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학판>이 5주년 기념호를 냈다(어느덧 '중견' 잡지의 대열에 들어서는 듯하다). 2006년 겨울호가 그것이다(계간지 겨울호들이 계절을 더욱 재촉하는 듯하다). 자체 소개에 따르면, "전위적이며 독창적인 작업을 실험하는 작가들의 활동을 지지해온 계간 <문학 판>의 창간 5주년을 맞이했다. 2001년 겨울, 편집인 이인성은 '문학의 상업화에 맞선다는 기본 취지 아래 대중적 감각과 지성적 이해를 결합'시키며, '평단에서 소외된 신인작가의 전위적 작업을 부각'시키겠다는 포부로 창간 의의를 밝힌 바 있다."

"이번 호 특집은 새로운 문학 세대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자리로 꾸몄다. 김진수, 손정수 두 평론가가 각각 시와 소설 분야의 새로운 세대의 문학에 대해 논했다. 시인 김민정, 진은영, 황병승, 김태형, 소설가 구경미, 편혜영, 김중혁, 김애란, 평론가 허윤진, 신형철 등 각 장르의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열 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글쓰기의 근거에 대해 발언했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한 최재봉 기자의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6. 11. 24) 문단 막내들에게 듣는 ‘문학이란?’

“말하자면 어떤 그리움이나 상실감이 없는 채로, 부정해야 할 대상도 없고 증언하고 싶은 시절도 없이, 고백해야 할 내면이나 문학적 책임의식도 없는 20세기 막바지 세대가 21세기에 문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소설가 편혜영(34)씨가 <문학/판> 겨울호에 쓴 ‘교본의 시간’이라는 글의 한 대목이다. 전통적으로 문학 창작의 동기로 꼽히는 요소들을 두루 나열하면서 그 어느 것 하나도 제 몫이 아닌 채로 문학을 해야 하는 세대로서의 자괴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 글은 <문학/판>이 창간 5주년을 맞아 기획한 특집 ‘21세기 문학세대’에 포함되었다.

이 기획에는 시인 진은영 김태형 김민정 황병승씨와 소설가 구경미 편혜영 김중혁 김애란씨, 그리고 평론가 허윤진 신형철씨 등 10명이 참여했다. ‘우리는 문학으로 무엇을 하는가’라는 편집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이 특집에 참여한 이들은 1980년생인 김애란 허윤진씨를 제하고는 모두 1970년대생이다. 문단의 막내들이라 할 만하다.

대부분이 도시 태생인 이들에게는 “오히려 알 수 없는 전원과 자연의 풍경을 보면 두려움이 느껴”지며 “회색 콘크리트가 기왓장이나 대청마루처럼, 전봇대가 마을 앞의 수령 깊은 나무처럼 느껴진다.”(편혜영) ‘전통 서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떨까. 이 젊은 시인들은 종종 ‘미래파’라는 저널리스틱한 이름으로 뭉뚱그려지기도 하는데, 그 대표자 격인 황병승씨가 “나는 미래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흥미롭다. 미래파는 그 이름을 창안한 이의 의도와는 달리 자주 비판과 공격에 노출된다. 자폐적 상상력과 폭력적인 이미지, 대중문화적 기호의 범람이 주로 빌미를 제공한다. 황병승씨 글의 마지막은 그를 의식한 것 같다: “우리에겐 우리들만의 승리가 있다/배척된 채로/배척된 채로”

비장한 결의와 뻔뻔한(?) 각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진은영씨의 말을 들어보자. “우린 다소 지겹다. 지나치게 전복적인 것이 아니라 다소 빤하고 몇 가지 문학적 수사에만 능숙하다. 우린 너무 쉽다. 결코 난해하지 않다. 몇몇 인디밴드 음악이나 일본만화, 퀴어문화 등등 특정한 문화적 코드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에, 사실은 누군가를 감염시키는 데 실패했다.(…)우리는 복화술사가 아니라 특정문화를 소비하는 부류의 또렷한 입으로 전락할 위기에 직면해 있는지도 모른다. 무성한 소문과 달리 아직 우리는 새로운 문학으로 탄생하기 이전이다.”

아마도 21세기에 문학에 종사하는 이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일본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주창한 ‘근대문학의 종언’ 테제일 것이다. 자기 안에 갇혀 사회 전체의 긴급한 현안에 대응하지 못하는 지금의 문학은 본래적 의미의 문학에서 멀어졌으므로 지금 문학은 없다는 것이 가라타니의 주장이다. 이제 막 문학을 시작하는 이들을 향해 누군가는 문학이 진작 끝났노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런 낭패가! 신형철씨의 화려한 글 ‘몰락의 에티카­: 21세기 문학 사용법’은 가라타니의 선언을 크게 의식하고 있다.

