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도올의 <요한복음 강해>의 참고문헌 얘기를 하면서 사전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을 인용한 적이 있는데, 거듭 말하자면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 좋은 사전을 활용하는 습관은 매우 중요하다." 더불어, "인간의 지식은 좋은 사전들을 통하여 정밀해지고 광범해진다". 단순한 ABC이지만 그걸 실천하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일단 현실이 뒷받침해주지 않는바 전공분야인 문학비평/이론쪽만 하더라도 우리말로 씌어지거나 번역된 사전들이 절대적으로 빈약하다.

 

 

 

 

내 경우에 단권 사전으로는 4-5종을 갖고 있는데 알라딘에 이미지가 뜨는 책으론 조셉 칠더즈 등의 <현대문학-문화 비평용어사전>(문학동네, 1999), 이상섭의 <문학비평용어사전>(민음사, 개정판 2001) 등이다. 김윤식의 <문학비평용어사전>(일지사)이나 이명섭의 <세계문학비평용어사전>(을유문화사)도 예전에 많이 참조되던 책들인데 아직 절판되지는 않은 듯하다. 거기에 번역서로는 렌트리키아가 편집한 <문학연구를 위한 비평용어>(한신문화사, 1994)나 분야는 좀 특화돼 있지만 <새로운 미술사를 위한 비평용어 31>(아트북스, 2006)도 참조할 만한 책이다. 내가 안 갖고 있는 책으로는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엮어낸 <문학비평용어사전>(전2권, 국학자료원, 2006)이 있다. 아래의 이미지는 영어권에서도 대표적인 비평용어사전에 속하는 조셉 칠더스 편의 사전과 렌트리키아 편의 사전.

 

잠시 생각이 나서 <현대문학-문화비평용어사전>을 훑어보다가 아무리 분량이 방대하다 하더라도 단권 사전으로는 역시나 부족한 면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비록 조감도로는 훌륭하지만 중요한 용어들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이 잡듯이 훑어줄 수 있는 사전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사전이 아주 없지는 않았는데, 서울대출판부에서 출간되었던 '문학비평 총서'가 비록 얇은 분량이긴 하지만 상세도의 역할을 얼마간 해주었기 때문이다.

 

 

 

 

 

 

 

 

권당 1,000원의 저렴한 가격이었기 때문에 30권에 육박하는 시리즈의 대부분을 구매했었던 기억이 난다(얇은 문고본 판형이어서 보관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 시리즈의 단점은 역시나 시의성. 원서들의 대부분이 1970년을 전후로 한 시기에 나온 책들이다. 거의 40년전 책들인 것이다. 그간에 새로운 비평이론과 용어들이 쏟아져나온 건 당연하고 그런 부분까지 카바해줄 수 있는 새로운 사전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당면한 요구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에 부응해줘야 하는 게 대학출판부의 역할이 아닌가 한다(아무래도 상업출판에서 다루어지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기에).

 

 

  

 

 

 

 

 

그런 점에서 눈에 띄는 책은 국내서의 경우 연세대출판부에서 나오는 '문학의 기본개념' 시리즈이다. <근대어의 탄생>(2003)을 시작으로 하여 <현대문화와 신화>(2006)에 이르기까지 대략 13권의 책이 나와 있는 듯하다. 몇몇 새로운 '용어'들을 포함하고 있는 단행본 분량의 '사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흠이라면 아직 많은 영역이 공백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 1년에 3권씩 보태지는 걸로는 앞으로 10년쯤 더 기다려봐야 어지간한 용어들을 카바할 수 있을 듯싶다.

GOTHIC, BOTTING (NCI)

국외로 눈을 돌리면 가장 탐나는 건 루틀리지출판사에서 나오는 '새 비평용어(New Critical Idiom)' 시리즈이다(http://www.routledge.com/literature/series_list.asp?series=4). 현재 40권이 넘게 출간돼 있는데, 특징이자 장점은 <고딕>이나 <희극> 같은 고전적인 비평용어에서부터 <식민주의/탈식민주의>나 <젠더>처럼 새롭게 필수적인 비평용어로 등재된 용어들까지 두루, 그리고 자세하게 카바하고 있다는 것. 문학전공자라면 한 질을 서가에 모두 꽂아두고 싶은 시리즈이다(세보니까 10권쯤을 갖고 있다).

 

 

 

 

재미있는 건 이 시리즈의 몇 권이 국내에 이미 산발적으로 번역/소개돼 있다는 점. 예전에 한번 언급한 바 있는데 폴 해밀턴의 <역사주의>(동문선, 1998), 데이비드 호크스의 <이데올로기>(동문선, 2003), 그리고 사라 밀즈의 <담론>(인간사랑, 2001), 앤터니 이스트호프의 <무의식>(한나래, 2000), 조셉 브리스토우의 <섹슈얼리티>(한나래, 2000)가 이 시리즈의 책들이다. 당연히 갖게 되는 아쉬움은 이 번역/소개가 체계적이지도 지속적이지도 않다는 것. 가장 바람직한 건 전 시리즈를 계약/전담해서 '총서'류로 내는 것일 테지만 현 출판상황에 미루어볼 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 좋은 사전을 활용하는 습관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어로는 그런 습관을 기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국어는 과연 학문어가 될 수 있는가란 질문은 사치스러운 질문일까?..

07.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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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ournelle 2007-02-25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추천합니다.

기인 2007-02-25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쩝. 안타깝네요. 학교 출판사 하나가 맡아서 열심히 하면 좋으련만.. 용어사전은 논문 쓸 때나, 여기저기 참고할 게 많은데.. 어쨌든 퍼갑니다. ^^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2-2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잘 봤습니다 - 퍼갈게용 ^^

2007-02-26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26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저도 뒤지는 건 구글뿐입니다...

jouissance 2007-02-27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비평용어사전>(전2권, 국학자료원, 2006) 로쟈님이라면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10만원이란 가격이 부담스러웠나 보군요. 아니면 일찍부터 도서관용을 쓰시기로 방향을 잡으셨던지. 이 사전 의외로 괜찮더군요(저는 두 달 벼르다가 구입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유사한 사전 중에서 첫 손가락으로 뽑고 싶어요. 제목이 '문학비평용어사전'이지 거의 '인문학사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사전이더라구요. 여러면에서 공들여 만든 사전임에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그 쪽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들으니 김한길이 문화부장관 했던 덕에 나올 수 있었던 사전이라고 하더군요. 이미 검토를 마쳤을 로쟈님의 촌평을 듣고 싶군요^^

로쟈 2007-02-27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만 본 적이 있습니다.^^; 가격도 그렇지만 보관할 장소(?)도 마땅찮긴 합니다. 한데 항목수가 많은 것인지 항목별로 상세한 해설을 담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무리 방대한 두께라 하더라도 가령, '러시아 형식주의'니 '모더니즘'이니 하는 항목을 얼만큼 상세하게 풀고 있을지는 좀 의문이구요. 거의 '인문학사전'이라면 백과사전 수준이 아닐까 싶네요. 평이 좋은 듯하므로 구경은 해봐야겠습니다. 이게 웬만한 서점에는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뉴스기사들을 둘러보다가 문학평론가이자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 선생의 한국문단 현실에 대한 비판을 읽었다. '어른들의 잔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문학의 현실을 보는 한 가지 시각으로 스크랩해놓는다. 돌이켜보니 <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한길사, 1986), <한국현대문학사상사>(한길사, 1988) 등을 읽은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40대 후반의 '중견' 평론가였지만 어느덧 '백미'의 원로 비평가가 되었다. 세월무상. 한데, 그간에 한국문학은 과연 전진해온 것일까? 원로 비평가와 공유하게 되는 물음이고 문제의식이다.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자료삼아 옮겨오는 김에 민족문학연구소에 떼놓을 수 없는, 임종국 선생과 그 평전에 관한 기사도 같이 옮겨놓는다. 세로읽기 <친일문학론>은 오래전에 구입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꽂혀 있는지 행방을 알지 못하겠다(아무래도 지방에 있는 듯하다).

