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한국의 글쟁이들'은 저널리스트 작가 고종석을 다루고 있다. 출판칼럼니스트 최성일씨가 글을 썼는데, 반가운 마음에 옮겨놓는다. 나름대로 많이 읽고 잘 안다고 생각한 이 '글쟁이'의 특이한 면모도 읽을 수 있다. 가령 남의 소설을 안 읽는 기벽 같은 거. '방주'에 넣어두려다가 아끼는 마음에 '곁다리텍스트'로 분류하고 그에 걸맞게 후미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책 <감염된 언어>의 서문에서 일부를 옮겨놓도록 하겠다.

한겨레(07. 01. 26) 한국의 글쟁이들/(17) ‘저널리스트 작가’ 고종석

고종석(48)에게는 열성독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가 있다. 2004년 문을 열어 270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고종석 팬 카페(cafe.daum.net/kjsfreedom)’는 인문서 저자로서 그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인문서 저자의 팬 카페는 손으로 꼽을 수 있다. 16권에 이르는 그의 책의 평균 판매부수는 5천부 안팎, 신간을 무조건 구입하는 고정 독자는 3천 명 정도로 추산된다. 요즘 같아선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 진입이 무난한 ‘엄청난’ 숫자다.

인문서 저자=지금까진 <코드 훔치기>(마음산책·2000)가 제일 많이 팔렸다. 고종석은 책을 곱게 만들어준 편집자와 이 책을 논술교재로 활용한 논술학원 강사에게 그 공을 돌린다(*나 또한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던 시절 가장 많이 복사해서 나눠준 자료이기도 하다. 하니 '그 공'은 내게도 있다). 하지만 그가 글을 쓰고 책을 엮는 것이 단지 ‘연줄’ 덕분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겸손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의 글과 책에 대한 독자의 호응을 ‘시장성’의 잣대로만 판단하고 싶진 않다. 그에겐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고종석은 출판계에서 “아주 정확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통한다. 아름다움보다 정확함을 특징으로 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고도의 정확성은 아름다움을 낳는다. 한 학생 독자는 “고종석의 책을 읽으면 똑똑해지는 느낌, 시야가 넓어진다는 느낌”을 전한다. 고종석의 절친한 벗인 강금실 전법무장관은 그의 시집비평집 <모국어의 속살>(마음산책·2006)에 대해 “고종석의 평론은 매우 균형잡힌 시각에서 정확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논평한다. 고종석의 글은 어느 대학 논술시험의 지문으로 나오기도 했다.

기자=고종석은 기자다. <코리아타임스> 기자로 언론계에 들어와 초창기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한겨레> 재직시절, 기사문답지 않은 기사가 논란을 빚기도 하였으나, 기자의 문체가 살아있는 기사문의 이정표를 세운다. 1990년대 중반 프랑스 주재기자 때는 철학자 질 들뢰즈의 죽음을 색다르게 해석해 전달한다. “고갈된 일흔 살 삶을 스스로 끝장냄으로써, 그 자신이 곧잘 ‘철학적 일화’로써 거론하던 엠페도클레스의 전설적 자살이 있은 뒤 2천5백년 뒤에, 서양 철학사에 또 하나의 일화를 보탰다.” 그 후 ‘친정’인 한국일보사에 복귀하였고,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지금은 객원 논설위원으로 있다.

“모르겠어요. 기자가 되겠다는 특별한 생각이 있어 된 것도 아니고, 우연히 모집공고 보고 시험 봐서 잡은 직장이거든요. 글쎄요.” 기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의 부족한 부분은 그의 장편소설 <기자들>(민음사·1993)에 나오는 ‘기자숙명론’으로 채운다. “기자는 기록하는 자이지만 그 기록은 자신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남에 대한 기록이다. 남의 삶을 엿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 자기가 엿본 것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광고충동, 그런 것들이 기자의 운명이 아닐까.”

소설가 장편 <기자들> 말고도 고종석은 단편소설집 <제망매>(문학동네·1997)와 <엘리아의 제야>(문학과지성사·2003)를 펴낸 바 있다. 소설은 왜 쓰게 됐나요? “기사가 사람 이야기를 그리긴 하지만 기사문의 언어는 그물코가 성긴 거죠. 빠져 나가는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사실일 수는 있어도 진실이 아닌 부분이 많이 있어요. 기사에서 새나가는 부분, 사회가 옳다 그르다 결정해주는 그런 선악·미추에 잡히지 않는 어떤 개인적인 선악과 미추, 개인적인 가치와 진실들은 기사가 잡아낼 수 없어요. 소설의 언어는 좀 달라요. 기사의 언어보다는 소설의 언어가 촘촘하지 않겠나, 덜 빠져나가지 않겠나 싶어 시작했어요.” ‘내 소설의 근간은 현실’이라는 고종석의 지론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기벽이라고 하긴 어려워도 고종석은 남의 소설을 잘 안 읽는다. 어느 출판사 사장의 목격담이다. 어떤 소설가의 출판기념 모임에서 소설가가 자신이 펴낸 책을 고종석에게 주자, 그는 이를 정중하게 사양하더란다. “고맙지만 나는 소설을 안 읽는다. 귀한 책 아끼기 위해서라도 다른 분께 주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소설집 두 권에 수록된 작품들이 더 낫다는 나의 독후감을 밝혔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계속 몸담을 생각이면 장편을 써야겠죠.”