“거인으로서의 문학이 죽었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본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본래 난쟁이였고, 더 작게는 ‘짱돌’이었으며, 더욱더 작게는 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 가장 ‘협소한’ 영역 안에서 가장 ‘깊게’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 문학이라 하면 어떨까.(…)넓은 총체성이 아니라 깊은 총체성 말이다.”

“다른 총체성이 있고 다른 윤리가 있다”고 신형철씨는 주장한다. 그 새로운 총체성의 이름은 ‘파편으로서의 총체성’이라고. “21세기라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다”면서 여전히 아름다움과 상상력에 대한 믿음을 피력하는 김중혁씨의 글은 평론가의 주장과 다르면서도 같다.(최재봉 기자)

06. 11. 24.

P.S. 굳이 분류하자면 '20세기 문학독자'로서 내가 동감하는 견해는 시인 진은영씨의 것이다. 일곱 가지 항목으로 규정하면, '21세기 문학'은 (1)다소 지겹다. (2)지나치게 전복적인 것이 아니라 다소 빤하고 (3)몇 가지 문학적 수사에만 능숙하다. (4)너무 쉽다. (5)결코 난해하지 않다. (6)몇몇 인디밴드 음악이나 일본만화, 퀴어문화 등등 특정한 문화적 코드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에, (7)사실은 누군가를 감염시키는 데 실패했다.

"거인으로서의 문학이 죽었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본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라는 건 '21세기 문학세대'의 활기찬(하지만 수세적인) 상상력이다. '본래'라는 어사가 굳이 동원될 필요가 있을까? 지겹고 빤하고 쉽고 그래서 실패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 '바닥'에서 뭔가 기대해볼 수 있는 게 아닐까? '몰락의 에티카'는 몰락의 승인을 전제로 작동하는 윤리학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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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11-24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어. 저 중 진은영 시인이 '우리'라고 묶을 수 있는 것은 아닐텐데. (물론 긍정적 의미로). 진은영 시인 또한, 자기가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양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읽히는 데요. 구해서 읽어봐야겠네요. 퍼갑니다. :)

로쟈 2006-11-2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기사상으론 '우리', 혹은 '우리세대 문학'에 대한 고백으로 읽히는데요...
 

드라마 '황진이'를 잠깐 보니 하지원이 시조 한 수를 읊조리는 게 나온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라고 시작되는 시조이다. 문득 오래전에 황진이의 시조 한 수에 대해서 주석을 덧붙인 글이 생각났다(그때는 전기소설은커녕 관련자료도 거의 없었다). '황새의 멈추어진 걸음'이라고 이름붙인 것인데(페이퍼로 올려져 있다) 다시 찾아보니 이미지들이 여기저기 깨져 있다. 황진이의 시조와 관련되는 대목만 옮겨놓고, '황진이의 유머'라고 다시 제목을 붙여둔다. 그간에 나온 황진이 소설과 관련서들을 보면 거의 '황진이 산업' 수준이 아닐까 싶은 정도이다. 주석본 <나, 황진이>(푸른역사, 2002) 정도는 언제 읽어봐야겠다.   

 

 

 

 

-어져 내 일이야... Oh, my business!..

-먼저, ‘어져’에 대해서 말하여야 한다. ‘어져’가 전제로 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라는 두 시간적 계기이다. 그런데 이 두 계기는 따로 놓여 있지 않다. 그것들은 겹쳐 놓인다. ‘어져’는 이 겹쳐 놓임의 양태에 대한 평가적 발화의 한 가지이다. 두 음절의 이 발화가 집약하고 있는 것은 과거의 어떤 사건에 대한 현재의 안타까운 회한이다. 이 회한은 세계-내-존재로서의 유한한 인간이 이 세계에 지불하고 있는 자신의 몸값이며, 자기 삶의 무게이다. 현재의 우리는 간혹 목욕탕에 가 체중계에 올라서듯이 과거의 한 시점을 불러내어 닦아세운다. 자백해라, 왜 그랬더냐? 이건 두말할 것도 없이 어리석음(=무지) 때문이었다(‘그릴 줄을 모로더냐?’). 이 어리석음이 과거가 저지른 과오이다. 그리고 ‘어져’는 이렇듯 겹쳐 놓인 어리석음과 안타까움에 대한 우리의 평가적 발화이다.

