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정리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는 이제 '향수'어린 핑계가 될 듯하다. 책에 대한 '정보'를 읽고 처리할 시간조차 부족한 요즘이기 때문이다. 독서의 대가들은 뭔가 다른 꼼수들을 갖고 있을 듯하지만, 현재 내가 취한 방식으로는 그렇다. 아침에 우편물함에 계간 <창작과비평>(겨울호)가 와 있는 걸 들고 왔는데, 생각해보면 지난 가을호에 실려있던 글꼭지들 중에서 몇 편이나 읽었는지 스스로 궁금하다. 그나마 책에 대한 궁리와 독서량이 남들 수준은 된다고 자임하는 처지에서도 그러하다. 이 '엔드게임'에 무슨 꼼수가 있는 것일까? 

 

 

 

 

여하튼 급수가 낮은 나로선 하던 방식대로 그날그날의 정보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겠다. 최근에 나온 <근대를 다시 읽는다>(역사비평사, 2006)의 책임편집을 맡은 윤해동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는 것이 오늘의 한 가지 일과이다. 편자는 이 주제와 관련한 여러 공저들을 낸 바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식민지의 회색지대>(역사비평사, 2003) 정도이다.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당시에 화제가 되었던 책이었기에 여러 건의 리뷰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퍼슨웹이 기획했던 인터뷰북 <인텔리겐차>(푸른역사, 2002)에서 '윤해동 편'을 읽은 기억이 있으니까 초면은 아닌 셈이다.

여하튼 새로 나온 책은 올초에 출간되어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대한 '진보학계'의 본격적인 반론이란 성격을 갖는다고. 이미 <해방전후사의 인식>도 부랴부랴 재출간되기도 했었던 만큼 2006년 역사학계의 풍경은 이 배다른 3부작(?) 시리즈로 다 정리될 듯하다. 이 <다시 읽는다>가 <인식>과 <재인식>에 대한 변증법적 지양인지, 혹은 '제3의 길'인지 옆자리에선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페이퍼의 제목은 그냥 '근대에 대한 인식과 재인식 사이'라고만 해두었다. 거기서 어떤 게 비져나오는 건지는 다 읽어보신 분들이 정리해주면 좋겠다.    

경향신문(06. 11. 23)  낡은 근대에 대한 젊은 비판 ‘근대…’ 책임편자 윤해동교수

지난 2월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을 비판하는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윤해동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47)는 “처음에는 ‘이제야 나와야 할 것이 나왔다’며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책장을 펼치는 순간 기대는 큰 실망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인식’은 암울했던 1980년대에 그 나름의 소명은 다했습니다. 다만 거기에 태반을 둔 사람들이 자기 변신을 잘못한 측면이 크죠. 그런 점에서 ‘재인식’은 중요한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못했다고 봅니다.”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며 디지털 혁명으로 사람 간 소통양식이 바뀌는 현실에서 ‘인식’류의 민족주의·민중주의는 재인식될 필요가 있지만 그 방향이 ‘대한민국 중심주의’ ‘애국주의’ 나아가 냉전논리로의 회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근대를 다시 읽는다 1·2’(역사비평사)이다. 윤교수는 이 책의 책임 편저를 맡았다.

윤교수는 “이제는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할 ‘근대’라는 틀을 오히려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재인식’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명백히 파괴적”이라고 했다. 그러면 다시 읽어야 할 ‘근대’란 무엇인가. 윤교수는 “오늘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새로운 시간의 지평에서 ‘민족’의 ‘역사’를 다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민족’과 ‘국가’라는 틀에서 좀더 자유로워져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는 것이다.

근대는 해방과 억압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것은 억압이 된다. 서양과 일본의 근대는 강한 국민국가를 만들어 냈지만 그 과정은 식민지 건설 없이는 불가능했다. 식민지는 지정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삶의 일상으로 확장된다. 이주자, 여성, 장애인, 어린이 등 다양한 소수자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근대의 표상을 이루는 과정에서 지금도 ‘우리 안의 식민지’로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편자들은 “모든 근대는 기본적으로 식민지적”이라고 말한다.

