 2006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스틸라이프’는 중국 양쯔(揚子)강 중상류 싼샤(三峽)지방을 찾은 두 남녀를 통해 해체와 파괴가 엇갈리고 있는 지금 중국사회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영화. 세계 최대 규모로 지어지고 있는 싼샤댐이 오랫동안 쌓아온 역사와 흔적을 지우는 현장을 담아낸다. 지난 6월 필름포럼에서 개봉했던 작품은 특히 단관 개봉임에도 현재 1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장기 상영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선 또 ‘스틸라이프’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동’도 소개된다. ‘동’은 신도시 개발과 함께 댐 건설로 2000년 고도가 무너지는 현장을 찾아간 현대화가 류샤오둥의 여정을 자장커 감독이 담은 것. 신도시 건설현장의 노동자들, 그리고 방콕의 젊은 여자모델들을 화폭에 담는 화가의 뒤를 쫓으며 현재의 중국을 예리한 시선으로 고발하는 작품이다. ‘동’은 이번 행사 후 국내에 정식 개봉된다.



이와 함께 상영될 2004년작 ‘세계’는 베이징의 ‘세계공원’에서 댄서로 일하는 타오와 공원 순찰관인 타이셩 등 청춘남녀의 일상을 통해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모순을 지적하는 작품. 에펠탑, 피라미드로 가득한 공원은 지구의 축소판이며, 현재 중국의 모습이다.

자장커 감독은 행사기간에 맞춰 방한해 관객과의 대화시간(28일 오후 3시) 등을 가질 예정이다. 자세한 상영작 정보와 행사일정은 필름포럼 홈페이지(www.filmforum.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강연곤기자)

경향신문(07. 06. 21) [영화 가로지르기]스틸 라이프

‘스틸 라이프’(감독 자장커)는 가족을 찾아 먼길을 떠난 두 사람의 이야기다. 산밍(한산밍)은 자신의 아내와 딸을 찾아 16년 만에 산샤로 돌아온다. 그러나 산밍이 도착한 산샤는 건설되는 댐 때문에 많은 지역이 수몰된 상태다. 한편 2년 동안 남편과 연락이 끊어진 셴홍(자오 타오)도 남편을 찾아 산샤로 온다. 셴홍은 달라진 남편의 모습에 실망하며 혼자 산샤를 떠난다.

자본주의의 물결은 제일 먼저 인간관계를 이해관계로 대체해 버린다. 영화에는 산밍과 셴홍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상황이 존재한다. 두 사람은 모두 보상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웃들간의 격렬한 아귀 다툼을 우두커니 지켜본다. 이처럼 개발의 광풍은 오랜 인간관계에까지 개입하고 간섭한다.

수몰된 지역을 바라보는 산밍의 눈길에 포착된 풍경은 스산하다. 그 풍경에 스며든 적막은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 서민들의 무력한 침묵으로 이어진다. 산밍과 아내의 대화는 서먹하다. 그 대화의 간극을 채우는 것은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가난한 자들의 슬픈 침묵이다. 그 침묵에는 개발의 이름으로 삶의 뿌리가 뽑힌 사람들의 울분과 회한이 서려 있다.



번영의 이미지로 치장한 건설과 개발은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을 ‘합법적’으로 추방한다. 이제 오래된 건물들과 거주하는 사람들은 개발의 걸림돌로 여겨질 뿐이다. 그들은 그 개발의 축제에 초청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개발의 횡포 앞에 정직한 육체로 맞설 수밖에 없는 자들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줄타기를 하는 어느 노동자의 모습은 일하는 사람들의 정직한 육체가 처한 위태로운 처지를 상징한다. 이제 그들은 다시 낯선 도시의 가난한 주변부를 향해 떠나야 한다. 산밍도 또 다른 일거리를 찾아 노동자들과 함께 산샤를 떠난다.

개발의 과정은 그곳에 터잡고 살아온 사람들을 냉혹하게 추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들이 정처없는 유랑민이 되어 현대판 유배 생활을 떠나는 것으로 완성된다. 가난한 자들을 추방하여 그들에게 유랑을 강요하는 개발의 논리는 아무리 합법을 가장하더라도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스틸 라이프’의 산밍이 개발 예정지에서 목격한 것도 소외와 폭력이 아니었던가.

우리 사회 역시 신도시 개발을 둘러싼 풍문 한마디에 요동치는 ‘개발 지향적 사회’다. 한국 사회야말로 개발을 구원으로 맹신하는 ‘개발 강박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발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추방당하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낯선 곳으로 ‘자본에 의한 유배’를 떠나야 하는 것일까.

치밀한 사실성으로 무장했지만, ‘스틸 라이프’에는 초현실적 장면들도 등장한다. 하늘로 발사되는 기이한 건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발의 논리 앞에서는 결국 그 건물도 언젠가는 철거를 위한 쇠망치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초현실적 장면에는 한꺼번에 하늘로 사라지지 않는 한 그 건물 역시 철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그런 공상을 통해서라도 철거를 막고 싶은 주변부 주민들의 절박감이 섞여 있다.

개발의 논리 앞에서는 ‘개발된 곳’과 ‘개발되지 못한 곳’의 구분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삶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공간들은 가차없이 서열화된다. 하지만 개발의 폭력은 단지 자연적 풍광만을 수몰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추억도 더불어 수몰됐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공간이 수몰될 때,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숨결과 자취도 함께 사라진다.