-다음, ‘내 일’이란 건 ‘어져’가 포괄하고 있는 사태를 모두 뭉뚱그리는 말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렇게 뭉뚱그려진 사태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저질러놓고 후회하는 일은 그것이 반복되면서 비로소 제값의 ‘일’(=업)이 된다. 그것은 내가 저질러놓은 일이면서 내가 끊임없이 저지르게 될 일이다(그래서 ‘내’ 일이다). 우리의 회한은 결코 우리의 어리석음을 구제하지 못할 것이기에. 그러니 어이하랴, 결국 어리석게도 나는 또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 이것도 비즈니스라고? 빌어먹을!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더냐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나는 중장의 ‘제 구태여’를 ‘제 구태여 가랴마는’이 도치된 것으로 읽는다(혹자는 ‘제 구태여 보내고’로 읽는다. *원래는 고어(古語) 표기로 인용했었는데, 여기서는 현대어 표기로 바꾸었다). ‘가랴마는’ 뒤에 (구태여) 덧말로 붙여진 ‘구태여’가 정치된 ‘제 구태여 가랴마는’의 ‘구태여’보다 효과적이다. 말의 기능면에서 그렇다. 여기서 ‘구태여’의 주체는 님이다. 즉 내가 가는 걸 말렸더라면(=그냥 가게 내버려둔 나의 과오) 구태여 님이(=지가) 떠났겠는가(=그리고 뒤늦은 회한), 라는 것이 중장의 내용이다. 종장의 ‘보내고 그리는 정’은 이 과오-회한의 구도를 그대로 집약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구도가 바로 서정(시)의 구도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단순한 서정이라면 흔한 서정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른바 기질지성(氣質之性)의 푸념을 조금 멋을 내어(‘나도 몰라 하노라’) 표현한 것. 나는 조금 더 복잡하게 읽고 싶다. 이른바 ‘복잡한 서정’이란 무엇인가? 다시 중장. 가는 걸 말린다고 해서 못 이기는 체 눌러앉는 작자를 님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님은 적어도 일류의 기녀(=황진이)라면 용납할 수 없을 님이다(품위가 떨어지는 님이기에 그렇다). 우리의 님은 (부여잡고) 말렸더라도 결단코/구태여 떠나갔을 것이다(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며). 그리고 우리에겐 그리움의 몫만을 남겨놓았을 것이다. 그런 님을 두고 짐짓 내가 가는 걸 말렸더라면 구태여 떠났겠는가, 라고 말하는 것은 이중의 전략이며 복잡한 서정의 결과이다.



-어차피 떠나고 말 님을 이시라 하며 말리는 것은 성과가 없는 일일 뿐더러 정나미 떨어뜨리는 일이며 자존심만 구기는 일이다(이류들은 이런 일에 구애 받지 않겠지만). 그러니 그냥 가게 내버려두는 것. 이 사소한 과오 덕분에 나는 잘난 자존심과 님 그리는 정을 모두 지켜낸다. 그래도 이만한 어리석음(=과오)이라면 뒤집어쓰고 남을 만하지 않을까, 라는 계산이 바로 복잡한 서정이고 이중의 전략이다.

-나는 이걸 달리 ‘유머’라고 부른다(밀란 쿤데라는 ‘좋은 기분’이라고 부른다). 유머란 우리 내부의 모순들이 우리를 쓰라리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고양된 의식이다. 나의 자존심은 님을 떠나가게 할 수도 없고 눌러 있게 할 수도 없다. 이것은 모순이다. 이 모순을 쓰라리거나 불행하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것(=길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어져 내 일’이다.

-이 시(조)에서 ‘내 일’은 ‘돌이킬 수도 있었던 과거’, 그래서 ‘달라질 수도 있었던 현재’라는 어떤 다른 삶의 (희박한) 가능성을 불행한 현실과 대질시킴으로써 완료된다. 이 일로 물론 구제 받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루만져줄 수 있을 따름. 그럼에도 이 어루만짐(=유머)은 소중한 것이며 오직 유한한 인간, 중간쯤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특권적인 라이프 스타일이다...

06.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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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2006-11-24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머라기 보다 자신의 삶과 행동에 대해 통찰하는 힘이 뛰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녀의 모순된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자가 황진이 자신, 그 상황에 개입한 님, 그 상황을 지켜보는 낯선 이들 중에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통찰과 유머가 같은 길(상황의 극복이나 상처의 어루만짐, 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해)를 지향한다고 해도 한 순간도 감정의 순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유머라 이름붙이기에는 약간 억지스러운 면이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황진이의 시조에 대한 깊은 고견은 추천 드립니다. 많은 거 배우게 되네요.

로쟈 2006-11-24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머란 우리 내부의 모순들이 우리를 쓰라리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고양된 의식이다"라는 건 헤겔의 정의인데(쿤데라의 인용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그것이 '감정의 순화'를 상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간극, 그 모순을 그대로 보존하되 다만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죠. 지금은 느낌이 많이 사라졌지만, 한때는 '어져 내 일이야'란 시구를 떠올릴 때마다 키득거리곤 했습니다...