오마이뉴스(07. 02. 24) 임헌영 "공지영은 한국 장편소설의 마지노선"

"우리나라에 장편 없다고 상 만들고 하는데, 상금 아무리 올려도 좋은 장편 안 나온다. 우리나라는 이미 장편의 시대는 갔다. 작가들이 장편 쓸 능력이 없다. 공지영이 최후 마지노선이다. 그 연배나 후배들 장편을 보면 수필집이다. 서사구조가 없다. 역사가 서사구조의 기본골격인데, 역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개인이든 민족이든 지방이든 세계든 역사가 없다."

지난 22일 기초예술연대(위원장 김지숙ㆍ방현석)가 마련한 '한국사회와 문화예술의 미래' 심포지엄 현장. 이날 두번째 발표자로 나선 문학평론가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씨는 주최 측에서 미리 배포한 자료집의 발표문과는 달리 한국문단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일관했다. 그에게 예정된 주제는 '변화하는 세계, 문학의 가치는 무엇인가'. 자료집에는 문학의 가치를 주장하고, 그에 대한 정책 지원을 강조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현장의 발표 내용은 사뭇 달랐다.

그는 먼저 "발표문에는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적었지만 난 '문화의 세기'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20세기는 전쟁과 살육의 세기"이고 그 뒤를 이은 "21세기는 문화에 의한 정복의 세기로 이는 세계화와 똑같은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다운 문화를 만들어 오히려 그 같은 문화 정복에 대해 역공할 때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학의 가치기준이 없어졌다"면서 "윤동주 서시를 읽으면서 어떻게 친일파를 옹호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그렇기에 "예술적 안목이 굉장히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초등학교 교사들부터 어떤 게 진짜 아름다운 것인지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참여정부 실패의 상당 부분은 문화예술이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고도 말했다. "조중동의 논리가 국민들에게 먹히는 것은 그만큼 우리(문화예술인)가 국민에게 올바른 미의식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민예총 예총 문화연대 회원들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최근 '민족문학' 명칭 논란과 관련 민족문학작가회의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작가회의는 '민족'자 떼고 안 떼고 논의할 필요도 없다. 이미 비민족적인 집단이다. 민족문학이란 흔적도 없어지고 형해만 남았다." 그는 심지어 "변화된 시대에 새로운 미래를 예측하여 문화예술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전혀 없이 예산 따내서 행사나 하는 단체로 전락했다"면서 "내가 문화부장관이라면 그런 단체에 돈 안 주겠다"고까지 했다.

한편 그는 자신의 "희망"이라는 단서를 달아 "문학이 모든 문화예술의 기본이며, 그 중핵은 문학적 상상력이다"면서 문학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런데 지금은 "작가들이 창의력과 문화적 상상력을 잃어버린 상태"로 그에 따라 "문학의 헤게모니를 다른 장르에 빼앗겼다"고 평가했다. 그는 "80년대 중반부터는 문학이 드라마에도 뒤지기 시작했다"면서 "<모래시계> 드라마만큼 문학에서 광주항쟁을 대중적으로 감동적으로 쓴 작품을 못 봤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광주항쟁 다룬 작품이) 몇 편 있지만 읽어보면 재미가 없어서 몸살이 난다. 그런데도 평론가들은 좋다고 줄을 섰다. 그러면서 '장사 안 된다, 독자 없다'고 하소연한다. 누가 독자 없게 만들었나. 소설가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는 특히 문학에서 서사구조가 없어지면서 좋은 장편소설이 나오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지영을 '장편의 최후 마지노선'으로 평가했다. "공지영은 인문학적 지식도 있고, 역사를 보는 눈도 있고, 격랑을 겪기도" 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이다. 또 "공지영의 소설은 십대부터 팔십대까지 다 읽을 수" 있는데, 지금 나오는 소설들 가운데는 평론가들조차 제대로 읽기 어려운 소설이 많다고 비판했다.

"보편성을 잃어버린 것은 문학이 아니다. 비문학인도 읽는 문학이 진짜 문학이다. 조정래 소설이 왜 많이 팔리는가? 비문학인도 읽기 때문에 팔리는 것이다. 문학인 중에서는 아예 30대 넘으면 내 소설 못 읽는다 이렇게 치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경계를 허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는 그 같은 경계를 허물고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또한 다시 문학적 상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작가들이 "만날 술집에 앉아서 술이나 먹고" 그럴 것이 아니라, "현장을 뛰든지 취재를 하든지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울 대학로 중앙대 공연영상예술원에서 열린 이날 심포지엄에는 이밖에 김지하 시인이 '문화의 시대, 미학적 사유'란 주제로 기조강연을, 그리고 김영민 한일장신대 교수(인문사회과학부)가 '한국문화와 세계문화, 그리고 예수의 역할',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 '시각예술의 가치와 미래'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다.(천호영 기자) 

 

 

 

 

 

 

 

 

 

 

 

 

북데일리(06. 11. 21) 임종국, 친일연구 앞장선 `거리의 약장수`

거머리가 무서워 모심기도 못하는 겁쟁이, 프로연주자 못지 않은 기타와 첼로 연주실력, 여동생들과 아내에 대한 못된 손찌검, 첫 아내와 두번의 이혼과 재혼, 거리의 약장수에 화장품 외판원까지...

얼핏보면 나약하고 생활력 없는데다 모난 성격에 소심남의 전형이며, 재력만 충분했다면 한량기질 넘치는 난봉꾼이라 짐작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평생 살아가면서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자존심이 있었다.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친일연구가 故 임종국(林鍾國. 1929.10.26~1989.11.12). 해방 60돌을 맞은 오늘, 일제 잔재와 친일파 청산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메아리 치고 있는 무관심과 외면의 현실 속에서 그의 그림자는 깊고 진하다. 정운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이 선생의 타계 16주기를 맞아 최근 펴낸 인물평론 <임종국 평전>(시대의창)은 대쪽같은 선비정신을 가진 학자적 면모 외에도 생전에 고인이 `저질렀고` `후회했던` 인간적인 삶에 대해 진솔하게 공개한다.

저자는 "무거운 `위인전`이기 보다는 읽기 편하고 재밌는 내용을 추구하기로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래도 백점짜리 남편, 만점짜리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임종국의 일생은 그의 친일연구가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반성없이는 결코 빛을 발할 수 없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젊은 시절 해사했던 외모의 임종국이 얼굴에 `무서운` 흉터를 갖게 된 사연은 불완전하고 배고프지만 열정과 신심(信心)을 가진 재야학자의 기질을 엿볼 수 있다. 시인 신경림에 따르면 60년대초 어느날, 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단골다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등장한 임종국이 대뜸 `글 안쓰고 술만 마시는 문인놈들은 모조리 숙청시켜야 한다`며 머리로 유리창을 그대로 들이받았다고.