언어학자=이글을 쓰기 위한 인터뷰를 하면서 해묵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고종석이 말한 “영어공용화의 반대가 지닌 계급적 함의”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계층간 영어능력의 격차를 줄이고, 언어가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었다. 한동안 나를 헛갈리게 한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는 글의 한 구절이다. 이글은 <감염된 언어>(개마고원·1999)에서 볼 수 있다.

“영어가 공용어가 되든 안 되든,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은 자기 자식들에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영어에 익숙해진 그들의 자식들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일반대중의 자식들 위에 다시 군림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특정집단에 의한 그런 식의 지식의 독점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정확한 한국어 사용자 아무튼 영어공용화의 긍정적 측면을 헤아리는 사람이 누구보다 분명하고 정확한 한국어 사용자라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명료한 개념 정의와 개념의 결을 세심하게 구분한 사례는 근간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개마고원·2006)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종석은 반미 친북 좌파가 고스란히 겹치는 것인지, 그 하나하나가 비난받을 일인지, 무엇보다 이런 딱지가 붙여진 이들이 정말로 반미 친북 좌파인지 되묻는다. “좌파는 친북보다도 훨씬 더 여러 겹의 뜻을 지니고 있지만, 그 핵심은 흔히 ‘복지’라는 말로 표현되는 사회연대를 조직하는 데 정부가 일정한 구실을 해야 한다고 믿는 세계관과 관련돼 있다.”

몇 해 전, 그가 엿본 출판사 편집자의 우직한 원칙주의가 빚어낸 엽기적 풍경에 그저 웃을 수만은 없다. 그가 읽던 고려시대 번역문집 문장 한가운데서 ‘미얀마제비’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사마귀란 뜻의 당랑(螳螂)을 옮긴 ‘버마재비’를, ‘버마제비’의 오자로 예단한 교열자는 버마의 바뀐 나라이름에 맞춰 ‘미얀마제비’로 바로잡았던 것. 편집자가 ‘버마재비’의 어원이 ‘범(호랑이)의 아재비(아저씨)’라는 걸 알았더라도 수난을 겪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는 그의 판단에도 공감하지만, 이글의 결론은 더 공감한다. “무릇 글쟁이는, 제 글이 고스란히 활자화될 땐, 그 글이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번역자=고종석이 우리말로 옮긴 책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마지막 작품 <이게 다예요>(문학동네·1996)가 전부다(*내가 읽은 고종석의 책들 가운데 유일하게 돈 아까운 책이었다). “번역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에요. 문장 하나를 우리말로 만족스럽게 옮기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번역이야말로 제대로 한다면 뼈를 깎는 작업일 것 같습니다. 영어나 스페인말이나 프랑스말이나 어설프게 읽을 줄은 아니까 주변에서 ‘너, 왜 번역 안 하느냐?’ 하는데, 저는 책 한 권 번역하려면 평생 해야 할 것 같아요. 또 번역은 일종의 평론인데 그렇게 하긴 정말 어렵죠.”

정치평론인=고종석은 정치현상을 보는 눈이 밝다. 시평집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머리말의 한마디는 그런 눈이 흐려지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들게 한다. 그마저 “은근히 기대를 걸었”다니. 2003년 1월 중순 발행된 <인물과사상 25>(개마고원)에 실린 글을 통해 내가 서둘러 은근한 기대조차 접는데 일조한 그가 아니던가. “우선 그의 지지자들부터, 대통령이 된 것 이상의 업적을 그가 자신의 임기 중에 세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순순히 인정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그의 집권이 우리 사회의 멘탈리티에 줄 긍정적 충격을 생각하면, 그 집권 자체만으로도 눈부신 업적, 그의 지지자들이 그와 더불어 자랑스러워할 만한 업적이다.” 다시 돌아온 정치의 계절에 정치를 바라보는 그의 혜안과 안목을 접할 수 있을까?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긴 줄었죠.”