2006-11-24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1-24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오랜 손님이시네요.^^ 유머=몽상쯤 될까요...

sommer 2006-11-24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황진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흥미로운 점은 등장인물들의 대사 속에서 '진심'이 불가능한 그 무엇처럼 모든 담화의 비어있는 중심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에서 벽계수의 전략에 대한 황진이의 '진심'이 발동했던 순간에는 '진심'이라는 실체/본질이 이미 실존하고 깨어져 있기 때문에 그 진심에서 도망치려는 예판 주체와 '진심'의 그 실존성을 전략이라는 외관의 환타지를 통해서 몸소 보여주는 벽계수 주체가 겹쳐 보여 놀람을 자아내더군요. 그리고, 진심이 외관이라는 틀로 긍정되고 교환되어야만 한다는 명제를 보여주듯 황진이가 벽계수에게 '동'하고 있다는 것이 이후에 전개될 드라마에 궁금증을 더해주더군요. 보통 트렌드 드라마에서도 그 '진심'이라는 실체에 몸을 던지는 안티고네들이 사회적으로 긍정되었던 것을 보면, 이러한 경향성은 주목할 만해 보입니다. 이 드라마의 원저작의 작가가 김탁환이라는 사실이 더욱 흥미를 자아내는군요...

로쟈 2006-11-24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드라마를 5분도 보지 못해서 논평할 처지는 못되구요, suture님의 '황진이론'을 나중에 기다려봐야겠습니다.^^
 

책을 읽고 정리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는 이제 '향수'어린 핑계가 될 듯하다. 책에 대한 '정보'를 읽고 처리할 시간조차 부족한 요즘이기 때문이다. 독서의 대가들은 뭔가 다른 꼼수들을 갖고 있을 듯하지만, 현재 내가 취한 방식으로는 그렇다. 아침에 우편물함에 계간 <창작과비평>(겨울호)가 와 있는 걸 들고 왔는데, 생각해보면 지난 가을호에 실려있던 글꼭지들 중에서 몇 편이나 읽었는지 스스로 궁금하다. 그나마 책에 대한 궁리와 독서량이 남들 수준은 된다고 자임하는 처지에서도 그러하다. 이 '엔드게임'에 무슨 꼼수가 있는 것일까? 

 

 

 

 

여하튼 급수가 낮은 나로선 하던 방식대로 그날그날의 정보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겠다. 최근에 나온 <근대를 다시 읽는다>(역사비평사, 2006)의 책임편집을 맡은 윤해동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는 것이 오늘의 한 가지 일과이다. 편자는 이 주제와 관련한 여러 공저들을 낸 바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식민지의 회색지대>(역사비평사, 2003) 정도이다.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당시에 화제가 되었던 책이었기에 여러 건의 리뷰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퍼슨웹이 기획했던 인터뷰북 <인텔리겐차>(푸른역사, 2002)에서 '윤해동 편'을 읽은 기억이 있으니까 초면은 아닌 셈이다.

여하튼 새로 나온 책은 올초에 출간되어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대한 '진보학계'의 본격적인 반론이란 성격을 갖는다고. 이미 <해방전후사의 인식>도 부랴부랴 재출간되기도 했었던 만큼 2006년 역사학계의 풍경은 이 배다른 3부작(?) 시리즈로 다 정리될 듯하다. 이 <다시 읽는다>가 <인식>과 <재인식>에 대한 변증법적 지양인지, 혹은 '제3의 길'인지 옆자리에선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페이퍼의 제목은 그냥 '근대에 대한 인식과 재인식 사이'라고만 해두었다. 거기서 어떤 게 비져나오는 건지는 다 읽어보신 분들이 정리해주면 좋겠다.    

경향신문(06. 11. 23)  낡은 근대에 대한 젊은 비판 ‘근대…’ 책임편자 윤해동교수

지난 2월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을 비판하는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윤해동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47)는 “처음에는 ‘이제야 나와야 할 것이 나왔다’며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책장을 펼치는 순간 기대는 큰 실망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인식’은 암울했던 1980년대에 그 나름의 소명은 다했습니다. 다만 거기에 태반을 둔 사람들이 자기 변신을 잘못한 측면이 크죠. 그런 점에서 ‘재인식’은 중요한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못했다고 봅니다.”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며 디지털 혁명으로 사람 간 소통양식이 바뀌는 현실에서 ‘인식’류의 민족주의·민중주의는 재인식될 필요가 있지만 그 방향이 ‘대한민국 중심주의’ ‘애국주의’ 나아가 냉전논리로의 회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근대를 다시 읽는다 1·2’(역사비평사)이다. 윤교수는 이 책의 책임 편저를 맡았다.

윤교수는 “이제는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할 ‘근대’라는 틀을 오히려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재인식’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명백히 파괴적”이라고 했다. 그러면 다시 읽어야 할 ‘근대’란 무엇인가. 윤교수는 “오늘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새로운 시간의 지평에서 ‘민족’의 ‘역사’를 다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민족’과 ‘국가’라는 틀에서 좀더 자유로워져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는 것이다.