불세출의 낭만시인 이상(李箱)과 닮은 자신을 발견하고 시인을 꿈꾸며 <이상전집>까지 출간했던 임종국은 이승만-박정희 정권으로 이어지는 굴욕적인 한일회담과 문학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친일파 실상에 충격을 받고 문학도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친일연구에 혼신을 바친 그가 1966년 첫 출간한 <친일문학론>은 일본 천황과 일제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팔았던 친일파의 증거를 하나하나 찾아내고 기록한 최초의 친일연구서로서 국내외 친일 연구의 반석이 된 역작이 됐다.

식민지시대 매국매족 인물들과 그 후손들이 정관재계의 요직을 차지하고 전권을 휘두르던 시절, 철저히 외면받던 임종국의 연구는 그가 지병인 폐기종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구르는 바윗돌처럼 쉼없이 계속됐다. 그리고 임종국이 세상에 이별을 고하고 나자, 그의 유지와 업적을 받든 후대에 의해 일제 청산을 위한 법이 마련되고 민족문제연구소 설립을 통해 외롭고 고독했던 친일연구는 국가적인 과업이 됐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오늘날 문제삼아야 할 쟁점은 친일파 청산 그 자체에 못지 않게 오히려 친일파 청산 반대세력에 대한 연구와 평가"라며 "친일행위 옹호론의 차세대로의 전이는 독재와 분단고착화, 침략전쟁, 쿠데타 등 반역사적인 행태에 대한 직간접적인 지원으로 논리적 귀착점이 닿는다"는 추천사를 통해 임종국의 삶과 업적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노수진 기자) 

07.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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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2-25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헌영 선생님은 예의 그 긴 눈썹이 트레이드마크예요. 10년 전쯤 뵈었을 때만해도 저렇게 하얗치는 않았는데, 역시 세월이 선생님을 비껴가지 않는군요. 한번 입을 여시면 술술 풀어 내시는 그 언변과 입담이란...! 정말 시간가는 줄 몰랐지요. 임종국 평전 한번 읽어보고 싶군요.^^

로쟈 2007-02-25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교육방송인가 얼굴을 자주 내비치신 적이 있지요. 근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나 흰 눈썹이네요(10년이면 세월이죠^^)...

나비80 2007-02-26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지영이 마지노선이라는 이야긴 자괴감이 드는걸요. ^^

로쟈 2007-02-26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중성을 변수로 고려하게 되면 불가피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문열의 발언력도 다 그 '판매부수'에서 나오는 것이구요...
 

온라인 학술저널 '담비'(http://www.dambee.net/)에서 학술동향기사 한 편을 옮겨온다. '한국사회학'에 게재된 한 논문을 소개하고 있는데, 아마도 기사의 부제로 붙어 있는 '멜랑콜리와 모더니티: 문화적 모더니티의 세계감 분석'이 그 논문의 제목인 듯하다. 사회학 논문으로서는 이채로운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흥미로운 주제이고 분석이다.

담비(07. 02. 24) 멜랑콜리, 우울한 토성의 아이들

세계관, 인생관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런데 세계감(世界感)이라는 단어는 뭘까. 최근 문화적 모더니티를 연구하는 논문에 자주 등장하게 될 단어다. 프랑스에서 국내 사회학자로서는 드물게 영상사회학 이론을 전공하고 돌아온 김홍중 박사의 논문은 문화적 모더니티와 관련한 첨단의 인식론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그것도 매우 알기 쉽고 유려하게 인식의 깊이와 이론적 해박과 서술의 겸손함을 곁들여서 말이다. 그가 '한국사회학'  제40집 3호에 발표한 '멜랑콜리와 모더니티'는 이 '세계감'이라는 낯선 용어로 인간의 자기인식과 세계인식을 표현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그 길을 따라가 보자.

어느 날 파리의 한 유명한 신경전문의에게 환자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세기병"에 시달려 살고픈 의욕이 거의 없으며, 기분이 늘 침울하고 항상 권태롭다고 털어놓았다. 의사는 걱정말라고 다독인뒤 잠시 휴식을 취할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날을 잡아서 드뷔로의 공연을 보러가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인생이 달라보일 것이라고 말이다. 드뷔로는 19세기 프랑스 무언극 배우로 명성을 떨쳤는데, 천진하면서도 슬픈 웃음을 자아내는 현대적 광대의 원형을 창조한 배우다. 그런데 의사의 말에 대한 환자의 답이 가관이다. "하지만 선생님, 제가 바로 드뷔로입니다."

이상은 벤야민의 '파사젠베르크'의 '권태, 영겁회귀'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미하일 바흐친은 드뷔로의 선조라 할 수 있는 중세의 광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들의 신랄한 재담과 파괴적인 농담 그리고 과장된 몸짓과 가면 뒤에는, 종종 사태를 명증하게 파악하는 비판적 지성의 단초 혹은 이러한 지성의 소유자가 '어리석은' 세계에 대해서 가질 법한 깊은 상심이 은폐되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김 박사는 위의 일화에 숨은 더 심각한 것을 지적한다. 그것은 우울을 풀어주는 광대마저 우울증에 걸린 난감한 상황이다. '세기병'이라는 표현은 우울이 이제 그 외부가 존재하지 않는 사나의 세계감(感)으로서 존재하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이다.

그 어떤 것에도 진정한 삶의 활력을 느끼지 못하는 '타성의 원천'으로서의 멜랑콜리. 이것이야 말로 무사태평한 웃음 속에서 메아리치는 이 시대의 질병이며, 우리로부터 명령과 복종과 행동과 희망의 용기를 앗아간다고 키에르케고르는 지적한 바 있다.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세계감이 사회의 모든 부면에서 성취된 전례 없는 혁신에 대한 자신감과 낙관 위에 설립된 근대의 진보적 세계관의 필연적인 그림자라는 것.

사회적 모더니티가 국민-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시민사회를 축으로 하는 공적 제도의 영역에서 '정신 없는 전문가'와 '가슴 없는 향락자들'(막스 베버)를 만들었다면, 그것에 저항하는 문화적 모더니티는 진보하는 부르주아의 공적 세계까 엄폐한 사적 공간에서 되살아난 우울의 신 사투르누스(Saturnus)의 힘에 복속된 '토성의 아이들'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지금껏 온갖 학문들은 근대적 세계감의 가장 근본적인 차원인 이 토성적 감정의 발생과 구조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보여주지 못했다. 멜랑콜리는 대다수 문화적 산물들의 심정적 배경을 구성하는 문화해석학적 열쇠임이 점점 분명해지는데도 말이다. 김 박사는 이 지점에서 그것에 대한 체계적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으로 하이데거의 '정조'(Stimmung) 개념을 끌어온다.

역시 서구 형이상학을 탈구축한 하이데거가 1929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겨울학기 강의에서 던진 질문은 참으로 멋드러진 것이었다. 그는 여기서 "철학적 사유를 뒷받침하는 감정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이 질문은 무엇인가. 이성의 추리와 전개로 구축되는 철학의 기저에 특수한 감정의 상태가 놓여있다는 인식, 즉 로고스와 파토스의 위계를 전도시키는 시도가 담겨있다. 하이데거는 이 질문을 통해 '사유'와 '의지'에 늘 종속되어 있던 '느낌' 즉 감정의 질서를 학문적으로 복권시키고자 한 것이다.

