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자 신문들에 실리는 이번주 북리뷰들을 잠깐 훑어보니 역시나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김영사, 2007)이 가장 크게 다루어지고 있다(이제 생각해보니 'The God Delusion'이란 원제가 '신이라는 망상' 대신에 '만들어진 신'이라고 완화된 표현으로 번역된 것은 '망상'의 힘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미 소개한 책이라 덧붙일 말은 없고 대신에 눈길을 주고픈 책은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개마고원, 2007)이다. 고종석에 대해서야 두말하면 잔소리이겠고(http://blog.aladin.co.kr/mramor/1048104) 책은 이미 주중에 서점에 깔린바 알다시피 작년 한해(그리고 올 2월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된 칼럼이고 나도 몇 차례 옮겨온 바 있다. 책은 생각보다는 늦게 나온 셈이지만 그럼에도 소장도서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어림짐작에 80% 이상은 읽은 셈이 되지만). 한국일보의 리뷰를 옮겨놓는다(아마 내년 이맘때는 현재 연재중인 '도시의 기억'이 책으로 묶여 나올 터이군)...

한국일보(07. 07. 28) 우리시대의 언어를 켜켜이 들춰본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말했다. 고종석씨의 언어는 신문 기자, 언어학도, 작가라는 존재 양식이 중첩된 지점에서 올려진 축조물이다. 그가 2006년 3월~지난 2월 까지 한국일보에 전면 기사로 연재했던 <말들의 풍경>이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글 맨 뒤에 찍혀져 있는 년월일은 신문에 게재된 날짜다. 저자는 “리모델링하지 않고, 신문에 실었던 그대로의 ‘날글’을 그대로 실었다”며 “우아함을 포기하고, 글들이 쓰여질 당시의 맥락을 살려 씌어진 시점의 발언으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한다”고 양해를 구한다.

그 저널적 풍경은 2005년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시인 공화국 풍경들>의 연장선상에 있다(*이 연재는 <모국어의 속살>(마음산책, 2006)로 출간됐다). 한국 현대시에서 한국어, 나아가 언어 일반으로 관심의 지평을 넓힌 결과물로서의 글들은 당대와 밀접히 호흡해야 하는 신문 글의 새 전범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책은 현대 한국어를 주제로 해 펼칠 수 있는 논의의 지평이 얼마나 넓은지를 입증한다.

<청산별곡>에서 홍희담의 <깃발>까지 시대를 가로지르며, 여성성과 남성성의 언어 등 이 시대 언어 현상의 정곡을 찔러 들어 간다. 한국어는 수천여개를 훨씬 넘는 언어들 가운데 12~13번째로 사용자가 많은, 매우 큰 언어라고 책은 쓴다. 그러나 남북한의 인구가 감소ㆍ정체되는 현실에서, 한국어의 위세는 현실적으로 훨씬 더 초라해진다며 주의를 촉구한다.

정부ㆍ기업ㆍ대학과 연구소 등이 힘을 모아 한국어라는 조붓한 길을 정성스레 가굴 때, 그 길로 걷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맨 마지막(2월 21일자) 글에는 필자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져 있다.
본문 바로 뒤에 달린 작은 박스들은 법령, 대담 기사, 저잣거리의 노래 가사, 시대적 발표문 등 온갖 층위의 언어를 텍스트로 하여 분석, 바로 앞의 논의를 풍성히 해 준다. 책의 제목은 작고한 문학 평론가 김현 유고 평론집에서 따왔다고 저자는 자서(自序), 즉 서문에서 밝힌다.

“김현의 파트너이자 맞적수라 할 김윤식”에 대한 논평은 물론, 강준만ㆍ홍승면ㆍ임재경ㆍ정운영 등의 저널리즘적 글쓰기와 전혜린ㆍ양주동 등 문사의 글에도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고종석씨는 “다채로운 층위로 이뤄진 한국어의 켜를 하나하나 들춰보려 했다”고 썼다.(장병욱 기자)

07. 07. 26.

P.S. 저자가 “리모델링하지 않고, 신문에 실었던 그대로의 ‘날글’을 그대로 실었다”고는 했지만 확인해보니 내가 발견했던 오타들은 모두 교정돼 있었다(http://blog.aladin.co.kr/mramor/1053323 참조). 한편, <말들의 풍경>과 함께 <감염된 언어>(개마고원, 2007)도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1999년에 첫 출간되었으며, 이번에 나온 것은 장정을 바꾸고, '섞임과 스밈-언어순수주의에 거는 딴죽'이라는 글을 추가한 것"이라 한다. 개인적으론 가장 좋아하는 고종석의 책 두어 권 중 하나이기에 여유만 된다면 모두 책꽂이에 꽂아둘 터인데 당분간은 어려울 듯하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렌초의시종 2007-07-27 22:37   좋아요 0 | URL
ㅎㅎ개인적으로는 모국어의 속살이 맘에 들었어요. 음악을 감상하는 것 같은 차분한 시선이 맘에 들었달까요^^ 이번에 나온 책도 기대는 되지만, 내년에 나올 도시의 기억이 더 당겨요. 그냥 읽고 싶은데 한번에 책으로 읽으려고 일부러 안보고 있거든요~

로쟈 2007-07-27 22:43   좋아요 0 | URL
그의 연재들이 일정한 품격을 갖추고 있지요. 어디에 꽂아두더라도 므흣한...

마늘빵 2007-07-28 01:03   좋아요 0 | URL
허참. 책을 또 내셨더군요. 이전 책까지. 같은 책이어도 다시 삽니다. 강준만도 또 책냈던데 따라가기 힘듭니다. 대단한 열정이에요.

로쟈 2007-07-28 15:04   좋아요 0 | URL
'연재'이니까 '열정'이기도 하면서 '밥줄'도 겸하지 않을까요.^^

베토벤 2007-07-29 12:33   좋아요 0 | URL
'감염된 언어'가 새로 나왔다니 정말 반갑네요. 제게는 대학시절에 막연한 '순수'에 대한 환상에서 기분좋게 깨어나게 해줬던 책이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세월의 힘을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로쟈 2007-07-29 17:33   좋아요 0 | URL
증보판이 나온 것으로 보아 저자 자신도 애착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