가난한 자들의 기억, 개발의 걸림돌이 되어버린 자들의 추억은 그렇게 폐기된다. 그들의 추억은 공권력이나 자본에 의해 기록되거나 보호되지 않는다. 사탕과 차를 통해 겨우 자신들의 추억을 되살려 내야 하는 그들의 막막함은 개발에 어울리지 않는 기억들을 모두 수몰시키려는 자본의 위세 앞에서 이내 절망감으로 변한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산밍과 동료 노동자들의 눈에는 일하는 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온기가 담겨 있다. 그 담담한 온기는 가난한 자들 간의 우정이자 유대감일 것이다. 건설현장에 버려진 하숙집 청년의 주검을 수습하는 것도 결국 그 노동자들이다.

산밍은 딸과 아내를 데려 가기 위해 산샤를 찾는다. 하지만 산샤를 떠나며 그가 동행한 사람은 딸과 아내가 아니라 산샤에서 만난 노동자들이었다. 함께 땀방울을 흘린 노동자들과 길을 떠나는 산밍의 모습에는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에서 작은 희망을 찾으려는 감독의 의지가 녹아 있다.(황승현|영화평론가)

07. 07. 27.

P.S. 영화 <스틸 라이프>에 대해서는 작년 가을 씨네21에서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장문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1&article_id=42355). 영화를 보고 나면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P.S.2. 이번 '스페셜'을 위해 내한한 지아장커와의 인터뷰 한 꼭지도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07. 30) 중국 독립영화 대표주자 지아장커 감독 내한

중국 독립영화의 대표주자 지아장커(賈樟柯ㆍ37) 감독이 서울에서 진행 중인 자신의 특별전을 맞아 방한했다. 감독은 28일 ‘지아장커 스페셜’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 필름포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속 성장의 그늘에서 소외되고 파편화된 소시민들의 이야기”라고 자신의 작품들을 설명했다.

“싼샤(三峽) 댐 건설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람의 터전을 떠나야 했고, 7,8개의 도시가 사라졌어요. 도시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도 해체되고 있어요. 너무도 빠른 속도로.” 데뷔작 <소무>부터 그의 시선은, 일관되게 현대화의 광풍 속에 사라지는 것들을 향해 있다.

이 시선은 세계 최대의 댐 공사인 싼샤공정(三峽工程)에 멎어, 최근작 <동>과 <스틸라이프>를 낳았다. “2,000년 된 도시가 2년 만에 사라지고 있다고. 미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거야.” <스틸라이프> 속 수몰민들의 이 대사에, 감독의 안타까운 절규가 겹쳐진다. 이 영화는 감독에게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안겼다.

“중국에서 점점 ‘현실’을 얘기하는 작가들 사라지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더 (현실의 문제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감독은 최근 중국영화의 경향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첸카이커(陳凱歌), 장이머우(張藝謀) 등 중국영화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선배들이 상업영화로 전환, 판타지에 가까운 사극만 만들어 내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심의를 쉽게 통과하기 위해, 또는 해외에서 팔리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두들 사극만 찍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그런 영화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지하전영(地下電映)’이라고 불리는, 중국적 인디영화의 정신을 이어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감독의 뜻이 얼마나 반향을 불러 올 수 있을까. 그는 지극히 개인화, 자본주의화하는 중국 젊은이들의 모습에 종종 울분을 토해 왔다. “<스틸라이프>의 DVD가 60만장 정도 팔렸어요. 인터넷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고요. 이 영화를 보고 싼샤로 여행을 가는 젊은이들도 생겼다고 들었어요.” 세계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 상영관을 찾기 힘든 그이지만, 3,4년 전에 비해서 그의 목소리는 분명히 희망적이었다.

감독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UFO 등 초현실적 이미지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변화 속에서, UFO의 등장도 그다지 비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며 “모두들 행복을 쫓아 정신없이 달려가지만, 그 행복은 UFO 같은 존재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영화의 호흡이 매우 느리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우리 생활이 너무 빨라지고 있다. 생활의 과정을 보여 줄 새도 없이 지나가 버린다. 원래 그대로의 ‘시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로우예(婁燁ㆍ42) 등과 함께 6세대 감독으로 분류되는 지아장커는 <임소요> <플랫폼> <소무> 등, 화려한 성장의 외피에 가려진 중국인들의 아픈 내면을 영화에 담아 왔다. 그의 영화는 중국 정부의 개발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 때문에 2004년까지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다음달 2일까지 진행되는 지아장커 스페셜에서는 싼샤댐을 다룬 다큐멘터리 <동>과 극영화 <스틸라이프>, 세계화 흐름 속에 중국 민중의 현실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세계> 등 3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자세한 정보는 필름포럼 홈페이지(www.filmforum.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유상호 기자)

07. 0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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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7-28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과 <세계>를 <스틸라이프>와 함께 필름포럼에서 아주 짧게 올리더군요. 난 <스틸라이프>를 보았고 그것은 꼭 <동>과 함께 보아야 한다는 정성일의 말대로 <동>을 볼 생각입니다.
뒤늦게 지아장커의 팬이 되었어요..

로쟈 2007-07-28 17:30   좋아요 0 | URL
나중에 감상을 좀 들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