근대는 해방과 억압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것은 억압이 된다. 서양과 일본의 근대는 강한 국민국가를 만들어 냈지만 그 과정은 식민지 건설 없이는 불가능했다. 식민지는 지정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삶의 일상으로 확장된다. 이주자, 여성, 장애인, 어린이 등 다양한 소수자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근대의 표상을 이루는 과정에서 지금도 ‘우리 안의 식민지’로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편자들은 “모든 근대는 기본적으로 식민지적”이라고 말한다.

학교 조회’를 비롯한 수많은 학교 규율은 ‘교육칙어’를 낭독하던 일본 근대교육의 학교 규율을 본뜬 것이다. 이제 교육칙어는 없어졌지만 본질적으로는 별로 바뀌지 않은 학교 규율이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일까.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은 이른바 ‘전쟁 미망인’들이 만악의 근원처럼 지탄 받았던 전후 그늘은 ‘분단체제론’을 주장하는 ‘우리민족끼리’주의자들도 별로 눈여겨 봐주지 못하는 부분이다.

‘친일청산’ 문제도 짚지 않을 수 없다. 윤교수는 식민지 시대를 보는 ‘지배와 저항’이라는 이분법을 버려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 왔다. 지배와 저항 사이에 ‘협력’ ‘자치’와 같은 중간항들을 봐야 비로소 식민지 시기가 온전히 보인다는 것이다. 이번 책의 공동편자들은 ‘친일’ 대신 ‘협력’이라는 표현을 쓴다. 윤교수는 최근 펴낸 ‘지배와 자치’(역사비평)에서 식민지시대 농촌의 자치구조를 입체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협력도 사상이다’. 역사학계에서 보면 아주 파격적인 소제목이죠. 이제는 일제 협력자가 윤리적 타락분자라거나 도덕적 단죄의 대상이라기보다 제국주의 지배 하에서 잘 허용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나름대로 자치와 협력을 모색한 것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인 윤교수는 스스로를 한국사 학계의 ‘이단자’로 칭한다. “저 같은 70년대 학번들은 학계에서는 ‘이단적인’ 얘기로 비치는 포스트모던 얘기를 잘 안하는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번 편집진들 중에 제가 최연장자가 돼버렸고 좌장 비슷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윤교수가 후배 소장학자들과 함께 엮은 이 책의 편집 방식은 공교롭게도 ‘재인식’과 닮아 있다. 6명의 편자들이 90년대 이후 쓰여진 글들을 엮어 서문을 쓰는 식이었다. “‘재인식’이란 이름을 단 책이 이미 나와서 한국 사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상황에서 더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인식’ 편저자에 한국사 전공자가 없었던 것과 달리 이번 작업에는 윤교수 외에도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 이용기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등 한국사 전공자들이 참여했다. 이외에도 다수 국문학자들과 인류학자, 사회학자들의 글이 논의를 풍성하게 했다.(손제민 기자)

06.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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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3 11:21   좋아요 0 | URL
님이 올리신 글 하루에 한 꼭지 정도 읽고 있습니다. 특히 번역 관련 글은 일반 독자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님이 올리신 자료만 인쇄해서 볼 수 있는 방법을 부탁드립니다. 그냥 인쇄를 누르니, 옆 부분이 잘리는군요.

로쟈 2006-11-23 11:35   좋아요 0 | URL
저라고 꼼수가 있는 건 아니구요, 가로인쇄를 하면 보기엔 뭐하지만 안 잘리게 인쇄할 수는 있습니다. 알라딘에서 좀더 편리한 인쇄 서비스를 제공해주면 좋겠지만...

마늘빵 2006-11-23 11:37   좋아요 0 | URL
아 이것도 관심있는 주제인데. 제가 관심 갖는 분야에 대해 로쟈님이 잘 정리해주셔서 매번 잘 보고 갑니다. 언제나 '지금의 할 일' 때문에 막연히 이런 주제들에 대해 후에 더 자세히 알아보자, 읽어보자라고 미루지만요.

기인 2006-11-23 11:46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 오랜만에 윤해동 선생님 뵈니 반갑네요. ㅎ

로쟈 2006-11-23 12:20   좋아요 0 | URL
아프락사스님/ 관심사가 비슷하다면 같은 동네에 사는가 봅니다.^^
기인님/ 발도 넓으시네요.^^

드팀전 2006-11-25 08:08   좋아요 0 | URL
책이 두껍네요..요즘은 진득하게 책보기가 힘들어져서 두꺼우면 겁이나요.