하이데거의 가장 유명한 개념은 다자인(현존재, Da-Sein)이다. 세계-내-존재로서의 인간이 바로 그것. 세계 안에 던져진 유한자는 자신앞에 펼쳐지는 무한한 가능성과 직면하고 있는 자기형성적인 주체이다. 하이데거는 다자인을 다자인으로 만드는 것은 코지토가 아닌 정조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권태, 환희, 불안의 정조를 분석했으며, 정조란 다자인이 세계와 화음을 조정하는 과정이며 세계의 객관적인 음조와 주체의 음조가 섞이고 부딪히고 조정되어 형성되는 일종의 음역(音域)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정조가 사유보다 근원적인 체험의 양식일 때, 사유라는 상부구조는 자신의 전(前)-사유적인 하부구조로서 감정적 차원을 갖게 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그리스 철학을 가능케한 것은 '경이의 감정'이었고, 데카르트적 근대를 가능하게 한 것은 '의혹의 정조'였다. 하지만 하이데거조차 20세기의 사유를 규정하는 본원적 감정이 무엇인가에 대해선 명확하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이런 것이었다. 차갑고 냉정한 계산적 합리성에 의해 정조가 압살된 듯 보인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근대적 사유의 근원적 정조는 느낌의 불가능, 열정의 불가능, 파토스의 불가능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근대적 사유를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정조는 파토스의 분출이 아니라 그 퇴행과 은폐이며 감정의 원초적 폭발이 아닌 소멸이라고 말이다. 니체가 근대문화 일반을 데카당스라 부르며 그토록 폄하했던 이유도 "인간이 자신의 존재조건을 뛰어 넘어 초월적인 것과 소통하는 고양의 체험에 동반되던 비극적 감정이 소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세기 초엽의 인간들은 이러한 존재조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물론 모든 인간이 그런 것은 아니다. 사회적 모더니티의 지배적인 주체는 합리적 이성에 근거해 세계와 대면하고, 세계를 분절하고 측량한다. 반면 권태롭고 우울한 우울자들은 그가 대면할 세계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알지 못하고, 세계를 분절할 수 있는 경계를 상실한 이들이다. 그는 정서의 욕동을 단호하게 억제하면서 미래를 투기하지 못하고, 토성적 정조에 사로잡혀 현실원칙으로 귀환하지 못하는 욕망의 노마드다.

근원적인 내적 결핍감을 채우기 위해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파편들을 끊임없이 섭취하고 내면화하는 일종의 복합적인 식인증적 주체와 조응하는 멜랑콜리의 세계, 이것은 하나의 '기호학적 폐허'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물신으로 구성된 파편적이고 환몽적인 세계와 식인증적 주체의 변증법적 관계를 더 들여다보면 놀라운 역설이 발견된다. 토성적 정조의 근본적 징후인 '식인증'은 어떻게 보면 '우울증적 전략'이라 부를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

피에르 페디다(Pierre Fedida)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심화시키면서 "멜랑콜리는 대상의 상실에 따른 퇴행적 반응이라기보다, 오히려 상실된 대상을 살아있게 만드는 몽환적인(또는 환각적인) 능력"이라고 말한다. 김 박사는 이걸 좀더 명료하게 요약한다. 토성적 정조는 무언가의 상실로부터 비롯된  결과가 아니라, 사실은 상실을 인식하고 상실을 문제시하게 만드는 조건이라는 사실. 무언가를 상실해서 우울한 게 아니라, 우울하기 때문에 상실을 인지하고 상실을 회복하기 위해서 세계내의 기호들을 삼킨다는 것이다. 우울자는 그가 단 한번도 소유해 본적이 없는 '그것'의 상실을 연기(演技)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것'의 회복을 끝없이 '연기'(延期)한다고 말한다.

사실 우울자에게, 진정한 소유의 대상은 바로 상실감 그 자체이다. 이 대목에서 아감벤은 "식인증이란 이처럼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상실된 것으로서' 나타나게 하고, 재현할 수 없는 것이 '재현불가능한 것으로서 표상되게 하며,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알레고리적으로' 접근가능하게 해주는 토성적 정조의 전략"이라고 해석한다. 이는 사회적 모더니티가 빠른 속도로 일소해버린 초월적 가치들과 대상들, 즉 사유의 타자들을 문화적 모더니티의 영역에서 생존시키려는 일종의 전략이라고 김 박사는 부언한다. 신은 죽었지만 '죽은 신'은 하나의 형식으로 살아남고, 예술도 죽었지만 '죽은 예술'은 하나의 이상으로 남는다. 마찬가지로 소멸한 총체성은 가능성의 범주로서 살아남고 이들 앞에서 우리는 우울하다.

초월적 가치를 아직도 신앙하는 자는 우울하지 않다. 또한 이들이 완벽하게 소멸되었다고 믿는 자 역시 우울할 수 없다. 우울자는 그 중간에 머물면서 '소멸됨으로써 살아 있는 어떤 것'을 끝없이 추구한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시인이 바로 보들레르이다. 릴케 같은 이도 '두이노의 비가'에서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영웅은 존속한다. 영웅의 추락은 단지 존재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김 박사는 결론에서 "근대적 로고스의 타자를 '사유될 수 없는 것으로서' 사유의 형식 안으로 포섭하는 문화적 모더니티의 심연적 성찰성의 근저에는, 하이데거가 권태라고 불렀던 근대적 형이상학의 근본 정조, 즉 토성적 정조가 있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패기만만한 진보주의자들과는 달리, 어둡고 우울하지만 한층 더 심오한 정신적 역설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리뷰팀)

07. 02. 25.

 

 

 

 

P.S.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이데거의 1929/30년 겨울학기 강의는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 세계-유한성-고독>(까치, 2001)로 번역돼 있다. '우울증'이란 주제와 관련하여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책은 크리스테바의 <검은 태양>(동문선, 2004)인데 기억에 딱히 '모더니티'를 특화시켜서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페디다의 <우울증의 유익>도 소개되면 좋겠다.

마침 '모더니티'와 관련해서 요즘 읽고 있는 책들은 앙리 르페브르의 <모더니티 입문>(동문선, 1999), 앙리 메쇼닉의 <모데르니테, 모데르니테>(동문선, 1999), 그리고 에른스트 벨러의 <아이러니와 모더니티 담론>(동문선, 2005) 등이다. 물론 모더니티 관련서들은 이보다 훨씬 많다(적어도 20여 권의 목록이 꾸려질 수 있다). 개인적으론 미술 관련서로 칼리니스쿠의 <모더니티의 다섯 얼굴>(시각과언어, 1998)까지 챙겼으면 하지만 아마도 박스에 들어가 있는 듯싶다(이 책은 일종의 사전이다). 그 다섯 얼굴에 모더니티의 주된 정조로서 '우울한 표정'을 더 보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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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5 10:48   좋아요 0 | URL
이런 사이트도 있군요. 즐찾에 넣어놔야겠어요.

싸이런스 2007-02-25 12:24   좋아요 0 | URL
"근대적 사유를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정조는 파토스의 분출이 아니라 그 퇴행과 은폐이며 감정의 원초적 폭발이 아닌 소멸이라고 말이다" 감정이 소멸되면 인간은 판단할 수 있는 능력마저 불구화 되기 때문에 살아가기 어렵게 된다는 이론(Damasio, Antonio)을 생각한다면, 소멸이라기보다는 apathy의 정조가 아닐까요.

