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도올의 <요한복음 강해>의 참고문헌 얘기를 하면서 사전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을 인용한 적이 있는데, 거듭 말하자면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 좋은 사전을 활용하는 습관은 매우 중요하다." 더불어, "인간의 지식은 좋은 사전들을 통하여 정밀해지고 광범해진다". 단순한 ABC이지만 그걸 실천하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일단 현실이 뒷받침해주지 않는바 전공분야인 문학비평/이론쪽만 하더라도 우리말로 씌어지거나 번역된 사전들이 절대적으로 빈약하다.

 

 

 

 

내 경우에 단권 사전으로는 4-5종을 갖고 있는데 알라딘에 이미지가 뜨는 책으론 조셉 칠더즈 등의 <현대문학-문화 비평용어사전>(문학동네, 1999), 이상섭의 <문학비평용어사전>(민음사, 개정판 2001) 등이다. 김윤식의 <문학비평용어사전>(일지사)이나 이명섭의 <세계문학비평용어사전>(을유문화사)도 예전에 많이 참조되던 책들인데 아직 절판되지는 않은 듯하다. 거기에 번역서로는 렌트리키아가 편집한 <문학연구를 위한 비평용어>(한신문화사, 1994)나 분야는 좀 특화돼 있지만 <새로운 미술사를 위한 비평용어 31>(아트북스, 2006)도 참조할 만한 책이다. 내가 안 갖고 있는 책으로는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엮어낸 <문학비평용어사전>(전2권, 국학자료원, 2006)이 있다. 아래의 이미지는 영어권에서도 대표적인 비평용어사전에 속하는 조셉 칠더스 편의 사전과 렌트리키아 편의 사전.

 

잠시 생각이 나서 <현대문학-문화비평용어사전>을 훑어보다가 아무리 분량이 방대하다 하더라도 단권 사전으로는 역시나 부족한 면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비록 조감도로는 훌륭하지만 중요한 용어들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이 잡듯이 훑어줄 수 있는 사전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사전이 아주 없지는 않았는데, 서울대출판부에서 출간되었던 '문학비평 총서'가 비록 얇은 분량이긴 하지만 상세도의 역할을 얼마간 해주었기 때문이다.

 

 

 

 

 

 

 

 

권당 1,000원의 저렴한 가격이었기 때문에 30권에 육박하는 시리즈의 대부분을 구매했었던 기억이 난다(얇은 문고본 판형이어서 보관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 시리즈의 단점은 역시나 시의성. 원서들의 대부분이 1970년을 전후로 한 시기에 나온 책들이다. 거의 40년전 책들인 것이다. 그간에 새로운 비평이론과 용어들이 쏟아져나온 건 당연하고 그런 부분까지 카바해줄 수 있는 새로운 사전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당면한 요구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에 부응해줘야 하는 게 대학출판부의 역할이 아닌가 한다(아무래도 상업출판에서 다루어지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기에).

 

 

  

 

 

 

 

 

그런 점에서 눈에 띄는 책은 국내서의 경우 연세대출판부에서 나오는 '문학의 기본개념' 시리즈이다. <근대어의 탄생>(2003)을 시작으로 하여 <현대문화와 신화>(2006)에 이르기까지 대략 13권의 책이 나와 있는 듯하다. 몇몇 새로운 '용어'들을 포함하고 있는 단행본 분량의 '사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흠이라면 아직 많은 영역이 공백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 1년에 3권씩 보태지는 걸로는 앞으로 10년쯤 더 기다려봐야 어지간한 용어들을 카바할 수 있을 듯싶다.

GOTHIC, BOTTING (NCI)

국외로 눈을 돌리면 가장 탐나는 건 루틀리지출판사에서 나오는 '새 비평용어(New Critical Idiom)' 시리즈이다(http://www.routledge.com/literature/series_list.asp?series=4). 현재 40권이 넘게 출간돼 있는데, 특징이자 장점은 <고딕>이나 <희극> 같은 고전적인 비평용어에서부터 <식민주의/탈식민주의>나 <젠더>처럼 새롭게 필수적인 비평용어로 등재된 용어들까지 두루, 그리고 자세하게 카바하고 있다는 것. 문학전공자라면 한 질을 서가에 모두 꽂아두고 싶은 시리즈이다(세보니까 10권쯤을 갖고 있다).

 

 

 

 

재미있는 건 이 시리즈의 몇 권이 국내에 이미 산발적으로 번역/소개돼 있다는 점. 예전에 한번 언급한 바 있는데 폴 해밀턴의 <역사주의>(동문선, 1998), 데이비드 호크스의 <이데올로기>(동문선, 2003), 그리고 사라 밀즈의 <담론>(인간사랑, 2001), 앤터니 이스트호프의 <무의식>(한나래, 2000), 조셉 브리스토우의 <섹슈얼리티>(한나래, 2000)가 이 시리즈의 책들이다. 당연히 갖게 되는 아쉬움은 이 번역/소개가 체계적이지도 지속적이지도 않다는 것. 가장 바람직한 건 전 시리즈를 계약/전담해서 '총서'류로 내는 것일 테지만 현 출판상황에 미루어볼 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 좋은 사전을 활용하는 습관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어로는 그런 습관을 기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국어는 과연 학문어가 될 수 있는가란 질문은 사치스러운 질문일까?..

07.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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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ournelle 2007-02-25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추천합니다.

기인 2007-02-25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쩝. 안타깝네요. 학교 출판사 하나가 맡아서 열심히 하면 좋으련만.. 용어사전은 논문 쓸 때나, 여기저기 참고할 게 많은데.. 어쨌든 퍼갑니다. ^^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2-2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잘 봤습니다 - 퍼갈게용 ^^

2007-02-26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26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저도 뒤지는 건 구글뿐입니다...

jouissance 2007-02-27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비평용어사전>(전2권, 국학자료원, 2006) 로쟈님이라면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10만원이란 가격이 부담스러웠나 보군요. 아니면 일찍부터 도서관용을 쓰시기로 방향을 잡으셨던지. 이 사전 의외로 괜찮더군요(저는 두 달 벼르다가 구입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유사한 사전 중에서 첫 손가락으로 뽑고 싶어요. 제목이 '문학비평용어사전'이지 거의 '인문학사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사전이더라구요. 여러면에서 공들여 만든 사전임에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그 쪽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들으니 김한길이 문화부장관 했던 덕에 나올 수 있었던 사전이라고 하더군요. 이미 검토를 마쳤을 로쟈님의 촌평을 듣고 싶군요^^

로쟈 2007-02-27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만 본 적이 있습니다.^^; 가격도 그렇지만 보관할 장소(?)도 마땅찮긴 합니다. 한데 항목수가 많은 것인지 항목별로 상세한 해설을 담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무리 방대한 두께라 하더라도 가령, '러시아 형식주의'니 '모더니즘'이니 하는 항목을 얼만큼 상세하게 풀고 있을지는 좀 의문이구요. 거의 '인문학사전'이라면 백과사전 수준이 아닐까 싶네요. 평이 좋은 듯하므로 구경은 해봐야겠습니다. 이게 웬만한 서점에는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