로쟈 2006-11-25 13:52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 먼저 축하부터 드려야겠네요! 그게 보기엔 겁나지만 꽂아두기엔 좋죠.^^
 

어제 아침신문에서 팔레스타인의 여성작가 사하르 칼리파와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학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성은 익히 잘 알려진 것이지만, 팔레스타인 작가, 더 나아가 '여성작가'에 대해서 별반 아는 바도 들어본 바도 없기에 주목해서 읽게 되었고, 더불어 옮겨놓을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이지만, 사하르 칼리파의 책은 다행히도 국내에 번역/소개돼 있다. <가시선인장>(한국외대출판부, 2005)이 그것으로 팔레스타인/아랍 문학 전문가인 송경숙의 교수의 번역이다. 더불어 알게 된 것이지만, 같은 팔레스타인 작가로 갓산 파나카니의 작품들과 그 연구서까지 출간돼 있다. 적어도 맛보기는 되지 않을까 한다.

한국일보(06. 11. 22) 사하르 칼리파 "절망에 저항하는게 지금의 희망"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이중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남성과 이스라엘, 모두로부터요. 그러니 여성 해방과 팔레스타인 해방을 동시에 모색해야 하는 게 제 글쓰기의 운명인 셈이죠.”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여성 작가 사하르 칼리파(65)가 처음으로 내한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대표 정희성)가 ‘고통의 기억과 새로운 희망의 연대: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을 주제로 21~29일 개최하는 ‘제13회 세계 작가와의 대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1941년 요르단강 서안의 나불루스에서 1남8녀의 다섯 번째 딸로 태어난 그는 아랍 전통에 따라 어린 나이에 강제결혼을 하면서 아랍 여성의 부조리한 인간조건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러나 13년에 걸친 도박중독자와의 비참하고 불행한 결혼생활은 그에게 구원으로서의 글쓰기라는 결실 또한 맺게 해주었다. 처절한 투쟁 끝에 이혼한 후 두 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98년 아이오와 대학에서 여성학 및 미국 문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나불루스와 가자 지역의 여성문제 연구소에서 일하며 여성 운동과 소설 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지금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여성들은 더더욱 그렇고요. 일부 여성들에겐 고등교육과 사회참여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대다수 여성들은 극심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여성들이 절망으로 인해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근본주의가 그들을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 거죠.”

<가시 선인장>(1976), <해바라기>(1980), <유산>(1997) 등의 소설을 통해 민족해방 투쟁과 여성문제를 동시에 조명해온 사하르 칼리파는 ‘아랍 여성들을 망치는 독’이라는 비난에 시달리며 무슬림과 좌파 작가들의 공격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그녀의 작품들은 주로 독일어권에 번역돼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와 의료보장제도, 교육의 기회 보장 등은 인간 권리의 문제입니다. 저는 그것을 동서(東西)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그 가치들의 근원이 어디든 상관하지 않아요. 팔레스타인이 나아질 수만 있다면 이스라엘에서 온 것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국내에도 소개된 <가시 선인장>(송경숙 옮김, 한국외국어대 출판부)은 1967년 6월 전쟁에서 아랍의 패전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놓이게 된 1970년대초의 나불루스를 배경으로 삼아 이스라엘 점령이 팔레스타인 사회에 가져온 구조적 변화와 그 변화에 대응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사회의식과 행동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그이지만, 해방에 대한 전망을 묻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든 사람이 좌절을 얘기합니다. 저 역시 낭만적 의미에서의 희망은 믿지 않아요. 우리가 아무리 현명하고 유능해도 거대한 미국과 싸워 이길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 절망적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 저항하도록,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 제가 할 일입니다. 절망적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게 하는 것 말입니다.”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자유롭게 길거리를 오가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을 보며 너무 행복하고 부러웠다”는 그는 21일 연세대에서 ‘아시아 여성문학 심포지엄’을 가진 데 이어 22일 원광대에서 ‘팔레스타인 작가 초청 문학 강연’을 한 후 23일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간다.

06.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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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골' 영화의 대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이 세상을 엊그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최근에 읽은 영화잡지에서 그의 신작 <프레리 홈 컴패니언>이 극장에 걸려있다는 소식까지 접했는데, 비록 적지 않은 나이이긴 하나 그의 죽음은 갑작스럽다. 더불어, 몇 가지 상념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부고기사와 함께 그의 영화와 관련된 개인적인 '인연' 몇 가지를 적어둔다.  

한겨레(06. 11. 23) 미 독립영화계 거장 알트만 감독 별세

20일(현지시각) 미국 독립영화계의 거장 로버트 알트만 감독이 81살을 일기로 50년간의 영화 인생을 마감했다. 알트만 감독의 영화제작사인 ‘샌드캐슬 5 프로덕션스’는 알트만이 이날 로스앤젤레스의 세드라스 시나이 메디컬센터에서 암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한평생 비주류 영화를 만들었던 그는 작품상·감독상을 포함해 다섯 차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나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6년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다.

1925년 2월20일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21살 때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잠시 배우로 활동하다 50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16mm영화를 제작해, 55년까지 60여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55년 만든 첫 극영화 ‘탈선자들’이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눈에 띄어 히치콕의 TV시리즈인 ‘앨프리드 히치콕 제공’의 몇몇 에피소드를 감독했다.