로쟈 2007-02-25 12:39   좋아요 0 | URL
아프님/ 일주일에 한번 정도 들어가보시면 됩니다.^^
싸이런스님/ 사실 분출구가 없는 건 아닌데요. 스포츠나 카니발 같은 걸 보면. 문제는 그러한 '폭발'이 '근대적 사유'에는 은폐/소멸돼 있다는 것이고, 말씀대로 그때의 '소멸'은 냉담과도 대치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논문은 안 읽어봤기 때문에 맥락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포커 페이스 같은. 다른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논문이라는 담론'의 형식이 요구하는 게 바로 apathy이죠...

싸이런스 2007-02-25 14:17   좋아요 0 | URL
그래서 논문 읽는게 글케 지루하나보군요. ㅠ.ㅠ

주니다 2007-02-25 20:31   좋아요 0 | URL
P.S.에서 언급하신 동문선의 책들 번역 상태는 어떠한지요? 멜랑콜리와 모더니티는 흥미롭고도 계발적인 주제인 듯 하네요. 이 주제와 관련된 로쟈님의 페이퍼를 기대하겠습니다.^^

로쟈 2007-02-25 20:45   좋아요 0 | URL
저는 페디다의 책이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르페브르의 책은 영역본을 곧 구할 생각이구요, 메쇼닉의 책은 일부만 복사했습니다(영역본이 없어서요). 일견 번역이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검은 태양>은 원저나 영역본과 같이 읽어야 하구요, 벨러의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칼리니스쿠의 책은 읽을 만하지 않았나 싶은데 오래전 기억이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2007-02-26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26 12:25   좋아요 0 | URL
**님/ 감사.^^ 인문서가 잘 안 나간다는 건 거의 '기본조건'인지라 이유가 안 될 거 같구요, 책은 '고집'으로 내야 할 거 같습니다. '그 사장님'처럼 고집만 있어도 문제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TV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억지로 안 보는 건 아니지만 굳이 찾아서 보지는 않는 만큼 별로 볼일이 없다고 해야 맞겠다. 시트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데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는 '거침없이 하이킥'도 우연히 한 차례 20여 분 정도 본 게 전부이다. 그래도 덕분에 대강의 인물 구성은 알고 있다. 그건 아래와 같은 기사를 '재미있게' 읽는 수준은 된다는 얘기이다. 러시아/러시아어에 대한 홍보도 할 겸 어제 방영됐다는 '거침없이 하이킥'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뉴스엔(07. 02. 24) '하이킥’ 친절한 해미씨 러시아어로 신지에 복수 “푸틴과도 오케이?”

‘사육해미’ 박해미가 러시아어에 도전장을 던졌다. 23일 방송된 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완벽녀 해미(박해미 분)가 러시아어를 독파하는 내용이 그려졌다. 사연인 즉, 평소 해미와 앙숙인 동서 신지(신지 분)는 해미를 골리기 위해 러시아 유학 시절 친구와 러시아어로 해미의 험담을 한다. 하지만 눈치 백단인 해미가 이를 모를 리 만무하다. 러시아어로 험담을 하는 것에 기분이 상한 해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독학, 러시아어 책을 펼쳐들고 완벽한 독파에 들어갔다.

러시아어에 빠져 드디어 말문까지 열게 된 해미. 복수의 기회는 예상 외로 빨리 찾아왔다. 신지가 러시아 친구를 데리고 해미의 병원을 찾은 것. 신지는 러시아 친구의 허리가 안 좋다며 치료를 해달라고 부탁하면서도 또 해미의 험담을 시작한다.

이 때 유창한 러시아어로 “내가 아무리 러시아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둘이 그러면 듣는 사람 기분 나쁘지 안 그런가요?”라고 쏘아대는 해미. “그런데 준이 엄마는 발음이 좀 아니다. 그래 갖고 자유롭게 대화가 돼? 공부 좀 더 해야겠어. 오케이?”라고 이어진 멘트는 신지를 넉다운 시키기에 충분했다.

한편, 해미는 러시아어의 매력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듯하다. 3개월 후 해미는 ‘한방교류를 위한 재러시아 한방의료인 세미나’ 강단에서 유쾌 통쾌한 웅변을 토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특히 병원에 걸린 해미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기념사진은 마지막까지도 웃음을 멎지 못하게 했다.(고홍주 기자)

07. 02. 24.

 

 

 

 

P.S. 러시아어는 각 대학이나 학원별로 지정된 교재를 사용하기 때문에(러시아어나 영어로 된 교재도 많이 쓴다) 내가 알기엔 '강추' 교재라는 게 따로 없다. 또 '러시아어' 강좌를 맡은 적이 없어서(한두 번 맡을 뻔했지만 모두 인원 미달로 폐강됐다) 시중에 어떤 교재들이 나와 있는지 조사해본 바도 없다. 대략 '초급자'라면 열거한 교재들을 선택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몇 달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완벽녀 해미'처럼 '하이킥'은 못 날리더라도 '로우킥' 정도는 선보일 수 있으리라. 공부는 소질에 앞서서 얼만큼 흥미를 갖느냐의 문제, 혹은 해미처럼 복수심의 문제이다...   

참고로, 이종격투기에서 사용하는 러시아어 전문술어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이킥'은 (사전적으로 말하면) "븨소끼 우다르"라고 발음하면 된다('븨소끼'가 '하이'이고 '우다르'는 '타격'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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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4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는 이거 딱 한편 봤는데 재밌더군요. 흐흐 이것도 보고 싶다. 로쟈님 대학에서 그럼 러시아어 말고 어떤거 강의하세요? 궁금.

하이드 2007-02-24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동창회를 나가면, 전공도 아니면서 러시아어를 하는 애들이 꽤 있어요. ( 전공도 아닌데, 왜 그런지;;) 영어 제대로 하는 사람도 없는데, 러시아어로 얘기하는 애들 보면 신기. 배우기가 아주- 어렵단 것만 알고 있습니다. 흐- , 그러고 보니, 그중의 한 놈은 고려인과 결혼도 했네요. 카자흐스탄 호텔 카지노에서 일했었는데, - 일어, 독어, 불어, 더 나아가서 스페니쉬, 이탈리어까지도 공부해보고 싶지만, 원서로 읽어볼 엄두도 안나는게 러시아작가들이에요.

기인 2007-02-24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번에 후배 한명이, 러시아어로 논자시 보는데, 자기 혼자만 볼 것 같다고, 제발 쉽게 출제하라고 빌고 있었는데요 ㅎㅎ 이거 정말 요즘 상한가인데, 한번 봐바야 겠네요.

로쟈 2007-02-2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주로 문학과 문화쪽 강의를 합니다. 아르바이트로는 미학과 국문학쪽 강의도 하구요. 요는 닥치는 대로 다 합니다.^^;
하이드님/ 아랍어보다는 쉬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론 중국어보다도 쉬운 게 아닌가 싶고. 외국인들이 배우기엔 물론 한국어보다 훨씬 싶다고 하네요...
기인님/ 그 후배는 누군지 알 것도 같네요.^^ 논자시야 붙여주려고 보는 시험인데요...