학교 조회’를 비롯한 수많은 학교 규율은 ‘교육칙어’를 낭독하던 일본 근대교육의 학교 규율을 본뜬 것이다. 이제 교육칙어는 없어졌지만 본질적으로는 별로 바뀌지 않은 학교 규율이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일까.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은 이른바 ‘전쟁 미망인’들이 만악의 근원처럼 지탄 받았던 전후 그늘은 ‘분단체제론’을 주장하는 ‘우리민족끼리’주의자들도 별로 눈여겨 봐주지 못하는 부분이다.

‘친일청산’ 문제도 짚지 않을 수 없다. 윤교수는 식민지 시대를 보는 ‘지배와 저항’이라는 이분법을 버려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 왔다. 지배와 저항 사이에 ‘협력’ ‘자치’와 같은 중간항들을 봐야 비로소 식민지 시기가 온전히 보인다는 것이다. 이번 책의 공동편자들은 ‘친일’ 대신 ‘협력’이라는 표현을 쓴다. 윤교수는 최근 펴낸 ‘지배와 자치’(역사비평)에서 식민지시대 농촌의 자치구조를 입체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협력도 사상이다’. 역사학계에서 보면 아주 파격적인 소제목이죠. 이제는 일제 협력자가 윤리적 타락분자라거나 도덕적 단죄의 대상이라기보다 제국주의 지배 하에서 잘 허용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나름대로 자치와 협력을 모색한 것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인 윤교수는 스스로를 한국사 학계의 ‘이단자’로 칭한다. “저 같은 70년대 학번들은 학계에서는 ‘이단적인’ 얘기로 비치는 포스트모던 얘기를 잘 안하는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번 편집진들 중에 제가 최연장자가 돼버렸고 좌장 비슷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윤교수가 후배 소장학자들과 함께 엮은 이 책의 편집 방식은 공교롭게도 ‘재인식’과 닮아 있다. 6명의 편자들이 90년대 이후 쓰여진 글들을 엮어 서문을 쓰는 식이었다. “‘재인식’이란 이름을 단 책이 이미 나와서 한국 사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상황에서 더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인식’ 편저자에 한국사 전공자가 없었던 것과 달리 이번 작업에는 윤교수 외에도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 이용기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등 한국사 전공자들이 참여했다. 이외에도 다수 국문학자들과 인류학자, 사회학자들의 글이 논의를 풍성하게 했다.(손제민 기자)

06.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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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3 11:21   좋아요 0 | URL
님이 올리신 글 하루에 한 꼭지 정도 읽고 있습니다. 특히 번역 관련 글은 일반 독자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님이 올리신 자료만 인쇄해서 볼 수 있는 방법을 부탁드립니다. 그냥 인쇄를 누르니, 옆 부분이 잘리는군요.

로쟈 2006-11-23 11:35   좋아요 0 | URL
저라고 꼼수가 있는 건 아니구요, 가로인쇄를 하면 보기엔 뭐하지만 안 잘리게 인쇄할 수는 있습니다. 알라딘에서 좀더 편리한 인쇄 서비스를 제공해주면 좋겠지만...

마늘빵 2006-11-23 11:37   좋아요 0 | URL
아 이것도 관심있는 주제인데. 제가 관심 갖는 분야에 대해 로쟈님이 잘 정리해주셔서 매번 잘 보고 갑니다. 언제나 '지금의 할 일' 때문에 막연히 이런 주제들에 대해 후에 더 자세히 알아보자, 읽어보자라고 미루지만요.

기인 2006-11-23 11:46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 오랜만에 윤해동 선생님 뵈니 반갑네요. ㅎ

로쟈 2006-11-23 12:20   좋아요 0 | URL
아프락사스님/ 관심사가 비슷하다면 같은 동네에 사는가 봅니다.^^
기인님/ 발도 넓으시네요.^^

드팀전 2006-11-25 08:08   좋아요 0 | URL
책이 두껍네요..요즘은 진득하게 책보기가 힘들어져서 두꺼우면 겁이나요.

로쟈 2006-11-25 13:52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 먼저 축하부터 드려야겠네요! 그게 보기엔 겁나지만 꽂아두기엔 좋죠.^^