그는 1970년 한국 주둔 미 육군 야전병원을 무대로 삼은 블랙코미디 영화 ‘매쉬 (M.A.S.H)’로 작품성과 흥행성 두 마리를 잡는 데 성공한다(*이 블랙코미디가 알트만의 초기 대표작이라고 한다. 이전에 자료화면을 보니까 한국전을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베트남 복장을 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탓에 우리에겐 다른 의미로 코믹한 영화이겠다).

그 뒤 ‘매케이브와 밀러 부인(1971)’, ‘내슈빌'(1975) 등 헐리우드의 기존 문법과 다른 영화들로 명성을 얻으며 마틴 스콜세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등과 함께 70년대의 헐리우드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예술영화 전성시대가 끝나자, 알트만은 80년대 대부분을 16mm 영화를 찍거나 파리에 거주하면서 케이블 TV용 영화를 만들면서 보내다 92년 헐리우드를 풍자한 ‘플레이어’로 돌아왔다.(박현정 기자)

경향신문(06. 11. 23) 美 인디영화 거장 로버트 알트만 별세

미국 인디영화계의 대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이 20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알트만의 영화제작사인 샌드캐슬5 프로덕션스는 21일 알트만이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알트만이 10년전 심장이식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와 관련된 질병으로 추정된다.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난 알트만은 1970년대 미국 영화계의 총아였다. 이 시기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세이지 등이 한꺼번에 등장해 이전 세대에서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쏟아낸 때였다. 알트만은 한국전쟁을 풍자적으로 다룬 ‘매쉬’(70), 뒤틀린 뮤지컬 영화 ‘내슈빌’(75) 등으로 기존 할리우드와는 완전히 다른 문법의 영화를 선보였다.


 

 

 


그러나 타협을 모르는 알트만에게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의 블록버스터가 득세했던 80년대는 시련의 시기였다. 이후 알트만은 할리우드의 상업적인 제작환경을 풍자한 ‘플레이어’(92)로 화려한 재기를 알렸고(*내가 극장에서 제일 처음 본 알트만의 영화도 팀 로빈스 주연의 <플레이어>였다), ‘숏 컷’(93) ‘고스포드 파크’(2001) 등의 걸작을 공개하며 여전한 창조력을 과시했다.

알트만은 수많은 배우들이 나와 중첩된 내러티브를 이끌며 자연스러운 즉흥연기를 보여주는 이른바 ‘알트만 스타일’의 영화를 창조했다. 감독 이름이 하나의 스타일로 불리는 건 앨프리드 히치콕 같은 공인된 거장에게나 가능한 일이다(*그러한 알트만 스타일의 최고 걸작이 <숏컷>이다).



알트만은 영원한 반골이었다. 그는 “펄럭이는 미국 국기를 보면 농담 같다고 느낀다” “텔레비전이 예술매체라 믿는 건 미친 짓이다. 그건 광고 매체다”라고 말했다. 은퇴 계획에 대해 “은퇴라구? 죽음 말인가?”라고 말하던 알트만은 사망 당시에도 내년 2월 촬영할 신작을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제 그 신작의 시사회는 지상이 아닌 천상에서 열릴 듯하다).(백승찬 기자)

06. 11. 22-23.

P.S. 내가 본 알트만의 영화들은 주로 <플레이어> 이후 국내에 소개된 영화들이다. 그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숏컷>(1993)과 <패션쇼>(1994)이다(<패션쇼>의 원제는 <프레타포르테>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영화가 같은 시기에 개봉됐었다는 사실인데, 나는 두 영화를 같은 날 연이어 본 기억이 있다.

 

두 영화 모두 종로쪽에서 상영했었고 나는 그날 알트만의 걸작과 졸작을 동시에 보았다고 일기에 적었다. 그게 나만의 판단은 아니어서 일반적으로 <숏컷>이 그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반면에(이미지는 <숏컷>의 제니퍼 제이슨 리) <패션쇼>는 최악의 작품으로 거명된다(게다가 <패션쇼>는 마지막 장면(누드 패션쇼)에서 화면 가리개까지 둥둥 떠다녔는지라 불쾌한 감상을 안 가질 수 없었다. 나는 러시아에서야 이 영화의 노컷판을 구했다). 

모두 33편의 장편 극영화 필모그라피 가운데(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전체 필모그라피는 39편에 이른다), <플레이어>(1992) 이후에 알트만이 찍은 영화는 모두 10편이고 그 중에서 나는 5편을 보았다. 아직 국내에 개봉되지 않은 듯한 <컴퍼니>는 러시아에서 본 영화이다. 어쨌거나 이젠 그의 영화들 모두가 '회고전'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의 필모그라피를 거꾸로 되짚어가며 <제임스 딘 스토리>(1957)에까지 이르는 '로버트 알트만 스토리'의 여정을 감행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시도이겠다 싶다(소개되지 않은 영화가 너무 많지만 여하튼 내년은 장편으로만 치자면 데뷔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가끔씩 드는 생각이지만, 인생은 한 사람을 추억/기념하는 일만으로도 너무 짧다!..