2007-02-25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25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그런 '전설'이 또 있군요. 통쾌하면서도 좀 씁쓸한 '하이킥'입니다.^^;
 

지날달 초인가 소설가 김영현의 신작 <낯선 사람들>(실천문학사, 2007)의 출간을 알리는 기사와 함께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페이퍼에 올린 적이 있는데, 레디앙에 작가와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인터뷰를 통독해보니 김영현의 모든 것을 알 거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인터뷰어는 북매거진 '텍스트'의 조은영 편집장이다.

레디앙(07. 02. 24) 삶과 사회변혁 꿈의 본질을 찾아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결코 은신처로 삼지 못한다. 작품과 함께 작가 역시 세상에 발가벗고 선다. 그는 대답을 가진 존재로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존재로서 유의미하다. 시절이 바뀌는 것과 더불어 작품 또한 다른 방식으로 숨 쉬려 든다. 1990년대 민중소설이 서 있는 자리의 가장 가운데에 있었던 김영현은 전작 『폭설』로 1980년대를 떠나보내고 『낯선 사람들』의 작가로 돌아왔다. 소설은 주제는 구원론을 향하고 있으며, 소설의 형식은 추리소설을 닮았다.

누군가는 “1980년대 문학으로 세상의 한복판에서 싸웠던 작가 김영현의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회의적으로 묻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의 새로운 시도가 과연 지금-이곳의 부박한 문학적 현실과 사회적 현실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귀를 세운다. 이러한 질문들은 한 사람의 작가가 당대의 현실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물음표로 귀결한다.



텍스트(이하 ‘텍’) 『낯선 사람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쫓는 소설이다. 추리소설적인 형식으로 씌어진 한편, 내용적으로는 인간의 선과 악, 종교적 구원과 삶의 태도 등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물음들로 가득 차 있다. 그간 ‘김영현 문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거리를 두고 있는 덕에 여러 가지 반응을 접했으리라 본다.

김영현(이하 ‘김’) 이른바 386세대, 혹은 올드한 독자들은 심리적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내가 바로 그런 세대이고 '올드한 독자'인가 보다). 내 소설의 성실한 독자들 중에서도 현실과 치열하게 싸웠던 작가의 외도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걸 알고 있다. 반면 젊은 친구들 중에서는 추리소설의 작법에 재미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요즘 사람들은 긴박감을 좋아하지 않나. 두 가지 반응 모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우리 소설이 독자대중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소설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도입한 했다고는 하지만 굳이 장르 문학적이라고 말하는 건 무의미한 것 같다. 이를 테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도 모두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지 않나. 우리같이 나이든 작가들은 추리소설 쓰기 어렵다. 퍼즐처럼 들어맞는 구성을 만들기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읽는 사람들은 쉽게, 대수롭지 않게 읽지만, 쓰는 사람은 그 고리를 놓치면 안 되니까 공력이 많이 들더라. 쓰면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 형식의 문제를 열어 놓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래야 우리 문학도 딱딱한 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내 이전 작품 중에 종교적인 물음을 담고 있는 것으로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있다. 거기엔 1980년대의 걸개그림을 그리는 화가, 사고를 아이를 잃은 아내가 등장한다. 변화를 그리면서 자기 삶을 성찰하는 과정을 다루었던 작품이다. 이번 소설 『낯선 사람들』은 가족 단위 안에서 일이긴 하지만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보다 훨씬 더 탐욕스러운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인간의 그림자 혹은 악의 형태가 무엇인지를 소설적으로 탐색하려 했던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범죄가 바로 살인이다. 특히, 존속살해. 인간의 어두운 측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존속간의 살인이나 근친상간이다. 융의 표현대로 하자면, 인간의 가장 오래된 그림자인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아버지를 죽인 것이 동생일 수도 있고, 자기 형의 아들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고,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 인간의 가장 깊은 죄의식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아버지 살해’라는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

다른 인터뷰를 통해서 “김영현 문학의 2기” 혹은 “패배의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느낌”이라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정작 ‘김영현의 독자들’은 ‘패배의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사실보다는 그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왔는가 하는 것을 더 문제 삼을 수도 있다. 그것은 곧 문학적 성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원래 니체 철학을 전공하려 했다. 막상 학교에서 공부를 해 보니 강단철학에 잘 안 맞는다는 걸 알았다(*김영현은 서울대 철학과 출신이다). 유신시대의 격동적인 시간에 대학시절을 보내다보니 졸업도 못한 채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10여 년의 시간을 감옥과 군대와 길거리에서 보냈다. 이른바 민주화운동에 휩쓸리면서 살아오게 된 거다. 하지만 내게는 기본적으로 투사적 성격도 정치적 성격도 별로 없다. 그보다는 작가인 한편 철학도로서의 일관성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내 작품 속에도 등장하지만, 과연 무엇이 행복이며, 행복한 사회란 또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고민이다.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내게는 두 가지 태도가 있었다. 하나는 자기시대의 모순과 싸우는 투사적 문학을 지향하는 태도였다. 민중문학을 필두로 1980년대의 문학은 현실과의 지독한 투쟁 속에서 자라났다. 이게 내 소설의 첫 번째 특징이라면, 다른 하나는 구도적인 태도를 들 수 있겠다. 문학을 통해서 당면 현실 뿐 아니라 인간이 근본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지향을 찾아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것이 두 마리의 말이다. 그걸 동시에 추구해야한다고 줄곧 여겨왔다.

초기에는「벌레」에서처럼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많이 다루었다. 그러는 한편 나의 작품들에는 늘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이 있었다.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꿈의 내용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고민,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썼던 것이다. 내 안에서는 그러한 고민들이 멈춘 적이 없다. 아마 그런 요소들 때문에 ‘김영현 논쟁’ 같은 게 생기지 않았나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실이 급격하게 바뀌어 버렸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싸우고 살아왔는데 그 끝이 대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묻게 되었다. 눈 내리는 공장 담벼락 아래를 걸어가며 가슴에 품었던 꿈이 있었다. 더불어 행복해지는 좋은 세상에 대한 꿈을 끈질기게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지금의 현실을 보니 세상에 희망이라는 게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민주화가 되었다고는 하는데, 과연 이런 식의 세상을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던가 싶은 거다. 어떻게 보면 황당하지만 참혹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 현실과 부딪혀 나가려는 어떤 의지 같은 게 메말라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는 둘러가고 싶어지는 거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검토하지 않으면 어쩌면 사회변혁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묻게 되고,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으로 환원하고 싶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설이 현실에 대해서 무엇일 수 있으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등의 질문에 대해서 문학적으로 예민하게 고민해 왔음에도, 어느 시기 이후부터는 피로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게 관조의 태도로 변모하게 된 것 같은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에 작품 활동을 하면서 평단의 조롱 섞인 언사를 많이 들었다. 이른바 후일담 문학에 관한 것이다. 사실 모든 문학은 후일담이지 않나? 하지만 우리 문학에서 후일담 문학이라고 할 때 과거완료형이라는 뜻으로 쓰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규정이 우리 문학을 도리어 죽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후일담 문학이 더 많았어야 했다는 뜻이다. 1980년대를 거칠게 살아온 그들이 지금-이곳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작가들이 어떤 식으로 변모하는지를 집요하게 정리하려는 문학적 경향이 더 풍부했어야 하는데 너무 일찍 청산해버리고 말았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그에 발맞추어 신세대 작가들이 포스트 모던한 작품들을 들고 나왔는데, 그러면서 그 사이에 문학적 단절, 문학적 공백이 생겨버렸다.