대표작 네 권을 꼽는다면= “<기자들>은 첫 책이라서, <제망매>는 내가 소설가가 됐구나, <자유의 무늬>(개마고원, 2002)는 내가 저널리스트구나, <감염된 언어>는 내가 약간은 언어학도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했지요. 이 세 개가 제 정체성인데, 셋 다 얼치기이긴 하지만 이 책들에 기자로서, 소설가로서, 언어학도로서 정체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이 셋을 합치면 뭐가 될까요? 문화전달자가 어떨까요? “모르겠어요, 제가 뭔지는.”(최성일/ 출판칼럼니스트)

07. 01. 26. 

 

 

 

 

P.S. 그의 첫소설 <기자들>은 절판이라서 알라딘에는 아예 뜨지도 않는다(나는 책을 갖고 있지만 그의 책들 가운데 드물게도 읽지 않았다). 대신에 가장 많이 팔렸다는 <코드 훔치기>(마음산책, 2000)를 '네 권' 안에 채워넣도록 한다. 나머지는 나도 모두 읽은 책들이다. 그 중 <감염된 언어>(개마고원, 1999)에서 그가 (서문을 대신하여) 길게 쓴  서문 '서툰 사랑의 고백' 중 한 대목. 

사전 편찬자의 꿈을 접은 뒤, 나는 한때 외국어로 글을 쓰는 직업적인 글쟁이가 돼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몽상으로 그치고 말았다. 간단한 편지글 말고 내가 앞으로 외국어로 글을 쓸 것 같지는 않다. 또 내가 외국어로 기다란 글을 쓴다고 해도 이미륵이나 김은국만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지적 작업을 프랑스어로 수행한 뤼시앵 골드만이나 줄리아 크리스테바 같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야 프랑스 땅을 밟았지만, 그 사람들은 동유럽의 조국에서 보낸 어린시절부터 프랑스어에 익숙했던 사람들이다. 반면에 내 유년기를 둘러싹 있던 언어는 오직 한국어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건 내 운명이다.(...)

이런 모든 꿈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버린 지금, 나는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국어로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정확성과 아름다움으로 한국어의 가능성을 넓혔다고 평가받을 만한 글 말이다. 아직은 그것이 몽상에 불과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한국어로 글을 쓸 작정이므로, 이 꿈은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읽을 만한 한국어로 글을 써보겠다는 것은 10대 이래 내가 지녔던 몽상들 가운데 실현 가능성이 남아 있는 유일한 목표다.

실상,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얼른 떠오르는 이름만 해도 최인훈, 조세희, 김원우, 복거일, 이인성, 최윤 등 여럿이다. 그들이 대체로 번역 문투를 사용한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20세기 말에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를 19세기 말의 한국어와 견주어보면,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어가 얼마나 변했는지 실감할 수 있다. 그 변화의 과정은 곧 감염의 과정이었다. 외국어와 외국 문화의 감염 말이다.

문화사는 곧 감염의 역사고, 그 문화를 실어나르는 언어의 역사도 감염의 역사다. 인공 언어가 아닌 한 감염되지 않은 언어는 없다. 최인훈에서 최윤에 이르기까지 외국어에 된통 감염된 한국문학은 세련과 풍요를 향한 한국어의 행진을 선도하고 있다. 내가 언젠가 그들만큼 볼품있게 한국어로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애써볼 작정이다.(18-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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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6 0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7-01-26 08:15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고종석 씨의 정치적 입장이나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소설론은 흥미롭네요.

마늘빵 2007-01-26 08:17   좋아요 0 | URL
아 이거 가져갑니다. 저도 그 카페 회원입니다. ^^ 안간지 오래됐지만.

로쟈 2007-01-26 08:43   좋아요 0 | URL
**님/ 축하드립니다. 저까지 만족(?)스럽네요.^^ 알려주신 '보물창고'는 종종 들러보겠습니다.^^
기인님/ 짐작에 고종석보다는 더 왼쪽이시죠?^^
아프님/ 님이 안 가신다면, 누가?..

나비80 2007-01-26 09:46   좋아요 0 | URL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국어'란 기준은 늘 모호하고 아슬아슬할 수 밖에 없는데, 고종석은 자신만의 판단 기준이 서 있는 모양입니다. 슬쩍 보면 언어의 역사성을 고려하는 입장이란 건 알겠지만 말이죠. 저는 몇 권 안되지만 제 주변에만해도 고종석의 3000명 안에 드는 녀석이 있답니다. ^^
그리고 저는 기인님과 고종석 가운데 끼겠어요!

도서관여행자 2007-01-26 10:45   좋아요 0 | URL
저도 퍼갈게요^^

로쟈 2007-01-26 15:18   좋아요 0 | URL
소이부답님/ 제가 보기에 고종석은 그가 거명하고 있는 어느 저자들 못지 않게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국어'를 구사합니다. 더불어, 저는 고종석의 '자유주의'를 지지합니다. 더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국어'의 포지션이 등장할 때까지는...
NOname님/ 이름을 안 갖고 계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