1. 프래리 홈 컴패니언 (A Prairie Home Companion, 2006)

2. 더 컴퍼니 (The Company, 2003)

3. 고스포드 파크 (Gosford Park, 2001)

4. 닥터 T (Dr. T And The Women, 2000)

5. 쿠키의 행운 (Cookie's Fortune, 1999)

6. 진저브레드 맨 (The Gingerbread Man, 1998)

7. 캔사스 시티 (Kansas City, 1996)

8. 패션쇼 (Prêt-à-Porter, 1994)

9. 숏컷 (Short Cuts, 1993)

10. 플레이어 (The Player,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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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임스 딘 스토리 (The James Dean Story, 1957)

P.S.2. 잘 알려진 것이지만 알트만의 <숏컷>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들을 묶어서 영화화한 것이다. 참고가 될 만한 자료(씨네21, 05. 03. 22)를 옮겨놓는다.

단편집 <너무나 많은 물이 집가까이에> <여자들에게 우리가 간다고 말해줘> <이웃사람> <목욕> 등 9편 레이먼드 카버 지음
영화 <숏컷> 로버트 알트먼 감독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에선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친구와 잠깐 드라이브를 하고, 언제나처럼 낚시 여행을 떠나고, 이웃에 사는 부부와 저녁을 먹을 뿐이다. 그런데도 파국은 천연덕스럽게 찾아온다. 작은 실수, 미세한 틈새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들이닥쳐 사막처럼 막막해진 인생을 뒤로하고 떠나버린다. 로버트 알트먼은 때로는 몇 시간에 불과한 드라마를 담고 있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을 비행기 안에서 읽고 ‘레이먼드 카버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플레이어>의 성공 덕분에 알크먼은 아홉개의 단편을 골라내어 가늘지만 탄탄한 실로 꿰매었다.

 

 

 

 

<숏컷>에서 비교적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는 <너무나 많은 물이 집가까이에>에 바탕을 둔 것이다. 클레어는 남편 스튜어트와 세 친구가 산속 계곡으로 낚시 여행을 갔다가 알몸으로 물속에 버려진 젊은 여자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듣는다. 그들은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돌아가려면 너무 멀고 여행 첫날이라는 핑계를 들어 시체를 곁에 둔 채 낚시를 한다. 그 물로 그릇을 씻고 커피를 끓인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무너져내린 클레어는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가장 감상적인 에피소드는 <목욕>. 스코티는 여덟 살이 되는 생일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털고 일어난 스코티는 그날 오후 혼수상태에 빠지고 깨어나지 못한 채 죽고 만다. 그 사이 주문받은 생일케이크를 완성한 제빵사는 집요하게 스코티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독촉한다. 알트먼은 아홉 단위로 이루어진 인물들을 서로의 에피소드에 스쳐가게 만들거나 서로 관계를 맺어주었다. 카버의 소설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좀더 감정이 많고 좀더 설명이 많다. 카버처럼 망연하게 내버려두진 않는다. 그럼에도 황무지를 돌아보는 듯한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는 건 알트먼이 카버와는 다른 방식으로 카버의 정수에 다가갔기 때문일 것이다.

P.S.3. 알트만에 관한 책으론 올해 나온 <알트만이 말하는 알트만(Altman on Altman)>(Faber & Faber, 2006)과 <로버트 알트만 인터뷰(Robert Altman: Interviews)>(University Press of Mississippi, 2000) 등이 있다. 두껍지 않은 책들이기에 소개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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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23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트만 감독은 처음 뵙는 분입니다.
로쟈님 덕분에 견문을 넓힙니다. 고맙습니다. 로쟈님.


로쟈 2006-11-2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말씀을. 알트만은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놓칠 수 없는 감독 중의 한 사람입니다...

어부 2006-11-2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네요.. 전 <내쉬빌>을 그의 스타일의 최고로 꼽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스트우드보다는 오래 버텨주길 바랬는데..-_ㅜ

로쟈 2006-11-2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본 알트만은 사실 몇 편 되지 않습니다. 거기에 걸작과 졸작이 같이 들어 있다는 것 정도로 위안을 삼는 편이죠...

로쟈 2006-11-23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TV시리즈로도 있다는 건 알았지만 모두 알트만이 찍은 줄 알았습니다). 앞으로 종종 코멘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서재가 좀 '조용한' 편이어서 말이 없는 제가 꽤나 떠드는 사람으로 오해를 사고 있거든요.^^ 좀 진정이 되시면 알트만에 관한 '뒷얘기'도 나누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