내 작품을 둘러싸고 ‘김영현 논쟁’이 나오면서 고민이 상당히 많아졌다. 1990년대 초반, 우리 사회가 질적으로 변화하고 해체를 겪게 되는 시기가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폐기처분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고, 나 자신을 어두운 과거로부터 거둬들이고 싶은 욕구 또한 강해졌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면 죽은 사람도 너무 많았고 피 흘린 사람도 너무 많았다. 정말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되돌아보기가 싫었다. 김영현의 성실한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다. 내가 피로하게 보이고 뒤로 물러서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개다리 영감의 죽음」, 「김문갑전」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서는 역사적 흐름과 무관하게 건강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싶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지식인들의 변해가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 변화를 그저 어떤 현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틀 속에서 바라보고 문학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동체의 성격이 무엇인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물신주의적 사회, 이 미쳐 돌아가는 사회, 이런 세상을 정말 살 가치가 있는지 회의감에 빠질 때가 많다. 휩쓸려서 살고는 있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걸 버텨내는 게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단하다. 간혹 나의 생애가 나의 정신병력과 다름없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자기분열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진장 노력을 한다. 명상도 해보고, 단전호흡도 해보고, 여행을 떠나보기도 하고….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세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나의 문학에 대해서 그 모든 비판을 감당하면서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고 여긴다. 이 단계를 거쳐 가면 다음에는 더 나아지겠지 싶다. 그래서 사실상 문학의 2기, 3기를 논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한평생을 구도하는 승려의 모습과 작가의 생애는 거의 동일한 것 같다. 아마 다음 창작집은 훨씬 더 현실적이 될 것 같다.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는 그런 작품을 준비 중에 있다.

후일담 문학이 너무 빨리 청산되었다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는 후일담 문학의 작가들이 문학적으로 덜 치열했던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런 혐의가 우리 작가들에게 많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이 안 나왔던 것도 독자들이 후일담 문학을 잘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나도 지금에 와서는 옹호를 하지만, 그 당시에는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었다. 독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1980년대를 낮은 폭으로 지내왔으니 그걸 되돌아보기 싫었을 것이다.

우리사회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이루었고, 경제적으로는 양극화가 분명해졌다. 자본주의가 확실히 자리를 잡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사회변혁에 대한 건강한 열정과 순수한 의지를 갖고 있던 사람들의 열망이 거의 휘발되면서 패배감을 가지고 사회에 편입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이 사회에서 자기 열정을 다 펴지 못하고 한꺼번에 청산되면서 일괄적으로 조롱당하는 경험을 겪었다. 몇몇은 출세도 하고 그랬지만…. 정치적으로는 386세대라는 것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과연 386세대가 존재하는가 싶다.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소설 쓰는 후배들은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을 가지고 새 소설 쓰는데 결국 그 중간, 허리가 되는 세대가 없는 셈이다. 몇몇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후일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일찍 청산된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예비 사제인 성연은 수도원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을 한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네’ 라는 요한 신부의 이야기와 안나의 미소 띤 얼굴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근본적인 죄의식이나 선악의 문제로 고뇌했던 성연이 ‘사랑’을 언급하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갈등이 통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결이 너무 손쉽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분명 소설적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한다. 전작 『폭설』에서도 운동권이었던 형섭의 고뇌는 핍진하게 그리면서도 결국에는 사랑으로 마무리 지었다.

결국 싱겁다 혹은 진부하다는 평인데…. 『폭설』은 1980년대를 떠나보내는 내 나름의 연가 혹은 송가였다. 1980년대를, 그 지긋지긋한 시절에 대한 사랑을 이제는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사랑을 주제로 삼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 와서는 조금 후회하기도 한다. 맥 빠지는 듯 느꼈을 수 있으리라 본다. 성연이 수도원 돌아가지 않고 이 진흙바닥 같은 세상에 남겠다는 선택을 한 것, 사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물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사랑이었다.

성연의 외삼촌과 요한 신부의 유신론-무신론 논쟁을 격렬하게 이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요한 신부와 외삼촌은 내가 정성스럽게 그려보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무신론자인 외삼촌은 자기 신념과 이념에 충실한 사람으로, 요한 신부는 그야말로 순결하고 거룩한 영혼을 가진 존재로 그리고 싶었다. 그랬으면 그 둘의 대립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소설 속의 장 반장은 50대 초입으로 그 바닥에서 범인 잡는 걸로 인간의 선과 악을 평생 지켜본 인물이다. 성연과 그 형제들의 운명을 모두 다 바라봐 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마지막에 가서 “내 삶이 의미 있는 것인가?”라고 묻는 건, 참 가슴 아픈 아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고. 사실상 장 반장의 이런 질문으로 끝을 냈어야 했던 건 아닐까 싶다. 사실 성연이 그에 대해 굳이 답할 필요는 없었다.

『낯선 사람들』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걸러내고 나면 결국 누가 남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안나일 것 같았다. 제목도 ‘안나’로 하고 싶었다. 편집부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누구나 다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뜻에서 실존주의적인 의미로 ‘낯선 사람들’로 하게 됐는데…. 아무튼 안나는 성연이 머무르기로 한 이 삭막한 세상에서 계속 리바이벌되고 성연의 마지막 가능성을 확인하게 하는 존재다. 궁핍하고 괴로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안나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성연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이 된다.

이런 식의 생각은 아마도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낭만성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설을 쓰면서 줄곧 그런 안나의 존재와 의미에 골몰하다보니까, 안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나름대로 합리화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 사랑이라는 걸 어떻게든 걸치고 가고 싶어서 결국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얘기를 쓰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맥 빠지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가 진부하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소설을 쓰면서 사랑에 대해서 새롭게 느끼게 됐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보잘것없는 세계에 사랑이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공룡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가 정말 뭔가가 다르다면, 인간 속에는 뭔가 표현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그게 소설 속에서는 다소 진부하게 마무리되는 바람에 아쉬움이 남는 거다. 몇 줄 묘사되지 않지만 안나를 쓰는 장면이 가장 어려웠다.

그렇다면 차라리 사랑 이야기를 정면으로 써 보는 것은 어떤가.

지금 나에게 가장 큰 결핍이 있다면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사랑 이야기는 쓸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사랑의 밑바닥에는 그리움의 정서가 있다. 사랑이 뇌파적으로 베타파라면 그리움은 알파파라고 할까. 밑바닥을 선회하는 감정 말이다. 우리는 누구도 “그리웠습니다”라고 인사하지 못한다. 너무 깊은 감정이라 그렇다. 그런데 그 그리움이라는 것이 나의 감정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걸 느낀다. 단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세상이 그렇게 가는 것 같지 않나? 그리워 할 것이 세상에서 점점 더 사라지는 것 같다. 그리움에 대한 열망이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품격을 지키면서 살도록 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우리 사회는 정말 품격이 바닥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아, 정말 사랑 이야기는 못 쓸 것 같다(*그에겐 <풋사랑>이란 소설도 있지 않았나?).



품격 없는 시대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그 방향을 좀 바꾸어서 그걸 문학작품과 출판의 관계라는 맥락에서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테면 이제는 ‘창비’의 고유함, ‘문지’의 고유함 같은 것들이 거의 사라졌다고도 할 수 있다. 시장과 타협하는 모습들을 너무 쉽게 포착할 수 있다.

문학의 다양화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일본 문학과 비교해 봤을 때, 나는 우리 문학이 더 치열하다고 본다. 문학적 전통도 탄탄하다. 그런데 지금 대중들이 열광하는 문학은 거의 일본 문학이다. 다양한 재미, 넓은 작가군 같은 것들이 부러울 지경이다. 우리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얼마만큼 경쟁력을 확보하고 버틸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젊은 작가들이 힘겹게 분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문학의 기본은 리얼리티다. 자기의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그걸 표현하는 작가들의 목소리는 저마다 달라야 하겠지. 하지만 현실의 문제와 동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학이 오락으로 넘어가고 독자들을 잃어버리는 것은 그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출판 시장 자체가 급격하게 상업주의의 길로 돌아선 것은 출판 문학계의 현실이다. 짜르와 싸운다, 혹은 일본과 싸운다, 혹은 전두환과 싸운다, 이런 식의 구체적인 당면 목표가 없는 상황이고, 따라서 자기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할 만한 그 무엇인가가 없다. 생활양식이 변화하고 삶이 다양해졌지만 어떤 선택도 쉽지가 않다. 예를 들어, 시골로 내려가 자급자족하면서 농사짓고 산다고 해도 그것은 개인적인 선택일 뿐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다.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전선’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그러니까 문예지나 출판사가 뭘 표방하려야 할 수가 없다. 내가 있는 ‘실천문학’에 대해서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다. “‘실천문학’의 칼라가 뭐냐?” 이렇게 물었을 때, 반미자주 혹은 민주화 이런 것들이 충분한 대답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난감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통합한 것이 바로 상업주의다. 살아남아야 하는 게 최대의 목표가 됐다. 어떻게 살아남을까 이것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고 그걸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 온 거다. 그러다보니 전반적으로 질적인 하락을 면할 수가 없게 되고….

누구 스타 작가 하나가 뜨면 서로 끌어가려고 혈안이 된다. 예전에는 어떤 작가가 괜찮다고 하면 그에 대해서 비판적인 목소리들이 함께 나와서 견제를 해 줬지만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사회가 에너지를 상실하면 문학도 애매모호해 진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자본주의적 가치, 돈이 없으면 곧 죽은 목숨이라는 것, 이런 단일한 가치가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통합을 이룬 적이 있던가. 이런 상황들이 나에게도 끊임없는 배신감을 안겨준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찌됐든 ‘작가들의 몫’을 이야기해 봐야 할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거치면서 좋은 작품들이 많았고, 좋은 작가들도 많았다. 지금 젊은 후배 작가들 중에서도 눈여겨 볼만한 작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는 오늘날의 작가들은 뭘 써야 하는지, 자신의 고민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손가락을 앓고 있는 것인지 심장을 앓고 있는 것인지 구별을 못한다. 그러다보니 독자들도 읽을 게 없다는 볼 멘 소리를 하고. 작가로서 실험적인 것을 계속 시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요즘 실험적인 시를 쓰는 시인들을 '미래파'라고 부르고 있는 것 같더라. 작가들은 이렇게 계속 돌파구를 찾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소득을 거두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작가들의 몫이라는 점에서 그걸 계속 과제로 안고 가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김영현의 이후 소설’에 대해서 듣고 싶다.

나는 정통적인 문학수업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외국소설을 읽으면서 문학적 자양분을 섭취했다.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도 물론 좋지만 체호프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체호프처럼 쓰고 싶다.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주제는 이번으로 끝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번 소설 『낯선 사람들』은 딱히 구도소설이라고 할 만하지는 않다. 나는 성연이 ‘성인聖人’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 쓰지 않았다. 여기에 뭔가를 더 할 수 있었다면, 사회성이나 역사성에 대한 이야기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쓰면 또다시 후일담이라고 할까 싶어서 그런 부분들은 다 걷어냈다. 최문술의 과거 삶에서 살짝 언급은 하지만 그걸 주도적으로 밀고 가지는 않았다. 이런 종류의 소설 배경에도 사회적인 이야기가 풍요로워야 한다. 그걸 못한 건, 내가 타협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다짐했다.

작가는 혼자서 춤을 추는 존재다. 마치 무당이 혼자서 제를 드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부족한 점들을 느낀다. 한 작품을 쓰고 나면 언제나 아쉬움이 많기 때문에 다시 돌아보기가 겁난다. 독자들이 좋다고 해도 불안하고, 나쁘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그런다. 그게 또 작가의 운명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일관성을 평생 유지하면서 글을 쓴다는 게 만만치가 않다는 걸 새삼 느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면서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작가는 자신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 것 같다. 자신을 모르모트로 삼는다. 자기 온 몸을 작품에다 바친다. 나이가 들수록 그걸 더 절실하게 깨닫는다. 삶의 전체적인 모습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 가령, 김성동이 어떻게 사느냐, 이문구가 어떻게 사느냐, 이건 작품과 직결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현실과 어떻게 싸우고 타협하며 버티고 살아가는지 독자들은 그런 걸 기대한다.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시작해서 작가의 작품에 의탁하며 한 시절을 보내는 것이다.(조은영/ 텍스트)

07. 02. 24.

P.S. 비유컨대, 김영현은 러시아의 1840년대 인텔리겐치아 세대를 닮았다.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1862)에서 그려지고 있는 아버지 세대가 40년대 세대이며 이 자유주의 인텔리겐치아를 특징짓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낭만성'이다. 반면에 60년대 인텔리겐치아는 소설에서 주인공 바자로프가 보여주는 것처럼 무엇보다도 과학주의와 유물론으로 무장한 세대이다. 이러한 대비는 한국문학에서 1960년대 4.19세대와 80년대 운동권 세대와의 대비에 상응한다. 1954년생인 김영현은 70년대 학번인데 그 문학적 후배들보다는 선배들과 더 많은 것을 공유하는 듯싶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경도 같은 게 그 증거이다.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건 이제 그가 도스토예프스키적인 것에서 체호프적인 것으로 이행해가고자 한다는 것.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도 물론 좋지만 체호프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체호프처럼 쓰고 싶다." 문학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로 투사적 태도와 구도적 태도를 꼽은 김영현이 '체호프처럼 쓰고 싶다"고 고백하는 건 의외이다. 그건 투사적 태도나 구도적 태도 모두와 무관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 세계로 진입할 수 있을까? 삶에 대한 낭만적 태도 대신에 냉정한 관찰자적 태도를 견지할 수 있을까? 장담하지 못하겠다. 아마도 전혀 다른 김영현의 세계이어야 하겠기에. 그렇지 않다면 '김영현'이란 이름은 작가 체호프가 아닌 다만 '체호프적인 인물'을 연상시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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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mer 2007-02-25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호프처럼 쓰고 싶다'는 의미가 그의 '범죄의 형식'을 추적해 가고 싶다는 것으로 들리네요. 범죄를 저지르지는 못하고 다만 그 자취를 '추적'할 뿐인 탐정말이죠...

로쟈 2007-02-2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뷰에 그렇게 '구체화'돼 있는 것 같지는 않구요. 제가 보기에 김영현과 체호프(의 인물들)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건 삶의 좋은 날들이 지나가버렸다는 회한으로서의 후일담이나 대책없는 그리움 같은 겁니다. 범죄나 탐정, 같은 게 요구하는 어떤 의지나 집요함은 체호프과는 아주 낯선 게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